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64화 (164/168)

164화. 마지막 싸움

황궁 주변은 본래 반군으로 포위되어 있었다.

그들 속에 있던 방여립과 성화산인은 모두 제거되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다른 곳으로부터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연자강은 화운악과 함께 자금성 성루에 있었다.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연자강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난 느낄 수 있소. 모두 성화산인이고 방여립이오.”

화운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도 마지막 싸움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구려.”

대연회장에서 사도명은 자신 속에 방여립이 있음을 알렸다.

이혼대법으로 분리된 혼이 아니라 온전한 혼!

사도명은 첫 번째 방여립 전체를 자신 속에 받아들였다.

그리고 싸우고 있었다.

황제가 나타남으로써 황궁의 분위기는 완전하게 바뀌었다.

복명단은 철저하게 사도명의 편이 되었고, 옥현신개와 무량자 등은 공식적으로 그에게 사과했다.

황제는 황궁 가장 깊은 곳에 비밀의 방을 마련했다.

사도명은 그 안에서 자신 속의 방여립과 싸우고 있었다.

연자강은 황궁 벽까지 다가온 성화산인과 방여립들을 보았다.

“저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 않는군요.”

“이길 거라 생각하니까요.”

화운악이 고개를 돌려, 황궁 깊은 곳 비밀의 방이 있는 방향을 보았다.

사도명은 그곳에서 방여립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저들은 무제가 패배하면 자신들을 죽일 사람이 더 이상 세상에 남지 않는다는 걸 아오.”

“하지만 이기지 못하면?”

화운악은 황궁 벽 아래의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우리와 끝까지 싸우겠지. 마지막 한 명이 세상에 남을 때까지. 마지막 기회니까.”

태양이 중천에 머물렀다.

성벽 아래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꼼짝하지 않았다.

성벽 위의 연자강과 화운악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성내의 사람들 중, 방여립과 싸울 능력이 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두 명이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적의 숫자가 많기 때문이었다.

햇살이 기울어지고, 이윽고 저녁이 되었다.

어두워졌고 밤이 깊었다가 다시 새로운 날이 밝았다.

새벽이 되어서야 사도명의 싸움은 끝이 났다.

문이 열리고 사도명이 나왔다.

황제와 대풍자가 문밖에서 밤을 새워 기다리고 있었다.

“쿨럭. 쿨럭.”

황제가 심하게 기침을 이은 후에야 겨우 물었다.

“너는 누구냐?”

사도명은 황제를 보고, 대풍자를 보았다.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황제를 지나쳐서 걸었다.

“네가 누군지를 물었다.”

황제가 사도명의 뒤에서 고함을 질렀다.

무풍자가 그런 황제의 손목을 잡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황제의 안색이 핏기를 잃은 것은 기침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 설마 이기지 못한 것인가? 대풍자. 대답해 보라. 사도명은 정녕 패배하였는가?”

**

사도명은 성벽까지 나왔다.

연자강과 화운악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를 보았다.

새벽의 어스름을 뚫고, 동쪽 하늘에 해가 떠올랐다.

햇살은 성벽 아래의 성화산인과 방여립들을 비추었다.

그리고 사도명을 보며 긴장하고 있는 연자강과 화운악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너는 누구냐?’

연자강은 차마 묻지 못했다.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바닥의 그림자는 짧아져만 갔다.

사도명이 걸어왔다.

그는 연자강과 화운악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치더니, 성벽 아래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가득한 먹구름은 아직도 햇살을 가리고 있는가?”

성화산인들이 그를 올려다보니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수많은 방여립들이 두 손을 흔들면서 환호했다

“와아아아아-!”

황제가 뒤에서 대풍자와 함께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졌구나. 아아, 지고 말았다. 사도명은 이제 방여립이다.”

화운악은 연자강을 보았다.

연자강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파혼검은 한 명 한 명에게 쓸 수밖에 없어요. 제가 고칠 수 있는 숫자는 겨우 몇 명이 한계일 겁니다.”

사도명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떨고 있는 연자강을 보고, 주먹을 꽉 쥔 화운악을 보고, 체념한 듯 눈을 감은 대풍자를 보고, 마지막으로 황제를 보았다.

황제의 기침은 더 심해졌다.

도광효가 달려와서 부축한 후에야, 황제는 겨우 기침을 그쳤다.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너무 걱정할 것 없다, 황제. 죽는 사람은 적을 거야. 이제는 나의 나라잖아? 이미 빼앗은 나라를 무너뜨릴 생각은 내게 없다.”

황궁의 모든 문이 열렸다.

방여립들이 궁으로 들어왔다.

천하에 퍼져 있던 여러 단계의 방여립들.

그들은 모두 다른 얼굴이었다.

하지만 영혼은 같았다.

성안으로 들어가면서 방여립들이 저마다 말했다.

“이것으로 완벽히 이루었다.”

“우리의 승리다. 하지만 성화산인들과는 구분되어야지.”

“성화산인은 명교의 충신이지만, 위험성이 있다.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고, 그 폭발은 위험해.”

방여립들이 모두 들어가고 성문이 다시 닫혔다.

성화산인들은 바깥에 남았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한 사람이 조용히 물었다.

“그럼 우린 누구지?”

답이 들렸다.

“명교의 충신들!”

“그런데 교주님은 어떨까? 교주님도 우리와 같을까? 우리처럼 명교의 충신일까?”

두 번째 물음은 조용했다.

하지만 첫 번째 물음보다 훨씬 빠르게 퍼져나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답을 들리지 않았다.

세 번째 질문이 마침내 모두에게 던져졌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어. 그런데 뭐가 달라졌지?”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내 들려왔다.

누구든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

자금성 근정전 앞은 네 부류의 무리로 나누어진 모습이었다.

황제는 용상에 앉아 있었다.

도광효가 그의 앞에 시립했고, 그 옆으로 정화가 보였다.

황군이 많았지만, 그들의 입장은 허락되지 않았다.

심지의 동창이나 금의위 위사들마저 밖으로 쫓겨난 상태였다.

두 번째 무리는 옥현신개와 무량자, 그리고 도제였다.

그들은 복명단을 대표했다. 세 명 모두 참담한 표정이었다.

세 번째 무리는 대풍자를 비롯해 연자강, 화운악, 그리고 은교교, 곽소혜였다.

그들의 표정이 가장 어둡고, 가장 우울했다.

은교교는 계속 떨었다.

허공에 떠 있는 사도명을 보며, 그가 정말로 방여립이 되었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네 번째 무리는 방여립이었다.

숫자도 그들이 가장 많았다.

그들 중에는 노인이 있었고, 청년이 보였고, 심지어 여자와 어린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방여립 중의 몇 명은 흩어져 있었다.

황제의 옆, 도광효와 정화의 옆, 그리고 복명단 세 명의 옆에 각각 한 명씩의 방여립이 붙어 서 있었다.

방여립들을 이끄는 사람은 사도명이었다.

그는 방여립들의 가장 앞에서 몸을 한 자 허공에 띄운 채로 웃고 있었다.

황제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짐은 진짜로 죽었어야 했었다. 그랬다면 이처럼 참담한 상황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도명이 웃었다.

“곧 진짜 죽게 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 이렇게 합시다. 항상 말했던 대로 정화를 이끌고 서역 바다 정벌에 나서는 거요.”

“무엄하게 짐이 할 일을 네가 정한다는 것이냐?”

“도광효는 황궁에 남겨둡시다. 귀하는 정벌 도중에 죽는 거요. 사망 소식을 들으면, 황위에 오르겠소. 도광효는 그때 사면하지.”

도광효가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흘렀지만 도광효는 아픔조차 느끼지 못했다.

“제 잘못입니다, 황상. 제가 황상의 명을 제대로 따르기만 했어도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옥현신개도 소리쳤다.

“이 거지의 잘못이오. 나는 무제를 가두지 않고 차라리 해쳤어야만 했소.”

사도명이 웃었다.

“여전히 멍청하군! 네게 사도명을 해칠 힘이 있었다고?”

“힘이 없다 해도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랬다면 무제께서 네게 몸을 빼앗겨 명예를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방여립.”

“사도명을 불쌍하다 할까, 아니면 행복했었다고 할까? 그를 해치려 했던 자가 그를 존경하는 것은 좋은 일인가, 슬픈 일인가?”

“무제의 영혼이여! 그 속에서 듣고 계시오? 이 거지가 너무 큰 죄를 지었소.”

“더 크게 소리쳐 봐. 혹시 모르지! 저 밑바닥에서라도 사도명이 듣고 있을지.”

“복명단원 전원은 모든 일이 끝난 후 자결로 사죄하겠소.”

사도명이 껄껄 웃었다.

“왜 자결인가? 마지막 힘을 다하여 싸워보기라도 해야지.”

“자신의 나라가 되면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키기 바란다, 방여립.”

무량자와 도제 담표운의 몸에서 강기가 뿜어나왔다.

“우리가 저항해도, 우리만 해치겠다면 자결이 아니라 너와 싸우다 죽어 볼 생각은 있다.”

사도명이 껄껄 웃었다.

“너희들 모두에게 내가 각각 한 명씩 붙어 있다. 그중의 한 명이라도 당해낼 자신이 있나?”

“최선을 다할 뿐, 패배가 보인다고 하여 도망치지 않는다.”

“하하하. 과연 정파의 어른이란 건가? 무량자! 도제 담표운. 하지만 너희의 제안은 거절한다.”

“치졸하다, 방여립.”

사도명은 무량자의 고함에 개의치 않고 시선을 돌렸다.

그는 은교교를 보았다.

그녀는 몸을 떨면서 가까스로 서 있었다.

옆에 서 있는 곽소혜가 부축해주지 않았다면, 은교교는 주저앉아 눈물만 흘렸을 것이다.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사도명이 그리운가?”

“끝이 아닐 거야, 방여립. 네가 세상이 있는 한 또 다른 조화무제는 나타날 거야.”

“좋지! 계속 싸워야지. 태초의 악의와 악의를 없애려는 태초의 노여움! 그 둘의 싸움은 영원히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점, 매우 선명하게 느끼고 있어.”

“우린 포기하지 않는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너희의 옆에는 내가 없는 거다.”

사도명이 자신의 뒤에 있는 수많은 방여립들을 보았다.

“너희는 죽어야 하니까. 내가 살려주려 해도, 또 다른 나는 너흴 죽일 거야. 특히 연자강은 우리들의 공적이니까.”

파혼검!

연자강은 사도명의 부탁으로 만들어 낸, 자신의 여덟 번째 검을 양손에 피워 올렸다.

“싸우는 거 좋지. 너부터 시작하면 좋겠네. 내 친구의 몸에서 쫓아내 주고 싶군, 방여립.”

사도명은 은교교를 보았다.

“죽음이 두렵지 않나?”

“죽어 사랑하는 이를 만난다면, 살아서 구역질 나는 세상을 보는 것보단 편안할 테지.”

“사도명을 다시 만나면 뭘 할 생각이냐, 은교교?”

은교교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노래를 불러줄 생각이다. 그는 내 노래를 좋아했지만, 많이 불러주지 못했으니까.”

“기왕이면 장단이 맞춰주면 좋겠는데, 은교교.”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방울은 이제 울리나? 은방울 속의 구슬은 다시 넣었나?”

은교교의 눈이 커졌다.

연자강은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사도명이 소리쳤다.

“모두들 조심해. 연자강의 검은 이혼대법으로 퍼뜨린 혼을 파괴하는 효능이 있다.”

연자강은 두 손에 한 쌍의 파혼검을 든 채로 사도명을 향해서 날아갔다.

사도명도 두 손에 눈부신 강기의 검을 만들어냈다.

옥현신개가 내공을 끌어올려,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노인 방여립의 허리를 베었다.

“이런 식의 자결도 인정해주는 거지, 방여립? 우리 죽음만으로, 세상 사람은 해치지 마라.”

무량자도 양손을 저었다.

그를 지키는 방여립은 여자였는데, 무량자는 여자가 아닌, 옥현신개의 옆의 노인에게 장력을 쏟아부었다.

“잘못을 속죄하는 요령은 익히 안다. 무량수불.”

“하하하. 선배님! 뜻이 통하여 기쁩니다.”

도제 담표운이 도강을 뿜어내면서, 마찬가지로 옥현신개 옆에 있는, 노인 방여립을 노렸다.

자신의 옆에 있던 어린아이 방여립은 상관하지 않았다.

연자강의 파혼검이 사도명과 부딪칠 바로 그 순간에, 두 사람의 몸이 홀연 사라졌다.

사라진 사도명과 연자강은 동시에 황제의 옆에 나타났다.

연자강의 파혼검이 황제 옆의 청년 방여립을 베었다.

사도명의 검은 도광효와 정화의 옆에 서 있는 두 명의 방여립들을 동시에 베었다.

수많은 방여립들 중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자가 소리쳤다.

“속았다. 사도명이다! 저놈은 우리가 아냐. 놈은 사도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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