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66화 (166/168)

166화. 여행(1)

옥현신개는 한순간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계속 사도명을 응시했다.

오히려 사도명이 시선을 먼저 피하고 말았다.

옥현신개는 한숨을 쉬었다.

“의심스러운 정황을 여러 가지 포착했습니다.”

“내가 지금 시선을 회피한 것도 증거라 말할 거라면, 그 부분은 빼고 말씀해 주시오.”

“그건 첫 번째. 그럼 두 번째 증거부터 말해 볼까요?”

“휴우. 해보시오.”

“한 때 천라옥벽을 가지셨지요? 은령선자와 함께 그걸 무림맹으로 가져오시면서, 모든 일들이 시작되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렇군.”

“천라옥벽에는 세 가지의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중 백옥유액은 설청산 맹주가 사용했죠.”

“그랬었소.”

“검술은 무제께서 얻으셨습니다. 하지만 천라옥벽엔 한 가지의 기보가 더 남아 있었지요.”

“천리도화의 비밀은 도화촌 안에 남겨져 있었소. 천라대제가 남긴 힘과 천라대제를 짝사랑했던 한 여인이 남겨놓은 힘이었소.”

사도명은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한숨을 쉬었다.

“교교가 고생을 많이 했소. 천라대제의 힘은 황제가 선수를 쳐서 가져갔었고.”

“그렇게 알려졌었지요.”

“무슨 의미요?”

“황제에게 천라대제의 힘이 갔다고요? 무제께서 만났던 황제에게 정말 그 힘이 있던가요?”

지금은 황제가 죽고 없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천라대제의 힘을 얻었다면, 그렇게 쉽게 병마에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황제는 황제가 아니었다는 뜻이오? 그럼 대체 누가 황제를 사칭했을까?”

“물으실 게 아니라 대답하셔야 할 내용입니다. 황제를 사칭한 자는 누구입니까?”

“내가 그 답을 알고 있다고 믿는 거요? 왜?”

“흑막은 사소한 일을 빌미로 커다란 결과를 꾸며냅니다.”

“모든 흑막은 방여립이었소. 방여립은 완전히 사라졌고.”

“그럼 그 가짜 황제도 방여립이었습니까? 혹은 또 다른 흑막이 어딘가 있다는 뜻입니까?”

옥현신개는 사도명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바로 그 또 다른 흑막은 천하 모든 것의 정점 위에 무제를 놓았습니다. 우연입니까?”

“그래서 내가 그 흑막이다?”

“무제가 흑막이어야 모든 것의 앞뒤가 정확하게 맞습니다.”

사도명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왜 귀하는 늘 나를 나쁜 일과 엮으려만 하는 것인지.”

“무제를 진심으로 존경하니까. 만약 가짜라면, 그건 진짜 무제에 대한 모독이니까.”

“내가 가짜란 의혹을 얼마나 확신하고 있소, 옥현신개?”

“보여드릴까요?”

옥현신개가 갑자기 품에서 비수를 뽑았다.

그 비수로, 곧장 자신의 가슴을 힘껏 찔렀다.

째-앵!

사도명이 내쏜 지풍이 아니었더라면, 옥현신개는 자신이 찌른 비수에 죽고 말았을 것이다.

옥현신개가 사도명을 보았다.

“내 진심은 증명이 되었습니까? 이제 무제의 차례입니다. 무제가 맞습니까? 가짜는 아닙니까?”

**

밤이 깊었다.

연자강은 술과 잔 두 개를 가져와 사도명의 앞에 앉았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옥현신개는 쓸데없는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고 들었다.”

“만약 그 말이 옳으면 어떡하지? 내가, 내가 아니면?”

“도명!”

“방여립과 싸울 때, 검은 그림자가 나를 덮쳤다. 한없이 깊은 암흑으로 끌려가다가 돌아왔다. 그런데 어떡하지? 만약 그때 내가 이겼던 것이 아니면?”

연자강은 대답하지 못하고 연거푸 술잔만 비웠다.

사도명은 세상을 구했다.

하지만 와중에 그는 많은 것을 잃고, 견디기 힘든 일도 겪었다.

사도명이 병째로 가져가더니 남은 술을 한달음에 들이켰다.

“여행을 가야겠다.”

“여행? 어떤 여행?”

“나 자신을 찾는 여행. 내가 정말로 사도명이 맞는지를 알아보는 여행. 교교는 여기 두고 혼자 다녀올게, 자강아.”

**

사도명은 여행을 떠났다.

그간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거꾸로 짚어보는 여행이었다.

숭산에 들러 새롭게 건립된 소림사를 보았다.

불화가 있었고, 나중에 신 무림맹의 총단이 위치했었던 지하는 이제 메꿰져서 사라졌다.

사도명을 보자 대방선사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반가워했다.

“자주 오십시오, 무제.”

그는 소림사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면서 웃었다.

“가짜 무덤을 만들고 숨어 지냈던 때가 벌써 아득한 옛날 같습니다. 겨우 몇 년이 흘렀을 뿐인데요. 불가능할 것 같았단 겁난의 극복. 모두 무제 덕분입니다.”

개봉성 철탑으로 가서, 다시 동냥 그릇을 앞에 두고 있는 대풍자를 만났다.

그는 깨끗한 옷과 씻어 말끔한 얼굴로, 거적 위에 앉아 있었다.

“이젠 동냥이 아니라 점을 쳐준다. 사실은 정보의 분석이지만.”

대풍자는 기대홍과 화운악이 번갈아 옷을 가져다주어, 더러운 옷을 입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옷이 깨끗하니 몸도 씻어야 한단 말이다. 얼마나 불편해?”

떠나는 사도명에게 대풍자는 무림연합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무림연합은 신 무림맹의 해체 후, 십구성좌의 공동 지도체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놈들이 연판장을 만들고 있다 한다. 네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는 연판장. 옥현신개가 널 의심하는 이유 중의 하나지.”

백마사의 두 마리 말은, 옛 모습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팔과 다리를 잃고, 이제는 서서히 늙어가고 있는 몽염도 만났다.

“생명은 다함이 있기에 비로소 고귀한 모양이다. 요즘 나는 하루하루 삶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이토록 살고도 더 살고 싶구나. 더 살고 싶어, 세상은 고귀하다.”

사막을 건너며 용권풍을 만나기도 했다.

회오리치는 바람을 보며 거대한 힘을 바탕으로 용권풍처럼 날아왔던 철목진을 떠올렸다.

자연스럽게 금륜과 은편도 회상하게 되었다.

“되살아난 고금구천강. 천하를 위험하게 만들 뻔하기도 했지만, 결국 세상을 구한 건 그분들이 남겨놓은, 세상에 대한 염려였다.”

진 삼대재액.

그리고 그 이전에 세상을 덮쳤던 또 다른 삼대재액.

사도명은 세상 모든 이들이 선하다고 믿는 사람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악의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악의에 분노하는 마음도 있다는 것도 믿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겁난이 극복된다. 방여립의 명교와 석단궁 교주의 명교! 두 개의 명교는 스스로 올바르게 되려는 세상의 의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석단궁은 회천연합의 총수로서도 살았다.

자신을 버려 타인을 구하고자 회천객도 만들어냈다.

그리고 세상을 혈겁에서 보호하려고 여덟 명의 천사도 길렀다.

천사들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세상을 구하는 일에 자신들의 힘을 보탰다.

사도명은 천사들 중 가장 먼저 죽었던 혈화를 떠올렸다.

“그도 오래 살았다면 나중에 마음을 바꾸었을까? 다른 이들처럼 동료를 위하고, 세상을 위하고, 결국 세상을 구했을까?”

법허와 함께 있었던 장소에 닿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법허의 본명은 마익덕이었다.

그는 놀랍게도 성화산인이었다.

하지만 법허는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거부했다.

결국, 법허는 삼성 중의 하나인 불성으로 죽었다.

그는 자칫 오명 속에 사라질 수 있었던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숙명은 극복할 수 있다. 법허 선사는 그 점을 보여주었다.”

법허의 삶과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되는 사람은 성심천자였다.

성심천자 좌인홍은 법허와 더불어 무림삼성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무림맹으로부터 단심환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좌인홍은 방여립을 도왔고, 생사객 몽염을 속여 세상을 망치는 일에 앞장섰다.

결국, 좌인홍은 세상에 오명만을 남긴 채로 죽었다.

사도명은 영세탑의 앞에서, 그러한 일들을 회상했다.

영세탑이라 불렸던, 진시황제의 무덤은 이제 무너져 그 모습 자체가 완전히 변해 있었다.

“다시 살아나고자 했던 진시황의 무덤. 잘못된 선택이란 이와 같다. 한 차례의 욕심이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탁천산 앞에서의 회상은 사도명에게 진심에 대해 가장 깊이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석단궁!

그는 진심으로 명교를 아꼈다.

자신보다 명교를 아꼈지만, 그보다는 세상을 더 아꼈다.

그래서 명교를 없애려 했다.

그 대가로 자신도 영원히 동굴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와중에 회천객들을 길러, 성화산인을 구했다.

그들이 자폭하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덕분에 세상 사람들의 무고한 죽음도 많이 막았다.

“방여립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명은 석단궁이 은교교를 통해 자신에게 전달해주었던 성화령을 목에서 벗었다.

그리고 이제는 거의 무너져 내린 탁천산에 놓아 주었다.

“더는 이것이 필요 없습니다. 명교가 이어질지, 사라질지는 이제 하늘의 뜻이 맡기겠습니다.

손을 움직이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음에도, 주변의 흙과 돌이 저절로 움직였다.

흙과 돌은 바닥에 놓인 성화령을 덮어 거대한 무덤을 만들었다.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명은 천사들에게 일을 부탁할 때, 성화령의 권위를 빌리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꼈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성화령을 이용하지 않았다.

“삶이 걸어가는 방향은, 언제나 스스로 결정해야만 한다.”

그러한 신념이야말로 사도명 스스로의 이름이었고, 평생을 지켜왔던 의지였다.

사도명은 황천법문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생각했다.

생명을 지속해주던 은하대!

“내가 되살아나지 못했더라면, 세상은 제갈평 가주가 말한 것처럼 영원한 암흑이었을까?”

그는 아니라고 판단 내렸다.

“아니다. 내가 죽었어도, 하늘은 또 다른 인연자를 찾아 세상을 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천지에는 스스로의 의지가 존재한다.”

천무제 좌능후와 사도명의 인연이 바로 그러한 천지의 의지였다.

좌능후의 기억이 없었더라면, 사도명은 황천법문을 찾아올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사도명은 융흥사를 떠올렸다.

보광은 융흥사의 주지였고, 왕삼의 친구였으며, 또한 숨어 있던 성화산인이었다.

보광이 스스로의 몸을 터뜨렸기에, 사도명이 황천법문을 찾아가야 하는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그때 이미, 왕삼의 몸 안에는 방여립의 혼이 들어와 있었다. 자신의 앞에서 터지는 보광의 몸을 보면서, 억눌러진 왕삼의 혼은 대체 어떤 기분이었을까?”

절망! 분노!

혹은 혼이 짓눌러져 있기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까?

파혼검이 방여립의 혼을 제거한 후, 왕삼은 정신을 차리고 하염없이 울었다.

그 울음은 분명 보광의 죽음과 관련 있을 것이다.

“죽음은, 언제가 가장 슬픈 것이구나. 그러고 보면 나는 참 많은 사람을 죽였다. 방여립을 가장 많이 죽였지만, 황제 역시 두 번 넘게 죽였구나.”

첫 번째의 죽음은 황제의 조작이었고, 두 번째의 죽음은 사도명과 황제의 합작이었다.

황제에게는 충신이 많았다.

학사로서의 업적을 포기하고, 황제로부터 도연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도광효가 대표적이었다.

도광효는 심지어 회천객이면서도, 오로지 황제에게만 충성했다.

그는 여와방을 이끌며 천하의 정세를 암중 조정했다.

융중산 제갈세가에서 사도명은 제갈호연과 만났었다.

그리고 은교교 어머니의 숨겨진 사연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황제에게 가장 특이했던 충신은 구옥화였다.

심마문주 구옥화.

그녀는 황제를 장악하기 위해 접근했으나, 오히려 황제의 매력에 장악당했다.

구옥화는 황제의 밀명을 받고 심마문에 침투했으며, 결국 심마문의 문주가 되었다.

심마문의 모든 힘은 황제가 방여립의 음모에 맞서, 남몰래 싸울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었다.

황제는 그 힘을 이용해, 지옥문의 문주인 태명으로 살기도 했다.

“지옥문은 극락문으로 포장하고 천하를 장악했다. 내가 죽어 있다고 알려졌던 그 시기에.”

극락문은 위장이었다.

존재 자체가 위장이었고, 천하를 장악한 듯 보였던 것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지옥문을 막고자, 나는 일 년 동안 일로종횡을 하였다. 생각해보니, 그때 방여립은 이미 세상의 뒤에 숨어 웃고 있었구나.”

일로종횡 동안 사도명은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을 얻었다.

십구성좌의 사람들을 모두 모은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그때 모았던 사람들은, 신 무림맹 창건의 근간이 되었다.

“사실 무림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사람은 나보다 화운악이다.”

화운악도 많은 실수를 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실수를 극복하고 자신의 초심인, ‘사람들을 돕겠다’라는 의지를 실천했다.

장백산에 도착하자, 사도명은 눈물이 솟을 것 같았다.

그는 이곳에서 은교교를 처음 만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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