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골문2
무적은 갓난 아기때 홀로 버러졌다.
어떻게 그 어린 아기가 죽지 않고 살아 남았는지는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자신이 버려진 수로에 살던 거지들이....
아마도 그들이 젖동냥을 해서 살았을 거라는 것이 자신의 생각이었다.
갓난 아기를 안고 더 쉽게 동냥을 하기위해 자신에게 젖동냥을 해주던 거지들.
하지만 젖을 뗄 나이가 되고 더 이상 데리고 다니기 귀찮아지자 거지들은 자신을 버렸다.
그렇게 눈을 뜨고 조금씩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몰려오는 두려움.
굶어 죽지 않을까?
얼어 죽지 않을까?
그리고....
맞아 죽지 않을까?
온갖 두려움 속에서 무적은 세상과 싸웠고.... 결국 살아 남았다.
그렇게 살아 남으며 배운 몇 가지 교훈.
그 중 무적이 가장 깊이 믿는 것은 세상에 우연은 없고....
또 운이라는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철저한 준비를 하고 시작해도 언제나 자신의 앞을 막던 예기치 못한 변수들.
그리고 그럴때마다 자신을 깨우쳐 주던 한 마디.
"운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대형이 모든 것을 대비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 변수는 우연이 아니라 대형이 의식하지 못해서.... 대비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몇 번을 되짚어 보면 볼 수도 있고 대비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대형! 세상에는 절대로 우연이란 것은 없습니다."
반 봉옥....
"네 목을 자르면 누가 나올까?'
에....?
흑면객의 얼굴에 두려움이라고 부르는 표정이 떠올랐다.
허리가 부러져 살아도 산 게 아닌 저 몸으로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건가?
"내가 기대하는 자가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흑면객의 눈에 조용하게 말하는 무적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발 하나가....
* * *
사냥개가 살짝 상문객의 얼굴을 훔쳐봤다.
무표정한 얼굴.
고루강시처럼 표정없는 상문객의 얼굴이 두렵게 다가온다.
저 미친 개 같은 놈이 괜히 자신에게 화풀이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사냥개...."
상문객의 입이 열리고 쇠를 긁는 것 같은 기분 나쁜 음성이 들린다.
"예."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야기 해 봐라."
장 오의 눈동자가 데구르르 돌아간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맨 처음...."
입을 열던 장 오가 말을 멈췄다.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이는 상문객의 모습이 보이고....
재빨리 등을 돌리자 해골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피골이 상접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정말 뼈 밖에 없는 것 같은 얼굴.
구멍처럼 파인 두 눈에서 번뜩이는....
아니 마치 불타는 것 같은 안광이 없었다면 정말로 해골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얼굴이 보였다.
"문주님!"
황급히 허리를 숙이는 장 오.
장 오의 인사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해골 같은 얼굴이 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는 시체들을 둘러봤다.
분리된 목과 몸을 대충 맞춘 체 바닥에 누워잇는 시체들.
그리고 사람인지 떡인지 분간하기도 힘든 고기 덩어리 몇 개.
해골의 눈이 떡이 된 흑면객의 시체에 잠시 머물렀다가 상문객을 향했다.
"어떤 놈의 짓이지?"
정말 해골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중후한 음성이 들렸다.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누군지도 모른다는 말인가?"
"죄송합니다."
마치 죄지은 사람 처럼 고개를 숙이는 상문객.
"필요하다면 내외당의 모든 수하들을 움직여도 된다."
중후한 해골의 음성 속에서 은은한 분노가 느껴진다.
"반드시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상문객은 짧은 말로 해골의 말에 답할뿐 어떤 표현이나 의견을 꺼내지 않는다.
해골이 다시 한 번 마당의 시체를 둘러본 후 등을 돌리며....
"누군지 알기 전에는 절대로 돌아오지마라."
"알겠습니다."
공손한 상문객의 말에 장 오가 움찔 놀란다.
제기럴....
똥 밟았다.
적어도 자신의 방주와 상문객이 저런 말을 허투루 할 사람들은 아니다.
이제 자신은 저 상문객과 함께 백골문을 나가 흉수를 잡기 전에는 다시 돌아오지 못 할 것이다.
아니 재수 없다면 무슨 일을 당할지....
하아....!
어차피 사람 대접도 못 받는 곳.... 그냥 도망 가 버릴까?
* * *
장 오는 갈대숲속의 수많은 발자국 속에서 무적의 발자국을 가려냈다.
모든 현장에 찍혀있는 동일한 발자국.
따라오라는 것인가....?
굳이 숨기려하지 않고 선명히 찍혀 있는 발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무림인들은 본능적으로 내기를 운용해 몸을 가볍게 한다.
때문에 호수가의 갈대숲 같은 젖은 땅에서도 깊은 발자국은 남기지 않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발자국은....
양 발에 동일한 체중을 싣고 땅을 밟아 뚜렷히 찍힌 발자국.
자신의 흔적도 지울 줄 모르는 자인가?
그럴리가....?
흑면객과 백골대의 수하들을 죽인 그 잔힌한 수법으로 봤을때 그 정도도 모를 바보는 아니다.
그렇다면 흔적을 남겨 따라오라는 것인가?
그리고 저 성질 더러운 상문객은....?
분명히 상문객도 이 발자국을 봤을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추적은 자신의 몫이라는 것인가?
두 놈이 서로 싸우다 죽어버렸으면....
장 오가 힐끗 하늘을 올려다봤다.
* * * * *
악양루.
삼국시대 오나라의 수군사령관 노숙이 본진을 설치했던 곳.
그리고 불운한 천재 주유의 전설과 남편만큼이나 유명했던 그의 아내의 무덤과 숱한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이곳 악양에서도 단연 최고의 명물로 손꼽히는 곳이다.
높이 솟아올라 탁트인 동정호를 내려다보는 이곳 악양루를 밑에서 올려다보는 사람이 있다.
악양루가 보이는 호숫가의 넓은 공터에 자리한 바위에 걸터앉아 악양루를 올려다보는 사내.
무적이 멍하니 악양루를 올려다보며 앉아 있다.
호숫가에 앉기위해 누군가 가져다 놓은 것인지....
아니면 자연의 조화로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린 바위인지....
남자 두 명은 능히 앉을 만한 평평한 바위에 커다란 철판 같은 칼을 가슴에 품듯이 안고 앉아있는 무적.
아무 생각없이 망중한을 즐기는 것인가?
아니면 누구를 기다리는 것인가?
그렇게 멍하니 앞을 보는 무적의 눈에 멀리서 다가오는 사냥개의 모습이 보인다.
기다렸어....?
장 오가 살짝 놀란다.
저 자는 정말로 혼자서 백골문을 상대할 작정인가?
고개를 돌려 상문객을 보자 옅은 미소가 어리는 얼굴이 섬뜩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진즉에 도망 갔어야 했는데....
뭐 얻어 먹을 게 있다고 이 사악한 자들의 방파에 몸을 맡겨서....
"저 잔가?"
들을 때마다 사람의 신경을 긁는 기분 나쁜 음성이 귀를 자극한다.
아마도 이 기분 나쁜 음성 때문에 상문객은 문주와 이야기 할 때는 항상 짧게 대답만 할 뿐 긴 이야기는 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르겠습니다."
발자국의 흔적이 틀림없이 자자가 흉수라고 가리키지만 장 오는 확답을 피했다.
결정과 뒤처리는 상문객의 몫.
자신의 역할은 어차피 여기까지일 뿐이다.
가볍게 끄덕이는 상문객의 머리짓에 무적을 향해 몸을 날리는 백골대의 무인들.
그리고 백골대와 반대로 뒤로 몸을 빼는 장 오.
뒤로 물러서며 몸을 사리는 장 오의 모습에 상문객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무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상문객.
잡았다!
뒤쪽은 동정호.
나머지 삼면은 자신의 수하들이 상대를 둘러싸며 몰려가고 있다.
도망갈 수도 뚫고 나올 수도 없다.
"네놈은 누구지?"
여유롭게 나오는 말에 상대의 눈이 자신을 향한다.
천천히 바위에서 몸을 일으킨 무적이 달려드는 백골대의 뒤에서 움직이는 상문객을 똑바로 쳐다봤다.
상문객이라는 별호처럼 정말로 상복을 입고 있는 모습.
거기에 더해서 머리에 새끼줄로 묶은 천까지 덮어쓰고 있다.
어쨌거나 자신이 가장 바라던 모양새가 됐다.
백골문주를 만나는 것보다 저자를 먼저 만나야 한다.
상대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길 평....
너의 복수를 위해서....
"네 목을 치면 다음에는 그 고자가 나오는가?"
무적을 향해 발을 내딛던 상문객이 멈칫한다.
고자....?
자신들의 문주가 백골공을 익히는 과정에서 고자가 된 사실을 아는 자들은 별로 없다.
그런데 저 자가....
아니 그보다 저 침착한 태도는?
주위를 둘러싼 육십 명의 무인들은 신경도 쓰지않고 자신만 노려보고 있는 눈.
용맹한 용이 강을 건넌다.
문득 맹룡과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설마 저 자가 우리 정도는 우습게 볼 수 있는 고수인가?
좋지.... 않다!
자신은 무림십흉의 일인으로 불리지만 다른 십흉에 비하면 한 수 가량 뒤쳐진다.
그렇지만 십흉 중 누구도 자신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자신의 뒤에 백골문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눈치.
자신은 남들보다 눈치가 빠르다.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는 절대로 덤비지 않는 눈치.
설령 허리를 숙일망정 강하다고 느껴지는 상대에게는 혼자서는 절대로 검을 뽑지 않는다.
그리고 불리하다 싶으면 언제라도 도망갈줄도 안다.
자신의 그 눈치에 지금 눈앞에 있는 이자는....
자신의 본능이 도망가라고 외친다.
"쳐!"
수하들을 향해 짧게 한 소리를 지르며 내딛던 발을 뒤로 빼 물러났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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