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68화 (168/168)

168화. 나의 검 너의 노래(완결)

제갈평이 대풍자와 화운악의 앞에 서찰 한 장을 놓았다.

“무제께서 남기신 겁니다.”

대풍자가 서찰을 열었다.

<죽은 이가 죽지 않았을지 모르오. 확인하게 오겠소.>

같이 따라서 읽던 화운악이 미간을 찡그렸다.

“옥현신개의 질문이 무제의 마음에 크게 걸렸나 봅니다. 자신이 방여립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요.”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랬는데요….”

제갈평이 두터운 책자를 대풍자와 화운악의 앞으로 내밀었다.

“조화천하록입니다. 이번에 벌어졌던 혈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화무제의 탄생과 그 여정도 있고요. 제가 쓴 글이지만 다시 분석했습니다. 그랬더니 중대사 모두에 음양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한 명 나오지 뭡니까?”

대풍자가 미간을 찡그렸다.

“무제가 모든 일이 연관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노릇 아닌가.”

“암운은 무제 탄생 이전부터 드리웁니다. 그때의 일까지 감안했습니다. 무제가 아닙니다. 이름을 책자의 끝에 적어 놓았습니다.

제갈평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

“들어오시오.”

옥현신개가 들어왔다.

“무제의 일로 책망하실 거라면, 내 달게 받겠소. 하지만 미리 말씀드리는데, 여러분! 내가 무제를 존경하는 건 진심이오.”

“존경하기에, 검증해 보아야 한다? 그 생각은 본인의 것이 맞습니까, 방주?”

“당연히 내 생각이오. 물론 어떤 노인과 얘기를 나누다가, 결심을 굳히긴 했지만.”

“노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생겼던가요?”

“이름을 묻진 않았소.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는군. 그는 자신이 그저 숨어 조용히 사는 사람이라 했었소. 무제를 의심하는 근거로 이런 말도 하더군.”

“어떠한 말입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또 다른 삶을 꿈꾸지 않겠는가, 라고!”

“숨어 사는 삶, 일생(逸生)! 그리고 두 개의 삶이랬습니까?”

제갈평이 책자를 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장에 적힌 이름을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兩逸生>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무제의 사부이자, 원수. 무제가 검몽이 되던 날에, 그는 스스로 무제의 손에 죽었습니다.”

**

“처음으로 죽음에서 되살아났을 때, 나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고민을 하였다. 좋은 방법을 찾아냈지만, 그때마다 모순 또한 존재하더구나. 틀렸다 싶은 건 과감히 버렸다.”

“죽고 살아났다고요? 사부는 대체 누구. 아니 무엇입니까?”

양일생이 옆을 보았다.

무슨 일인지 꼼짝도 못 하고 있는 은교교와 연자강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왔다.

부패하여 거의 썩은 살점들.

심지어 팔 하나와 다리 하나가 없어서, 그는 강기로 다리를 대체하여 걷고 있었다.

그는 양일생의 앞에서 이마를 땅에 닿도록 조아렸다.

“황제시여.”

사도명은 최상의 경의를 표하며 엎드린 몽염을 보았다.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가능한 일이 아니야.”

“몽염이 살아났고, 금륜과 은편이 살아났다. 이 몸이 되살아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

양일생의 웃음이 환했다.

“나는 누구보다 많은 것을 경험했다. 세상을 바꿀 계획도 계속 수정했지. 내가 만들어 놓은 천하는 계속 이어져야 했으니까.”

사도명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이제 양일생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가 만드는 계획이 어떤 것인지도 짐작해냈다.

“방여립은 이혼대법을 훔쳤습니다. 사부도 훔쳤습니까?”

“내가 왜? 하하하. 이혼대법을 만든 것이 나다.”

양일생은 계속 웃었다.

“구처기를 시켜 만들게 했지.”

“내 부모는 왜 해쳤습니까?”

“너를 가져야 했으니까.”

“그랬으면서 왜 내게 복수하게 시켰습니까? 그래도 양심이 조금은 남아 있었던 겁니까?”

“그때 너는 무림맹을 떠나야 했다. 방여립! 오대마문의 근원인 아수라혈교! 그들은 각자 자신의 일을 꾸미고 있었고, 너는 그들을 상대할 만큼 강하진 못했다.”

“수라겁황과 방여립조차 사부의 손에 놀아났던 겁니까?”

“천하일통. 나는 내 뒤를 이을 자를 만들어야 했다.”

양일생은 주먹을 쥐고 자신의 머리를 톡톡 쳤다.

“하나는 이거, 폭력! 다른 하나는 이거, 두뇌. 어쨌거나 둘은 각각 자유의지를 갖고 있었지.”

“대체 어떻게 하는 겁니까? 방여립에 수라겁황. 그들도 나처럼 사부의 제자입니까?”

“방립이 훔친 이혼대법은 불완전하다. 그건 단순히 혼은 나눌 뿐이지. 하지만 내 이혼대법은 완전하다. 혼을 분리하고, 새롭게 창조까지 한다.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나의 세상을 위해 노력했다. 수많은 인격을 만들어냈지.”

사도명은 세상의 수많은 영웅과 악당, 그리고 군왕들을 생각했다.

천하일통의 야망을 품었던 사람은 역사에 부지기수였다.

“그런 사람들 중, 사부는 대체 누구누구를 만들었습니까?”

“수십 명이 넘겠지? 기억하고 언급해봤자 무슨 소용이냐. 그놈들은 모두가 실패했거늘.”

“하늘과 땅에는 의지가 존재합니다. 누군가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바꾸려 하면 하늘과 땅이 막아내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사부가 실패한 이유입니다.”

“세상은 나의 것이다.”

“사부의 세상이 아닙니다. 세상은 본래 존재했고, 사부는 그저 흐름 속에 잠시 서 있었습니다.”

양일생이 입을 다물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양일생은 쓰게 웃었다.

“하늘과 땅의 의지가 나를 막아냈다? 그리 주장하느냐?”

“방여립은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사부에게는, 또 다른 방여립을 만들 시간이 없을 겁니다.”

“너는 낚시를 좋아했었지. 오랜만에 같이 한번 하겠느냐?”

사도명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가까운 천지탄에서의 낚시가 기억납니다. 모시겠습니다.”

**

신 무림맹은 무림연합으로 이름과 조직을 바꾸었다.

지금, 십구성좌를 필두로 하는 무림연합의 고수들이 속속 모이고 있었다.

화운악을 선두로, 미친 듯이 말을 달렸다.

수천 마리의 전서구가 하늘을 날았으며, 전갈을 받은 고수들은 진군의 도중에 합류했다.

수백 명으로 출발한 무사들이 이내 수천 명으로 늘었고, 다시 수만 명이 되었다.

화운악의 가장 뒤를 따르는 옥현신개의 안색은 창백했다.

“제가 그 양일생이란 자에게 이용당한 겁니까? 이 죗값을 대체 어떻게 갚아야 합니까?”

“방장님이 아니라도, 누군가가 이용당했을 것입니다.”

제갈평은 말을 타고 있었다.

“그는 가장 오래 준비했고, 가장 치밀하게 계획한 자니까요. 애초 막을 수 없는 자입니다.”

“그, 그럼 무제도 당해낼 수가 없을 거란 뜻 아닙니까?”

“지금은 믿는 수밖에요. 무제는 무제니까. 모든 불가능을 넘어온, 우리들의 조화무제니까.”

무림연합의 고수들이 도착했을 때, 사도명과 양일생은 창천문 안에 없었다.

은교교와 연자강만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화운악이 다급히 물었다.

“무제는 어디에 계십니까?”

양일생이 사라지자, 신기하게도 마비가 풀린 은교교가 대답했다.

“함께 낚시를 갔어요.”

“낚시? 누구와 함께요?”

“양일생. 본래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겠죠? 그는 오랫동안 암중에 모든 일들을 조종해 왔던 주재자. 악의와 선의 모두의 근원.”

은교교가 한숨을 쉬었다.

“가 봤자 소용없어요. 무제가 말하기를, 막거나 도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랬어요. 그저 때가 되면 나더러….”

“신녀더러?”

은교교는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

“하늘이 꼭 저렇던 날에 방립이라는 인격을 만들었다. 혹시 저게 먹구름과 햇살에 관련한 대화를 방립이 만들었던 이유일까?”

“인격을 만들고, 그걸 분리시켜서, 새로운 인간으로 세상에 내보내셨다는 거군요.”

물살이 빨랐다.

계곡이 소용돌이치며 돌아가는 천하탄은 창천문에서 가까웠다.

“검몽대전 참석 전날에, 우린 여기서 마지막 낚시를 했었다. 그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흐름을 거스르면 물고기는 바늘을 물지 않는다. 세상도 같다. 흐름이 존재하고, 그 흐름은 거스르는 자들을 무너뜨리려 든다. 그러니 언제나 흐름을 읽어라.”

“기억하는구나. 기쁘다. 일백여 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서 깨어나자, 세상이 달라졌더구나.”

양일생은 쓰게 웃었다.

“일통했던 천하가 나눠져 있더라. 결심했다. 다시 하자.”

“진시황의 천하일통은 그 시대의 방법입니다. 다른 시대에 같은 것이 통할 리 없습니다.”

“옳다. 그렇더구나. 생각했다. 이전의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멈추어야 했습니다.”

“이혼대법으로 나는 혼만으로도 존재한다. 영원히 살 수 있다. 그 영원의 세월을 버리라고?”

“흐름을 거스르면 안 됩니다.”

“하하. 내 가르침으로 날 가르치겠단 게냐? 매우 오래 궁리했다. 좋은 방법을 찾아서, 치밀한 계획을 세웠지.”

양일생은 낚싯대를 당겼다.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낚싯대의 끝에 걸려 버둥거렸다.

“그 계획에 적합한 인격을 설계한 다음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방립도, 수라겁황도, 그 전의 수많은 자들도! 아무도 자신의 유래를 알지 못했던 이유란다.”

“하지만 사부의 계획은 결국 모두 실패했습니다.”

양일생이 쥐고 있던 낚싯대 끝에서 물고기가 떨어져 나갔다.

“치잇. 그렇더구나. 세상은 견고하더라. 언제나 나의 계획을 방해하는 자들이 나타나곤 했었다.”

양일생은 미끼만 잃어버린 자신의 낚싯대를 허탈하게 보았다.

“고금구천강이 그랬었고, 지금은 바로 네가 그렇다.”

“그렇다면 이제는 당연히 포기하셔야죠.”

사도명이 낚싯대를 당겼다.

커다란 잉어가 펄떡거리며 사도명의 발아래에 떨어졌다.

“세상은 의지가 사부의 뜻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사부는, 천수를 이미 다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 의지는 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지.”

사도명의 안색이 변했다.

그가 낚아 올린 잉어가 어느새 양일생의 발아래에 있었다.

“방립을 내보내고 천기를 읽었다. 방립을 막을 자를 알아냈고, 네 아버지와 친구가 되었다. 네 아버지의 파면, 고향으로의 낙향, 그리고 죽음.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 내겐 쉬웠단다.”

“천하일통! 그걸 이룰 자를 만들어냈던 겁니까? 그 일이 실패하였기에, 오히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셨다는 겁니까?”

“이루는 자를 만드는 것에 실패한다면, 이룰 운명을 가진 자를 찾아내어 내 것으로 만든다.”

“방여립과 저의 싸움에서 누가 이기든, 사부에게는 별다를 게 없었던 거군요.”

사도명의 몸에서 서리서리 찬란한 빛이 피어올랐다.

“방여립도 똑같은 생각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나로부터 분리되었으니까 나와 비슷하겠지? 하지만 나는 방여립보다 완전하다. 천하의 무공들을 살펴온 세월이 얼마인지 아느냐?”

사도명은 부모님을 생각했다.

그는 부모의 모습을, 양일생이 보여준 환각을 통해 오직 한번 보았을 뿐이다.

“어차피 사부와 나는 같이 하늘을 마주하지 못합니다. 부모의 원한은 갚아야만 하는 겁니다.”

“나를 죽일 수 있겠느냐? 확신할 수 있겠느냐? 네가 사도명인지, 혹은 내가 선택한 분신인지.”

사도명은 빛을 손에 모았다.

“확신할 필요 없습니다. 나의 존재는 언제나 나의 행동으로 증명되니까요.”

빛이 그의 손을 떠났다.

그리고 양일생을 관통했다.

**

밤이 되었다.

천지탄을 까맣게 메우면서, 무림연합의 무사들이 몰려왔다.

“모두 잠시만 기다리시오.”

사도명은 그들을 힐끗 보더니, 펄떡거리는 잉어를 다시 천지탄의 물속에 놓아주었다.

화운악이 사도명의 앞에 섰다.

“무제… 맞으시지요?”

사도명은 대답 대신, 화운악의 뒤쪽에 있는 옥현신개를 보았다.

“아직 나를 의심하오, 방주?”

“의, 의심이 아니라 확인코자 했던 것이외다. 무제.”

사도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주의 잘못이 아니오. 세상 모두가 그럴 거요. 계속 의심하고, 내게 증명을 요구하겠지?”

“증명은 제가 할 수 있어요.”

모든 사람들의 사이로 은교교가 후르르 날아왔다.

그녀는 사도명의 앞에 내려서더니, 그의 눈을 보았다.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슬픔과 회한을 읽어냈다.

“이제 제가 뭘 할까요?”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을 일들을 했소. 그러니 아주 멀리 떠나서 이제 아무것도 하지 맙시다.”

“그렇게 할게요. 하지만 그전에 약속했던 걸 말하세요.”

사도명은 빙그레 웃었다.

“노래를 불러주시오. 나의 검은 천하에 남기고 떠나지만, 당신의 노래는 가져갑시다.”

어느새 하늘의 먹구름이 걷혔다. 은교교는 사도명에게 안겼다.

“오늘 밤은 달빛이 교교하군.”

“노래 부를게요. 약속대로.”

고운 노래 속에서, 그녀를 안은 사도명의 몸이 서서히 떠올랐다.

사도명의 머릿속에서 양일생의 고함이 울렸다.

[떠나겠다고? 황궁도, 무림천하도 이미 너의 것이 되었는데, 그대로 두고 떠난다고?]

사도명은 은교교의 노래를 음미하면서 눈을 감았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오. 사부가 원하는 것이잖소.]

[나, 나를 거부하고자 내가 마련한 모든 것을 버린다고?]

[검만 버렸소. 노래는 아름다우니까 버리지 못하지.]

[나, 나를 알지 않느냐? 완벽한 이혼대법을 익힌 나는 영혼만으로도 존재한다. 다시 시작하란 거냐? 네가 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나는 또다시….]

양일생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나는 반드시…. 또 다른 방여립을…. 또 다른 너를 구해서 반드시 세상을….]

“그럼 그때도 누군가 나서서 사부를 막겠지.”

사도명의 혼잣말에 은교교가 노래를 멈추고 눈을 끔뻑거렸다.

“네? 뭐라고 했어요?”

사도명은 아래를 보았다.

이제는 까마득히 멀어져서, 무림연합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달빛은 교교하기 이를 데 없어, 은교교와 더불어 아름다웠다.

천하를 덮었던 세 가지 재액은 이제 모두 사라졌다.

다시 재액이 덮치겠지만, 그때는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 새로운 재액을 막아낼 것이다.

“아니야.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어. 그냥 달빛이 교교해서 좋고, 당신 노래가 아름다워 좋다고 말했어. 이런 노래에 어울리는 세상을, 또다시 누군가 새롭게 만들어 갈 거라고도 말했어.”

(마칩니다.)

#에필로그. 그리고 세상은 다시

소년은 산에 올랐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건만, 개의치 않았다.

멀리서 늑대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의 오른손은 피투성이였다.

“늑대 밥이 되는 게 낫다. 어차피 버림받은 세상이라면.”

소년은 소위 말하는 팔대마문의 후손이었다.

무림연합이 세워진 지가 올해로 일백사십여 년!

새롭게 맹주위에 오른 화독고는 천하에 선언했다.

- 세상을 피 흘리게 만들었던 팔대마문의 후예! 그들이 아직도 세상을 활보한다. 천하가 받았던 고통을, 그 더러운 피를 가진 자들에게 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소위 무림 대청산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조상을 뒀다는 이유로 죽었다.

소년의 집은 농사를 지었다.

갑자기 외조부가 지옥마정의 후예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가문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복수하고 싶다. 하지만 복수할 힘은 없다.”

소년은 어머니를 해친 무사 한 명의 복부를 비수로 찌르고, 산속으로 달아났던 것이다.

밤이 깊었다.

굶주림과 추위가 몰려왔다.

소년은 절벽 앞에 섰다.

삶이 고되니, 죽음은 오히려 아늑할 것이다.

소년은 눈을 감고 몸을 던졌다.

자신의 몸이 공기를 가르는 소음이 부모의 비명 같았다.

소년의 몸이 허공에서 멈춘 것은 기이한 목소리가 들려온 직후의 일이었다.

- 힘을 갖고 싶으냐?

소년은 눈을 뜨고, 허공에 떠 있는 자신의 몸을 살폈다.

옆의 허공, 이글거리는 검은 구름이 흔들리고 있었다.

검은 구름 속에, 세상의 어둠을 모조리 모아놓은 듯한, 검은색의 팔찌가 하나 보였다.

- 고금구대신보 중의 하나인 지옥마환이다. 원한다면 갖거라. 팔목에 차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힘을 줄 것이다.

“저, 정말 그게 가능합니까?”

어디선가, 아득히 먼 곳에서 다른 소리가 울렸다.

희미한 방울 소리였고, 누군가의 노래 같기도 했다.

소년의 머릿속에서 다시 한번 목소리가 울렸다.

- 선택하거라. 힘을 원하면 주겠다. 네 부모, 가족, 그 모두의 죽음을 잊을 셈이냐?

소년은 손을 뻗었다.

팔찌를 손목에 차자, 걷잡을 수 없는 힘이 소년의 몸에 들어와 소년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으아아-아아아악!”

목소리가 웃었다.

- 하하하. 세상은 결국, 다시 돌고 돈다. 나의 세상을 내버려 두지 않겠다. 천하일통. 이룰 것이다. 어떻게든 반드시, 이뤄내고 말 것이다. 하하하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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