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62화 (162/168)

162화. 태초부터 시작된 악의

사도명은 물끄러미 대풍자를 바라보았다.

“왜 그리 보느냐?”

“왜 대풍자라 불리십니까? 결코 미치지 않으셨잖습니까?”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이유는요?”

대풍자는 웃었다.

“언젠가 알게 될 게다. 나는 스스로를 그리 부를 수밖에 없다.”

사도명은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저는 이제 황궁으로 가려합니다.”

“그래, 가거라. 모든 반란의 흐름이 황궁으로 모인다. 황궁에 가면, 그 모든 반란 속에 숨은 수많은 방여립을 만날 것이다.”

**

황궁으로 통하는 팔로(八路)를 따라, 반란군들이 밀려왔다.

사도명은 황궁에 도착했다.

먼저 황궁에 온 도광효는 이미 황군을 잘 정비해 놓았다.

“상이시여. 반란군은 철저히 진압해야 합니다.”

사도명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 죽이자?”

“황실이 있어야 백성이 있습니다. 위엄을 보이셔야 합니다.”

“그거야말로 방여립이 원하는 것이 아닌가? 방여립의 뜻대로 하자는 거냐, 도광효?”

“반란군을 그대로 두면, 그쪽이 오히려 방여립의 의도대로 따르는 게 될 겁니다, 상이시여.”

옥현신개는 멀리 서 있었다.

그는 조용히 두 사람의 설전을 지켜보았다.

신 무림맹도 상황의 급박함을 알고, 무사들을 모두 파견해 놓은 상태였다.

옥현신개는 무령자와 함께 파견군을 이끌고 황궁까지 왔다.

그의 바로 옆에 정화가 있었고, 소화도 보였다.

사도명과 도광효의 설전을 지켜보는 세 사람의 눈빛은 저마다의 생각으로 복잡했다.

“할 일을 정하겠다.”

내공을 실은 사도명의 목소리가 주변을 쩌렁쩌렁 울렸다.

“반란군도 나라의 백성.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다.”

사도명은 이 순간 조화무제였고, 모든 이의 명령권자였다.

“두려워하는 백성을 해친다면, 나라의 위엄이 서는 것이 아니라 나라 자체가 사라진다. 황제에게서 넘겨받은 권한으로 모두에게 명령한다. 황군은 단 한 명의 백성도 함부로 해치지 마라.”

**

반란군은 곳곳에서 모였다.

매우 깊은 밤, 달빛도 없었다.

사도명은 아무도 모르게 황궁을 떠났다.

“내가 조금 더 위험하면 된다. 나는 자신이 편하고자 백성을 위험하게 만드는 황제가 싫었다. 그래서 하늘을 바꾸려 했었다.”

사도명이 가장 앞서갔다.

그의 뒤를 연자강이 따랐고, 다시 소화를 비롯한 여섯 명의 천사가 차례로 움직였다.

“반란군 속에는 방여립이 있다. 그를 찾는다. 찾아서 제거한다. 자강! 파혼검의 원리를 모두에게 알려줄 수 있지?”

사도명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섯 명의 천사는 모두가 인간을 경지를 초월한 고수였다.

파혼검 자체는 어렵다 해도, 방여립의 혼을 탐지하는 방법은 충분히 배울 수 있을 터였다.

“내공을 뭉쳐 만든 강기의 공이오. 여러분들 모두에게 하나씩 나눠주겠소. 방여립의 영혼, 그 파장에 특화된 내공이오.”

연자강은 달려가면서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방여립을 찾아냅니다. 모든 방여립을 멈추게 하면, 반란군의 행렬도 당연히 멈출 테니까.”

모두가 강기의 공을 나눠 가진 후, 일행은 빠르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천사들은 각각 두 명씩 짝을 지어 움직였다.

하지만 사도명과 연자강은 짝짓지 않고 혼자 움직였다.

사도명이 벽공을 만난 것은 두 명의 방여립을 제압한 후였다.

벽공은 귀주에서 올라온 반란군을 이끌고 있었다.

사도명이 찾아갔을 때, 벽공은 임시로 쳐놓은 천막 속에 태연한 모습으로 있었다.

그는 사도명이 나타났음에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벽공은 태연히 그림을 그렸다.

오히려 사도명이 놀랐다.

“혹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방여립?”

방여립은 붓으로 난을 그리다가 사도명을 보고 웃었다.

“본래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그림을 그리며 좋아하는 나의 마음은 내 것이 아니라 벽공의 것일 거야.”

“도망을 쳐놓고 내 앞에 나타났다고? 힘에서 자신이 생겼다는 건가? 아니면 감춰야 할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뜻일까?”

벽공은 다른 수많은 방여립들과는 달랐다.

그는 두 번째의 방여립이었다.

최초의 방여립으로부터 곧바로 분화했기에, 그의 혼은 별다르게 섞인 부분이 없었다.

사도명이 벽공을 생포하려고 했던 이유는 그것이었다.

벽공은 웃었다.

“둘 다라고 해 두자.”

“둘 다? 무슨 의미냐?”

“내 혼이 처음 갈라졌을 때, 가장 선명하게 남겨진 단어는 한 가지였어.”

사도명이 벽공 대신에 그 단어를 말했다.

“대반란.”

“맞아. 바로 그것. 그래서 난 대반란만을 꿈꾸며 모든 일을 진행했지. 주변에 모인 반란군 속 모든 방여립은 나로부터 비롯되어 퍼져나간 녀석들이야.”

“안다. 그래서 널 심문하는 것으로, 나는 모든 방여립들의 의도를 알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도명의 몸에서 강력한 힘이 피어올랐다.

고오오오오-!

“오늘은 주민들이 없다. 달아나지 못한다, 벽공.”

“잠시만 더! 그림을 그려야겠다. 시간을 조금만 줘.”

벽공이 마침내 그림을 완성했다. 화폭에 펼쳐진 난은 생동감이 넘쳤고 아름다웠다.

벽공이 사도명에게 그림을 내밀면서 웃었다.

“알아맞춰 봐. 이건 벽공이 그린 걸까? 아니면 방여립이 그린 걸까? 나는 방여립일까, 혹은 벽공일까?”

사도명은 미간을 찡그렸다.

벽공이 하고 싶은 말은, 너무 어려워서 도리어 쉬웠다.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해, 방여립. 벽공으로 살고 싶다면, 최대한 솔직해져 봐.”

“예전에 자네가 물었지. 벽공으로서의 삶과 방여립으로서의 삶 중 어느 쪽이 좋으냐고?”

벽공은 사도명이 받아든 그림을 가리켰다.

“그게 대답이야.”

“벽공으로 살고 싶다면, 이제 말해 줘. 묻고 싶은 게 많다.”

“뭐든 물어봐. 대답할게.”

벽공은 길게 기지개를 펴더니 의자로 가서 편히 앉았다.

“대답한단 말은 진심이군. 그럼 예전에는 왜 달아났지?”

“그때는 할 일을 끝맺지 못 했으니까! 대반란 말야.”

사도명은 한참 동안 벽공을 쳐다보았다.

그는 한 가지의, 아주 희박한 가능성을 생각했다.

가을이면 낙엽이 진다.

쓰임새를 다한 꽃이 져야, 비로소 열매가 맺힐 수 있다.

사도명은 급히 물었다.

“너의 쓰임새는 대반란. 혹시 그 하나의 단어였던 건?”

“그걸로 충분하잖아.”

벽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도명은 본래 주름이 많았던 벽공의 얼굴이 빠르게 늙어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반란군을 이끌고 온 모든 방여립들은, 여기까지만이 목표였나? 소모품이었던 거야?”

벽공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모두 여기까지! 여기서 멈추는 임무! 처음부터.”

사도명의 안색이 변했다.

반란군의 목표가 황궁을 뒤엎는 것이 아니라면, 왜 이토록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을까?

“도대체 왜 이런 낭비를?”

“우린 어리석지 않거든. 무공도 모르는 자들. 그들로 황실을 뒤엎는 일은 가능하지 않잖아.”

“그런데도 반란군 이끌고 오게 만드는 건 그걸로 충분한 이유가 있단 거잖아! 그게 뭐지? 나를 황궁 밖을 나오게 만드는 것? 아냐. 그건 너무 단순한데.”

사도명은 미간을 찡그렸다.

“세상의 반란! 나를 나오게 만드는 것. 그것 외에 또다른 무엇이 있지?”

“첫 번째의 나와 분리한 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첫 번째의 나는 그 변화에 대응할 거다.”

“너는 대응하지 못한단 뜻인가? 분리된 자는, 분리되기 전의 목표만을 올곧이 유지한다고?”

“변수를 줄이기 위한 약속! 모든 내가 세상의 변화에 맞춰서 각자 대응하면, 전체적인 계산이 불가능해지잖아.”

“첫 번째의 방여립이 모든 것의 중심이구나. 오직 그만이 모든 방여립들이 움직일 방향 전체를 파악하고, 대응하는구나.”

사도명은 한숨을 쉬었다.

눈앞의 벽공은 점점 더 빠르게 늙어가고 있었다.

사도명이 손대지 않아도, 머지않아 그는 죽을 것이다.

“저는 죽어가고 있다. 혹시 그걸 알고 있나?”

“그러니까 어서 물어. 나는 무엇이건 대답할 의향이 있지만, 묻지 않는 건 대답 못해.”

사도명은 한숨을 쉬었다.

“너희는 도대체 뭐냐?”

“우리들은 세상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악의(惡意). 탄생이 있으면 소멸이 있다. 그래서 생명의 의지에 맞서서 파멸의 의지도 태어나지.”

벽공이 환하게 웃었다.

“우린 생명의 일렁거림 속에 존재하는 음영이야. 세월 속에서 물끄러미 빛을 바라보는 어둠이기도 하고.”

쉽게 알아들 수 있는 소리가 한마디도 없었다.

사도명은 점점 먼지로 변해 흩어지는 벽공을 보았다.

“알겠다. 너희도 잘 모르는 거지? 너희가 누군지!”

“인정하지. 내가 분리될 때까지도, 첫 번째의 나는 내가 누군지를 깨닫지 못했어. 지금쯤은 답을 찾았을까? 아니면, 아직도 계속 스스로 묻고 있을까?”

벽공은 점점 사라졌다.

사도명은 벽공을 두고 나왔다.

여러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웅성거렸다.

모두 반란에 가담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아주 먼 곳에서 연자강의 전음이 들려왔다.

[혹시 느꼈어? 이상해. 아무래도 이상해. 이 반란의 목표는 황실 전복이 아닌 것 같다.]

사도명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애초 목표는 역모가 맞았을 거야. 그런데 벽공이 목표를 바꾼 거야.]

그의 몸이 빠르게 공간을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방여립이고 싶으면서도, 벽공이고 싶어 했거든.]

사도명의 몸은 그야말로 빛살처럼 움직였다.

그런데도 연자강은 뒤처지지 않고 사도명을 따랐다.

“벽공으로서, 반란군에 가담한 사람들을 지켜주었단 거지?”

“거기에 더하여, 내게도 알리고 싶어 했어. 첫 번째의 방여립과 벽공, 자신은 뭔가 다르다. 첫 번째의 방여립은 여전히 스스로가 누군지를 찾고 있다.”

반란군의 목표는 반란 그 자체에 있지 않았다.

사도명은 그래서 서둘렀다.

무엇인가 벌어지고 있었다.

첫 번째 방여립은 두 번째 방여립의 목표가 무엇인지 안다.

대반란.

두 번째 이후의 자신에 대한 지식과 세상의 변화를 분석하여, 첫 번째 방여립은 끝없이 새로운 계획을 세을 것이다.

그 계획 속에는 사도명이 황실을 나와 방여립을 제거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왜 지금? 첫 번째 방여립은 도대체 누구지?”

사도명은 황궁 담을 넘었다.

연자강도 그의 뒤를 따라 담을 넘었다.

작은 돌조각이 여러 겹 깔린 황궁의 태화천! 그 앞마당에 내려서다가, 연자강은 굳어버렸다.

수백 명의 황군이 그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사도명의 바로 앞에서 그를 막은 사람은 세 명이었다.

도성 무량자.

도제 담표운.

그리고 개방의 용두방주인 옥현신개였다.

그들의 뒤에는 수십 명의 복명단원이 있었다.

그들은 사도명에게 역모의 죄를 묻고 싶어 했다.

사도명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복명단? 명을 복원한다? 그 명은 명나라의 명이오? 아니면 명교의 명이오, 옥현신개?”

옥현신개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방여립인지를 의심하오? 아니오. 나는 그저 모두가 역모를 한다면, 백성 모두가 힘들어질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오.”

사도명은 고개를 돌려 연자강을 보았다.

연자강이 다가왔다.

오른손에서 뿌연 빛이 일어났다. 옥현신개는 그 빛이 자신의 몸을 훑는 것을 막지 않았다.

연자강이 고개를 저었다.

“방여립과는 관계가 없다.”

옥현신개는 복명단이 아닌, 신 무림맹 맹도들을 보며 말했다.

“나 역시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무제를 존경하오. 하지만 대역죄를 범한 것은 사실이잖소?”

화운악이 신음했다.

옥현신개는 역모죄를 앞으로 내세움으로써, 다른 사람이 끼어들 명분을 차단해 버린 것이다.

사도명은 허탈하게 웃었다.

“방여립과 싸워왔다. 이제는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을 건 그대들과도 싸워야 한다고?”

“하늘을 바꾸고 싶소, 무제?”

옥현신개가 사도명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방법은 있소. 여기 모인 우리를 모두 죽이시오. 그리고 하늘을 제대로 바꾸는 거요.”

“나쁜 방법이군. 하지만 어쩔 수 없다면, 가장 나쁜 방법이라도 사용할 수밖에.”

사도명이 오른손을 들었다.

무서운 기세가 그의 몸에서 일어나, 주변 삼 장 가까운 거리를 휘감았다.

사도명은 생사여일의 공력을 옥현신개를 향해 쏘았다.

쿠우오오-!

“안 돼요. 그러지 마.”

은교교가 두 팔을 넓게 펼치며 나타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녀는 사도명의 앞을 막았다.

사도명은 쏟아내던 공력을 황급히 거둘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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