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23화 (23/158)

백골문

* * * * *

푸른 장삼을 둘둘 말아 옆구리에 낀 당 풍호가 눈앞에 누워있는 군 자명을 멍하니 봤다.

기절하겠네....

설마 검존이라도 만났나....?

이 벽창호가 이런 모습으로 누워있다니....

넓은 숲이 통채로 날아가 버렸다.

도대체 누가 있어 이런 무지막지한 공력을....?

그리고 이 인간은 왜 코피를 질질 흘리며 이렇게 자빠져 있는가?

응....?

드르릉....! 드르릉....!

코고는 소리?

이 인간이....?

"교두님!"

심하게 흔들리는 느낌에 군 자명이 눈을 떴다.

깨질 것 같은 머리와 함께 겉늙은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응....?

"강 포졸....?"

"뭐해요? 이런 곳에서 쓰러져 자다니...."

군 자명이 말없이 당 풍호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자신이 날려버린 숲을 둘러본다.

후우....!

극복한 건가?

아니면 봉인만 된 것인가?

분명히 자신인듯 아닌듯 느껴지던 자신의 감정과.... 과격한 행동.

제발 극복한 것이기를....

"그냥 돌아가라니까 왜 날 찾아온 건가?"

"그 조 무적이라는 자 말입니다...."

응?

조 무적이라고....?

다행인지 아닌지 불 같은 살의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그 자가 왜?"

"그 자가 왜 그렇게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 자가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가 뭐지?"

조용한 군 자명의 말에 당 풍호의 눈이 반짝인다.

어딘지 조금은 담담해 보이는 벽창호의 모습.

무슨 일이 있었나....?

"그게 굉장히 큰 원한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큰 원한?"

"아마 혈육이 살해당한 원한이 아닐까하는...."

"그럼 이제 더 이상의 살행은 없는 것인가?"

이 벽창호가 갑자기 왜 이렇게 나긋나긋해 진거야?

"그게.... 이번에는 백골문으로 갈 것 같습니다."

"백골문?"

* * * * *

상문객 편 기수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몇 명이 사라졌다고....?"

"어제까지 정확히 여덟 명이 사라졌습니다."

시커먼 얼굴의 사내가 상문객의 말에 답했다.

"여덟 명....?"

백 명으로 이루어진 백골대에서 여덟 명이 이틀 사이에 사라졌다.

어디로 간 건지 왜 사라진 건지도 모른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하루 동안이나 사라질 이유도 없는 자신의 수하들이 이틀이나....?

"술 처먹고.... 어디서 기녀 끼고 쳐박혀 있는 것은 아니고....?"

"기루와 객점을 다 뒤져봤지만...."

"외당의 사냥개를 좀 데려와라."

* * *

장 오는 퉁명한 얼굴로 도박장의 문을 열고 나왔다.

주루와 객점 그리고 도박장까지 그들이 갈 만한 곳을 모두 뒤졌지만....

이 새끼들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은근히 짜증이 난다.

그냥 소득없이 들어가려니 그 성질 더러운 상문객이 자신을 찢어놓을 것 같다.

괜히 추적술을 배워서....

가뜩이나 사람을 사냥개라고 불러서 기분도 더러운데 이 새끼들이 사람 피곤하게....

궁시렁 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장 오의 눈에 꼬마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보인다.

실로 촘촘하게 짠 구슬 같은 모양의 해골장식.

검의 손잡이에 장식용 수술대신에 매다는 자신들만의 표식이 아이들의 손에 들려져있는 것이 보였다.

왜 저게....?

문도들의 검에 매달려 있어야 할 해골이 꼬마들의 손에 들려져있다.

사단이 났구나....

"애들아...."

장 오가 부드럽게 웃으며 꼬마들에게 다가간다.

* * *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호수.

내륙의 바다라고도 불리는 동정호의 모습에 모두가 그런 표현을 쓴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리고 이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가의 한 쪽에 무성하게 자라난 갈대숲.

십수 명의 사람들이 바쁘게 숲을 뒤지고 다닌다.

"부대주님! 여기...."

누군가의 외치는 소리에 우르르 몰려가는 사내들.

우웩!

소리쳐 사람들을 불렀던 사내는 이미 고개를 돌리고 토악질을 하고 있다.

그리고 몰려온 사내들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려진다.

웩!

심한 토악질과 함께 뒤로 물러나는 사냥개.

정말 저게....?

저 끔찍한 모습이 정말 사람의 모습인가?

숱하게 많은 시체를 봐왔지만 저런 시체는....

둘러선 사내들의 눈에 끔찍한 두 구의 시체가 들어왔다.

마치 절구통에 넣고 떡매로 친 것 같은 시체의 모습.

"수습해라."

검은 얼굴을 한 사내의 말에 몇 명의 사내가 황급히 시체에 천을 덮고 둘둘 말아서 싼다.

급하게 흉한 모습은 가렸지만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는 잔상에 속이 울렁거린다.

"나머지 시체도 찾아봐라!"

백골대의 부대주 흑면객은 넓은 갈대밭을 가르며 움직이는 수하들을 한 번 본 후 사냥개를 돌아봤다.

"사냥개...."

내 이름은 장 오다!

이렇게 소리치고 싶지만....

"예. 부대주님."

"지금부터 이들이 문을 나서서 어디로 어떻게 움직였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라. 그리고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마라."

"알겠습니다."

등을 돌리는 장 오의 귀에 다시 흑면객의 음성이 들린다.

"아.... 깜빡잊을뻔 했구나.... 그 아이들.... 우리 문양을 가지고 놀던 그 꼬마아이들을 본문에 데려가서 배불리 먹이고 방에서 놀게 해줘라."

흑면객의 말에 장오의 몸이 흠칫한다.

제기랄....

괜히 꼬마들의 이야기는 해서....

장 오는 자신의 혀를 자르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앞으로 그 꼬마들이 어떤 꼴을 당할지는 불보듯 뻔하게 보인다.

살살 달래서 해골문양을 준 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장 오가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왜 백골문에 몸을 의탁해서....

"시키신대로 하겠습니다."

장 오가 고개를 숙이고 떠나자 흑면객이 동정호로 눈을 돌렸다.

누군가....?

감히 자신들을 향해 칼을 든 자가....?

군마맹이 생긴 후로는 자신들을 누르던 통천마방도.... 저 콧대 센 열두 가문도 자신들을 함부로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누가....?

혹시....

생각하기도 싫은 어떤 것이 떠올랐다.

절대로 그들은 아니어야 할 건데....

휴우~~!

찜찜한 마음에 긴 숨을 몰아쉬고 다시 들이켰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폐속으로 가득 들어가면서 막힌 숨이 탁 트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시체만 없었다면 풍광이라도 즐기련만....

짜증스런 눈으로 천에 둘둘 말린 시체를 내려다보던 흑면객이 흠칫 놀란다.

이 냄새는....?

불어오는 호수의 바람에 묻어나는 피비린내.

호수의 물 비린내도 시체에서 나는 악취도 아니다.

흐읍~~!

깊이 들어마시는 숨과 함께 또렷이 느껴지는 냄새.

금방 흘러내린 선혈에서나 느낄 수 있는 짙은 혈향.

흑면객의 몸이 빠르게 갈대숲을 헤치며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윽?

목이 잘린 수하 몇 명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반듯하게 잘린 목과 이별한 몸통이 바닥에 조용히 누워있다.

그리고 시체에 눌린 곳 외에는 구부러지지도 않고 강바람에 하늘거리는 갈대의 모습이....

맞서 싸우기는 커녕 죽는 줄도 모르고 단칼에....?

딸깍!

흑면객이 허리에 찬 검의 손잡이를 살짝 밀어서 뽑기 편하게 만들며 공력을 모아 청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휘이잉~~!

갈대밭을 가르는 바람소리뿐.... 인기척도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않는다.

자신의 수하들은 갈대숲 속에서 기척을 감출만큼 뛰어난 고수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설마 다 죽은 것인가?

긴장한 체 주위를 살피는 흑면객의 눈에 갈대숲이 갈라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갈라진 갈대숲을 통해 나타나는 상대의 모습.

꿀꺽!

"누군가....?"

힘겹게 나오는 음성에 갈대숲을 헤치고 나온 상대가 멈춰 선다.

무적은 담담한 얼굴로 상대를 봤다.

저자가 흑면객인가?

백골문의 문도들을 고문하며 얻은 정보 속의 인물.

확실히 흑사방의 고수라는 자들보다는 안정돼 보인다.

백골문이라....

왠지 만만하지는 않을 것 같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조용한 무적의 말에도 불구하고 흑면객이 잔뜩 긴장한채로 무적을 봤다.

"그.... 동 태기.... 너희들의 문주는 지금 백골문에 있는가?"

"내가 먼저 누군지 물었을 건데....?'

오히려 되묻는 흑면객의 음성이 심하게 떨린다.

자신들의 문주가 목표인가....?

"그런가....?"

파앗!

조용한 말과 함께 갑자기 흑면객의 얼굴 앞에 나타나는 무적.

헛!

흑면객의 검이 본능적으로 반응하며 앞으로 나간다.

하지만....

무적의 왼손이 흑면객의 검을 쥔 손을 잡으며 오른쪽 팔꿈치가 흑면객의 턱에 작렬한다.

빡!

큭....!

턱을 맞고 밀려나는 상대를 당기면 이번에는 주먹이 얼굴에...

퍽!

매달아 놓은 고기 때리는 소리와 함께 주저앉는 흑면객의 손에서 검이 떨어져 내린다.

그르르....

광대뼈와 코가 함몰 돼 무너진 안면.

그리고 부러진 이를 삼켰는가?

무언가 목에 걸린 것 같은 거북한 소리가 들린다.

무적이 주저앉은 상대의 손목을 살짝 당기자 거짓말 처럼 벌떡 일어나는 흑면객.

퍽!

끄으윽....!

이번에는 몸통을 때리는 주먹에 숨이 막히는 것처럼 괴로운 신음을 토하는 흑면객.

그리고 마치 모래탑이 무너지듯 주저않아버리는....

무적이 다시 상대를 일이키기 위해서 손목을 꺽자....

뚜뚝!

크윽....!

흑면객의 손목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손목이 부러지는 충격에도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흑면객.

척추가 완전히 부서진 것인가....?

무적이 흑면객의 오른손을 잡고 있던 왼손을 놓는다.

허리가 부러져 연체동물처럼.... 아니 마치 개어둔 이불처럼 포개지는 흑면객.

감정없는 눈으로 상대를 보며 무적이 입을 연다.

"너희들의 문주는 지금 이곳에 있는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끄덕여지는 흑면객의 머리.

"너는.... 너희들의 문주에게 몇 초나 견딜 수 있지?"

으으으....!

전신을 자극하는 고통에 힘겹게 도리질을 치는 흑면객의 모습에 무적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진다.

설마 이 자가 일 초식도 견딜 수 없는 고수인가?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정확한 판단이 서지를 않는다.

자신과 비슷한 수준일까?

아니면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상대일까....?

상대를 정확히 알아야 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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