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마록-1화 (1/158)

프롤로그

조 무적은 천천히 동굴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발자국을 떼자 눈앞에 그것이 보인다.

짙은 비린내와 함께 또아리를 틀고 있는 커다란 뱀 한마리.

흑혈철사黑血鐵蛇.

전신이 강철 같은 비늘에 덮혀있는 흑혈철사의 몸이 동굴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후우....!

긴장한 불청객의 답답한 호흡을 들은 것인가?

웅크리고있던 흑혈철사의 머리가 들려지고....

무적을 향하는 뱀의 머리에 타는 듯한 두 눈이 이글거린다.

쉿~~!

먹이를 본 흑혈철사의 입에서 두가닥으로 갈라진 혓바닥이 날름거리고....

황소도 한 입에 삼킨다는 마성의 뱀을 향해 무적이 한발 다가선다.

와라!

무적이 손에 쥔 칼을 힘껏 움켜쥐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무적의 도발적인 눈빛을 느낀 것인가?

갑자기 흑혈철사의 몸이 채찍처럼 늘어나며 빠르게 무적의 몸을 감아온다.

피윳!

커다란 흑편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스윽!

마치 흑혈철사의 움직임에 맞추는 것처럼 무적의 손에 들린 칼이 움직인다.

커다란 소리도 요란스러운 움직임도 보이지않는 조용하고 작은 칼질.

간결하게 움직이는 칼을 따라 한가닥의 사선이 허공에서 반짝이고....

빛이 지나간 자리에는 원래부터 떨어져 있던 것처럼 흘러내리는 흑혈철사의 머리가 보인다.

강철보다 강하다는 흑혈철사의 머리가 단 한 번의 칼질에 잘려나가고....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와 함께 무적의 몸을 때릴듯이 날아오는 흑혈철사의 꼬리.

스윽!

다시 칼이 그리는 사선이 보이고....

날아오던 흑혈철사의 꼬리가 바닥에 떨어져 파닥거리는 것이 보인다.

뿜어져 나오는 피속에서 세개로 잘라진 자신의 몸을 보는 흑혈철사의 머리가 눈에 들어오고....

푸!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무적이 동굴을 벗어난다.

그리고....

동굴 밖으로 보이는 사방이 막혀있는 석실.

환하게 빛나는 석실이 기묘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도대체....

나는 죽은 것인가?

아니면 살아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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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왕동부

밑이 보이지않는 까마득한 절벽을 따라 이어진 좁은 길이 하나 보인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든 길인지는 몰라도 사람이 다니는 길은 맞는 듯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 아슬아슬한 낭떠러지옆으로 난 길을 지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다들 지게에 한가득 짐을 지고도 별다른 두려움도 보이지않고 이 가파른 산길을 움직이는 모습이 산을 타는 일에 상당한 이력이 난 자들 같이 보였다.

"대형, 좀 쉬었다 가지요?"

"여기서?"

"풍광이 좋잖아요."

풍광이 좋다는 사내의 말에 조 무적이 주위를 둘러봤다.

풍광이 좋기는....

떨어져 죽기 딱 십상이구만....

천하절경이라는 황산이지만 지게가득 소금을 지고 이동하는 자신들에게는 풍광을 즐길 여유조차 없다.

아니 지금까지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도록하자. 어차피 조금은 쉬어야 될 것 같은데...."

무적은 짐을 내리고 낭떠러지 옆의 산기슭에 등을 붙였다.

흑상黑商.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을 그렇게 부른다.

국가에서 전매하는 소금과 차를 밀매하는 흑상이라고....

그리고 혹자는 염상鹽商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거래 물품이 소금이다 보니 염상이라고도 부른다.

소금이 얼마나 한다고 밀매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소금은 거의 모든 요리에 쓰이고 그 외에도 많은 곳에서 필요한 물건이다.

수요가 있으면 자연히 공급이 발생하는 법.

그래서 흑상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흑상은 관에 잡히게 되면 거의 대부분이 사형이다.

국가의 재산을 강탈한 역도라는 죄목으로....

그래서 이들 흑상은 관의 눈을 피해 항상 이런 산길을 이용해서 물건을 운반한다.

지금 조 무적이 이 산길을 걷는 것처럼....

무적은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왜 자신들의 물건이 강탈당했을까?

녹림도들도 흑상의 물건은 건드리지 않는다.

그들도 필요하다면 염상에게 소금을 사야하기 때문에 굳이 자신들과 척을 질 필요도 없고 또 그들 입장에서는 돈도 안된다.

그런데 자신이 이끄는 조직의 소금이 강탈당했다.

그래서 작은 조직이지만 조직의 수장인 무적이 직접 나서게 된 것이다.

누가?

맨 먼저 무적이 생각한 것은 누가 자신들의 물건을 강탈했느냐 하는 것이엇다.

명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은 문제였다.

답은 소금이 필요한 자들이다.

소금이 필요한 자.

세상에 코 달리고 눈 달린 거의 모든 사람이 소금을 필요로하지만 강탈하면서까지 소금이 필요한 사람은 없다.

큰 돈이 들지도 않는 소금.... 그냥 돈 주고 사면 그 뿐이다.

그렇다면....

같은 흑상조직.

비교적 쉽게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첫번째 문제에 이어서 두번째 문제가 주어졌다.

도대체 어떤 조직이 같은 흑상의 물건을 건드리는 것인가?

비록 작은 조직이지만 조직 간의 싸움은 당연히 피를 부른다.

자신들과의 전쟁을 불사할 조직이 어떤 조직일까?

이 문제를 풀어야 다음 문제를 풀 수가 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풀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결국 자신들이 운반하는 물건을 노리는 자들이 직접 자신의 앞에 나타나기 전 까지는....

적당히 등을 타고 흐르던 땀이 식는 것을 느끼자 무적이 입을 열었다.

"다들 짐 챙겨라. 다시 출발하자."

무적의 말에 사내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자신의 지게를 지기위해 등을 돌린 무적은 갑자기 등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화끈한 열기.

그리고 찌릿하게 등을 파고드는 싸늘한 감촉.

딱히 형용할 수 없는 싸늘하고 뜨거운 감촉에 무적이 등을 돌렸다.

무엇인가에 걸린 듯 쉽게 돌아가지 못하는 허리.

억지로 고개만 돌려 뒤를 봤다.

자신의 바로 뒤에서 창백한 혈색에 겁에 질린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뭐지....?"

"대형,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뭐가?

이번에는 가슴에서 뜨거운 열기가 확하고 올라온다.

욱!

그리고 입을 통해 터져나오는 핏줄기.

뜨거운 것의 정체가 이것 이었나?

자신의 가슴에 깊숙히 박혀있는 한 자루의 비수.

비수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이 심하게 떨리는 것이 보인다.

"대형.... 용서하십시요."

옆구리에서 다시 뜨거운 열기가....

그리고 등과 가슴에도 다시 한방씩....

이새끼들아! 고슴도치를 만들 생각이냐....

치열한 삶.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는 자신들이 살기위해 뭉쳐서 소금 밀매라도 하고 살았건만....

온갖 고생끝에 이제 겨우 살만해졌는데....

흐릿해지는 의식과 함께 무적의 몸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대형...."

마치 흐느끼는 것처럼 들리는 사내들의 음성이 무적이 떨어진 절벽에 메아리친다.

* * *

짹짹짹!

새벽의 찬 공기와 함께 울리는 이름 모를 산새들의 노래 소리.

아름다운 산새소리가 무거운 눈꺼풀을 열리게 한다.

그리고 귀청을 울리는 정신 사나운 커다란 목소리.

"대형! 일어나십시요!"

어이구....!

저놈의 고함소리 좀....

무적이 머리를 흔들며 상체를 일으켰다.

맨 먼저 이불 대신 덮고 잔 수북한 낙엽더미가 눈에 들어온다.

밤이 되면 떨어지는 산속의 추위를 견디기위해 어제밤 동굴을 찾아 술을 마시고 잠이 든 것이 생각났다.

고개를 돌리자 머리맡을 굴러다니는 몇 개의 술병도 보인다.

지난 밤에 너무 과음했나?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

꿈치고는 더러운 꿈을 꿨다.

동생들이 자신을 배신하다니....

"다들 일어나라!"

아직도 낙엽속에서 꼼지락 거리는 동생들을 깨우며 무적이 일어났다.

"갈 길이 멀다. 서둘러 출발하자."

각자의 지게를 지고 다시 길을 떠나며 무적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잠들었던 동굴을 다시 한 번 둘러봤다.

별다른 것이 없는 작은 동굴.

죽은 몇 몇 수하들 때문에 내가 너무 예민해진 것인가?

* * *

"대형, 좀 쉬었다 가지요?"

한참을 걷던 동생 하나가 쉬자고 입을 열었다.

"여기서?"

"풍광이 좋잖아요."

풍광이 좋기는.... 떨어져 죽기 딱 십상이구만....

응?

지난 밤 꿈속에서....?

산기슭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뻗어면서 무적은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꿈속에서....?

정신 차려라 조 무적.

아무리 예민해졌기로서니 생사를 같이 하는 동생들이 자신을 배신하다니....

무적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절벽의 능선에 등을 기대고 여러가지 생각에 잠겨있던 무적이....

어느정도 땀이 식은 것이 느껴지자 다시 일어나며 외쳤다.

"다들 짐 챙겨라. 다시 출발하자!"

부산하게 움직이는 동생들을 보며 무적이 지게를 지기위해 등을 돌렸다.

그리고....

등 전체로 퍼지는 뜨거운 열기.

윽!

설마....?

믿기지 않는 눈으로 고개를 돌리자 겁에 질린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곽 도....?

아직도 꿈을 꾸는 것인가?

하지만....

또다시 느껴지는 옆구리의 충격과 숨이 막혀서 터져나오는 핏물.

쿨럭....!

다시 옆구리와 등.

그리고 자신의 심장에 꽃히는 비수가 보인다.

비틀거리며 몇 걸음을 움직이던 무적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대형...."

꿈이 아닌가?

* * *

헉!

놀라서 잠에서 깬다.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봤다.

머리맡을 돌아다니는 빈 술병과 낙엽더미 속에서 곯아 떨어진 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꿀꺽!

무적이 마른 침을 삼키며 자신의 몸을 돌아봤다.

멀쩡하다.

도대체가....?

꿈속에서 같은 꿈을 꿀 수도 있는 것인가?

정말 내가 너무 예민해진 건가?

몸을 일으켜 동굴 밖으로 나와서 심호흡을 해본다.

맑은 공기가 폐를 자극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또 저 무거운 지게를 지고 산을 넘어야한다.

그리고 물건을 넘기면 돈을 받고 관도를 따라 휘촌으로 돌아가면 된다.

이번에는 너무 험한 산길이라 물건을 노리는 상대가 없는 것인가?

누굴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다.

천하에 널린 수많은 흑상중에서 굳이 자신들처럼 작은 조직과 싸우려는 상대가 누굴까?

감히 안휘성에서 염 천세와 흑사방을 거스르고 자신들을 공격할 흑상이 있는가?

아무래도 돌아가면 흑사방에 이 일을 의뢰해야겠다.

그들이라면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하는 일없이 우리 돈만 받아처먹는 재수없는 무림인 새끼들.

"대형?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난 것입니까?"

곽 도....?

꿈속에서 자신의 등에 비수를 박던 동생의 얼굴이 보인다.

꿈도 더럽게 그런 걸....

"술이 조금 부족했던 모양이다. 술 깨면서 잠도 깼어."

"건량이라도 조금 끊일까요?"

"괜찮다. 다들 일어났으면 슬슬 움직여보자. 오늘 하루만 고생하면 산을 다 넘을 것 같은데...."

"예. 대형."

곽 도가 고개를 살짝 숙여보이고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 동생들을 깨우기 시작한다.

* * *

열 명이 넘는 인원이 지게 하나씩을 지고 땀을 흘리며 절벽 옆으로 난 좁은 길을 걷는 것은 보는 사람도 가슴이 떨리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별반 두려움도 없이 잘도 걷는다.

그리고....

"대형, 좀 쉬었다 가지요?"

"여기서?"

"풍광이 좋잖아요."

풍광이 좋기는.... 떨어져 죽기 딱 십상이구만....?

꿈이 아니다.

분명히....

무적이 천천히 지게를 내리고 산기슭에 등을 붙였다.

등을 적셨던 땀이 식어갈수록 점점 더 긴장된다.

정말 저들이 나를 배신하는 것인가?

아니 칼에 찔려 죽은 나는 어째서 이렇게 살아있는 것일까?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일단....

"다들 짐 챙겨라. 다시 출발하자."

동생들에게 출발하자고 외치며 지게를 향하던 무적이 갑자기 등을 돌린다.

아....!

품속에서 비수를 꺼내 자신의 등을 노리는 곽 도의 모습이 보이고....

"이놈!"

고함을 지르며 무적이 곽 도의 손목을 낚아챘다.

하지만....

퍽!

윽....!

곽 도를 향해 돌아선 자신의 등을 파고드는 또 다른 비수하나.

무적이 파랗게 질린 곽 도를 밀어내며 등을 돌렸다.

"너희들....?"

무기를 손에 든 동생들이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는 것이 보인다.

"대형...."

떨리는 음성으로 자신을 부르는 동생들.

아니.... 이들이 동생들이기는 한 건가?

나를 죽이려는 자들인데....

"으아아!"

무적은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을 찌른 동생을 향해 덮쳐 들었다.

턱!

한 동생의 목이 손에 잡힌다.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힘껏 뒤로 머리를 젖힌 후 동생의 얼굴에 이마를 내리찍었다.

퍽!

으아악!

코가 내려앉고 이빨이 부러지며 피를 토하는 동생을 밀치고 등을 돌리자 가슴을 파고드는 비수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퍽!

끄....윽!

답답한 신음과 함께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발길이 빈 허공을 딛는다.

헉!

그리고 빠르게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몸.

"대형...."

실 끊어진 연처럼 떨어져 내리는 귓가로 아우들의 울먹이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지랄.... 죽여놓고 울기는....

제발깨라.... 이번에도 꿈이기를....

절벽에서 떨어져 내리는 그 찰나의 순간에 자신을 기다릴 아내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영영英英....

그리고....

첨벙!

온 몸의 뼈가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과 함께 절벽 밑을 흐르는 온천의 뜨거운 열기가 전신을 덮치는 것이 느껴진다.

이렇게 죽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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