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63화 (163/168)

163화. 첫 번째 방여립

바람이 무섭게 불었다.

비도 오지 않는데, 마른하늘에서 가끔 벼락이 울었다.

“날씨가 미쳤군.”

연자강은 은교교와 함께 무영전으로 향하는 복도를 걸었다.

“하긴 뭐, 사람들도 미쳤으니까. 구해주었더니 반역죄라니.”

무영전은 임시로 사도명을 가둬놓는 장소였다.

은교교는 연자강과 함께 무영전에 유폐된 사도명을 보러 왔다.

두 사람은 보자, 사도명은 금강옥쇄로 묶인 손목을 들어 보였다.

“섭섭해하지 마. 대풍자의 말처럼, 사람들은 겁내는 거야.”

연자강이 미간을 찌푸렸다.

“방여립과 싸울 때 숨어 있다가, 방여립을 이기고 오자 가두는 놈들이다. 뭘 겁먹었다는 거야?”

“그들은 방여립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몰라.”

사도명은 계속 웃었다.

“교교. 잘 막아서 주었다. 네가 아니었더라면, 여기 갇히지 못했을 거야.”

“처음부터 옥현신개를 해치려던 게 아니었군요.”

“난 그저 자연스럽게 갇힐 명분이 필요했던 것뿐이야.”

“왜 굳이 갇히려 한 거죠?”

“방여립은 건재하다. 첫 번째 방여립이 멀쩡하다면 모든 방여립이 건재한 셈이지.”

사도명은 의자에 앉았다.

느긋하게 등을 뒤로 기댔다.

“두 사람은 이제 돌아가. 그가 올 거야.”

“그? 어떤 사람 말이죠?”

사도명의 눈이 빛났다.

“첫 번째 방여립. 그는 나를 찾아온다. 분명히 찾아와. 이곳에 내가 갇히도록 만든 건, 모두가 그의 철저한 작품이니까.”

**

밤이 깊어갈수록, 마른하늘의 뇌전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비는 오지 않았다.

사도명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기다렸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옆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사도명은 놀라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가 올 것을 알고 있었고, 잠결 속에서마저 그의 출현을 느끼고 있었다.

사도명은 어둠 속의 사람을 응시하며, 그를 불렀다.

“첫 번째의 방여립!”

“방립에서 그런 이름으로 바꾸었다. 마음에 드는 이름이야.”

번개가 쳤다.

어둠 속에 숨었던 첫 번째 방여립의 얼굴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놀랍게도 그는 대풍자였다.

이번에도 사도명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대풍자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내가 대풍자라는 사실에 대해, 너는 왜 놀라지 않지?”

“귀하가 대풍자 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안다고? 어떻게? 내 얼굴을 보고도 그리 말한다고?”

“대풍자 님은 전혀 미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를 대풍자라 불렀지. 왜 그랬을까를 조사했다. 화운악 맹주가 알려주더군. 대풍자는 가끔씩 정신을 잃고 기억 못 하는 부분이 생긴다고.”

대풍자가 빙그레 웃었다.

“그것이 어떻다는 것이냐?”

“이혼대법을 훔친 후, 전진교 전체가 방립을 쫓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끝내 찾아내지 못했지. 어떻게 숨었을까? 이혼대법은 혼을 옮긴다. 방립은 도주에 이혼대법을 활용하지 않았을까?”

“계속해 보라.”

“등잔 밑이 가장 어둡다. 전진교가 자신을 찾는다면, 방립은 전진교 속으로 숨었을 것이다. 가령, 대풍자 속으로 말이야.”

“하하. 하하하.”

대풍자는 껄껄 웃었다.

“맞아. 나는 대풍자 속에 숨었다. 나는 대풍자를 알지만 대풍자는 나를 모르니, 처음부터 멍청한 이 녀석은 나를 찾아낼 가능성이 하나도 없었던 거다.”

대풍자는 가끔씩 정신을 잃고, 그 사이의 기억은 사라진다.

사도명은 그 이유를 찾아냈다.

방여립은 대풍자가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어 있었기에, 전진파는 방여립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조화무제. 똑똑하구나. 그러니 내가 왜 이 모든 것을 알려주면서 찾아왔는지도 알겠지?”

사도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귀하도 내가 귀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짐작했을 테고.”

대풍자는 웃음을 멈췄다.

“마음을 열어라. 네 안에 들어가겠다. 하나가 되자.”

“뒷말도 붙여야지. 내가 거절하면 어떻게 된다는 따위의.”

“하나가 되면 천하를 갖게 된다. 그 정도로 부족한가?”

“나는 욕심이 많지.”

사도명이 손목을 당겼다.

그의 손목을 묶고 있던 금강옥쇄가 단숨에 부서졌다.

퍼-퍽!

“귀하를 죽이고 천하를 갖는 편이, 훨씬 더 풍족하게 누릴 거 같은데 말이야, 방여립.”

“금강옥쇄 정도로는 막을 수 없단 거냐, 조화무제?”

“네 목은 어때? 금강옥쇄보다 튼튼할까?”

사도명의 두 손이 대풍자의 목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대풍자는 목을 피하지 않았다.

“낮에 널 막았던 복명단. 그들이 가장 먼저 죽을 거다.”

“나를 적으로 돌린 자들이야, 죽이는 건 불편해도 죽어준다면 화날 일은 아니지.”

“다음으로 은교교다.”

사도명의 손이 비로소 멈췄다.

대풍자는 웃기 시작했다.

“연자강도, 곽소혜도 죽겠지? 네 주변의 모든 사람이 사라지게 만들어 주마.”

“또 다른 분신을 퍼뜨려 놓은 건가? 연자강이 찾아낼 수 있다. 넌, 이제 발견되고 제거된다.”

“하지만 나는 오래 준비했다. 화운악이 나면 어떨까? 연자강이 점검한 후에 혼을 옮기면?”

사도명은 뻗었던 손을 내렸다.

“다시 궁 바깥에 모인 반군을 죽인다. 마지막으로 세상 모든 인간들을 죽이는 거지.”

사도명은 고개를 흔들었다.

“모두 내 목숨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일 뿐이잖아.”

“하지만 그런 게 너지.”

“!”

“네게는 타인의 목숨으로 하는 협박이 통한다. 조화무제 사도명. 나는 너를 줄곧 연구해 왔다.”

사도명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대풍자의 웃음은 시간이 갈수록 환해졌다.

“마음을 열어라. 날 받아들이는 거다. 하나가 되자. 세상을 모두 가지자.”

사도명은 물끄러미 대풍자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대풍자가 결국 웃음을 거뒀다.

“다른 할 말이 있는 거냐?”

“싸우자.”

“뭐?”

“세상을 가지는 거? 그래, 좋다. 난 욕심이 많다 했지? 그런데 너냐? 왜 나일 수는 없지?”

“하고픈 말이 뭐냐?”

“너도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았지? 그래서 찾아온 거잖아. 내가 왜 기다렸을 거 같아?”

대풍자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다시 웃기 시작했다.

“나를 잡아먹어 보겠다? 내가 아니라 네가 혼을 갖겠다?”

“조건은 공평하다. 내가 이기면 너는 사라진다. 네가 이기면, 뭐 내가 사라져야겠지만.”

꽈르르-릉!

다시 창밖에서 마른벼락이 길게 울었다.

대풍자는 사도명이 자신을 기다린 진짜 이유를 깨달았다.

그는 미소만 짓다가 숫제 소리를 내어 웃기 시작했다.

“이거였구나. 하늘이 날 태어나게 만들고, 시간을 보내게 만들고, 오늘까지 오게 만든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거대한 악의가 존재한다. 그럼 그 악의에 분노하는 거대한 노여움도 있어야 하겠지?”

“네가 없었다면 영원에 이를 나의 삶이 얼마나 지루했을까? 해보자꾸나. 나의 모든 것, 너의 모든 것을 걸어 보자꾸나.”

대풍자가 오른손을 뻗었다.

사도명의 이마에 그 손을 댄 채로 껄껄 웃었다.

“이대로 널 공격한다면?”

“넌 영원히 공허하겠지. 모든 게 사라진 세상에서 너 혼자 미쳐 있어 보든지, 방여립.”

“하하하. 하하하하.”

보이지 않는 무엇이 대풍자에 몸에서 사도명에게로 움직였다.

“나는 세상 누구보다 너를 잘 안다, 조화무제. 그런데 너 또한 세상 누구보다 나를 잘 알 줄이야. 처음으로 즐겁다. 태어난 후, 처음으로 이토록 즐겁다. 하하하.”

“혼을 나누지 말고 전체가 와라, 첫 번째의 방여립! 너와 나의 싸움이다. 다른 그 무엇도 남기지 않은, 너의 나만의 전투다.”

대풍자가 푸들푸들 떨었다.

이윽고 그는 쓰러졌다.

쓰러진 채로 한참 움직이지 못하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멍한 눈빛으로 주변을 보다가, 대풍자는 가만히 서 있는 사도명을 보고 놀랐다.

“내,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또 기억이 사라졌다. 너는 왜 눈앞에 있는 거냐, 사도명? 혹시 우리가 여기서 뭔가를 같이 했었나?”

사도명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풍자가 묻자, 그는 감았던 눈을 떴다.

사도명이 대풍자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오히려 물었다.

“화운악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 마지막 기억으로는 옥현신개를 만나러 갔었다. 너를 가둔 일로 따질 것이 있다 하였다.”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군요. 만나러 갑시다.”

대풍자가 놀라 물었다.

“큰일? 어떤 큰일? 설마 옥현신개 일당이 너뿐 아니라 내 제자까지 해칠 거라고? 안심해라. 녀석들 무공으로는 절대….”

“안심할 수 없습니다. 무량자가 거기에 함께 있으니까요.”

**

황궁의 대연회장.

신 무림맹의 간부 대부분과 도광효, 정화 등이 모여 있었다.

화운악은 그 중앙 부분에 옥현신개와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맹주께서 끝끝내 반대하시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옥현신개는 인상을 썼다.

“무제의 공로는 인정하오. 하지만 역모를 범한 건 사실이잖소. 역모죄를 단죄하자는 거요. 백성으로서의 의무니까.”

화운악은 고개를 저었다.

“그 의무를 인정한다면, 나 역시 무림인으로 의무를 다해야 하지 않겠소? 가령 조화무제를 해친 죄를 단죄하는 것 말이외다.”

콰-앙!

왼쪽 의자에 앉아 있던 무량자가 진각으로 땅을 눌렀다.

강력한 음향과 진동이 사방으로 퍼졌다.

“방자하다. 맹주는 자신만이 무림을 대표한다 생각하는가?”

“도성 어르신께서는 그간 무얼 하셨소?”

“무어라?”

“노선배께서 안빈낙도하는 동안 무제가 맞서 싸운 적의 숫자가 몇이었는지를 알고 계시오?”

“화운아-악! 감히!”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라고 경고한다, 무량자.”

화운악의 고함은 무량자의 음성을 오히려 억눌렀다.

“나는 무림맹의 맹주다. 내게 거역하는 것을 단죄함이 그대들이 지금 말하고 있는, 바로 그 충성이요, 도의가 아닌가?”

무량자는 반박하지 못했다.

입을 다문 채 부들부들 몸만 떨 뿐이었다.

도광효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림에는 역도의 가능성이 있는 자가 많다. 무림은 사라져야 한다. 황상의 판단은 옳으셨다.”

- 그 황상이라는 것이, 나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

모두의 시선이 대연회장의 입구로 쏠렸다.

그곳에서 사도명이 대풍자와 함께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정화가 오른손을 들어 황군을 착검하게 만들며 외쳤다.

“사도명! 역시 금강옥쇄 정도로는 가둘 수 없었단 거지?”

“애초에 내가 잡혔던 건, 당신들을 죽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도명의 말에 화운악이 고개를 흔들었다.

“무제. 우리는 무제를 해치고 싶지 않지만, 복명단 분들이 다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큰일을 하다 보면, 작은 일을 희생할 수도 있지.”

도광효의 눈이 빛났다.

사도명의 지금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고 생각했다.

대연회장의 중앙, 가장 높은 단 위에 의자가 놓여 있었다.

사도명이 그 자리에 앉자, 도광효는 비로소 기억을 해냈다.

‘황상이 했던 말이다. 황상이 자주 했던 말이고, 나도 언제나 동의했던 말이다.’

사도명은 의자에 앉은 채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한 명과 수천 명이 마주 보고 있었지만, 모두를 압도하는 것은 한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이 늘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반대했고.”

도광효가 물었다.

“뭐라 반대했었냐, 사도명?”

“그 희생당한 작은 일도 결국 돌아온다. 돌아와서 귀하의 심장을 찌를 것이다. 이렇게.”

도광효가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네놈이 황상을 해칠 때 했던 말이 그것이었구나. 네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줄곧 궁금했었다.”

“더 이상 나를 상이라 부르지 않는구나. 황제가 남긴 말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어찌 역도를 상이라 할까?”

- 하지만 나는 분명 말했는데. 쿨럭쿨럭. 그를 나보듯 하라고.

기침 소리가 대연회장의 구석 자리에서 들렸다.

지금까지 조용히 앉아 있던 한 사람이 기침을 하며 일어났다.

두건을 깊이 눌러쓴 사람이었는데, 그가 일어서자 병사들이 분분히 칼과 창으로 앞을 막았다.

하지만 그가 두건을 벗자, 누구도 그를 막지 못했다.

“쿨럭. 쿨럭. 이 기침은 정말 날로 심해지는구나. 죽을 때가 되니 충신도 사라지고.”

도광효가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화, 황상.”

“왜 일을 그르치느냐, 도연아? 날 보듯 대하라고 했는데. 시키는 대로 했다면, 내가 이렇게 드러날 필요도 없었는데.”

황제는 할 말을 잊고 있는 사람들을 두고 사도명만을 보았다.

“어떻게 됐느냐? 우리의 약속대로, 성공을 거두었느냐?”

“일단은! 방여립은 지금….”

사도명이 자신의 가슴을 쳤다.

“여기 안에 들어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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