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4화 (4/158)

도왕동부4

* * * * *

무적의 손에 들린 도가 떨어져나간다.

무적의 손을 떠나 허공에 멈춘 듯 떠있는 커다란 칼.

숨을 참는 듯 붉어진 얼굴로 무적의 손이 살짝 움직이고 커다란 칼이 석실안을 날아다닌다.

갇혀있는 짐승이 우리를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 같은 칼의 움직임이 보이고....

카앙!

깡!

석실의 벽과 부딪친 칼에서 불꽃이 튀고 석벽에 작은 흠집이 생긴다.

한참을 그렇게 석실안을 돌아다니던 칼이 다시 무적의 손으로 돌아왔다.

후우~~!

무적이 격한 숨을 몰아쉬며 손안으로 돌아온 자신의 칼을 봤다.

강철보다 단단한 석벽에 부딪쳐 날이라도 빠졌나 했지만 아무런 흠도 나지 않은 자신의 칼.

들어가볼까?

무적이 전신의 기를 끌어올린다.

장강의 물결처럼 전신을 도는 공력.

며칠전 생사현관이 타동된 것이 도움이 된 듯 네번째 초식을 완성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초식.

어기만월御氣滿月.

마치 이기어검처럼 자신의 손을 떠나 자유로이 움직이는 칼.

무적은 무림인도 아니고 무공이나 내공심법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래서 무적은 지금 자신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가 없다.

적어도 누군가와 한 번 겨뤄보기 전에는....

하지만 저 동굴안에는 자신의 경지를 가늠해줄 상대가 있다.

그것이 뱀이든 박쥐가 됐든....

아니면 또다른 어떤 것이든....

진기를 일주천 시킨 후 가볍게 몸을 움직이며 무적이 동굴안으로 들어간다.

웅!

웅!

웅!

그리고 무적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적의 몸을 덮치는 수많은 벌떼들.

혈황봉血皇蜂.

꽃에서 꿀을 빠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짐승의 몸에서 피를 빠는 마물.

동굴 안을 가득 메운 혈황봉이 무적을 중심으로 몰려든다.

그리고....

퍽!

난데없이 가죽포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혈황봉의 무리들.

무적의 몸 앞에서 한자루의 도가 혈황봉을 노려보는 것처럼 허공에 떠있다.

은은히 뿌려지는 칼날에 서린 빛.

웅.... 웅.... 웅....!

조각조각 잘라져 나간 동족의 몸이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다시 혈황봉의 그물이 무적을 덮치고....

물샐틈없이 무적을 둘러싼 혈황봉의 그물 속에서 무적의 칼이 움직인다.

둥근 원을 그리듯이 무적의 몸을 감싸는 칼의 그림자.

빠르게 무적의 몸을 감싸듯이 움직이는 칼이 점점 더 원의 크기를 늘려나간다.

그리고 커지는 원과 함께 조각나며 떨어지는 혈황봉의 그물.

화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동굴 안이 칼에서 나오는 빛으로 가득 찬다.

마치 하늘의 해처럼 빛을 내는 칼.

동굴 안을 가득 채운 빛이 물샐틈없이 촘촘하게 혈황봉을 감싸고....

칼에서 나오는 빛에 닿자 부서져 가루로 날리는 혈황봉.

그리고...

푸우~~!

마치 깊은 물속에서 올라온 것처럼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무적이 동굴을 벗어나며 자신의 손에 들린 칼을 본다.

도대체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도 가지않는 이 고립된 공간 속에서 이토록 생생한 느낌의 칼이라니....

--- 축하한다. 드디어 다섯 번째 초식을 완성했구나. ---

갑작스럽게 무적의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이 들리고....

아니.... 사람의 음성이 맞기는 맞는 것인가?

"누구요?"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이 밀페된 석실안에서 누가 있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인가?

석실안의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대를 찾기위해 무적이 주위를 둘러보고....

--- 나? 이곳을 만든 사람이다. ---

또다시 한줄기 음성이 무적의 머릿속을 두들긴다.

이곳을 만든 사람이라고....?

정말 이 석실이 사람이 만든 것인가?

"당신은 누구요?"

--- 말해줘도 너는 모른다. ---

뭐야....?

어딘지 모르게 거만하게 들리는 상대의 음성이 묘하게 신경을 건드린다.

"좋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살아있는 것이요? 아니면 죽은 것이요?"

무적으로서는 자신이 살아있는 것인지 아니면 죽은 것인지 당장으로서는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도대체가 알 수가 없는 자신의 상태.

분명히 죽었던 기억이....

그 생생한 기억이....

--- 너는 살아있다. ---

살아있다고?

내가.... 죽지않았다고....?

"저곳에 적혀있는 글은 당신이 적어놓은 것이요?"

--- 글? 칠절도법七絶刀法은 너를 위해 내가 만든 도법이다. ---

"당신이 만든 도법이라고....?"

--- 사실 내가 만들었다기 보다는 몇 군데 손을 봤다는 것이 맞겠지.... ---

"저 글을 당신이 적어놓은 게 맞는 것이라면.... 저 일곱 가지의 도법을 모두 익히게 된다면 정말로 나는 이곳에서 나갈 수가 있는 것이요?"

---  그렇다. 그 칠초의 도법을 모두 익히게 된다면 너는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

"하지만....?"

--- 그래. 말 해주마. 마지막 초식은 내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네가 이곳에서 천년을 수련해도 완성할 수가 없는 초식이다. ---

뭐라는 거야?

천 년을 고련해도 익힐 수 없는 초식을 익히면 나갈 수 있다고....?

"지금 장난치는 거요?"

싸늘한 무적의 말과 함께 갑자기 석실안이 찬란한 광휘로 뒤덮힌다.

그리고 그 찬란한 빛 속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인영.

눈을 뜨기도 힘든 빛 속에서 문득 무적은 굉장히 얄미운 얼굴 하나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시 보려고 해도 보이지도 않는 상대의 얼굴이....

--- 너는 죄지은 것이 많아 죽어 무간지옥에 떨어졌다. 영원히 죽음의 순간만을 되풀이하게 되는 무간지옥.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서 네가 내게로 오게 됐다. 이 또한 인연이며 세상을 이루는 질서중의 하나. 그래서 나는 네게 저 도법을 전해준 것이다. 하지만 저 도법은 육초밖에 익힐 수 없는 미완의 도. 마지막 한 초식은 내가 너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영원히 익힐 수가 없다. ---

상대의 말에 무적은 얼이 빠져버렸다.

칠초의 도법을 모두 익혀야 세상에 나갈 수 있다.

그런데 마지막 초식은 절대로 익힐 수 없다니....

미친 놈 아니야....?

"이곳도 무간지옥이요?"

--- 이곳은 무간지옥이 아니다. ---

"그럼 이곳은 어디요?"

--- 내가 만든 결계지.... 영원의 시간을 존재하며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 어떠냐? 잘 만들지 않았느냐? ---

잘 만들었다고....?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 하겠소. 결국 나는 여기서 영원히 갇혀 살아야 한다는 것이요?"

--- 지금으로서는 그렇다는 말 밖에는.... ---

갑자기 무적의 손에 들린 칼이 빛 더미를 향해 움직인다.

빠르고 간결한 칼의 움직임이 보이고....

칼끝에 아무 것도 걸리는 것이 없이 허공을 가르는 자신의 칼과 얄미운 음성이 들린다.

--- 훌륭한 파천일식破天一式이구나! ---

훌륭하기는 개뿔....

허공만 갈랐구만....

다시 당겨진 칼이 이번에는 빛 더미를 부술 것처럼 휘몰아친다.

하지만 석실 안을 울리는 은은한 뇌성과 압력 속에서도 빛 더미는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않는다.

두번이나 자신의 도가 빈 허공을 가르자 무적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다시 도를 움직인다.

갑자기 석실안을 가득 채우는 칼의 그림자.

마치 석실마저 부술 것처럼 나타나는 칼의 그림자가 빛 더미를 향하고....

수많은 칼의 환영조차도 빛 무리를 어쩌지 못하고 통과해버린다.

"당신은 죽은 영혼이요?"

--- 말했잖아. 나는 산 사람이라고.... ---

낭창한 상대의 말에 무적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떤 방법을 쓰도 어쩌지 못하는 저 얄미운 상대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영겁의 시간을 함께 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나갈 수 없는 것이요?"

--- 너는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 ---

막연하게 끝이라는 기분과 함께 자포자기했던 무적은 나갈 수 있다는 말에 기쁘기보다는 오히려 은근한 분노가 일어난다.

저 인간이 누구를 놀리나....

"그렇다면 지금 나를 내보내주시오."

--- 지금은 안된다. ---

개새끼....

무적의 칼이 저절로 허공으로 떠오른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스스로 움직이며 빛을 향해 날아가는 칼.

그리고....

빛 더미 속에서 작은 동심원이 생겨나며 무적의 칼을 막는다.

칼과 동심원이 서로 붙은채로 허공에 머물고...

빛 속에서 감탄의 음성이 나왔다.

--- 훌륭하구나! 훌륭해! 벌써 이 정도의 경지까지.... 확실히 내가 이 동부를 만들기는 잘 만들었어.... ---

뭐 저런 인간이....?

어떻게 된 인간이 입만 열었다하면 자기 자랑을....

--- 조 무적! 한 가지만 약속을 하면 너를 내 보내주마. ---

한 가지 약속?

"뭔데?"

잠시동안 빛 속에서 아무런 음성도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 너 왜 반말해?---

약간은 장난스러운 음성이 들려나왔다.

"왜? 반말한다고 기분 나빠?"

상대의 말에 맞받아치는 무적의 말이 나오고....

빡!

갑자기 석실 안을 울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적의 몸이 데굴데굴 굴러 피웅덩이로 빠져버리고....

첨벙!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핏물이 튀어오르고 웅덩이에 빠진 무적의 몸이 순식간에 가라앉아 버린다.

뭐지....?

얼굴에 통증을 느끼고 나서야 타격음이 들렸다.

아니.... 그보다 먼저 눈에서 불꽃이....

천천히 웅덩이에서 몸을 일으킨 무적이 빛무더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응?

두 발자국을 떼자 코 밑을  흐르는....

정말이지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감촉이 느껴졌다.

익숙하면서도 가슴설레는 낮설은 감촉에 무적의 손이 코밑을 만지고....

웅덩이의 차가운 피가 아니라 자신의 코를 타고 흐르는 생혈生血의 뜨거운 감촉이 느껴졌다.

스윽!

코밑을 닦는 손등에 선명한 피자국이 묻어난다.

코피....?

--- 이제 말 조심할래? ---

"싫은데."

짧은 한마디와 함께 번개처럼 빛을 향해 몸을 날리는 무적.

그리고....

퍽!

끄.... 윽!

커다란 소리와 함께 게거품을 물고 석실 바닥을 기는 무적.

숨을....

숨을 쉴 수가....

단전을 중심으로 온몸으로 퍼지는 고통과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복부와 가슴을 쥐어짜는 압박.

어떻게 이런 고통이....

마치 벌레처럼 바닥을 기는 무적을 보며 빛 속에서 다시 말소리가 들린다.

---- 다시오마. 그때도 반말 짓거리하면.... ---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는 음성속에서 무적이 엉금엉금 기어서 돌침상으로 갔다.

그리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침상위로 쓰러지듯이 엎어진다.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엎어져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숨쉬는 것이 편해졌다.

끙....!

억지로 몸을 돌려 바로눕고....

무적이 멍하니 석실의 천정을 올려다봤다.

도대체 누굴까?

전신을 빛으로 감싼 인간이라니....?

응?

자신이 누워있는 돌침상으로부터 은은한 찬 기운의 감촉이 등을 건드리는 것이 느껴지고....

등을 자극하던 찬 기운이 살아있는 것처럼 자신의 전신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으로 들어온 차가운 기운이 혈맥을 따라 돌고....

찢어질 것 같았던 단전의 고통이 가신다.

이건 또 뭐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돌침상의 변화에 놀라고....

이번에는 용암불 같은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며 무적의 눈이 스르르 감겨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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