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마心魔3
* * * * *
당 풍호의 눈이 또르르 돌아간다.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서성거리는 현황보의 무인들과 구멍 난 벽.
주루에서 대강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서둘러 왔건만....
골목어귀에 있던 비룡무관에 있는 사범들의 모습도 슬쩍 보인다.
비록 이류 문파라고는 하지만 이곳 남경에서는 그래도 흑사방의 세력을 견제하는 현황보.
비룡무관과 우가장 등 몇 몇 군소방파를 끌어모아 그나마 흑사방의 독주를 견제하는 세력이 바로 현황보다.
남경의 양대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흑사방과 현황보.
조 무적은 흑사방....
그리고 사라진 이 벽창호는 현황보인가....?
돌아가는 꼴 하고는....
가볍게 탄식을 하며 털레털레 골목안으로 들어가자 현황보의 무인들이 고리눈을 하고 당 풍호를 노려본다.
그리고 살짝 찌푸려지는 눈꼬리.
서로 모르는 척 하는 사이라지만 그래도 관은 껄끄러운게 이류 무인들의 현실.
왜 왔느냐는 것처럼 눈을 부라리는 그들을 향해 당 풍호가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 모습에 모른 척 길을 터주는 현황보의 제자들.
천천히 골목 안을 둘러보는 당 풍호의 눈에 바닥에 어지럽게 찍혀있는 수많은 발자국이 들어왔다.
수십 개의 어지러운 발자국 속에서 다섯 개의 발자국을 정확히 가려내는 당 풍호.
당 풍호의 눈에 들어온 다섯 개의 발자국은 앞부분에 힘이 가해진 듯 움푹 파여져있다.
한 방향을 향해 강하게 힘을 쓰기위해 앞발에 체중을 실은 흔적.
아니.... 눈앞의 상대를 향해 검을 뽑아서 휘둘렀던가?
그리고 강한 힘에 튕겨져나간 검이 바닥에 꽃혔나?
발바닥과는 다른 길게 그어진 흔적이 바닥의 군데군데 보였다.
바닥을 그은 흔적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앞굼치가 파인 발자국의 뒤로 끌리듯이 밀려난 자국이 희미하게 비친다.
처음 발자국이 향한 방향을 유심히 살피자 벽에 기댄 체 한쪽 발을 담벼락에 디딘 것 같은 발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아직도 남아있는 담벼락의 흙자국.
한쪽 발자국만 있어?
다시 발자국의 주위를 살피자 맞은편 담벼락의 아랫부분에 희미한 흙자국이 보인다.
담벼락에 기댄 체 마치 의자에 앉듯이 다리를 뻗어서 맞은편 담벼락에 한발을 디디고 등을 기댄 벽에는 다리를 뒤로 접어서 딛고 있는 군 자명의 모습이 떠오른다.
누구도 지나갈 수 없도록 좁은 골목길을 완전히 막고 있는 모습.
설마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가....?
그 벽창호의 성격에 상대의 길목을 지키고 기다린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신중한 일면이다.
다시 한 발 간격으로 내려선 발자국의 흔적이 군 자명이 다섯을 향해 바로 섰다는 것을 짐작케 해준다.
그리고....
한 차례의 충돌.
별다른 공력은 쓰지도 않았는지 희미한 발자국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있다.
그냥.... 주먹으로 패기만 했나....?
다시 고개를 돌려 다섯 남녀의 발자국을 살피는 당 풍호의 눈에 이번에는 발뒤꿈치가 움푹 들어가 깊게 패인 발자국이 몇 개 보인다.
맞은 자들이 넘어졌고....
당 풍호가 살짝 얼굴을 지푸렸다.
분명히 객점에서는 삼남이녀라고 했다.
그렇다면 두 개의 발자국은 여인의 것이라는 건데....
아닌게 아니라 깊게 패인 두 개의 발자국은 다른 것 보다는 조금 작아 보인다.
이 인간도 확실히 보통 성격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정상이 아닐지도....
무식하게 어린 여자들도 같이 쥐 패다니....
그리고 현황보의 제자들이 어지럽혀 놓은 발자국.
다섯이 고통에 몸부림을 친 흔적위로 어지럽게 찍혀있는 무수한 발자국이 보인다.
이 멍청한 자들이....
하아!
바닥의 흔적으로는 더 이상 별다른 것을 찾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자 당 풍호의 고개가 들려진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구멍 뚫린 담벼락.
"뭐하는 거요?"
당 풍호의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한 무인이 말을 걸고....
빙그레....
겉늙은 얼굴이 친숙한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연다.
"어떤 미친 놈이 담을 부쉈다고 고변이 와서...."
당 풍호의 시선을 따라 무인들이 담벼락을 돌아봤다.
너희들이 본다고 뭐가 보이겠냐....
무인들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당 풍호가 고개를 돌렸다.
저 방향인가....?
군 자명이 주먹으로 담벼락을 치고 몸을 돌려 날아간 방향을 확인한 후 비실비실 걸어가는 당 풍호.
점점 무림에 흥분하는가....?
군 자명.... 원래가 강호라는 곳은 비정한 곳 이라네....
그렇게 하나하나 분노하다가는 단 하루도 편히 쉴 수가 없는 법인 것을....
* * * * *
군 자명이 멍하니 고개를 떨구고 바닥을 내려다봤다.
다섯 남녀를 화풀이 하듯이 두드린 후 미친 놈처럼 산을 넘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도대체가 그 어린 놈들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어느 정도 제 정신이 돌아온 건지 죽이고 싶을 만큼 솟구쳤던 살의가 조금씩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빌어먹을....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그 어린 놈들에게....
피투성이가 된 체 팔다리가 부러져 고통에 울부짖는 젊은이들의 모습 속으로....
이빨이 부러지고 얼굴의 광대뼈와 코가 함몰된 어린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얼굴.
내가 미쳤지....
죽지는 않겠지만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그 잔혹한 살인귀와 무엇이 다른가?
아니.... 힘 있다고 남을 괴롭히던 그 어린 놈들과 다를 것도 없지 않은가?
하아....!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더 이상 이 잔혹한 강호를 떠돌다가는 내가 먼저 미쳐버리겠다.
조 무적이라고 했던가?
그 놈만.... 그 놈만.... 내 손으로 해결하고 돌아간다.
조 무적....!
조 무적을 생각하자 갑자기 곽 도의 반쯤 빠진 손톱과 부러져 구부러진 손가락이 떠올랐다.
개새끼!
평소에는 입에 담지도 않던 욕이 저절로 나온다.
그리고....
죽인다!
또 다시 전신을 휘감는 지독한 살의.
심마가 또....?
붉게 충혈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자신을 둘러싼 체 웃고 있는 조 무적의 모습이 보인다.
뭐.... 야?
빽곡한 숲속의 나무가 모두 조 무적으로 변해서 자신을 보고 비웃는 것 같다.
이 미친 살인귀 새끼가 감히 누구를....
피윳!
언제 뽑아 들었는지 갑자기 조 무적의 환영을 향해서 뻗어나가는 군 자명의 검.
펑!
조 무적의 몸에 검이 닿고....
눈앞에서 한 명의 조 무적이 터져 나간다.
터져나가는 조 무적의 모습 속에서 핏물인지 살점인지 분간 할 수도 없는 것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조 무적을 향해 빠르게 검을 휘두르는 군 자명.
스윽!
잘게 썰리는 소리와 함께 조 무적의 허리가 잘려져 나간다.
그리고 잘려지는 조 무적의 뒤에 다시....
"조 무적!"
의식하지도 못하고 터져 나오는 고함소리와 함께 화살처럼 뻗어나가는 수십 줄기의 검기.
펑!
펑!
검기에 닿는 모든 조 무적의 몸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검에 잘리는 것이 아니라 터지듯 부서져 나가는 숲의 나무들과....
으아아~~!
울분을 토하듯 뱉어내는 괴성과 함께 군 자명의 검에서....
아니 전신에서 또 다시 가공할 기운이 뻗어 나왔다.
그리고....
퍼억!
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수많은 조 무적의 환영.
커다란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군 자명을 중심으로 공기의 파문이 사방으로 밀려 나간다.
투투툭!
비산한 나무의 잔해가 떨어지는 소리인가?
묘한 소리와 함께 산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던 숲이 사라지고 폐허와 같은 공터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공터의 중앙에 주저앉으며 소리치는 군 자명.
크아아~~!
짐승 같은 울부짖음.
무엇이.... 무엇이.... 그렇게 괴로운가....?
붉게 충혈된 눈에서 두줄기 피눈물을 흘리며 군 자명의 몸이 뒤로 쓰러져 버린다.
* * * * *
무적은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호수를 멍하니 쳐다봤다.
복수를 끝내고 저 바다 같은 동정호에 빠져 죽어버릴까?
저 호수 깊은 곳이라면 도왕동부의 그 얄미운 늙은이도 따라 오지 않겠지....
"요리 나왔습니다."
씩씩한 음성과 함께 점소이가 몇 가지의 음식을 식탁에 내려 놓았다.
운좋게 동정호가 한 눈에 보이는 넓은 창가의 자리를 잡은 무적은 그 대가로 여러가지 요리를 주문해야 했다.
그리고....
한 마리를 통채로 쪄놓은 커다란 잉어찜.
젓가락으로 몇 점을 입에 넣어본 무적이 살짝 놀란다.
입안을 감도는 잉어의 달콤한 맛.
마지막 음식이 될지 몇 번 더 먹어볼 수 있을지....
백골문은 흑사방과는 다른 곳이다.
백골문의 고수 몇 명만 나온다면 자신이 했던 것처럼 흑사방 정도는 언제라도 멸문 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무림에 대해서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자신이지만 세상을 울리는 열두가문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는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열두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마도육문魔道六門과 마도사세魔道四勢의 대단한 위세도 익히 안다.
백골문은 그 마도사세중 하나인 군마맹의 한 축.
하지만....
어차피 사람은 언제라도 죽는다.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다.
단지 복수를 하지 못하고 죽을까 그것이 두려울 뿐이다.
어떻게 할까....?
그냥 문을 차고 들어가 죽을 때까지 칼질을 할까?
통쾌하게 죽을 수는 있겠지만....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고 천천히 가지를 잘라내며 몸통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야 하는가....?
우선 상대의 역량부터 확인해본다.
이곳 악양에서는 눈만 크게 뜨면 보인다는 백골문의 무인들.
이 객점에서 기다려보자.
무적의 입으로 들어온 잉어의 살점이 터진다.
으적....!
으적....!
백골음마의 살이라고 생각하는가?
뼈까지 부숴먹을 것처럼 잉어의 살을 씹는 무적의 눈에 두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허리에 걸린 검의 손잡이 끝에 매달려 달랑거리는 해골모양의 장식.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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