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60화 (160/168)

160화. 공평하게 만들어 준다

“나는 아주 많이 지쳤소.”

사도명이 누웠다.

은교교가 그의 머리를 자신의 허벅지로 받쳐 주었다.

“푹 쉬어요. 저녁에 많은 일이 있었어요. 곽소혜를 찔렀죠.”

사도명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다시 감았다.

“둘이 친구인 줄 알았는데.”

“종심기도 그런 말을 하더군요. 진짜 친구기에, 찔렀으나 실수로 생명은 건진 것이라고.”

“곽 소저가 죽지 않았다는 건가? 역시! 잘 됐소.”

사도명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내일 마저 얘기합시다. 지금은 아주 지쳤어. 너무 지쳤소.”

사도명은 잠이 들었다.

“아쉽네요. 매우 정성을 들여서 선물을 준비했는데.”

은교교가 사도명의 이마 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조금만 덜 지쳤다면, 내가 준비한 선물을 마음껏 즐길 수가 있었을 텐데, 조화무제.”

은교교의 손이 등 뒤로 돌아갔다가 다시 나왔다.

비수 한 자루가 그녀의 희고 여린 손가락에 잡혀 나왔다.

날이 퍼렜다.

극독이었다.

독을 묻힌 비수가 아니라면, 날은 푸르지 않고 은빛으로 빛나야 할 것이다.

“넌 알아야 했다. 나는, 우리는 늘 준비하고 있다는 걸.”

독 묻은 비수가 은교교의 손에 잡혀 높이 솟았다.

“우리는 모두 이룬다. 이루고자 하는 것을 반드시 이룬다.”

비수는 아래로 떨어졌다.

독으로 빛나는 날 끝이 사도명의 심장을 정확하게 노렸다.

**

곽소혜는 앉아 있었다.

은교교의 검은 그녀를 깊이 찔렀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위험한 급소는 모조리 피했다.

그녀의 앞에는 연자강이 누운 침상이 보였다.

옆에는 종심기가 서 있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곽 소저. 검이 조금씩만 빗나갔어도 무사하지 못했을 겁니다.”

곽소혜는 빙그레 웃었다.

“운이 나빴죠. 은령선자가 절 오해했으니까요.”

“오해였다고요?”

“전 배신하지 않았어요.”

곽소혜가 쓰게 웃었다

“방여립의 혼이 남편을 점령하려 해서 찔렀을 뿐이지요.”

종심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오해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어쨌거나 다행입니다. 이제 연 대장님만 깨어나면 되는데.”

그때, 종심기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연자강이 눈을 떴다.

“연 대장님. 깨셨습니까?”

연자강은 종심기를 보고, 뒤이어 곽소혜를 보았다.

곽소혜가 그의 손을 잡았다.

“괜찮죠? 괜찮은 거 맞죠?”

“덕분에. 괜찮을 수가 없었는데, 괜찮아졌소.”

연자강은 창을 보았다.

“바깥은 어떻소? 하늘은 맑소? 구름에 햇살이 가려져 있소?”

곽소혜가 환하게 웃었다.

“먹구름은 모두 비로 내렸어요. 언제까지 흐릴 수야 있나요? 햇살은 다시 나올 겁니다. 나왔다가 곧 다시 흐려지겠지만요.”

**

사도명은 눈을 감은 채였다.

그는 꿈결 같기도 하고, 현실 같기도 한 속에서 벽공의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 정성 들여 준비했지. 너를 위한 선물이다.

비슷한 소리를 들었다.

선물! 준비한 선물!

회상 속의 벽공이 했고, 꿈결 속의 은교교가 했다.

독 묻은 비수가 사도명의 심장을 악독하도록 정확하게 찔렀다.

째-앵!

맑은 음향과 더불어 비수의 날이 부러졌다.

비수는 사도명의 심장을 감싼 호신강기를 뚫지 못했다.

비수의 날이 부러졌고, 헛되이 바닥을 뒹굴었다.

은교교가 눈을 크게 뜨고 사도명을 보았다.

사도명은 어느새 일어나 침상에 앉아 있었다.

“잠들지 않았나요?”

“잠들었다고 생각했나?”

“잠들어야 했는데. 호신강기를 일으키지 못했어야 했는데.”

사도명은 일어섰다.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부러진 검을 잡아, 삼매진화를 일으켜서 태웠다.

“바깥의 날씨가 어떨 것 같나? 먹구름이 햇살을 여전히 가리고 있을까?”

은교교의 눈이 빛났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사도명을 뚫어져라 보았다.

사도명의 손바닥 위에서 비수의 날이 독과 함께 녹아내렸다.

“왜 대답이 없지?”

“뭐라 대답해야 하죠?”

“모범 답안은 이렇게 대답하는 거야. 먹구름은 모두 비로 내렸다. 그럼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거지. 아! 우리구나.”

사도명이 한숨을 쉬었다.

“너도, 나도, 모두 같은 방여립이구나. 그걸 깨닫는 거지.”

은교교는 한참 동안 사도명을 보다가 깔깔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아는구나. 이미 알았어. 이 대화가 알려졌다면, 우린 약속을 바꾸어야겠는걸. 하지만 어쩐다? 하하하. 세상엔 이 사실을 모르는 ‘내’가 많은데.”

한참을 웃다가, 은교교가 웃음을 멈추었다.

“마음에 드나? 내가 정성 들여 준비한 선물.”

“마음에 들어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방여립.”

“검으로 나의 목을 따볼까? 내가 죽는 거지만, 은교교도 죽는 건데, 네 기분이 어떨까?”

은교교는 사도명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보고 다시 웃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은교교가 은교교가 아니라는 걸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야?”

“약속의 단어는 너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방여립.”

사도명은 은교교의 허리를 가리켰다. 거기 방울이 있었다.

은교교는 방울을 흔들어 보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구슬이 없다. 내게 혼을 침습당하기 직전에 은교교가 방울 속의 구슬을 부쉈구나.”

“울지 않는 방울은 은령이 아니다. 우린 그렇게 약속했지.”

“영리하구나. 하지만 네 여자의 몸은 내가 점령했다. 이 여자를 포기할 수 있겠느냐?”

사도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은교교가 다시 웃었다.

“이것이 내가 마련한 선물이다. 날 죽이기 위해서 네 여자도 죽일 수 있겠느냐?”

사도명은 대꾸하지 못했다.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결코 아니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연자강과 곽소혜가 종심기와 함께 들어왔다.

실내의 상황을 보고, 종심기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

“어찌 된 일입니까, 무제?”

종심기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연자강의 오른손이 그의 혼혈을 짚었고, 그는 쓰러졌다.

쓰러지는 종심기를 보며, 곽소혜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종심기는 계속 물었어. 나와 은교교가 친구 사이 아니냐고? 이제 확실히 알겠군. 우린 친구보다 더 밀접한 사이란 걸.”

사도명은 연자강과 곽소혜를 번갈아 보았다.

눈빛이 급변하더니, 그는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이건 아냐. 이래선 안 된다.”

그는 뒤로 걷다가 결국 침상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은교교가 웃었다.

“만에 하나 네 여자를 죽일 수 있다고 치자. 그럼 친구는? 친구의 아내는? 계속 죽일 수 있나?”

곽소혜도 깔깔 웃었다.

“하하하. 버텨봐라, 사도명. 우리 셋을 모두 죽이고 살아남아 봐. 계속 기다려 줄게. 네가 세상에 소중한 사람을 갖기를! 그리고 그 사람을, 네가 또다시 죽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마.”

사도명은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자신이 눈앞에 있는 세 사람 중 누구도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방여립의 무서움.

이혼대법의 무서움.

은교교가 다시 웃었다.

“세상에는 절대로 맞서 싸울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 있다. 그게 바로 나, 방여립이야.”

싸울 수 없다면 지는 것 외에는 선택할 방법이 없다.

사도명은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 이제 예감하고 있었다.

그는 세 명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이윽고 연자강에게서 시선을 멈추었다.

“벽씨 마을로 가기 전에 나는 네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떠났었다. 기억하느냐, 자강?”

“내가 연자강이 아니란 걸 잊은 모양이구나, 사도명.”

사도명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기왕 죽어야 한다면 은교교! 네가 죽여다오. 아니, 곽 소저. 당신 손으로 죽여주시오. 친구의 손에는 죽고 싶지는 않아.”

은교교가 크게 웃었다.

곽소혜도 웃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연자강을 보았고, 사도명은 그들의 의도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끝내 가장 비참한 죽음을 안기겠다는 거냐, 방여립?”

연자강이 손을 들었다.

강기의 검이 그의 손에서 길게 일어났다.

사도명은 결국 한숨을 길게 쉬며, 눈을 감고 말았다.

“이렇게 될 거 같았었다.”

은교교 속의 방여립이 웃음과 함께 물었다.

“하하하. 그래도 마지막 대답은 해주면 좋겠는데. 우리가 준비한 선물이 마음에 드나?”

사도명은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가 결국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무척. 더 이상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마음에 든다.”

연자강이 검을 휘둘렀다.

강기의 검은 유형이 아니라 무형이었고, 몸을 베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도 벨 수 있었다.

파-앗!

검은 사도명을 베지 않았다.

연자강이 휘두른 검은 은교교의 몸을 지나갔고 그녀의 몸이 아니라 다른 것을 베었다.

은교교의 눈이 커졌다.

그녀의 몸에서 무엇인가 솟구치더니 공중에서 흩어졌다.

곽소혜가 놀라서 소리쳤다.

“무슨 짓이냐, 연자강?”

소리치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는, 아니 그녀 속에 있는 방여립은 깨달았다.

방금 검을 휘두른 사람은, 그 자신의 질문처럼 방여립이 아니라 연자강이었다.

연자강이 만든 무형의 검은 조금 전 은교교의 몸에서 방여립의 혼을 잘라낸 것이다.

곽소혜는 놀라서 물러났다.

“너는 내, 내가 아니었나? 너는…. 너는 내 혼을 받은 것이 아니었느냐, 연자강?”

“친구에게 부탁을 받았다.”

연자강이 곽소혜를 보았다.

“혼이 점령당한 사람의 몸에서, 침략한 혼만 제거하는 방법. 이른바 파혼의 검!”

곽소혜는 사도명을 보았다.

“너, 너는 알고 있었느냐?”

사도명은 고개를 저었다.

“몰랐지. 그저 믿었을 뿐이야. 친구에게 부탁했으니, 친구가 그 약속을 지켜줄 거라 믿어야지.”

은교교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이마를 잡고, 사도명과 연자강을 번갈아 보았다.

혼을 점령당했을 때의 기억이, 빠르게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곽소혜가 소리쳤다.

“함정을 팠었다. 팠다고 생각했다. 그 반대였던 건가? 함정에 빠진 건 오히려 나였나?”

사도명은 빙그레 웃었다.

“정성 들여 준비한 선물이다. 마음에 드나, 방여립?”

곽소혜는 웃지 못했다.

그녀 속의 방여립은 이 함정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았다.

“너희가 먹구름과 햇살을 안단 거지? 나 외의 방여립은, 그 사실을 모른단 거고. 지금까지 너희는 방여립들이 누군지 모르고 싸워왔는데, 이제 달라진다는 건가?”

“공평해지는 거지. 방여립들은 앞으로 누가 가짜 방여립인지를 모르고 싸워야 할 거다.”

“네 말은 그러니까….”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연자강이 뻗은 무형의 검이 곽소혜를 베었다.

파혼검에 의해 방여립은 단숨에 사라졌다.

곽소혜가 쓰러졌다.

쓰러지는 그녀를 연자강이 부축할 때, 사도명은 아직도 완전히 기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은교교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방여립이 하려고 했던 말의 뒤를 이었다.

“그러니까 시작이란 거다.”

연자강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사도명의 말을 보충했다.

“진짜 반격! 네 부탁을 받고 만든, 내 여덟 번째 검! 파혼검이 만들어 내는 우리의 진짜 반격이 비로소 시작된다.”

**

마합지는 울었다.

그의 앞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복명단 사람들이었고, 신 무림맹 사람들이기도 했다.

옥현신개가 마합지를 안내하여 이곳으로 데려왔다.

가장 앞에 도성 무령자가 앉아 있었고, 가장 뒤에는 도제 담표운의 모습이 보였다.

옥현신개는 마합지에게 황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황제의 죽음에 대해, 도광효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모두 전했다.

마합지는 울기 시작했다.

“아아. 황제께 이름을 받았는데도 사용하지 못했는데! 은혜를 받았는데도 갚지 못하였는데.”

옥현신개가 그를 다독였다.

“우릴 돕겠습니까?”

“두말할 필요 있겠소? 돕겠소. 아니 오히려 도와주시오. 무조건 도와주시오. 옥현신개.”

마합지는 등을 두드리는 옥현신개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무령자를 보았다.

“여기의 우두머리시죠? 난 앞으로 정화란 이름으로 살 겁니다. 그 이름으로 난생처음 부탁을 하겠는데, 복명단에 제 여동생을 넣게 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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