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왕동부3
누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인지도 모를 고함소리가 터지며 무적의 등을 향해 단단한 몽둥이가 떨어져내리고....
퍽!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무적이 무릎을 꿇는다.
동시에 우르르 몰려들며 건달들이 무적을 둘러싸고....
바닥에 쓰러지는 무적을 향해 난폭하게 떨어지는 발길질.
그리고....
자신의 몸을 향해 떨어져내리는 수많은 발길질을 무적이 두 손으로 머리와 얼굴을 가린 체 몸을 웅크리며 견뎌낸다.
바닥에 웅크린체 자신의 수하들에 둘러싸인 무적을 확인한 천 덕구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상대의 팔목을 잡을때 가볍게 스친 칼자국이 보이고....
그 흔적을 따라 조금씩 핏물이 베어나오기 시작한다.
감히 이 황산현에서 자신에게 암습을....?
수하들에게 둘러싸여있는 무적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누굴까?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갑자기 옆구리에서 올라오는 통증.
큭....!
지독한 고통으로 올아오는 왼쪽 옆구리의 충격에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오른쪽 옆구리의 충격과....
"....!"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등을 타고 다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끄으윽....!
누가 뒤에 있는지 돌아볼 힘도 없이 앞으로 쓰러지는 천 덕구.
응?
무적을 둘러싸고 두드리던 건달패의 손이 멈췄다.
옆구리와 등으로 피를 뿜어내며 무적을 향해 무너지듯 쓰러지는 천 덕구가 눈에 들어온다.
어....?
뭐야....?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한 건달패를 향해 덮쳐오는 아이들.
"이놈들이....!"
겨우 정신을 차린 건달들이 몸을 돌려 자신들을 덮치는 아이들을 향한다.
하지만....
큭....!
등뒤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감촉.
언제 일어났는지 온몸에 피를 뒤짚어쓴 상대가 자신들의 등에 칼을 휘두른다.
고개를 돌리자 코와 입으로 흘러내리는 피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등만 보고 칼을 찌르는 상대가 눈에 들어왔다.
핏발이 선 붉은 눈.
그리고 넘어져 밟힐때 머리도 터졌는지 이마와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핏물도 보인다.
으으으....!
순간 건달들은 오싹하고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지옥의 야차가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공포스러운 무적의 모습에 건달들이 쓰러지는 동료들을 버려두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고....
"퉤! 죽을래.... 무릎 꿇을래?"
이빨도 몇 개 부러졌는지 별로 명쾌하지 못한 음성이 상대의 입을 통해 새어 나온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건달들의 눈에 작은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들의 주위를 둘러싸듯이 서있는 아이들.
비록 손에 흉악한 비수를 들고있지만 아직 약관도 안되보이는 어린 아이들에게....
으아아!
순간적이지만 어린 상대에게 두려움을 느겼다는 수치심에 건달들이 고함을 지르며 아이들을 향해 뛰쳐나갔다.
그리고...
자신들보다 큰 덩치의 건달들이 자신들을 향해 덮쳐오자 놀라는 아이들.
하지만....
지면 죽는다.
무적이.... 자신들의 대형이 했던 말.
겁내면 진다.
아이들이 덮쳐오는 덩치를 향해 두눈을 부릎떠고 칼을 디밀었다.
퍽!
퍽!
야릇한 소리와 함께 건달들의 몸에서 터져나오는 핏물.
그리고 건달들의 등을 향해서 날아오는 무적의 비수.
* * *
후우~~!
온천의 뜨거운 열기속에서 무적이 눈을 떴다.
왜 어린 시절의 꿈이....
밖으로 나와 편하게 돌침상에 몸을 눕히며 뜨거워진 몸을 말린다.
흘러내리는 땀을 말리며 돌아보는 무적의 눈에 석실의 한쪽 벽면에 새겨진 칠초의 도법이 보인다.
저 망할 놈의 도법을 이제 겨우 사초식을 익히고 있다.
혈편복을 잘라냈던 네번째 초식 도벽밀밀刀壁密密.
초식을 완성하면 전신을 둘러싼 도기가 상대를 자르고 상대의 무기는 도벽을 뚫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완성하지는 못한듯 몸의 군데군데에 혈편복의 이빨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이 남았다.
완성하면 물 한방울 침범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건 그렇고 언제 저 도법을 모두 익힐 수 있을까?
도대체 무림인도 아닌데 저런 도법을 익혀서 어디에 쓸 것인가?
복수....?
저따위 도법이 없어도 할 수 있다.
힘이 없다면 머리를 쓰더라도....
복수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확고한 결의를 다지고 모든 것을 희생할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만.... 복수의 끝을 따라올 그 불쾌한 감정.
허무와 상실의 감정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그것이 문제가 될뿐....
굳이 저런 도법이 없더라도....
어느정도 땀이 식고 온몸을 짓누르던 피로가 가시자 무적이 본능적으로 윗몸일으키기를 시작했다.
말해줄 상대도 들어줄 상대도 없는 완벽한 고립.
이 괴상한 석실안에서 이렇게라도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머릿속을 짓누르는 고독과 적막에 잡아먹혀 버리고만다.
얼마나 그럻게 움직였을까?
더이상 배가 당겨서 움직이기도 힘든 지경이 되자 무적이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이번에는 내공이란 것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도법과 함께 석벽의 벽에 적혀있는 한 가지의 내공구결.
도법과 마찬가지로 그냥 익히라고만 적혀있었다.
이 내공을 익히지 않으면 도법을 익힐 수 없다고....
무적은 침상에 누운채로 와공으로 내기를 움직였다.
일주천.... 이주천....
지쳐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으로 석실안의 돌침상에 누워서 끝없이 진기를 돌린다.
딱히 이짓말고는 할 것도 없기에...
윽....!
갑자기 누워있던 무적의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누가 당기는 것처럼 일어나 앉는 무적.
무적의 몸안을 돌던 진기가 벽을 만난 것처럼 좌충우돌 요동친다.
마치 넘치는 강물이 둑에 막혀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몸안 구석구석을 헤집고 때리는 진기.
갑작스럽게 몸안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괴로운 듯 무적의 얼굴이 찡그려진다.
뭐야.... 그만둬야 하는거야....?
정확히 어떤 이유로 지금까지 별 탈이 없었던 자신의 진기가 이렇게까지 요동치는지....
알 수도 없고 멈추려해도 멈출 수도 없다.
퍽!
퍽!
갑자기 머릿속을 울리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벼락에 맞은 것 같은 충격이 온몸을 울리고....
가슴과 등에 막혀있던 두 줄기의 진기가 마치 강둑을 허문 강물처럼 강하고 빠르게 전신을 돌아다니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적의 코를 타고 흘러내리는 핏물과....
희미해지는 의식을 잡으려 이를 깨물어봐도 점점 더 멀어져가는 의식.
빌어먹을....
눈앞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며 무적이 뒤로 넘어진다.
* * * * *
동이트는 새벽녁에 작은 집의 대문 앞에 몇 명의 사람이 모여있는 것이 보인다.
앞 선 사람을 배웅하는 것처럼 나와있는 세 사람과 등을 보이고 있는 한 명의 사내.
"다녀오겠소."
비장한 얼굴을 한 중년인이 등을 돌려 세 사람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단정한 오관에 각이진 사각의 턱.
보기에도 강인한 인상과 힘을 느끼게 해주는 모습의 중년인이 세사람을 돌아보고....
그 비장한 눈길을 받고도 맹한 얼굴로 중년인을 보는 여인.
딱히 눈에 뛰는 외모는 아니지만 단아하다는 느낌이 묻어나는 여인이 한심하다는 듯한 얼굴로 중년의 사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디 죽으러가요?"
"무슨 소리요? 장부가 먼 길을 떠나는데 어찌 부인된 몸으로 그리 방정맞은 말을...."
약간은 퉁명스러운 어투로 입을 여는 사내를 향해 여인이 밖을 향해 손을 휘젓는다.
"그냥 다녀오세요. 신새벽에 온가족 다 깨워서 난리치지 마시고...."
"부인!"
격앙된 듯 커지는 사내의 음성.
그리고 사내를 진정시키려는 것 같은 늙은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들아.... 도대체 어디를 간다고 이 난리냐?"
"소자.... 황제폐하의 명을 받들어 강호의 도적을 잡으러가는 길 입니다."
북쪽의 하늘을 향해 포권을 하며 허리를 굽히는 사내의 모습이 자뭇 엄숙해보인다.
"황상의 명?"
노인도 놀란 듯 사내와 마찬가지로 북쪽을 향해 포권한다.
"예. 폐하의 밀명입니다."
"밀명은 개뿔....!"
중년사내와 노인의 엄숙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않는 차가운 여인의 음성이 들리고....
"부인! 대용이가 듣는 앞에서 그 무슨 경박한 말이요!"
여인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않는 것처럼 중년인의 입에서 격앙된 말이 나왔다.
그리고....
"전 괜찮으니 빨리 가보세요."
여인의 옆에 나란히 서있던 아이가 하품을 하며 사내의 말을 받았다.
"군 대용! 아버지가 장도에 오르는 첫 걸음에 그게 할 짓이냐?"
화가 난 것처럼 얼굴이 붉어지고....
천둥소리처럼 커지는 중년사내의 목소리에 여인이 아이를 뒤로 당기며 또다시 밖을 향해 손을 내젓는다.
마치.... 물건 팔러온 잡상인을 쫒아내는 듯한 모양새.
"다녀오겠소."
아내의 그런 모습에 이미 익숙한 것처럼 별다른 표정없이 입을 연 사내가 이번에는 노인을 향해 허리를 숙인다.
"아버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라...."
역시나 비장한 중년인의 인사에도 불구하고 여인과 아이처럼 별다른 감흥없이 대답하는 노인.
그리고 인사를 마치자 망설임없이 등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가는 사내.
"애야.... 네 남편이 먼 길을 떠나는데 왜그리 쌀쌀맞게 대하는 거냐?"
여인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노인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아버님, 저 꽉 막힌 인간이 무슨 폐하의 밀명을 받았겠어요? 금군도독이 가볍게 무슨 일 하나 던져준걸로 꼭두새벽부터 이 난리를.... 에그 저 벽창호 같은 인간과 십 년 넘게 살려니 내가 속이 터져서...."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는 여인을 가만히 보던 노인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나는 저 놈이랑 삼십칠 년이나 살았어...."
"....!"
* * *
군 자명은 가족과 작별하고 황도를 벗어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흑상의 조직들이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상소가 빈번치않게 올라와 황상의 심기가 불편하다네. 군 교두, 자네가 강호에 나가 그 흑상의 조직을 탐문하고 일망타진해서 황상의 어지러운 심기를 편하게 하도록 해주게."
어제 점심경 금군도독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흑상이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나....?
그래 일단 회수를 넘어 강남에서부터 시작해보자.
팔십 일만 금군의 교두 군 자명.
군부에서는 골머리를 섞는 인간이지만 세상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고집불통에 벽창호 같은 인간이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떼는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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