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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마록-11화 (11/158)

군자명2

감정없는 눈으로 꿈틀거리는 노인을 보던 무적이 몀 천세를 향해 발걸음을 뗀다.

천천히 한발 한발 내딛는 무적의 발걸음에 염 천세의 얼굴색이 변한다.

하얗게 질린 얼굴이 파랗게....

그리고 무적이 염 천세의 앞에 섰을 때는 검게 변해버린 얼굴색으로....

염 천세의 몸에서 풍기는 역겨운 냄새가 짜증스럽다.

고작 공포에 뒤를 놓고 똥이나 흘리는 이런 놈에게....

아무리 죽음이 두려웠기로서니 고작 이런 놈 때문에....

아니다.

내가 동생들을 그렇게 키우지는 않았다.

차라리 목이 떨어지면 떨어지지 이런 자에게....

고개를 돌려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는 노인을 돌아봤다.

혹시 흑사방이 배후인가?

무적이 야릇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돌려 염 천세를 보며 입을 연다.

"염 대야...."

"으으으....!"

극도의 공포 속에서 말도 나오지 않는 것인가?

지금부터 시작인데 벌써 그러면....

무적의 손이 쉼없이 떨리는 염 천세의 오른손을 잡는다.

"고아들이 있었지. 험한 매질과 배고픔에 하루하루 짐승처럼 연명하던...."

또각!

크아악!

조용하게 나오는 말과 함께 무적의 손안에 있던 염 천세의 엄지 손가락이 뒤로 젖혀지며 부러졌다.

"살고 싶었어. 배부르게 먹고도 싶었지."

뚜둑!

으아악!

검지와 중지가 부러져 손등에 붙는다.

"할 일 못 할 일 참 많이도 했지...."

퍽!

끄아악!

공터지는 소리와 함께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터져서 떡처럼 짓무러지며 서로 붙어버렸다.

그리고 형체를 분간하기도 어렵게 변하는 염 천세의 손.

무적의 손안에서 염 천세의 오른 손이 찰흙처럼 뭉쳐졌다 펴진다.

"왜 그랬지?"

차가운 무적의 눈빛.

염 천세는 입도 열리지 않았다.

이미 전신을 지배하는 고통과 공포.

또각.

크아악!

이번에는 뒤로 젖혀지며 부러지는 팔꿈치.

무적이 염 천세의 팔을 놓는다.

끄으으으....!

온몸을 집어삼키는 고통에 염 천세가 대청의 바닥을 구르고....

의자와 탁자의 다리에 염 천세의 얼굴이 부딪친다.

부딪치는 충격에 찢어져 피가 나는 얼굴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무시하고....

부러진 오른팔만 껴안으며 몸부림치는 염 천세.

"왜 그랬지?"

또다시 들리는 무적의 차가운 음성.

"내가.... 내가 아니야...."

염 천세가 초점없는 눈으로 무적을 보며 잠꼬대하듯 중얼거린다.

그리고 또다시 무적의 손이 염 천세의 왼손을 잡는다.

"내가 아니야!"

발악하듯 외치는 염 천세의 고함소리에도 무표정하게 왼손을 들어올리는 무적.

"네가 아니면 누구지?"

"길 평! 길 평이 흑사방주와 함께 왔어.... 길 평과 흑사방주가.... 그래. 그들이 너를...."

또각!

크아악~~!

왼손에 달린 다섯개의 손가락이 모두 부러지며 손등에 붙어비린다.

갑자기 머릿속이 텅비는 것 같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오는 이지.

길 평?

길 평이 동생들을 움직였다고....?

그래.... 길 평이라면 동생들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동생들의 배신이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하지만....

길 평은 왜?

서로가 친구를 위해서 죽어줄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 친구가.... 무슨 이유로....

아니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무적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염 천세의 허리에 발을 얹는다.

뚝!

끄아아~~악!

허리가 부러지는 고통.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에 염 천세의 입에서 허연 게거품이 뿜어져 나온다.

차갑게 식은 눈으로 염 천세를 보던 무적이 등을 돌려 마당에서 꿈틀거리는 흑사방의 노인에게로 간다.

"내 아내를 데려갔나?"

염 천세를 부수는 것을 본 노인의 얼굴이 파랗게 변한다.

어찌 인간이 이렇게 잔인할 수가....

"그대의 아내가 누구요....?"

고통속에 얼굴을 찡그린 노인이 힘겹게 입을 열어 대답했다.

"길 평은 아는가?"

"길 평? 처음 듣는 이름이요."

"미안하다. 살려주겠다는 말.... 없던 걸로 하자."

퍽!

끄을....!

노인의 입으로부터 괴상한 신음소리가 나온다.

무적의 주먹에 가슴이 함몰된 노인의 신음소리....

폐가 찢어져 숨을 쉬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상대를 보면서도 무적의 얼굴에는 단 한점의 동요도 보이지않는다.

다시 등을 돌린 무적의 눈에 염 천세가 보인다.

이미 시체나 다름없는 염 천세를 향해 무적이 천천히 다가간다.

* * * * *

차갑게 식은 군 자명의 얼굴.

반 봉옥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던 군 자명이 반 봉옥의 손가락으로 눈을 돌린다.

곽 도의 손가락과 다를 바 없는 반 봉옥의 손가락.

손톱이 빠지고 부러져 구부러진....

이 잔인한....!

"강 포졸, 강동의 지부대인에게 이야기해서 이 시체들을 좀 수습해주겠나?"

"예."

벽창호가 고집불통으로 변해버린 건가?

포졸이 살며시 군 자명을 훔쳐봤다.

차가운 얼굴.

지난 몇 개월간 함께 하면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얼굴이다.

하아....!

포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낮은 한숨이 나왔다.

빠르게 산을 내려가는 포졸의 뒷등을 보던 군 자명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른 하늘속으로 피를 뒤짚어쓴 조 무적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인간이....

싫다.

이렇게 잔인하게 인간을 죽이는 인간이 싫다.

조 무적이라고....?

반드시 네놈을....!

* * *

강동의 지부대인은 신경질이 났다.

저 금군교두라는 자가 끌고온 시체들.

저 미친놈이 괜히 사단을 일으키려는 것인가?

"이보시게.... 군 교두. 이렇게 시끄럽게 처리할 일이 아니라 그냥 덮어두고 모른 척 하면 안되겠는가?"

"덮어두고 모른척 하다니요?"

뚱하게 되묻는 군 자명의 말에 지부대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고함을 지른다.

"아....! 보기에도 무림인이 연루된 사건인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는가? 그냥 묻어두고 돌아가시게."

"돌아가요? 저렇게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죽었는데 돌아가라고요?"

저 벽창호가 소문보다 더 벽창호가 아닌가?

강동의 지부대인은 눈앞에 있는 군 자명의 얼굴을 보는 것도 짜증스러워졌다.

"상관으로서 명령일세. 쓸데없는 일에 관여하지말고 지금 당장 합비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황도로 돌아가게!"

상관의 명령?

군 자명이 고개를 들어 대청위에 짜증스럽게 앉아있는 지부대인을 봤다.

나라의 녹을 먹는다는 자가....

몸에 베인 무사안일과 탐욕.

빌어먹을....

"어찌 묻어두고 모른 척 할 수 있겠습니까? 이 희대의 살인마를...."

"닥쳐라! 이 벽창호 같은 인간아! 사람 말 좀 들어라! 우리야 그냥 모른 척하면 되는 것을 뭐한다고 살인자를 잡네.... 마네  난리를 치는 것이냐? 이런 일은 묻어두는 것이 피차 서로 좋은 법인 것을.... 뭣들 하느냐? 당장 저 시체들을 망산에 묻어버리거라!"

지부대인의 고함소리에 지부의 포졸들이 우르르 시체를 치우기 위해 달려든다.

"손대지마라!"

차가운 군 자명의 말에 움찍 놀라는 지부의 포졸들.

"대인 정녕 이 일을 덮어두실 작정이십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당연히 덮어야지!"

악을 써는 것 같은 지부대인의 말에 군 자명이 지부대인의 곁으로 다가간다.

딱딱하게 굳은 군 자명의 얼굴.

그리고....

퍽!

컥!

갑작스럽게 지부대인의 옆구리에 꽃히는 군 자명의 주먹.

채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을 숙이는 지부대인의 다른 옆구리에....

퍽!

끄윽....!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게거품을 게워내는 지부대인.

"이 일도 덮어두십시오."

차가운 군 자명의 말에 지부대인의 몸이 움찔거린다.

파랗게 질려 할딱거리는 지부대인의 얼굴을 한 번 본후 군 자명이 몸을 돌린다.

"염가의 장원으로 가보세."

"예."

포졸이 빠르게 군 자명을 따라 나섰다.

아쭈....?

이 벽창호가 제법....

군 자명을 다르는 포졸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참혹한 광경.

염 천세의 장원에 펼쳐진 광경에 군 자명은 넋이 나가 버렸다.

그리고....

우웩!

심하게 토악질을 하는 포졸.

허리가 잘려 반 토막이 난 시신과 사방의 담벼락에 떡처럼 붙어있는 시체.

가슴에 비수를 꽃은 체 죽어있는 시체들은 그나마 깨끗하다.

하지만 대청위에 누워있는....

대청위의 부서진 시체를 보는 군 자명의 눈에 핏발이 선다.

온 전신의 뼈마디가 모두 조각나버린 것 같은 염 천세의 시체.

이 미친 놈이....

어떻게 사람을 이런 꼴로....

이제는 토악질도 나지 않는 것처럼 시린 속을 부여잡고 포졸이 비실비실 군 자명의 곁으로 왔다.

그리고 엉망으로 망가진 염 천세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우욱!

아직도 배속에 토해낼 것이 남아있는가?

다시 심하게 토악질을 하는 포졸.

군 자명이 포졸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이 자는 누군가?"

"그 시체가 염 천세입니다."

"저 시체들은?"

군 자명이 가리키는 허리가 잘리고 가슴이 함몰된 세 노인의 시체를 보는 포졸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남경삼귀?

나름 일류고수라고 떠벌이고 다니는 자들이....?

"무림인 인 것 같은데 누군지는....?"

"그 흑사방이라는 곳의 인물들인가?"

포졸이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흑사방과 미친 살귀의 싸움인가?

아니면....

"이 미친 살인귀가 이번에는 흑사방으로 갈 것 같은가?"

포졸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고 포졸의 말보다 먼저 들려오는 음성.

"그대들의 작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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