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2화 (2/158)

도왕동부2

* * * * *

작은 석실안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를 밝은 빛으로 가득하다.

한쪽으로 보이는 동굴의 입구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모두 석벽으로 막혀있는 석실이 어떻게해서 이렇게 밝은 것인가?

단 한점의 빛도 들어올 수 없도록 막혀있는 석실안이 찬란하게 빛나고....

현실 속의 그것인지 분간도 할 수 없는 하얀 석실안에서 무적이 천천히 눈을 떴다.

마치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눈꺼풀을 자극하는 밝은 빛속에서 무적이 피식 웃었다.

살아있는 것처럼 시간의 변화와 함께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석실.

얼마나 오랜시간을 이곳에 갇혀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는 적응이 된 줄 알았는데 아직도 눈을 뜰때가 되면 어색하다.

자라고하는 것처럼 어두워지면 잠이 들고....

깨라고 재촉하는 것 같은 빛 속에서 이렇게 눈을 뜬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세상의 이치가 고스란이 담겨져있는 것 같은 신기한 석실.

분명히 죽었는데....

동생들의 칼을 맞고 절벽에서 떨어져 자신은 죽었다.

물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인지할 수는 없기에....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자신은 죽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살아서 눈을 떴다.

아무튼 그렇게 칼을 맞고 천장절애에서 떨어진 자신의 몸이 멀쩡하다.

산산이 부서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자신의 몸이....

그리고 분명히 동생들의 칼에 난자당한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멀쩡하다.

다만 그 죽음의 기억이 틀림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흉터.

비수가 뚫고 지나간 상흔만이 고스란히 자신의 몸에 남아있었다.

그 아픈 기억이 꿈이 아니라며....

그리고 이 황당한 석실.

처음 눈을 뜨고 며칠을 뒤지고 다녀도 작은 구멍하나 찾을 수 없던 이 밀실과도 같은 석실과 동굴.

도대체 어떻게 이곳에 들어온걸까?

잠시 동안 이어지던 생각을 멈추고....

무적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딱딱해보이는 돌침상에서 일어나 하나 둘 자신의 몸을 감싼 옷을 벗기 시작했다.

상의를 시작으로 하의와 드디어 마지막 한 조각의 옷을 벗어내자....

밝은 빛아래 드러나는 무적의 몸은 누가 봐도 감탄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잘 단련된 근육을 보여준다.

그리고 온 몸을 뒤덮은 상처.

무적의 단단한 근육위로 상처라고 해야할지 흉터라 해야할지 모를 많은 자상과 무엇인가에 물어뜯긴 것 같은 수많은 흔적이 온 몸을 빼곡이 둘러싸고 있었다.

무적이 자신의 몸을 한 번 훑어본 후 침상 옆에 우뚝 서있는 바위에 고인 물을 한바가지 떠서 마신후....

붉은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로 향한다.

고여있는 붉은 물에서 올라오는 짙은 혈향이 무적의 코를 찌르고....

후웁!

크게 숨을 들어마시고 피 웅덩이에 발끝에서 머리까지 온몸을 모두 담구는 무적.

뽀그르....!

피 웅덩이 속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공기방울이 무적이 들어마신 숨을 뱉어내며 참고있다는 것을 짐작케 해주고....

보통사람이 참을 수 있는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무적의 머리가 피 웅덩이 위로 올라온다.

머리카락과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핏물이 마치 혈인을 연상시키고....

흘러내리는 핏물은 닦을 생각도 없는지 천천히 몸을 일으켜 피 웅덩이를 빠져나온다.

그리고....

바닥을 적시는 핏물을 무시한 체 한쪽에 놓여진 향로를 향하는 무적.

향로로 다가간 무적이 팔뚝만한 향촉을 뽑아내 불을 붙이고....

몇 번 손으로 저어 완전히 타는 모습을 확인한후 향촉을 다시 향로에 꽂아둔다.

감정 하나 없는 얼굴로 향촉의 타는 모습을 보던 무적이 이번에는 향로에 기대듯이 세워둔 칼을 들었다.

그리고....

후우!

긴 들숨과 함께 향로의 옆으로 보이는 동굴을 향해 빠르게 몸을 날리는 무적.

꺄아악!

푸드득!

무적의 몸이 튕기듯 동굴안으로 들어가고....

동굴안을 울리는 괴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의 힘찬 날개짓소리가 동굴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무적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는듯이 무적의 전신을 덮치는 엄청난 수의 작은 물체.

혈편복.

사람과 짐승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는 혈편복이 무적의 전신을 덮을듯이 몰려왔다.

타는 것처럼 이글거리는 혈편복의 붉은 눈동자가 동굴안을 가득 채운 무적의 피냄새에 흥분한 것을 짐작케 해주고....

피윳!

피윳!

바람을 가르는 괴상한 소리 속에서 무적의 손에 들린 칼이 움직이며 비명도 없이 잘라져나가는 박쥐들.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었던 것인지....

아니.... 왜 이많은 박쥐떼가 동굴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던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정말 동굴안은 피냄새에 흥분한 박쥐떼로 가득 찼다.

그리고 무적의 전신을 물샐틈없이 덮고 있는 칼의 그림자.

빠르게 움직이는 칼에 부딪쳐 토막나는 혈편복과 잠시라도 멈칫하면 칼의 그물을 뚫고 들어오는 작은 박쥐의 송곳니와 발톱

전신에 피칠을 한 무적이 먹이처럼 보이는 건가?

동굴안에서 혈편복의 울부짖음과 칼바람 소리만이 울리는 동안 석실의 향로에 꽂아둔 향촉이 다타서 재로 변해 쓰러진다.

그리고....

파앗!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동굴을 빠져나오는 무적.

헉....!

헉....!

참아뒀던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적이 향촉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하얗게 변해버린 향촉의 재가 눈에 들어왔다.

성공한 건가....?

무적이 맨바닥에 벌렁 누우며 석실안을 둘러봤다.

얼마나 이곳에 갇혀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갈 수도....

누가 만든 건지도 알 수 없는 석실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가....?

이승인가?

아니면 저승인가?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든 것인지 알 도리가 없는 석실은 자연과 인공의 묘한 조화가 어우러져 있었다.

한쪽의 벽면을 가득 채운 이끼와 버섯의 모습이 자연이 만든 조화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이 분명한 탁자처럼 솟아오른 작은 바위와 돌침상이 자연의 작품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든 석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무적의 눈이 돌침상을 지나 석실의 넓은 곳으로 향하자....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온천과 차가운 물이 찰랑이는 웅덩이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열천과 냉천의 옆으로 조금전 무적이 몸을 담궜던 피 웅덩이가 보인다.

자연이 만든 작품이라기에는 너무 인위적이고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또 사방이 막혀 아무도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이곳에서 항상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는 저 온천과 냉천수도 터무니없기는 매 한가지다.

분명히 자신은 동생들의 칼에 벌집이 된채로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흐릿한 의식속에 죽는다는 것을 느꼈고....

그렇게 자신은 죽었다.

마지막 기억속에 뜨거운 온천수의 열기를 느꼈지만 그 상처를 입고....

아니 그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고 살 수는 없다.

그런데 여기는 어딘가?

왜 나는 동생들과 함께 노숙했던 동굴이 아니라 여기서 눈을 뜬 것인가?

그리고....

도대체 어떤 정신나간 인간이 써 놓은 것인지도 모를 저 글귀.

도대체 누가 있어 이 석실안에 머물렀던 것일까?

아무튼 자신이 왜 이런 곳에서 이 미친 짓을 하고 있는지 이유를 묻는다면....

단지 이 미친 짓을 다하고 나면 나갈 수 있다는 글귀.

지금도 자신의 두눈에 또렷히 보이는 저  유치한 글귀.

--- 어서 오거라. 기다리느라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 거두절미하고 눈앞에 있는 칠식의 도법을 모두 익혀라. 그 도법을 모두 익힌다면 네 궁금증이 풀릴 것이다. ---

마치 사람 약 올리려고 적어놓은 것 같은 저 글 하나만 믿고 이짓을 하고 있다.

나가야 한다.

나를 배신한 동생들....

그리고 나를 기다릴 아내를 만나기 위해서....

호흡을 가다듬은 무적이 천천히 일어나 벽면의 이끼를 한웅큼 뜯어서 입에 넣으며 온천으로 가 몸을 눕혔다.

온천의 뜨거운 기운과 함께 찌릿하게 전신을 자극하는 야릇한 느낌.

온몸을 가렸던 피가 씻겨나가며 군데군데 작은 상처가 보인다.

성공한 게 아닌가....?

이곳 저곳 박쥐의 이빨과 발톱이 머물다 간 흔적이 보이고....

상처를 통해 베어나오는 옅은 핏줄기가 온천의 물을 흐린다.

그 삼엄한 도기속을 뚫고 들어와 자신의 몸에 이렇게나 상처를 남기다니....

저 혈편복도 이 석실만큼이나 기이한 것들이다.

하아....!

한참동안 몸을 담군 온천의 열기가 노곤하게 전신을 누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긴장이 풀리며 살며시 눈을 감는 무적의 영혼이 꿈이라는 현실의 도피처를 향해 잔걸음을 떼기 시작한다.

* * * * *

"저 놈들이야?"

약관을 됐을까?

앳된 얼굴을 한 무적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 저 놈들이 이곳 황산현의 실세라는 천 덕구 패거리다."

역시 무적만큼이나 어려보이는 얼굴이 무적의 물음에 대답했다.

"길 평, 겁나지 않아?"

조금은 조심스러운 무적의 말에 길 평이 시장통에서 건들거리는 자들을 노려봤다.

몸에 비수를 숨기고 몽둥이를 든 건달들....

성에서 멀리 떨어진 이런 벽촌의 시장에서는 저 자들이 제왕이다.

관의 법은 멀리 있고 저들의 흉악한 쇠붙이는 눈앞에서 번뜩인다.

결국 힘없는 양민들은 그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만 그 힘든 삶이라도 이어 갈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제왕 같은 자가 자신에게 요구한 것은....

"무섭다.... 하지만...."

보통의 여인들보다 더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릴만큼 화려한 용모의 길 평이 떠듬거리고....

긴장한 길 평의 얼굴을 보며 무적이 중얼거렸다.

"이기면 살 길이 열리고 지면.... 모두 죽는다!"

무적의 말에 흠칫 놀라는 주위의 아이들.

무적보다 오히려 몇 살은 더 어려보이는 아이들이 무적과 길 평의 주위를 둘러싼 체 긴장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배고픈 고아들은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무적과 길 평을 대형이라 부르며 뭉쳤다.

매 맞지 않기위해서....

굶지 않으려고....

그렇게 살기위해서 그들은 무적의 주위로 모였다.

하지만 그렇게 뭉쳐도.... 냉혹한 세상과 싸우기위해 힘을 모아도....

성안의 차가운 현실 속에서는 견뎌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떠밀리듯이 흘러흘러 이 외딴 곳까지 왔다.

살아남기 위해서....

과연 여기서는 살 수 있을까?

그렇게 이 외딴 곳에서 터를 잡으려는 자신들에게 한 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터졌다.

여인보다 아름다운 길 평의 미모.

남자에게 미모라는 표현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터무니없게도 이번에는 길 평의 아름다운 얼굴이 문제가 되었다.

황당하게도.... 우연히 길 평을 본 건달패의 두목이 그 미모에 혹해버린 것이다.

"이것보시오! 나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란 말입니다!"

자신이 남자라고 소리치는 길 평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 것인가?

아니.... 이미 색에 눈이 멀어버린 자에게는 들어도 흘려버리는 의미 없는 말일 뿐인가?

결국 지난 밤 두 명의 건달들이 움막으로 자신들을 찾아왔다.

두목이 찾는다며 길 평에게 따라오라고....

그리고 앞서가던 그들의 등을 향해 칼을 꽂은 무적.

그렇게 지난 밤부터 자신들을 쫒는 건달패와 숨어서 움직이는 자신들의 숨박꼭질이 시작됐다.

그래 굶어죽으나.... 매 맞아 죽으나....

아니.... 남자가 남자에게 능욕당하고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날이 밝자 그렇게 마음을 굳히고 저들과 싸울 결심을 했다.

오늘 네 놈들이 죽거나.... 아니면 우리가 모두....

* * *

왁자지껄한 시장 골목을 빠져나오던 천 덕구는 괜히 기분이 더러워졌다.

전날 우연히 보았던 바로 그 놈.

그 놈의 고운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미치겠네....

정말 남자가 맞기는 한 걸까?

남자가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애써 잊어보려해도 도저히 꿈틀거리는 욕망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또 어떤가?

일단 그놈을 내 곁에 둔다.

그렇게 지난 밤 수하 두명을 그 거지녀석들이 있다는 움막으로 보냈다.

하지만 어제 저녁 보낸 수하들도 그리고 그 아름다운 놈도 보이지가 않는다.

급히 수하들을 모두 내보내서 찾았지만 하룻밤을 꼬박 뒤져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새끼들이 중간에서 가로챈거 아니야?

문득 움막으로 보냈던 수하들이 의심스러워졌다.

감히 자신의 물건을 탐내다니....

그래서 천 덕구는 지금 기분이 더러웠다.

응?

더러운 기분에 찜찜한 자신의 몸에 부딪치는 수하의 몸이 느껴졌다.

뭐야?

"야! 이 새끼야....?"

고함을 지르던 천 덕구가 입을 닫았다.

입으로 검붉은 피를 게워내며 숨을 헐떡거리는 수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천 덕구가 허리춤에 숨겨둔 칼을 빼들며....

"어떤 놈이야!"

고함을 지르는 천 덕구의 눈에 쓰러지는 수하의 등뒤로 나타나는 상대의 모습이 들어왔다.

양옆으로 쭉 째진 눈에 약간은 비뚤어진 것 같은 매부리 코.

보는 사람 화나기 딱 알맞은 기분 나쁘게 생긴 얼굴이 보이고....

상대의 손에서 빠르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비수가 반짝였다.

익....!

괴상한 소리와 함께 손안의 칼로 비수를 막고 상대의 팔목을 잡자 자신을 찌르지 못한 얼굴에 당황한 빛이 떠올랐다.

그리고....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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