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61화 (161/168)

161화.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

천사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길러졌다.

그렇게 교육받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강해졌다.

“하지만 우린 결국 세상을 구하진 못했지. 우리들 중 세상을 구한 사람은 오직 한 명이야.”

비화가 동료를 둘러보았다.

무화는 소화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에게 있어 세상은 사랑한 소화의 목숨 그 자체였다.

한 방에 모인 여섯 명의 천사는, 이제는 죽고 없는 무화를 오히려 부러워했다.

“우리는 힘을 합해 조화무제와 싸웠다. 그리고 졌어.”

무화가 몽화와 능화를 각각 본 다음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 정도 노력이면 우리 할 바는 다했다. 나는 방여립 교주에게 더 이상 마음의 빚이 없다.”

몽화가 한숨을 쉬었다.

“명색이 세상을 구하기 위한 천사다. 세상을 무너뜨리는 방여립의 명교를 더 이상은 찬성해 줄 수 없는 노릇이지.”

능화도 웃었다.

“솔직히, 우리 중 몇 명이 방여립 교주여도 이젠 이상한 일도 아닌 세상이 됐으니까.”

세 사람은 협공하여 사도명과 싸웠다.

그리고 패배했다.

그들은 죽음을 각오했지만, 사도명은 손을 멈추었다.

세 사람은 사도명이 마지막에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 뭘 하고 싶지? 나는 세상이 부서지는 걸 막고 싶은데.

비화가 웃었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어. 우리도 세상이 부서지는 건 싫다고. 세상에 부서지는 걸 막기 위해서 우리는 길러졌다고.”

소화가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가 만약 이야기라면, 스스로 부서지는 이야기겠지?”

밀화가 벽에 손을 대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이야기라면 애초 시작되지 않는 편이 좋지 않았겠어?”

흑화가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그곳에 잡혀 있는 혈화의 흑검을 보았다.

“그럼 이러한 색이 나의 이야기인가? 암울하고 어두운색! 천하를 구하는 운명으로 길러져서, 천하를 무너뜨리는 이야기.”

밀화가 벽을 다시 만졌다.

“이 벽, 이상하지 않아?”

“뭐가?”

“우리 여섯 명이, 왜 오늘 여기에 모두 모였지?”

“글쎄. 난 안내를 받아 왔어. 너희들이 기다린다고 들었지.”

“나도 똑같이 들었는데. 네가 모은 것이 아니었나, 밀화?”

“나는 소화, 네가 모두를 모았다고 전갈받았어.”

여섯 명이 돌아가면서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먼저 모이자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밀화가 벽을 가리켰다.

“만져 봐. 점점 뜨거워지고 있어. 실내도 더운 것 같지?”

소화가 다른 쪽 벽을 만졌다.

“여기도 뜨겁네. 아무래도 이 방, 이상한데. 방도 더운 정도가 아니라 찌는 것 같고.”

“이 방으로 안내한 사람이 누군지 각자 말해 보자.”

밀화는 자신을 안내해 온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나머지 다섯 명도 자신을 안내한 사람을 말했다.

“젠장. 우리 모두 같은 사람에 의해 안내받았던 건가?”

방은 무덥다 못해 뜨거웠다.

흑화가 검을 들었다.

“방을 덥히는 건 그놈이겠군.”

흑화의 검에서 검은 구멍이 여러 개 생겨나서 맞은편의 벽을 향해 쏘아갔다.

“우리가 시작되지 말았어야 할 이야기라고 말한 사람, 누구야?”

콰-쩌엉!

검은 공이 벽에 부딪쳤다.

천 근 거석이라도 부술 힘이 쏟아졌지만, 벽은 부서지지 않았다.

밀회가 말했다.

“내가 말했다. 아무래도 우릴 이곳에 모은 놈은 세상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우리의 이야기를 끝낼 작정 같은데.”

벽은 멀쩡했다.

방안에 모인 누구도 이런 결과를 상상하지 못했다.

천사 중의 한 명인 흑화의 검을 막아낼 수 있는 벽이라니!

“만년한철에 자모사를 섞어 강화시켰나? 흑화의 검을 막아냈다면, 내가 해 봤자….”

소화가 오른손을 들었다.

그녀는 연달아 예닐곱 번의 장력을 쳐냈다.

퍼퍼퍼퍼퍼-펑!

하지만 벽은 멀쩡했고, 부서질 기미조차 없었다.

방안은 더욱 뜨거워져서, 이제는 내공을 끌어올리지 않고는 견디기조차 어려웠다.

“우릴 안내한 놈. 그놈이 방여립 교주였을까? 자신을 배신한 우릴, 죽이겠다 결심한 걸까?”

밀화가 쓰게 웃었다.

“이제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네. 우리들 중에는 방여립이 없어. 있었다면, 우릴 모두 쪄 죽이려 하진 않겠지.”

비화가 냉소했다.

“있는 편이 더 좋은데.”

“있는 편? 왜?”

“우리 중에 방여립이 있다면, 바깥의 방여립이 그를 구하려고 들 거잖아. 우린 죽지 않고.”

“좋군. 시험해 보자.”

소화가 눈을 빛냈다.

그리고 내공을 돋아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내가 방여립이다. 바깥의 너는 같은 사람인 나를 정말로 죽일 참이냐?”

갑자기 문이 열렸다.

화아아-!

차가운 바람이 열린 문에서 밀물처럼 들어왔다.

여섯 명의 천사들은 열린 문으로 앞을 다투어 나갔다.

시원한 바람을 호흡했다. 그런 후에야 주변을 살폈다.

질풍권 왕삼이 서 있었다.

여섯 명 모두를 만년한철로 된 밀실까지 안내한 사람은 그였다.

왕삼은 혼자 있지 않았다.

그의 뒤에 다른 사람이 보였다.

그는 검을 손에 들고 왕삼의 뒷목을 겨누고 있었다.

“마합지 장군.”

밀화가 그를 불렀다.

마합지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름을 바꾸었다. 나는 정화. 이제부터 황제께서 내려주신 이름만을 계속 사용할 것이다.”

“문을 열어준 사람이 정화 장군이었소?”

“내가 맞다.”

“문을 잠근 건 그 녀석인가?”

밀화는 정화의 검이 왕삼의 목에 겨누어진 것을 보았다.

“수상한 짓을 하고 있기에 붙잡았다. 붙잡아 물어보려는 순간에 고함 소리를 들었다.”

정화는 소화를 보았다.

“스스로 방여립이라고 외친 목소리는 네 것이 맞느냐?”

“내 목소리 맞아. 그렇다고 반말을 듣고 싶진 않은데 어쩌지.”

소화가 정화의 앞에 섰다.

“나보단 왕삼에게 먼저 묻지 그래? 방여립이 맞냐고.”

정화는 왕삼을 보았다.

왕삼은 목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천천히 몸을 돌렸다.

“왕삼은 보타산 전투에서 왼팔을 잃었던 적이 있다. 그때 스며들었다. 오래 잠을 잤었고.”

말하는 건 왕삼이 아니었다.

“방여립이 맞구나.”

정화는 검을 앞으로 뻗으려 했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소화가 한숨을 쉬었다.

“방여립은 한 명의 힘으로 사천 당문 절반을 부쉈어. 왕삼이 방여립이 맞다면, 정화 장군. 귀하의 힘으로는 당해낼 수 없다.”

“정답이야.”

왕삼이 몸을 돌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정화는 알 수 없는 힘이 온몸을 옭아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힘은 왕삼에게서 뻗어 나오고 있었다. 왕삼이 오른손을 들었다.

정화는 비로소 깨달았다.

왕삼은 정화에게 제압당했던 것이 아니었다.

소화의 외침 때문에 문을 여느라, 잠시 방심한 것뿐이었다.

- 내가 방여립이다.

방여립은 너무 많이 퍼졌다.

다른 사람이 자신일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정화는 왕삼의 손을 피할 능력이 자신에게는 없음을 깨달았다.

‘안 되는데! 내 여동생에게 알려야 하는데.’

정화는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황상의 은혜도 갚지 못하고 이대로 죽어서는 안 되는데.’

쩌어-엉!

정화는 멀쩡했다.

왕삼이 입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날려갔다.

정화는 날려가는 왕삼과 자신의 사이로, 표표히 날아내리는 사도명을 보았다.

“…조화무제!”

“괜찮소, 장군?”

사도명이 뒤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정화는 대답하지 못했다.

날려간 왕삼이 입가의 피를 닦으며 소리쳤다.

“살아 있다고, 사도명? 죽지 않았다고, 아직? 도대체 어떻게?”

- 아마도 나 때문일 거다. 내가 깨달은 파혼검 때문일 거고.

옆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왕삼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을 보았다.

“연자강! 혹시 너는….”

“대장이 아니라 연자강인가? 혹시 내가 방여립인지 묻는 거라면, 행동으로 답해주지, 방여립!”

연자강의 오른손이 왕삼의 얼굴에 닿았다.

닿은 순간 힘이 일어났고, 왕삼의 몸에서 무엇인가를 밀어냈다.

사도명이 정화를 보았다.

“파혼의 검! 방여립의 혼을 부수기 위해 만들어 낸, 연자강의 여덟 번째 우주검이오.”

정화가 사도명에게 포권했다.

“목숨을 구해주셨군. 감사드리오, 조화무제.”

“그 얘기 나누기 전에….”

사도명은 소화를 보았다.

“먹구름이 햇살을 가렸소.”

소화가 냉소했다.

“무슨 헛소리야? 하늘은 꽤나 맑던데.”

사도명은 빙그레 웃더니 연자강을 보았다.

“이 정도면 굳이 검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자강.”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실례하겠소, 소화천사.”

연자강이 오른손을 들었다.

손에서 일어난 기운이 소화의 주변을 훑었다.

소화는 저항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도명이 뿜은 기운 때문이었다.

“방여립이 아냐. 나선 김에 다른 천사들도 조사할까?”

“그 전에 내 볼일부터.”

정화가 사도명을 보았다.

“내 여동생을 데려가도 되겠소? 여동생을 데리러 왔다가 복잡한 일에 휘말렸소.”

“여동생? 누가 말이오?”

정화의 시선이 소화를 향했다.

“어릴 때 헤어졌소. 서역 정벌이 있었을 때, 나는 황실에 들어와 환관이 되었고, 여동생은 명교에 뽑혀 천사 후보가 되었지.”

**

새로운 날이 밝았다.

사도명은 네 명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은교교, 곽소혜, 연자강, 그리고 왕삼이었다.

네 명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방여립에게 혼을 잠식당했다가, 이겨 낸 사람들이었다.

왕삼이 한숨을 쉬었다.

“마치 꿈같습니다. 거대한 그림자가 절 집어삼켰고, 저항하기 힘들었습니다.”

사도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 방여립으로서의 기억은 빠르게 사라질 거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떠올려 봐. 방여립의 생각을 알아내자.”

“한 가지 단어만 떠오릅니다. 그 단어는 정말 선명합니다.”

왕삼이 말했다.

“반란.”

은교교, 곽소혜, 그리고 연자강이 동시에 외쳤다.

“대반란!”

네 사람의 머리에 똑같은 단어가 떠올랐다는 건, 그 단어가 방여립의 영혼 가장 깊숙한 곳에 저장되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도명은 미간을 찡그렸다.

“대반란. 그 정도의 단어가 은유로 쓰였을 리 없다. 반란은 그저 반란일 것이다. 방여립이 그 단어를 생각하는 이유는….”

콰-앙!

문이 부서질 듯이 열렸다.

“아룁니다, 상이시여. 천하 도처에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도광효가 다급한 모습으로 달려서 들어왔다.

“시기가 공교롭습니다. 황궁의 변고를, 천하가 아는 걸까요?”

사도명은 한숨을 쉬었다.

“공교롭지 않다. 다른 방여립들은 지금 내가 죽은 것으로 알 것이다. 황실은 방여립들로 제압되어 있다 판단할 것이다.”

“그럼 이것도 모두 방여립의 계획인 겁니까?”

“바깥에서 일어나고, 안에서 호응해야 반란은 성공한다. 모든 반란군의 흐름은 일정할 것이다. 그들의 뒤에 방여립이 있다. 내부에도 있을 것이다.”

**

반란군은 흉포했다.

그들은 관군을 해쳤고, 민간인도 해쳤다.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일은 더더욱 두려워하지 않았다.

반군이 휩쓸고 지나가서, 폐허로 변한 현장에 사도명은 대풍자와 함께 서 있었다.

대풍자가 물었다.

“막아야 하지 않겠나?”

“저들을 막을 순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반란군은 너무 많습니다. 모두를 막을 순 없겠죠.”

사도명은 한숨을 쉬었다.

바닥에 시체가 많았다.

대풍자는 시체의 사인을 살피더니, 말했다.

“확실히 시체 대부분에 남겨진 것은 방여립의 흔적이다.”

“하지만 다른 흔적도 꽤나 많네요. 지난번 현장보다도 늘었고요.”

사도명은 미간을 찌푸렸다.

“모두 평범한 백성이었을 텐데, 왜 이렇게 난폭하게 변했을까요? 살인도 겁내지 않습니다.”

“공포 때문이다.”

“공포. 뭘 두려워하죠?”

“벽씨 가문이 멸망했다. 곳곳에서 자폭이 벌어진다. 더러는 말을 듣지 않으면 죽게 될 거라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이 반란의 결과로 권력을 쥐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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