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10화 (10/158)

군 자명

* * *

이십대 중반의 청년 둘과 이제 갓 약관을 벗어난 것 같은 모습의 젊은이 여덟명.

그렇게 자신의 앞에 널어선 자들 중의 한명이 입을 열었다.

한눈에 봐도 성질 더러워 보이는 못생긴 얼굴.

"대인께서 만약 저희들에게 살 길을 열어만주신다면 저희들은 절대로 그 은혜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며 소금판매권을 달라고 사정하던 조 무적.

고작 열 명으로....?

귀찮기도 하지만 호기심도 생긴다.

아니.... 그것보다 그들의 품속에 숨겨둔 비수가 오히려 눈길을 끈다.

수 틀리면 여기서 죽겠다는 것인가?

백 명이 넘는 자신의 부하들 속에서 고작 저 숫자로....?

"자네들 열 명이 전부인가?"

"예. 저희들 열 명이 전부입니다."

"소금만 주면 되는가?"

"대인! 감사합니다."

기쁜 듯 소리치며 고개를 숙이는 무적과 그의 형제들.

그 모습에 자신은 손을 저었다.

"아니.... 아니.... 아직 감사하기는 이르지.... 그래 얼마나 필요한가?"

"첫거래이니만치 다섯 수레면 충분합니다."

"다섯 수레라.... 돈은 가져왔겠지?"

조 무적이 고개를 들어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저희들에게 돈이 없습니다. 하지만 소금만 처분하면 바로 대금을 갚겠습니다."

성질만 더러워보이는 것이 아니라 제법 배짱도 있는가?

"외상으로 주면 갚겠다.... 이 말인가?"

"예. 대인."

"팔 곳은 있고?"

"황산현 인근의 주루와 객점에 팔 수 있습니다."

"흠.... 자신의 기반 근처에 판다.... 좋은 생각이긴하지만 자네들을 아는 그들이 관에 신고라도 하면 그때는 어떡할 건가?"

"저와 같이 죽자는 자가 아니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생긴 꼴로 봐서는 그럴 것 같기도 한데....

저 성질 더러워보이는 놈을 알고는 누가 감히 건드릴까?

"소금이면 되는가? 차는 필요없나?"

은근한 자신의 말에 조 무적의 눈꼬리가 살짝 떨리는 것이 보였다.

소금보다 열 배이상 큰 이문을 남기는 차.

조 무적의 허리가 더 깊숙이 숙여진다.

그리고....

"아직 차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판로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소금이면 충분합니다."

이놈봐라....?

슬쩍 던진 미끼를 보고도 고개를 돌린다....?

자신은 만약 조 무적이 차도 달라고 했다면 아무것도 주지않을 작정이었다.

차라리 시체 열 구를 치우는 것이 편하지....

욕심만으로는 다루기 어려운 상품이 차라는 물건이다.

어쨌거나 상대는 자신의 함정을 잘 빠져나왔다.

"가져갈 수 있다면 열 수레를 가져가. 그리고 다음에 물건을 가지러 올때는 돈도 가져와."

"감사합니다."

* * *

그렇게 자신은 무적과 거래를 시작했고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서로 좋았다.

왜 그런 황당한 일이 생겨서....

염 천세가 고개를 돌려 대청의 한쪽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세 노인을 봤다.

자신을 지켜주기위해 나온 흑사방의 고수들.

흑사방주가 부단한 노력으로 영입한 남경에서도 이름난 고수들이라고 했다.

요즘 들어 빈번하게 흑상의 조직들이 누군가에게 변을 당하는 일이 늘고있다.

마치 천하에 널린 흑상 간에 전쟁이라도 난 것 같은 소란스러움.

그렇게 누군지도.... 어떤 의도를 가진 건지도 모르는 상대를 막아주기 위해서 흑사방에서 보낸 고수들.

운 나쁘게도 조 무적이 걸린 것인가?

기다리면 오겠지.

슬쩍 염 천세의 눈길이 무적의 동생들을 향했다.

저들은 과연 어떤 심정일까?

* * *

수 많은 횃불로 불야성처럼 변해버린 장원의 대문이 활짝 열려져있다.

그리고 그 열려진 대문의 문턱을 넘는 사내.

커다란 철판을 검처럼 허리에 두른 체 들어오는 사내의 모습에 황 충보의 눈이 떨린다.

대형....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황 충보와 다섯 노인이 천천히 사내의 앞으로 걸어갔다.

바람에 헝클어지는 머리카락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무적의 얼굴.

노인들의 얼굴에 기묘한 빛이 떠오른다.

살아계셨소?

그 모진 칼질 속에서 살아계셨소?

"대형....!"

무적은 자신을 향해 허리를 숙이는 노인들의 모습을 차갑게 봤다.

대형이라고....?

죽어라고 온 몸에 칼을 쑤셔박던 너희들이 내게 대형이라고....?

"잘 살고 있구나."

빈정거리듯 나오는 무적의 음성.

고작 이렇게 살기위해서....

숙여진 노인들의 등 너머로 거만하게 앉아있는 염 천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너는 마지막에 지옥이 뭔지를....

"대형.... 살아있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섯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처연한 음성.

그리고 파릇한 얼굴을 보여주는 여섯 자루의 비수.

자신의 몸을 난도질 하던 바로 그....

푹!

응?

무적이 흠칫 놀란다.

여섯 노인의 가슴에 손잡이만 남기고 꽃혀있는 비수가 보인다.

"무슨 짓이냐?"

무적이 눈앞에서 쓰러지는 황 충보의 멱살을 잡으며 그를 붙잡아 세웠다.

당혹스러워하는 무적의 눈에 코와 입을 통해 검붉은 피를 토해내는 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애처롭게 자신을 보며 흘러내리는 눈물.

"대.... 형, 형수님은 흑사방이...."

힙겹게 입을 열던 황 충보의 머리가 힘없이 젖혀지고....

더 이상 말소리가 들리지않는다.

"황 충보.... 뭐라고 한 거냐?"

강하게 흔드는 무적의 손길에 황 충보의 몸이 흔들린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이 싸늘히 식어가는 황 충보의 몸뚱아리.

황급히 주위로 고개를 돌리자 애처로운 눈길로 자신을 보며 죽어가는 동생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뭐야....?

이럴 거면서 왜 나를 배신 한 거냐....?

곽 도도 반 봉옥도.... 그리고 너희들도 한 마디의 변명도 없이....

분노인지 허탈함인지 분간하기도 힘든 괴이한 감정속에서 염 천세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동적인 장면이기는 하지만 길게 끌면 지겨워.... 조 무적! 너도 동생들의 뒤를 따라가야겠지?"

염 천세의 말과 함께 각양각색의 무기를 든 사내들이 무적을 둘러싼다.

죽여!

살벌한 고함소리가 들리며 사내들이 무적을 향해 달려들고....

무적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엄청난 경력.

퍽!

장원안을 울리는 큰 소리와 동시에 무적을 덮치던 사내들이 사방으로 날려간다.

크악!

으악!

비명과 함께 벽에 부딪쳐 머리가 터지는 자들과 아예 벽을 파고들어가 버리는 자들까지....

순식간에 무적을 덮치던 자들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내려오는 무적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응?

대청의 한쪽에서 관심도 없이 차를 마시던 세 노인이 깜짝 놀라 무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강기....?

그리고 동시에 몸을 날려 무적을 향하는 세 사람.

"그대는 누군가?"

품자형으로 무적을 둘러싼 세 노인 중 딱딱한 얼굴을 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순간적으로 뻗어져 나오던 그 기운은....

정말 강기인가....?

어떻게 흑상따위의 하찮은 무리들 싸움에 이런 자가....?

초점없는 무적의 눈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염 천세의 몸을 떠나 세 노인을 둘러봤다.

눈에 익은 검은 색의 복장.

"흑사방인가....?"

마치 쉰 목소리처럼 거북한 음성에 노인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우리를 아는가?"

아내의 이야기를 하며 흑사방을 언급하던 황 충보의 말이 떠오른다.

흑사방이 죽였다는 것인가?

아니면....?

생각하기도 싫은 두 개의 결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떠다닌다.

"한명을 정해라!"

의아한 눈길로 무적을 보는 세 노인.

한명을 정해....?

"무슨 소린가?"

"살아남을 자!"

살아남을 자....?

이 새끼가....!

무적의 차가운 말에 세 자루의 검이 번뜩인다.

무적의 전신을 향해 빠르게 찔러오는 세 자루의 검.

그리고....

무적의 허리에 메달려있던 철판이 허공을 가른다.

삐윳!

으으윽....!

고통의 신음인가?

아니면....

뺨을 건드리는 바닥의 차가운 기운과 함께....

노인의 눈에 자신의 두 다리가 보인다.

잃어버린 무릎위의 몸을 찾아가려는 것처럼 바닥을 딛고 서있는 자신의 두다리.

금방이라도 자신을 향해 뛰어올 것만 같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자신의 몸에는 무릎아래가....

어떻게....?

자신의 몸과 잘려진 무릎에서 단 한 방울의 핏자국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꿈 같은 장면을 보며 찰나의 시간이 지났을까?

파악!

뜨거운 피를 뿜어내며 넘어지는 잘려진 자신의 두 다리가 보인다.

그리고 저미듯이 밀려오는 하체의 고통.

으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는 노인의 눈에 반토막으로 허리가 잘린 동료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도 허리를 통해 꾸역꾸역 밀려나오는 창자와 뜨거운 핏물.

크윽....!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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