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39화 (39/158)

광마3

* * * * *

"말이 끄는 수레를 한대 사고 싶습니다."

무적의 말에 차를 따르던 마장馬場의 주인이 고개를 들었다.

"왜? 떠나시려고?"

"대력보라는 곳에서 떠나라고 하더군요."

말을 잇는 무적의 얼굴에 두려움이 살짝 보인다.

"쯧쯧쯧...."

가볍게 혀를 차며 마장의 주인이 무적을 밖으로 안내하고....

"필요한 말을 고르면 수레를 달아주겠소."

"감사합니다."

넓은 마장안에 매어져있는 십수 필의 말이 보이고....

한마리 한마리 천천히 둘러보던 무적의 눈이 한 마리의 말 앞에서 멈춘다.

묶여있는 다른 말보다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눈에 지저분한 눈곱이 잔뜩 끼어있는 말.

눈곱뿐만이 아니라 짙은 검은 색의 갈기도 군데 군데 빠지고 탈색된 것이 한눈에 보기에도 병든 말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야릇한 눈으로 커다란 말을 쳐다보던 무적이 천천히 손을 뻗어  말의 갈기와 목밑을 쓰다듬고....

히히힝~~!

병든 말은 사람의 손길에 익숙한 듯 자신을 만지는 무적의 손길에 낮은 울부짖음을 토해낸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나를 위해 한가지 일을 해줄 수 있는 아이가 너밖에는 없을 것 같구나...."

약간은 애처럽게 들리는 무적의 음성이 나오고....

자신을 쓰다듬는 손길에 고개를 비비던 말이 무적의 말을 알아듣는지 눈을 깜빡이며 무적을 본다.

약간은 슬퍼보이는 무적의 눈이 말의 마음을 움직인건가?

말도 하지 못하는 말이 더 적극적으로 무적의 손에 자신의 얼굴을 비벼댄다.

"이 말로 하겠습니다."

"왜 하필 그 말로....?"

당황스러워하는 주인의 말에 오히려 무적이 의하해 한다.

"이 말은 안되는가요?"

"아....! 그건 아니지만...."

슬며시 얼버무려 버리는 주인과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는 무적.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말.

계속 사료를 축내기도 뭐해서 오늘 내일 날을 잡아 도살해야할 병든 말.

겉보기에는 다른 말보다 큰 덩치가 마치 명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기실은 당장 죽어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 늙은 말을 선택한 무적에게 주인은 따로이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그냥 죽여서 내다 버려야 될 말을 사준다는데....

"그 말은 은 닷냥만 주시면 됩니다."

"다섯 냥? 너무 싼데요?"

"괜찮소. 내가 당신의 사정이 딱해보여서 특별히 싸게 드리는 거요."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말하는 주인의 모습에 무적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대로 말해줘도 그냥 살 것을 굳이....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덩치도 크고 힘도 좋아보이니.... 수레보다는 마차를 달아주시겠습니까?"

"마차요?"

"예. 적당한 크기면 됩니다."

* * *

"등기름이 있으시면 저 마차에 한가득 실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저 마차에 가득 실을 수 있을 만큼 많은 등기름은 없습니다. 그런데 뭐에 쓸려고....?"

무적의 요구에 기름집 주인이 난색을 표한다.

"이제 이곳을 떠나야 되는데 다른 곳으로 가는 동안 향초라도 미리 만들어두려고 그럽니다."

"초를 만들거면 꼭 등기름이 아니라도.... 다른 기름으로도 되지 않을까요?"

"저는 등기름만 사용하다보니 다른 기름은 잘 몰라서.... 심지에 불만 잘 붙는다면 다른 것도 괜찮겠지요...."

"그럼 굳혀둔 동물성 기름으로 가져가십시요. 열만 조금 가하면 금방 녹을테니 다루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해주십시요."

* * *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내리는 작은 동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저마다 손에 형형색색의 풍등을 든 마을사람들.

그리고 동산의 한쪽에 무적이 가져다 놓은 수백 개의 풍등도 보인다.

까르르....!

헤헤헤....!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풍등을 손에 들고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떠드는 꼬마아이들의 모습이 보이고....

무적이 웃음띤 얼굴로 꼬마들에게 오라고 손짓을 한다.

그리고....

어미새에게 몰려드는 작은 새처럼 무적의 곁으로 몰리는 꼬마아이들.

"아저씨가 이제 이곳을 떠나야해서 이 풍등을 다 날리고 가야하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못 하겠구나. 너희들이 좀 도와주지 않을래?"

"네!"

"주세요. 아저씨!"

또랑또랑한 아이들의 말에 무적의 얼굴에 이해하기 힘든 안쓰러운 표정이 떠오른다.

그리고....

불이 붙은 심지로 손에 든 풍등의 작은 초에 불을 붙여 하늘로 날려보내고....

"정말 미안하구나...."

이해하기 힘든 처연한 말과 함께 신나서 떠드는 아이들의 손에 불붙은 심지를 건네며 풍등을 가리킨다.

까르르!

해맑게 웃으며 풍등에 불을 붙이는 꼬마들.

그리고 무적이 풍등을 날리는 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하늘로 올라가는 풍등.

하늘을 가득 채운 풍등이 바람을 타고 한 방향으로 날려간다.

그 옛날 제갈 공명은 포위된 자신들을 구하러 올 원군에게 소식을 전하기위해 풍등을 날렸지만....

지금 동산위의 사람들은 부귀와 영화를 축원하며 하늘로 풍등을 뛰운다.

동산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늘의 풍등에 소원을 빌며 기도를 하는 동안 무적이 슬며시 동산을 내려와 마차로 향했다.

커다란 마차를 달고있는 커다란 말이 보이고....

말의 목덜미를 한 번 쓰다듬어 준 무적이 마부석으로 올라탄다.

하지만....

마부석에는 이미 마부가....?

사람이 아니라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가 마부처럼 고삐를 잡고 않아있는 것이 보인다.

손으로 허수아비를 한 번 흔들어본 무적이 마부석 뒤의 문을 열고 마차안으로 들어가고....

마차안으로 들어서자 짙은 기름 냄새가 무적의 코를 찌른다.

마부석의 문과 연결된 자리를 잡아 편하게 앉으며 몸속의 진기를 돌려보는 무적.

윽....!

찌릿한 통증에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하지만 이정도면 견딜만 하다.

살짝 어금니를 깨물며 허수아비의 등뒤로 빠져니와 있는 말고삐를 힘껏 당기는 무적.

그리고....

히히힝~~!

커다란 울음소리와 함께 먼지를 일으키며 마차가 빠르게 동산을 벗어난다.

* * *

어둠이 내리고.... 대력보의 외당주 최 태일은 오늘도 변함없이 정문에 나와 길게 뻗어있는 진입로를 노려봤다.

해가 떨어지고 왕래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 길게 뻗은 진입로.

왠지 너무 조용해 을씨년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오늘도 오지 않는 것인가?

아니.... 그 미친 놈이 오기는 오는 것일까?

올 거면 빨리 좀 오던지 이건 피가 말라서....

후우....!

답답한 마음에 최 태일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자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풍등이 눈에 들어왔다.

풍등....?

분명히 가라고 했건만....

내일은 아예 그놈의 목을 잘라버릴까?

긴장된 상태로 며칠을 보내게되자 괜히 하늘의 풍등조차도 짜증스럽기만하다.

응....?

다그닥!

다그닥!

하늘의 풍등을 보고 있는 자신의 귀를 자극하는 작은 소리가 들리고....

발밑을 통해 은은하게 느껴지는 땅의 울림.

뭐지....?

크지는 않지만 뚜렷하게 들리는 작은 말발굽 소리와 야릇한 울림.

최 태일이 긴장한 얼굴로 진입로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대력보를 향하는 진입로의 초입에 마차 한대가 그 모습을 보인다.

마치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빠르게 대력보를 향해 달려오는 마차.

이 늦은 시간에 마차가?

안력을 돋구고 달려오는 마차를 자세히 살피자....

허수아비?

빠르게 달리는 마차의 속도에 짚이 풀어져 반쯤 허물어진 허수아비가 보인다.

좋지않다!

갑자기 등장한 일상적이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마차가 전신의 감각을 자극한다.

"마차를 막아라!"

최 태일의 고함소리에 정문을 지키던 대력보의 무인들이 빠르게 몸을 날려 마차를 향하고....

삐윳!

삐윳!

괴상한 소리와 함께 말고삐를 잡아채가던 무인들의 몸이 조각나 떨어진다.

최 태일의 눈에 목이 잘려 쓰러지는 수하들의 몸을 밟으며 멈추지않고 달려오는 마차가 보이고....

"물러서!"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온 마차를 막아서는 수하들을 향해 급하게 소리치며 최 태일이 검을 뽑아 말을 향해 휘둘렀다.

피융!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최 태일의 검이 말의 다리를 향하고....

푸히히힝!

괴로운 신음과 함께 두 개의 앞발이 잘려지며 앞으로 고꾸러지는 늙은 말.

그리고....

달려오던 탄력 그대로 뒷부분이 들리며 정문을 덮치는 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피해!"

누구의 입에서 나오는지도 모를 고함소리 속에서 꽁무니를 들고 거꾸로 서서 정문을 향하는 마차와....

마차를 막기위해 몸을 날리는 최 태일.

삐윳!

그리고 그 순간 선명하게 들리는 날카로운 파공성 하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잘려져 나가는 최 태일의 목과 함께 정문을 향하는 넓은 철판이 하나 보인다.

펑!

커다란 소리와 함께 대문이 부서져 날아가고....

정문안으로 굴러들어가 산산히 조각나는 마차.

쿠당탕!

몇 바퀴를 구른 마차가 산산히 부서지며 넓은 연무장안이 짙은 기름 냄새로 가득찬다.

마차안에 가득 실려있던 기름통이 굴러나와 부서지며  흩러내리는 기름.

그리고....

무적이 부서지지 않은 기름통 몇 개를 대청을 향해 날려보낸다.

퍽!

퍽!

대청의 벽과 대들보에 부딛치며 부서지는 기름통과 사방으로 비산하는 기름.

"뭐야?"

"적의 침입이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우르르 몰려나오는 대력보의 무인들과....

기다렸다는 것처럼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불덩어리.

하늘에서 불이....?

경험해 본적이 없는 괴이한 변화에 당황해하는 대력보의 무인들 사이로....

화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대청과 연무장의 땅바닥으로부터 거센 불길이 솟구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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