광마4
풍등이라는 것은 원래가 하늘에 기원을 담아 날려보내는 것으로 풍등을 하늘로 뛰우는 작은 불길이 꺼지고 나면 아래로 떨어지게 되는 물건이다.
그리고 떨어지는 풍등에 불길이 옮겨붙지 않도록 하기위해서 초의 버팀대는 가는 철사로 엮어서 만든다.
하지만....
무적은 철사에 기름을 먹인 얇은 천을 감았다.
초가 다 타서 없어질 즈음에는 불이 천으로 옮겨붙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렇게 기름을 먹인 천을 타고 풍등으로 옮겨붙은 불덩이가 대력보로 떨어지고 기름이 뿌려진 목조건물에 불이 붙는다.
그리고 순식간에 대청을 태우며 솟구치는 강한 불길은 바닥의 기름에도 옮겨붙으며....
흙으로 다져진 땅마저 태울 것처럼 솟구쳐 오르는 불길속에 대력보가 화마에 휩싸인다.
대력보의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것 같은 거센 불길.
"불길부터 잡아라!"
황급히 소리치는 대력보의 무인들 사이로 커다란 철판 하나가 움직인다.
삐윳!
삐윳!
기괴하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잘려져 나가는 목과 몸뚱이에도 불길이 옮겨붙고....
바닥으로 쓰러지는 시체의 옷으로 기름이 번지며 시뻘건 불길이 타오른다.
대력보를 모두 태울 것처럼 타오르는 불길과 갑작스럽게 주위를 달구는 뜨거운 열기.
그렇게 세상을 태울 것처럼 넘실거리는 불길속에서 무적이 누군가를 찾으며 상대의 목을 무차별적으로 잘라낸다.
삐윳!
삐윳!
그리고....
우웅!
커다란 울림과 함께 무적을 향하는 살벌한 경력이 느껴지고....
등을 향해 날아오는 경력에 무적의 몸이 팽이처럼 돌아가며 손안의 철판이 몸을 가린다.
쩡!
단단한 쇠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뒤로 몇 걸음 밀려나는 무적.
"네 이놈! 너 뭐하는 놈이야?"
언제 나타났는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상대가 보인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덩치에 터질 듯 꽉 찬 근육의 굴곡.
그리고....
어....?
저런 것도 할 수 있구나....
세상을 태울듯이 넘실거리는 불길이 상대의 몸주위에서 회오리처럼 맴도는 것이 보인다.
강한 내공으로 자신을 침범하는 불길을 막는 상대의 모습.
아직은 자신의 무공으로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약간은 서툰 무적의 눈에 전신을 통해서 진기를 뿜어내며 불길을 막는 상대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신기해 보이기도 한다.
"대력보주인가?"
하지만....
속마음과는 상관없는 차가운 무적의 말이 나오고....
"뭐야....?"
천부적으로 타고난 신력을 바탕으로 파금무破金舞라는 가문의 권법을 익혀 강호의 초일류고수로 군림하는 자.
어떤 무기를 든 상대라도 능히 맨주먹으로 상대할 수 있다고 알려진 근신공박近身功搏의 대가.
바로 강호에서 대력보의 보주.... 대력마 문 승을 일컫는 말이다.
건방진 상대의 말에 문 승이 무적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봤다.
헝클어진 머리가 얼굴을 가리고 괴상한 모양의 칼을 든 상대.
이자구나....!
백골음마가 주의하라고 전해준 바로 그 미친 놈.
"우리 대력보와 무슨 원한이라도 있나?"
"없어."
없다고....?
짧은 무적의 말에 문 승은 기가 막혔다.
원한도 없는데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문 승이 이빨을 악물었다.
장원의 건물은 물론이고 흙바닥까지도 모두 태워버릴 것처럼 타오르는 뜨거운 불길.
그리고 불길속에 갇힌채 아우성치는 자신의 문도들.
"너.... 원한도 없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지?"
끓어오르는 분노를 속으로 삼키며 문 승이 억지로 입을 열어 물었다.
"백골음마는 어디에 숨어있는가?"
백골음마....?
역시 그와의 원한인가?
대력마가 두 손을 들어 주먹을 쥐어보인다.
"이 주먹에 맞아 죽을 놈이 그런 것을 알 필요가 있을까?"
억누른 분노가 느껴지는 말과 함께 대력마가 갑자기 무적의 코앞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두 개의 주먹이 무적을 부술듯이 날아온다.
쩡!
쩡!
쇠라도 부술 것 같은 대력마의 강한 주먹에 무적이 뒤로 밀리고....
밀려나가는 무적의 몸에서 떨어지지않고 바짝 따라붙으며 풍차처럼 주먹을 휘두르는 대력마.
쩡!
큭....!
대력마의 주먹을 막는 무적의 칼이 뒤로 밀려나간다.
단순한 외공만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두 주먹의 위력.
그리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속도까지....
이래서는....
대력마의 주먹에 뒤로 밀리던 무적이 전신의 공력을 끌어올린다.
여전히 경맥을 자극하는 통증과 살짝 살짝 끊어지는 진기.
하지만....
이 정도는 견딜 수 있다.
삐윳!
자신을 향하는 상대의 주먹을 향해 무적의 칼이 살짝 움직이고....
끅....!
야릇한 신음과 함께 주춤거리는 대력마.
어떻게....?
마치 바람에 날리는 갈대처럼 하늘거리는 상대의 도가 보였다.
팔랑거리는 칼의 싸늘한 감촉과 함께 주먹을 찢어놓으며 올라오는 칼.
부딛치는 상대의 무기를 튕겨내버리는 자신의 주먹이....?
뒤로 물러설 틈도 막을 여유도 없이 상대의 괴상한 모습을 한 칼에 자신의 오른팔이 잘려져나간다.
스걱!
그리고....
삐윳!
다시 한차례의 파공성과 함께 이번에는 왼팔이....
크윽!
고틍스러운 신음과 함께 뒤로 물러나는 대력마를 이번에는 무적이 빠르게 따라붙는다.
삐윳!
크아악~~!
희끗하게 칼이 그리는 사선이 보이고....
순간적으로 온몸과 정신을 지배하는 잘려진 두 다리의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는 대력마.
"보주님을 구해라!"
두 사람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대력보의 문도들이 놀라서 외치는 소리에 무적이 몸을 돌린다.
삐윳!
돌아가는 몸을 따라 빠르게 무적의 칼이 움직이고....
불길속에서 떠오르는 두 개의 둥근 달.
그렇게 무적의 칼이 만든 두 개의 원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대력보의 문도들을 향해 움직이고....
크악!
큭!
짧은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허공으로 솟구치는 수많은 목.
한 번의 칼질에 막아서는 대력보도들의 목이 잘려지며 허공을 날아다닌다.
불길속에서 피를 뿜어며 날아다니는 목과....
역겨운 시체타는 냄새.
빌어먹을....
공력을 끌어올린 몇 번의 칼질에 역류하듯이 날뛰는 몸속의 진기가 자신을 괴롭힌다.
무적이 이를 악물며 쓰러져있는 문 승을 향해 손을 뻗었다.
덥석!
고통도 잊은채로 경악한 문 승의 멱살이 무적의 손에 잡히고....
"이제 이야기 좀 할까?"
조용한 무적의 음성이 새어나왔다.
"빨리 불길부터 잡아라!"
자신들의 보주가 상대에게 잡힌 것도 모른채 미친 것처럼 불길속에서 소리치는 대력보도들의 고함소리.
세상을 다 태울 것처럼 점점 더 거세어지는 불길속에서 우왕좌왕하는 대력보의 무인들 사이로 대력마를 움켜진 무적이 바람처럼 사라진다.
* * * * *
귀영은 꽃나무 가지를 손질하는 노인을 향해 조용히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혈불血佛이 죽었습니다."
무슨....?
생각지도 못한 말에 꽃가지를 손질하던 노인의 손끝에 살짝 힘이 들어가고....
뚝!
힘없이 꺽이는 꽃가지.
"이런...."
당황한 것처럼 꽃나무를 멍하니 보고있던 노인이 귀영을 향해 등을 돌렸다.
"타말인가?"
"아닙니다."
"아니라고....? 그럼 누구지?"
귀영이 노인과 눈을 마주치기 난처한 듯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금군의 교두 한 명과 그를 따르는 포졸입니다."
노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귀영을 내려다봤다.
혈불이 고작 금군의 교두 나부랭이에게 죽었다고....?
혈불을 아는 자라면 누구라도 믿기 힘든 이야기.
하지만....
귀영은 절대로 자신에게 엉터리 보고를 하지는 않는다.
"내가 잘 알아듣지를 못하겠구나.... 좀 자세히 이야기 해주겠느냐?"
귀영이 고개를 들어 자신의 주인을 봤다.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이 알고있는 상식을 벗어나는 이야기나....
믿기 힘든 말을 듣게 되면 무시하고 의심하게 되는 법이다.
그럴리가 없다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그러나 자신의 주인은 그 황당한 이야기라도 믿지않거나 무시하지않고 상대에게 자세히 묻는다.
혹시라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지않을까?
그런 신중한 생각과 함께....
오랜 시간동안 자신이 모셔온 주인은 그렇게 타인의 말을 의심하지않고 다시 한 번 자세히 묻고 또 흘려듣지도 않는다.
"주모께서 그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혈불에게 동선을 알려줬습니다. 이후 혈불이 팔혈승과 함께 그들의 행적을 따랐는데...."
"그런데 그들을 쫒던 혈승이 누군가에게 죽었다.... 타말도 그곳에 있었는가?"
"타말의 흔적은 없었고.... 현장을 중심으로 남경에서부터 악양까지 이어지는 주위의 관도를 모두 조사해본 결과.... 흉수로 짐작되는 자가 두 명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라....? 그들이 누구지?"
연기처럼 흔들리던 귀영의 몸이 살짝 멈춘다.
"한 명은 용조 등 무결입니다. 그가 철각선풍개와 함께 남경에서 악양으로 향했습니다."
"등 무결?"
의외라는 듯 되묻는 노인의 말에 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가 틀림없었습니다."
"흠.... 등 무결이라....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네가 말한 그 금군의 교두 나부랭이고?"
"예."
관을 무시하는 노인의 말에 귀영이 쓴 웃음을 지었다.
"왜 금군의 교두가 혈불을 죽였다고 생각하느냐? 혹시라도 등 무결과 충돌했을 수도 있지않느냐?"
"혈불이 죽은 장소는 관도로 당시 등 무결은 철각선풍개와 함께 배를 타고 장강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혈불의 시체가 있던 관도에는 부서진 마차가...."
"마차....? 그렇다면 마차로 이동하던 상대와 혈불이 충돌했다는 것이냐?"
"예."
"그리고.... 그 마차에 탄 금군의 교두에게 혈불이 죽었다는 것이고?"
"정황상 틀림없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명확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도대체가 믿기지를 않는다.
서역과 천축을 통틀어 제일은 아니더라도 홍교혈불이 어떤 자인가?
홍교의 지존인 환희불에게나 윗자리를 양보할까....
다른 누구에게도 쉽게 죽음을 당할 자는 결코 아니다.
그런데 죽었다.
그것도 듣도 보도 못한 금군의 교두 나부랭이에게....?
"그래.... 그 금군의 교두는 도대체 누구라고 하더냐?"
"정확한 신분을 확인하기위해서 관에 선을 달아 조사하고 있습니다."
"알겠다. 그만 가보거라."
노인의 말이 떨어지고....
언제나 처럼 사라져야 할 귀영이 움직이지 않는다.
응....?
귀영이 자신의 지시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가라는 말에도 기다리는 귀영을 보자 노인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
항상 자신에게 보고하고.... 또 보고가 끝나면 지시를 받고 떠난다.
지난 시간동안 습관처럼 되풀이해온 두 사람 사이의 정형화된 행태.
그렇게 귀영은 자신의 눈과 귀의 역활을 하며 언제나 바쁘게 움직인다.
그런데....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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