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마출동狂魔出洞3
* * * * *
짹짹짹!
익숙한 산새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무적이 눈을 떴다.
오랜시간 산속의 노숙에 이골이 난 무적으로서는 자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아무 곳에서나 잠자리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잠자리.
수북히 쌓인 낙엽과 잡초 넝쿨을 치워낸 무적이 은이 든 보따리를 어깨에 걸치다 말고 피식 웃었다.
배고프고 힘들게 살아온 어린 시절의 기억 탓에 한 번 손안에 들어온 것은 쉽게 놓지 못하는 자신의 성격.
은이 들어있는 보따리도 무의식적으로 챙겨서 지금도 어깨에 걸치고 있다.
사람의 성격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기는 하지만 유독 집착이 강한 자신의 성격은....
그런 일상적인 생각과 함께 어슬렁거리며 산을 내려온 무적이 망치질 소리가 요란한 철방의 앞에서 멈춰섰다.
천천히 두터운 철방의 문을 열자....
소란스러운 쇳소리와 함께 후욱 하고 밀려나오는 뜨거운 열기에 무적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진다.
분명히 철방안의 뜨거운 기운이 자신을 덮쳤지만 전혀 그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자신의 신체에 생긴 변화를 하루하루 깨닫고 적응해가고 있지만 이렇게 의식하지도 못하고 느낄 때는 정말이지....
혹시 지금도 무간지옥을 헤매는 것은 아닌가?
쓸데없는 생각을....!
무적이 세차게 도리질을 치며 철방안을 둘러봤다.
"뭘 찾으시는 거요?"
탁한 음성과 함께 무적의 모습을 확인한 철방 주인이 다가왔다.
"칼이 하나 필요합니다."
"칼?"
철방 주인이 무적의 전신을 빠르게 한 번 훑어봤다.
그리고....
"도나 검을 찾으시는 거라면 이곳보다는 성안의 무기점으로 가보시오. 여기는 농기구나 만들지 무기는 만들지 않는 곳이라서...."
가보라는 철방 주인의 말에 무적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무기가 아니라 나뭇가지나 조금 자를 칼이면 됩니다."
"나뭇가지?"
되묻는 주인의 말에 무적이 옅은 웃음을 보이고....
"벌목도라면 저곳에 만들어둔 게 몇 개 있소. 가서 손에 맞는 걸로 찾아보시오."
주인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선반위로 이미 만들어둔 벌목도 몇 개가 무적의 눈에 들어온다.
천천히 다가가 벌목도를 손에 쥐어보던 무적이 내려놓는다.
쓸만한게 없다는 생각인지 고개를 돌리던 무적의 눈이 한 곳에서 멈췄다.
"저건 뭡니까?"
벌목도를 살피던 무적이 자신에게로 와서 무엇인가를 가리키자 주인이 돌아봤다.
농기구를 모아둔 곳에 세워둔 쓰고 남은 넓은 철판 하나.
"쓰고 남은 쇠판이요."
"저것도 파는 것입니까?"
"저걸 사서 뭐하시게....?"
의아한 듯 자신을 보는 주인을 향해 무적이 가볍게 웃는다.
"혹시 목탄 있습니까?"
* * *
단단한 숯으로 만들어진 목탄으로 쇠판에 줄을 긋는다.
그리고....
"이대로 잘라서 한쪽에만 날을 세워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별로 힘들 것도 없구만...."
뜨거운 화로 속에서 붉게 달구어진 쇠판을 꺼낸 철방의 주인이 무거운 망치로 달아오른 쇠판을 두드린다.
땅!
땅!
땅!
치이익~~!
적당히 두드린 쇠판을 차가운 물에 식히고....
다시 화로에 넣어서 달구고.... 또 망치질.
땅! 땅!
주인이 쇠판을 손질하는 동안 무적은 미동도 않고 지켜만 본다.
한참동안 쇠판을 손질하던 주인이 손길을 멈추고 무적을 돌아봤다.
만들어달라는 데로 만들긴 만들었는데....
"이런걸 어디다 쓸려고....?"
자신이 만들고도 이상한지 중얼거리는 주인.
못 생겼네....
무적도 이상해 보이는 쇠뭉치를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쩝....!"
그리고 주인의 손에서 넘겨받은 쇠판을 칼을 쥐듯이 오른손에 쥐어본다.
움찔....!
이 느낌....
오른손에 들린.... 한쪽에 날이 서 자신이 틀림없는 도라고 주장하는 이 못생긴 쇠판의 무게에 자신의 모든 근육이 반응한다.
어딘가 권태롭던 무적의 허리가 반듯이 펴지고 눈에서 빛이 난다.
살아있다는 느낌인가?
미치겠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그 시간동안 자신은 정말 칼잡이가 된 건가....?
--- 내가 만들긴 잘 만들었어. ---
문득 이제는 듣고싶어도 들을 수 없는 얄미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정신 나간 영감 같으니라고...."
"예?"
무적의 중얼거림에 철방의 주인이 놀라서 돌아본다.
"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생각나서요...."
무적의 변명에 주인이 의심스러운 눈길로 무적의 손에 들린 쇠판을 봤다.
끝은 뭉뚝하고 손잡이는 아무런 장식도 없어 손 다치기 딱 알맞은 형태.
모르는 사람이.... 아니 아는 사람이 봐도 주방에서 고기나 자르는 식도를 길게 늘려 놓은 듯한 모양새.
당연히 저런 걸 만들어준 자신에게 정신 나간 영감이라고 욕 할 것도 같았다.
"저건 뭡니까?"
무적이 가리킨 방향으로 주인이 고개를 돌리고....
창가에 한가득 널어놓은 소가죽이 보인다.
"장식용 끈으로 쓰려고 소가죽을 조금 잘라놓은 거요."
"소가죽? 몇 장 살 수 있겠습니까?"
주인이 칼의 손잡이를 힐끗 쳐다보고는 몸을 움직인다.
잠시 후....
몇 장의 소가죽과 무두용의 작은 칼을 들고온 주인이 무적에게 내밀고....
"필요한만큼 잘라서 쓰시오."
무적의 손에 들린 작은 칼이 소가죽을 잘라내기 시작한다.
스윽!
스윽!
잘게 잘리는 소가죽을 보는 주인의 눈에는 이채롭다는 빛이 가득하다.
두껍지는 않지만 질긴 소가죽을 무디고 작은 칼로 힘들이지 않고 잘라낸다.
그리고 자로 잰 것처럼 똑 같은 너비.
"공방에서 일했소?"
"아닙니다. 먹고 살기 어려워 이것저것 닥치는데로 많은 일을 하다보니...."
한웅큼의 가죽 끈을 만든 무적이 쇠작대기처럼 길다랗게 나온 쇠판의 손잡이에 끈을 감는다.
단단하게 당겨서 몇 겹으로 감아서 감싸는 가죽 끈.
몇 번이나 감아서 이제는 제법 두툼해져있는 쇠판의 손잡이를 무적이 다시 쥐어본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무적.
딱히 뭔지는 모르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혹시 말굽 쇠도 있습니까?"
"말굽 쇠? 몇 개나?"
철방의 주인은 소가죽을 다루는 무적의 손길에서 자신과 같은 장인의 냄새가 나는지 상당히 친밀하게 대한다.
"두 개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주인이 가져다 준 말굽 쇠를 쇠판의 손잡이에 마주보게 끼운다.
그리고 다시 가죽 끈으로 동여매는 무적.
"아교도 있으면 좀 부탁드릴까요?"
어느듯 몇 명의 대장장이가 무적의 주위에 몰려 무적의 솜씨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사람이 급히 뛰어나가서 한통 가득 녹인 아교를 가져다 준다.
손잡이와 말굽 쇠 위에 아교를 부어두고 고개를 드는 무적.
표정없는 얼굴로 주위에 널어선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본 후 다시 아교위로 가죽 끈을 돌린다.
말굽 쇠위로 가죽 끈을 마무리해서 묶고....
살며시 칼자루를 쥐는 무적.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손잡이의 감촉이 손에 닿는다.
천천히 머리위에까지 들어올린 후 살며시 아래로 내려쳐본다.
그리고 희미한 미소.
"고맙습니다. 얼마나 드려야 하나요?"
쇠판을 들고 일어나는 무적의 모습에 철방 주인이 아쉬운 얼굴로 쳐다봤다.
익숙하고 빠른.... 그리고 절제된 손의 움직임.
소가죽을 자르고 끈을 감고 말굽 쇠를 끼우는 손의 움직임에 불필요한 동작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저런 손길로 쇠를 다룬다면....
"그냥 가시게. 오늘 좋은 구경거리를 한 대가로 침세."
주위에 둘러선 대장장이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엄청난 집중력과 조밀한 손동작.
그 손놀림을 본 것만으로 저 싸구려 쇠판의 값은 치고도 남는다.
무적이 천천히 보따리안으로 손을 넣어서 한 냥짜리 은구를 하나 꺼낸다.
"저도 이곳에서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약소하지만 제 성의입니다."
은구를 건네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무적이 철방의 문을 열고 나선다.
차가운 바깥 공기와 함께 오른손에 들린 칼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철판의 무게에 온몸의 근육이 살아있다고 소리치는 것이 느껴진다.
하아....!
망할 놈의 도왕동부....
* * * * *
주 자룡은 다리를 꼬고 손으로 턱을 받친채로 저 늙지도 젊지도 않은 두 인간이 하는 꼴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내 참.... 기가 막혀서....
어제 저녁 가져온 두 구의 시체.
그리고 잡혀오듯 끌려온 곽가장의 식솔들.
그기에 더해서 이 꼭두새벽부터 지부의 문을 열고 허겁지겁 뛰어오는 잠이 덜 깬 의생 하나.
정말 가지가지 하네....
의생이 들어오자 군 자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 입을 열려다 멈춰버리는 군 자명.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군 자명이 포졸에게로 눈길을 돌린다.
"강 포졸, 자네가 대신 좀 하게."
군 자명을 쳐다보던 포졸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뜬다.
'벽창호도 그냥 벽창호가 아니라 꽉 막힌 벽창호 같으니라고....
속으로 터져나오는 말을 참으며 마당에 무릎꿇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비실거리며 나오는 포졸과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짓는 주 자룡.
도대체가 이놈이나.... 저놈이나.... 제대로 된 놈이....
"지난 밤에 두 건의 살인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 의생을 불러 시체를 검시하고 진상을 밝힐 것이니 곽가장의 식솔들은 검시가 긑난 후 몇 가지 묻는 말에 사실대로 답해야한다. 알겠지요?"
알겠지요....?
저 새끼가 잘 나가다 끝에 가서 저게 뭐야?
이래저래 주 자룡은 속에서 열천불이 났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시체의 몸을 면밀히 살피는 의생.
그리고 뚫어질 듯 그 모습을 보는 군 자명과 포졸.
한참동안 시체의 몸을 살피던 의생의 입이 열린다.
"두 사람이 모두 맞아죽었군요."
말뚱말뚱하게 자신을 보는 군 자명의 시선을 느끼며 의생이 손으로 중년인의 시체를 가리켰다.
"이 사람은 명치부근에 맞은 충격으로 숨이 끊어졌는데...."
명치를 중심으로 마치 거미줄처럼 상체를 가득 덮고 있는 기이한 흔적이 군 자명의 눈에 들어왔다.
절정의 전사력인가?
상대를 때리는 힘이 몸에 닿을 때 마치 나사처럼 회전하는 기운이 몸을 관통해 들어간 것인가?
그리고 비틀리는 그 힘의 중심을 향해 상체의 모든 조직이 끌려들어가 저런 상흔이....
중년인의 상체에 생긴 거미줄 같은 상흔이 신기한지 한참동안 쳐다보던 의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번에는 시체를 뒤집는다.
그리고 이번에도 등에 난 수많은 상처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줄로 긁어 놓은 것 같은 상처에 멍까지 퍼렇게 들어있다.
"등쪽의 이 상처는...."
마치 자갈 밭에서 굴러서 생긴 것 같다며 끝을 흐리는 의생에 말에 군 자명이 힐끗 포졸을 봤다.
시체를 바닥에 질질 끌고 오더니....
그리고....
곽 도의 시체를 가리키는 의생.
"이 시체는...."
선뜻 말을 하지 못하고 시체의 양손을 한참동안 쳐다본다.
바닥을 맨 손으로 긁었나....?
반쯤 부러지고 빠질 것처럼 들려있는 손톱과 몇 개는 바닥을 긁어면서 빠져버렸는지 피투성이가 된 손가락에 손톱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부러져 뒤로 구부러진 손가락.
"시체의 배를 좀 갈라 주겟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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