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마心魔
"개새끼!"
퍽!
끄아악~~!
다시 점소이의 등을 밟는 여인과 비명을 지르는 점소이.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더 맞지 않으려고 점소이가 개처럼 바닥을 기고....
젊은이들이 즐거운듯이 그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한다.
그리고....
젊은 여인의 분이 어느 정도 풀렸다고 생각했는지 지켜보고만 있던 객점 주인이 허리를 숙이며 황급히 달려왔다.
자신도 익히 아는 비애.
객점의 점소이 이기에 겪어야하는 고통과 서러움....
가지지 못하고 힘이 없는 것이 죄지....
"아가씨.... 죄송합니다. 오늘 드신 음식 값은 사죄의 의미로 받지 않을테니 이만 용서해주십시요."
늙은 노인이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자 여인의 눈에서 다시 독기가 떠오른다.
"음식 값....? 이 늙은 새끼가 이깟 음식 값 몇 푼가지고 생색을 내려고....!"
짜~~악!
빠르게 날리는 귀싸대기에 주인의 얼굴이 돌아가며 한쪽으로 쓰러진다.
퍽!
끄을....!
그리고 젊은 사내가 자신의 앞으로 쓰러지는 객점 주인의 배를 걷어찼다.
"이새끼가 우리가 거지인줄 아나?"
벌벌 떨며 보고있던 또 다른 점소이가 벼락 같이 달려와 주인을 감싸안으며 엎드린다.
"용서해 주십시요.... 용서해 주십시요...."
"아니.... 이것들이 우리가 무슨 짓을 했다고 이 지랄이야.... 지랄이....!"
앉아서 웃고 있던 젊은 남녀가 모두 일어나 세 사람을 밟기 시작한다.
끄아악!
"살려.... 살려주십...."
응?
군 자명은 갑자기 머릿속을 울리는 소리에 고개를 흔들었다.
눈앞의 패악을 노려보던 자신의 머릿속을 울리는 공명.
딱히 어떤 소리인지 분간도 할 수 없는 큰 소리가 울린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세상에 소리가 사라져버린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저 눈앞에 젊은 남녀 다섯의 패악질만 보일 뿐이다.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주인과 두 명의 점소이.
젊은이들의 열려지는 입에서 욕설이 나온다는 느낌과 몸부림치는 자들의 표정에서 고통스런 비명이 나올 거라는 짐작뿐....
세 사람을 괴롭히던 젊은이들이 자신을 돌아본다.
다섯 남녀가 자신을 가리키며 무슨 말인가를 하는 것 같다.
포교가.... 재수 없게....
그들의 입모양에서 대략 나오는 말을 짐작만 할 뿐이다.
자신이 보고 있어도 개의치 않고 패악질인가?
다섯 사람의 허리춤에 달랑거리며 매달려있는 검도 보인다.
무림인....?
이제 적당히 화풀이를 한 것인가?
쓰러진 세 사람의 몸 위로 침을 뱉으며 객점을 빠져나가는 젊은이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저.... 저.... 흉악한 놈들...."
"지 애비들보다 더 지독한 놈들...."
막혔던 귀가 뚫린 건가?
다시 말 소리가 들린다.
겁에 질려 몸을 사리던 손님들이 입을 열며 쓰러진 주인과 점소이들을 향해 몰려가는 모습도 보인다.
왜....?
왜.... 당신들은 아무도 그들을 말리지 않았는가?
자신들도 저들처럼 맞을까 두려웠던가?
아니.... 나는....?
나는 왜 이렇게 얼어붙은 것처럼 서 있기만 했던 걸까?
그들을 말리지 않고....
저들처럼 맞는 것이 두려워서....?
저 어린놈들이야 수백 수천이 몰려와도 눈도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문득 군 자명은 자신의 양팔에 돋아난 소름에 흠칫 놀랐다.
이 소름은....?
무엇이 두려워서....?
아....!
갑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살며시 고개를 드는 살의殺意.
이럴수가 살의라니....?
고작 저 철없는 어린 아이들에게....
한가닥 내 이성이.... 내 살의를 막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인가?
멍하니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보는 자신의 눈에 누군가가 돌아서는 모습이 보인다.
응?
전신에 피를 뒤짚어 쓴 모습의 조 무적이 등을 돌려 자신을 향해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피칠을 한 조 무적의 입이 살짝 열린다.
"군 자명.... 내가 잔인하다고....? 봤지 않은가.... 저 어린 것들이 얼마나 잔인하지.... 인간들이란 쓸데없이 잔인한.... 세상에 있어서는 안되는 짐승들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대로 다 죽여없애 버리는 것이 이 세상을 위해서도 좋다. 저 어린 놈들도 내가 했던 것처럼 목을 잘라서.... 아니지.... 너무 쉬운가? 그럼 몸속의 뼈란 뼈는 모두 잘게 부숴서 자신의 뼛조각이 창자와 심장을 찌르는 고통.... 전신의 힘줄이 자신의 뼛조각에 잘리는 고통을 주는 것은 어떤가? 죽여! 쓸데없이 잔인한 인간들은 모두 죽여버려!"
자신을 질타하는 것 같은 커다란 음성과 함께 조 무적의 환영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이이....!
군 자명이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심마心魔가....?
조 무적의 잔인한 살인행각을 따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살의라는 심마가....?
힘겹게 식탁을 짚고 자리에 앉아 눈을 감는다.
가볍게 운기를 해서 마음을 가라앉히자 이번에는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들아.... 살아가다보면 별의 별 종류의 인간들을 다 만나게 된다. 하지만 어떤 인간을 만나서 인연을 맺더라도 절대로 무림인과는 인연을 맺으서는 안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입은 은혜도....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도.... 측은지심惻恩之心 조차도 모르는 짐승 같은 자들. 절대로 그들이 모인 곳에는 가지도 말고 쳐다보지도 말아라. 만약 어쩔 수 없이 그들과 은원이 얽히게 된다면.... 그때는 너에게 원한을 가지는 모든 자들을 죽여라. 네가 왔다 갔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모두 다 죽여버려라!"
어린 시절부터 가문의 한 가지 비밀과 함께 세뇌 당하듯이 들어오던 아버지의 말.
왜 갑자기 이 말이....
군 자명의 눈이 살며시 떠진다.
머리끝까지 솟구친 분노에 붉게 충혈된 두눈.
떨리는 몸을 바로 잡으며 눈을 감고 다시 진기를 살짝 돌려본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군 자명의 눈이 다시 떠졌다.
충혈된 붉은 기운이 사라진 맑은 눈동자.
하지만....
차갑게 식어있다.
폭발전의 화산처럼 조용하고 차가운 눈.
군 자명이 식탁옆에 세워둔 자신의 검을 봤다.
아버지....!
아무래도.... 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청색장삼을 벗는다.
종사품 금군교두의 신분을 상징하는 푸른색의 관복.
몇 년만 더 고생하면 정사품을 지나 종삼품의 자색관복을 입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장삼을 잘 개어서 식탁위에 올려둔다.
그리고 겨우 일어난 객점의 주인을 향해 다가갔다.
"주인장, 조금 있으면 포졸이 한 명 올거요."
"예....? 아이고 안됩니다!"
기함을 하는 주인의 모습에 군 자명이 살짝 놀란다.
"응? 왜 그러시오?"
"관에서 와 본들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놈들이 알게되는 날이면 이번에는 정말로 우리를 모두 죽이려 할 것입니다. 제발 그냥 가라고...."
이.... 개 같은....!
다시 뜨거운 기운이 가슴을 찢을 것처럼 치밀어 올라온다.
군 자명이 손을 들어 애걸하는 주인의 말을 막았다.
"그게 아니오. 그 포졸이 오면 저 식탁위에 내 옷과 약간의 돈이 있으니 나를 따르지말고 그냥 돌아가라고 하더라 전해주시오."
"예?"
의외의 말에 주인이 놀란 듯 군 자명을 봤다.
"그리고.... 이집의 해삼탕.... 일품이었소...."
천천히 군 자명이 등을 돌려 객점을 벗어난다.
* * *
"하하하!"
"자네가 그놈의 머리위로 해삼탕을 붓던 그 장면이 정말 압권이더군."
"그런가?"
"깔깔깔!"
"하하하!"
응?
통쾌하게 웃던 다섯 남녀가 웃음을 멈췄다.
길게 이어진 골목의 담에 등을 기댄 체 다리를 올려 길을 막고 있는 사내.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 다섯 남녀의 시야에 비쳤다.
"넌 또 뭐야?"
점소이의 머리위에 해삼탕을 부었던 젊은이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고....
담벼락에 기댄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재미있던가?"
뭐라는 거야?
재미라니....?
군 자명이 어리둥절해하는 다섯 남녀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다.
수려하고 고운 얼굴.
힘든 생활에 찌든 가난한 사람들의 추레한 얼굴과는 다르다.
남 부러울 것 없는 이런 자들이....
"자네들이 하는 것을 보니 나도 그 재미를 조금 느껴보고 싶어서 말이야...."
섬뜩한 한기.
군 자명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함께 군 자명의 몸에서 섬뜩하고 차가운 한기가 살짝 흘러나왔다.
하지만 상대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조차도 없는 이들은....
"이 새끼가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차창!
경박한 욕설과 함께 다섯 자루의 검이 뽑혀져 나오고....
빠르게 군 자명을 향하는 검광.
그리고....
타탕!
컥!
악!
짧게 울리는 쇠붙이 소리와 함께 터져나오는 다섯 개의 비명소리.
날아오는 다섯 자루의 검이 군 자명의 주먹에 튕겨져 날아간다.
찢어진 손아귀의 통증에 비명을 지르는 다섯.
그리고....
조용한 속삭임.
"재미있을 거야."
밀려나는 다섯 남녀를 향해서 군 자명의 주먹이 움직인다.
맨 앞에 서있던 남자의 얼굴에 군 자명의 주먹이 닿고....
함몰하는 광대뼈와 콧대.
터져나오는 피를 무시하고 다시 정강이에 발이....
똑!
끄아악~~!
엿가락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지는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오고....
사내의 발에 밀린 바닥의 흙이 튀어 오른다.
그리고 두번째의 남자도....
이제서야 눈앞의 상황이 이해가 된 어린 여자가 비명을 지른다.
"꺄악!"
"시끄러!"
짧은 한마디와 함께 돌아나오는 군 자명의 발.
퍽!
악!
불과 얼마전 깔깔거리며 객점 안을 울렸던 목소리가 이번에는 째지는 비명으로 골목 안에서 터져 나온다.
세번째 남자의 얼굴에 주먹이 떨어지고 쓰러지는 남자의 팔에 군 자명의 들려진 발이 내려온다.
뻑!
크악!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비명 속에서....
오물을 묻힌 여인의 눈에 핏발이 선 군 자명의 눈이 들어왔다.
사람이 아니야....
공포.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들을 부수는 상대에게서 경험해보지 못한 공포가 느껴지고....
"살려주세요!"
오물을 묻힌 여인이 급하게 무릎을 꿇는다.
수치심보다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여인의 전신을 휘감아 오고....
"싫어!"
군 자명의 무릎이 올라가며 무릎을 꿇는 여인의 턱을 가격한다.
빡!
꺄악!
뒤로 쓰러지는 여인의 입에서 튀어 나오는 하얀 이물질.
이빨이....?
쓰러지는 여인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리는 군 자명의 눈에 피범벅이 된 여인의 얼굴이 들어왔다.
코가 주저않고 이빨이 모두 깨져서 빠져버린 흉한 모습.
분노에 숨을 씩씩 거리며 주위를 돌아보자 엉망으로 망가진 다른 네 남녀가 바닥을 기는 모습이....
이.... 이....!
손 안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든 군 자명이 부르르 떤다.
"사아....사알려주...."
제대로 말도 나오지도 않는 어린 여자의 음성에 군 자명의 주먹이 허공에서 멈칫거린다.
빌어먹을....
내가 무슨 짓을....
신경질적으로 군 자명의 주먹이 골목의 담벼락을 향하고....
퍽!
후두둑!
커다란 구멍이 나며 떨어져 내리는 부서진 벽돌담.
그리고....
"웬 놈이냐?"
담벼락 안에서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들려나왔다.
응?
후다닥!
담벼락을 부순 군 자명이 황급히 골목을 벗어나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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