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방여립의 역공
비가 계속 내렸다.
은교교는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와서, 몸을 씻지도 않았다.
종심기가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여 설명했다.
“체포 당시, 연자강 대장을 찌른 채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연 대장의 상태는요?”
“피를 너무 많이 흘렸습니다. 간간이 정신을 차리지만 중태입니다. 정신을 차리면 계속 무제를 만나야 한다는 말뿐입니다.”
“곽 소저는요?”
“소림 참회동을 재활용한 뇌옥에 가두었지만, 솔직히 우려됩니다. 탈출을 마음먹으면, 곽 소저의 무공 수위로 보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다행히 탈출 시도는 없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말 한마디 없습니다.”
잠시 후 은교교는 곽소혜와 마주 앉았다.
종심기가 설명을 이어갔다.
“살해 시도의 의도를 계속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습니다. 곽 소저는 줄곧 마치 혼이 없이 몸만 있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은교교는 곽소혜의 얼굴을 살폈다. 두 눈이 구멍이라도 뚫린 듯 퀭했다.
은교교는 둘러서 묻지 않았다.
“왜 찔렀어요?”
곽소혜가 고개를 들었다.
종심기는 깜짝 놀랐다.
“이런 반응조차 처음입니다. 선자께서 오시니 반응하는군요.”
곽소혜는 계속 종심기를 보았다. 눈빛의 의미를 깨달은 종심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 있겠습니다. 두 분이 얘기하십시오.”
“뒤따라 무제가 올 겁니다.”
“아!”
연 대장에게 안내하고, 저는 이곳에 곽 소저와 있다 알리세요.”
“그리하겠습니다.”
종심기가 나간 후, 은교교는 다시 곽소혜를 보았다.
곽소혜가 파르르 떨다가, 끝내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은교교는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한번 묻고 말았다.
“왜 그랬어요?”
“…남편이 원했어요.”
곽소혜의 대답은 충격이었다.
세상에 스스로 찔리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연 대장이 말입니까?”
“찌르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남편은 싸우고 있었고, 그 싸움에서 질 것 같다고 했어요.”
은교교는 모든 상상력을 총동원했다.
연자강은 누구와 싸웠을까?
싸움에서 질 것 같을 때, 스스로 찔려서 죽기를 원하는 싸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답은 어렵지 않게 은교교의 손안으로 들어와 주었다.
“설마 방여립의 혼이 연 대장의 몸을 차지하려고 했나요?”
곽소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교교는 다시 물었다.
“연 대장의 혼이 방여립의 혼과 싸웠다는 겁니까? 싸우다가 질 것 같기에 스스로를 찌르라고 말했다는 건가요?”
곽소혜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쓰러졌어요. 피를 많이 흘리겠지만 죽지 않을 겁니다. 제게 그 정도의 능력은 있어요.”
“해친 것이 아니라 혼절시킨 거군요. 도와준 거군요.”
“방여립이 남편의 몸을 차지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어요.”
은교교의 안색은 무거웠다.
방여립은 이혼대법을 사용한다.
이혼대법은 자신의 혼을 나눠서 다른 사람의 몸에 옮기는 것으로 어기전혼과는 다르다.
어기전혼은 먼 곳의 육체에 혼을 보낼 수 있지만, 이혼대법은 가까운 곳에서 몸이 접해야만 혼을 옮길 수 있다.
“그렇다면 신 무림맹 안에,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방여립이 있다는 거군요.”
“있어요.”
“그게 누굽니까?”
은교교가 소리쳤다.
“연 대장은 알았을 거잖습니까? 자신에게 혼을 옮긴 자가 누군지 알고서, 싸움을 시작했을 거잖아요.”
“남편은 이게 방여립의 역공이라고 말했어요.”
“그 역공을 행한 자. 그가 누굽니까? 말해주세요.”
“그는….”
곽소혜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곽 소저!”
은교교가 불러 보았지만, 곽소혜는 대답하지 않았다.
일체의 반응도 보이지 않는 모습은 혼이 빠진 인형 같았다.
은교교는 종심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 마치 혼이 없이 몸만 있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일부러 하는 행동이 아니라면? 혼이 몸을 제어할 여유 없이, 다른 곳에서 싸우고 있다면?”
은교교는 곽소혜의 뒤로 돌아가서 등에 손을 대고 섰다.
“제 말이 들립니까? 혹시 방여립과 싸우고 있습니까?”
“…남편이 말하길, 자신에게 방여립을 옮긴 자는…. 으으! 안 돼요. 그가 말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어요.”
“돕겠습니다.”
“내게도 방여립이 옮겨왔어요. 줄곧 싸우다가 가까스로 몰아붙였다고 생각했는데…. 으으, 조금 전 말할 때 방여립이 다시….”
“무제께서 말하길 영혼의 무공은 이혼대법을 막아내는 힘이 있댔어요. 지금 전하는 내공은 천중무극신공의 힘이고, 조화심의 근본이니 도움이 될 겁니다.”
“나, 나를 찔러요. 나를 죽이세요. 나는…. 마음을 빼앗기기 싫어요. 제발 나를….”
“그럴 순 없어요. 돕겠습니다, 곽 소저! 힘내요. 이겨 내세요.”
“으으. 내공을 더! 더 많이! 더 주세요.”
“얼마든지.”
은교교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반면 곽소혜의 안색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은교교가 무엇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곽소혜의 입꼬리에 미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곽 소저! 괜찮아요?”
“물론 괜찮다! 이 여자가 괜찮은진 모르겠으나, 일단 나는 매우 괜찮구나. 하하.”
고운 곽소혜의 목소리 그대로였다. 하지만 목소리가 전하는 내용은 전혀 곽소혜의 것이 아니었다.
은교교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방여립?”
“이미 이 여자는 가졌다. 완전하게 가졌지. 이 여자는 남편을 찌를 재주는 있었지만, 자신에게 들어선 날 찌를 재주는 없었어.”
“너는 이미 곽 소저를 점령하고도, 나를 노려서…!”
은교교는 곽소혜의 등에 닿은 자신의 손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곽소혜가 두 손을 교차하여 들었다.
그녀의 손이 갈고리처럼 단단하게 은교교의 손목을 잡았다.
“그래. 너를 노렸다, 은교교! 이건 선물이야. 조화무제에게 주려고 친절하게 준비한!”
은교교는 손목에서 출발한 시큰한 통증이 자신의 온몸을 마비시킴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아아!”
“조화무제는 선물을 받을 수밖에 없을 거야. 다른 누구도 아닌, 너 은교교를 통해 줄 테니까.”
곽소혜가 몸을 놀렸다.
은교교는 그녀의 눈동자 깊은 곳에 위치한, 이글거리는 악의를 엿볼 수가 있었다.
그 악의야말로 방여립이 존재하는 양상, 그 자체였다.
“자아, 한번 보자. 은교교. 너는 곽소혜보다 나을지! 내가 널 통해서 사도명에게 들어가면, 곽소혜처럼 사랑하는 남자라 해도 기어코 찌를지 보자꾸나.”
은교교는 자신이 어린아이로 변했다고 느꼈다.
낯설고 어두운 골목.
어린아이가 된 자신이 몸을 떨면서 서 있는데, 거대한 검은색 그림자가 골목 끝에서 다가왔다.
방여립이었다.
그가 크고 흉측한 손을 내밀면서 웃었다.
그 손이 소리치는 것 같았다.
- 내놓아라. 내가 가진다. 너는 사라지고, 내가 네 주인이 된다.
“시, 싫어!”
“너는 나다. 내가 바로 너다. 나는…. 나다. 방여립이다.”
“시, 싫다 했잖아.”
마음속으로 은교교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오지 말아요, 도명. 함정입니다. 미안합니다. 저는 이 함정을 벗어날 수가 없네요. 정말 미안해요. 오지…마세요, 제발.’
**
밤이 깊어서야 비가 그쳤다.
종심기는 계속 기다렸다.
은교교가 뇌옥의 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종심기는 은교교의 앞으로 급히 달려갔다.
“일은 해결되었습니까?”
“네. 매우 잘 해결되었어요. 곽소혜가 자백했습니다.”
“자백…이라 하셨습니까?”
“연자강 대장을 찌른 이유를 솔직히 말했어요. 방여립에게 회유를 당했다는군요.”
은교교가 활짝 웃었다.
“방여립이 말했다 합니다. 연자강을 찌르면 새로운 세상을 만든 후, 가장 큰 권력을 주겠다.”
종심기는 어리석지 않다.
기이한 것은 기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그 말을, 믿으라고요?”
“곽 소저는 믿었나 봐요. 그러니까 연자강 대장을 찔렀죠.”
“….”
종심기는 물끄러미 은교교를 보다가 결국 물었다.
“그래서 곽 소저는 어찌 되었습니까?”
“죽었어요. 정확히 말해서, 제가 죽였죠.”
종심기의 눈이 커졌다.
“정말 죽이셨습니까? 두 분은 친구가 아니었습니까?”
“친구였죠. 그러니 얼마나 화났겠어요? 친구가 배신했잖아!”
“그런데 웃으십니까?”
“배신자를 죽였는데 울 수는 없지 않나요?”
은교교가 걸어갔다.
종심기는 차마 그녀를 막을 수가 없었다.
은교교가 멀어지자, 종심기는 황급히 뇌옥 안으로 들어갔다.
흥건한 핏속에 곽소혜가 누워 있었다.
그녀의 가슴에 깊이 박힌 검이 보였다.
서둘러 맥을 짚었다.
미미하지만 맥이 뛰고 있었다.
“아슬아슬 급소를 빗나갔다. 은령선자의 무공으로 이런 실수가 가능할까? 분명 이곳에서 조금 전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 어떤 일일까? 아직은 알 수 없구나.”
종심기는 응급조치를 하고, 서둘러서 의원을 불렀다.
밤은 깊었고, 비가 갰음에도 달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둡고 어두웠다.
종심기는 답답한 공기가 숭산에 가득 차서, 목과 심장을 옥죄고 있다고 느꼈다.
**
사도명은 밤이 더욱더 깊은 후에야 숭산에 도착했다.
화운악이 그를 맞았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무제?”
“벽공은 방여립이 맞았소. 그 외에도 서너 명의 방여립이 그 마을에 더 있었지.”
“아!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군요. 은령선자는 이른 저녁에 도착했습니다.”
“성화산인은 수십 명. 우리는 그들을 모두 찾아서 제거했소. 하지만 가장 중요한 방여립은 역시 그 벽공이었소. 그는 두 번째의 방여립이었거든.”
“두 번째! 아, 최초의 방여립에서 바로 분리되어 나온 방여립을 말하시는군요.”
“그는 최초의 방여립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요. 그 때문에 약을 먹이면서까지 생포하려 했지.”
“성공하셨습니까?”
사도명이 한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성공할 뻔했는데, 벽공으로서 살았던 그의 시절을 깜빡했소.”
“벽공으로서 살았던?”
“성화산인도, 다른 방여립도 모두 제거했소. 그랬는데 벽공을 끌고 오려는 순간에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우리의 앞을 막았소.”
“무공이 없는 사람들이니, 막아도 위험할 건 없잖습니까?”
“무공이 없는 사람들이니 공격할 수도 없었지.”
사도명은 한숨을 다시 쉬었다.
“벽공은 두 번째 방여립! 혼이 짙으면 재주도 뛰어난 걸까? 혼란스러운 틈에, 약 기운을 풀고 달아났소. 추적하려 하는데, 주민들이 또 앞을 막더군.”
사도명은 연이은 한숨만큼이나 지쳐 보였다.
화운악은 힘없이 늘어진 사도명의 옷자락을 보았다.
“은령선자가 곽 소저의 일은 처리하셨습니다. 그 일은 내일 보고드릴 테니, 우선은 쉬십시오. 한잔하시겠습니까?”
“나중에. 지금은 우선 연자강을 보아야겠소.”
“잠들었습니다. 잠든 사이에도 치유가 되니, 자게 두심이 좋습니다. 내일 만나시죠.”
사도명은 화운악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기어코 연자강을 만나러 가서, 잠든 연자강을 일다경 동안 혼자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나왔다.
“이제는 자야겠소. 지금 잠들면, 죽음만큼이나 깊이 잠들 수가 있을 것 같소.”
화운악은 포권했다.
“편히 쉬십시오.”
사도명의 몸이 모퉁이를 크게 돌아 숙소로 사라진 후, 화운악은 혼잣말처럼 말했다.
“저런 사람에게 꼭 세속의 규범을 적용해야만 하겠소?”
뒤쪽,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서 옥현신개가 걸어 나왔다.
“어찌하겠소? 어떤 이유로건 역모를 용납한다면, 세상은 뒤집어지고 다시 뒤집어질 텐데.”
숙소에 도착했다.
은교교가 사도명의 숙소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날 기다린 건가?”
은교교가 환하게 웃었다.
“오늘은 달이 교교하지 않네요. 당신도 지쳐 보이고. 재워주고 싶었어요. 안온한 휴식을 선물로 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