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58화 (158/168)

158화. 선물이 마음에 드나?

무사들이 마을을 포위했다.

신 무림맹 무사들의 판단에는, 주민 중 내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열에 한 명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방심해선 아니 된다. 우리 당문은 농사꾼의 아들, 단 한 명에게 이런 모습이 되었다.”

사천당문의 가주 당백룡.

그는 무림 사제 중의 한 명으로, 강호에서는 독제라 불린다.

당백룡의 왼쪽 소매는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방여립에게 잘린 것이다.

단 한 명의 방여립에게 당문은 문주가 팔을 잃고, 문파 세력 절반이 무너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옥현신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방심하지 아니하오, 당 문주. 개방은 주변의 포위를 위해 최대의 인력을 동원했소.”

“우리에게 무제님이 계시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오.”

당백룡은 한숨을 쉬었다.

“무제가 계시지 않다면, 오히려 내가 이 전술을 말렸을 거요. 회천객도, 해제의 술도, 무엇보다 굉천환을 탐지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없다면, 지금의 포위는 오히려 우리에게 극도의 위험이오.”

오른손을 들고 있는 젊은 무사들이 여러 명 보였다.

그들은 굉천환을 탐지하는 방법으로, 사도명으로부터 배웠다.

젊은 무사들은 성화산인을 찾아내고, 굉천환을 제거할 것이다.

이건 싸움이 아니었다.

무사들의 눈은 상대를 구한다는 자부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무림에는 언제나 위기가 닥쳐왔소.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그걸 헤쳐 나왔지.”

독제 당백룡은 팔이 하나 잘렸음에도, 오히려 이전보다 용맹하고 담대해 보였다.

“지금도 우린 위기를 타개하고 있소. 그 위업의 가장 앞선 곳에, 조화무제가 계시오.”

옥현신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방도 적극적으로 참가합니다. 저도 무제를 존경합니다.”

옥현신개의 말이 거짓이 아님은 회천객이 된 무사 중 개방 제자의 수가 가장 많음으로 증명되었다.

“성화산인으로 인한 피해를 줄어들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방여립의 분신이지요.”

옥현신개의 말에 당백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들은 굉천환을 갖고 있지 않으니까.”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달리 없겠습니까?”

“다른 방법은 없지. 그 점도, 무제를 믿어보는 수밖에.”

“그런가요? 이번에도 천하는 무제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까? 그런 건가요?”

옥현신개의 시선은 이 층 난간, 바깥에 떠 있는 사도명을 향했다.

그는 바로 옆에 있어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든 걸 무제께 신세 지고 있으니, 어쩌면 우린 그의 허물조차 눈감고 넘어가야 하는 걸까요?”

옥현신개에게는 두 개의 마음이 동시에 존재했다.

두 마음 모두 진심이었다.

옥현신개는 두 번째의 마음을 전음으로 여러 사람에게 전했다.

[하지만 우리는 조화무제의 허물을 용서치 않기로 했습니다.]

누군가의 답이 들려왔다.

[모든 죄를 용서해도, 역모의 죄는 예외여야 하는 법이지.]

옥현신개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전음의 주인을 보았다.

신 무림맹 군사들의 한쪽 끝에, 자주색 도복을 입은 도사 한 명이 말을 타고 있었다.

사십 대 정도의 나이로 보였지만, 실상은 이백에 가까운 나이.

그는 무림삼성 중 불성 법허와 성심천자 좌인홍을 제외한 나머지 한 명이었다.

도성 무량자!

화운악이 신 무림맹을 재건할 때, 무림의 은거기인들도 초야의 생활을 버리고 돌아왔다.

그 중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도성 무량자와, 무림사제 중의 한 명인 도제 담표운이었다.

[알겠습니다. 무제가 방여립의 겁난을 완전히 진압하는 시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 후 역모의 죄를 묻습니다, 복명단원 여러분.]

무량자가 남몰래,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여기저기서 호응이 들려왔다.

[알겠소. 인내하겠소. 죄를 묻는 일은 나중이라도 가능하니까.]

그때 고함이 들려왔다.

“찾아냈습니다.”

좌중들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마을 왼쪽 어귀를 향했다.

“알리겠습니다. 회천 칠백십사호! 성화산인을 찾고, 굉천환의 제거에 성공했습니다.”

한 번 보고가 들려오자, 여기저기서 성공의 알림이 이어졌다.

“회천 오백칠십육호. 성화산인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폭발이 일어나기 전, 굉천환을 제거할 수 있었음을 알립니다.”

“회천 오백구십이호. 굉천환을 제거했음을 알립니다.”

당백룡이 환하게 웃었다.

“이 싸움은 우리의 승리요.”

옥현신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질 수 없고, 져서도 안 되는 싸움이니까요.”

“천하가 알아야 하오. 모두 무제의 공로라는 것을!”

“모두…. 입니까?”

“무제가 없었다면, 우린 굉천환을 제거하지 못할 거요.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폭발의 파편이 몸에 박혀 죽었을 거요.”

“알겠습니다. 모두 무제의 공로임을 기억하겠습니다.”

옥현신개는 한숨을 쉬었다.

귓속에서 전음이 울렸다.

[무제의 공로는 세상 모두가 기억할 것으로! 그 죄는 우리만 기억하기로! 그렇게 하세.]

다시 무량자였다.

[상황이 끝난 후 무제는 은밀하게 제거될 걸세. 우리에 의해서.]

옥현신개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다급한 말발굽 소리가 포위망의 바깥에서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옥현신개를 뒤를 돌아보았다.

말을 몰고 달려오는 사람은 조화결사대의 부대장 왕삼이었다.

그의 표정은 처참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얼굴에는 한 올의 핏기조차 없었다.

“무제는 어디 계시오? 무제께 전해야 하오. 반드시 전해야 하는 일이 생겼소.”

**

사도명의 질문은 단순했다.

“주민들에게 존경받는 이장으로서의 삶이, 지겨웠소? 혹은 즐거웠소?”

하지만 벽공은 한참의 시간이 흐르도록 대답하지 못했다.

이윽고 마을 여기저기서 성화산인을 발견하고, 굉천환 제거에 성공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벽공은 처음으로 입을 열어서 말했다.

“문제가 뭔 줄 아느냐?”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사도명은 그 내용을 알아들었다.

“몸을 점유한 혼인 방여립과 그 몸의 본래 주인은 항상 다투더군. 언제나 방여립이 이기지만, 그래도 자주 다투더군. 조금씩은 타협하기도 하고.”

벽공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가끔씩 나조차 모르게 될 때가 있다. 내가 방여립인지, 혹은 마을의 이장 벽공인지!”

“혼을 나누며 희석되는 건가? 귀하는 몇 번째 복제된 혼이오?”

“나는 두 번째다.”

벽공은 한숨을 쉬었다.

“몇 년 전이었더라? 나는 ‘처음’으로부터 분리되었지.”

사도명의 눈이 빛났다.

“꽤나 짙은 혼이 이 벽씨 마을 주변에 성화산인들과 수많은 방여립들을 만들어 냈던 거군.”

“벽씨 가문의 태반은 나였다. 의심을 사지 않고자, 내공도 익히지 않은 나를 수백 명 만들었지. 황제가 선수 치지 않았더라면, 아주 많은 수의 내가 관직에 올라, 천하를 가졌을 텐데.”

“그냥 황제가 되지 그랬소?”

“거긴 제왕검형으로 보호되고 있거든. 제왕검형은 영혼의 무공이어서, 이혼대법을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많다.”

도광효가 눈을 빛냈다.

“너는 실수로 이혼대법의 약점을 흘렸구나, 벽공. 영혼이 굳건하면 스며들지 못한다. 맞지?”

사도명이 한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맞지만, 실수일 리는 없소, 도광효.”

“상이시여. 지금 실수가 아닐 거라 말하셨습니까?”

“오히려 끔찍한 의미지. 방여립은 이미 완벽하게 준비를 끝낸 거요. 더 이상 이혼대법으로 자신을 늘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도광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상의 말이 옳으냐, 방여립?”

벽공은 껄껄 웃었다.

“하하. 조화무제가 없었다면 나는 무슨 재미였을까? 천하를 뒤집는 일이 너무 쉬워, 혹시 지겨움에 죽어버리지는 않았을까?”

그런 와중에도 성화산인을 찾고, 굉천환을 해제시켰다는 보고는 계속 울렸다.

벽공은 계속 허공에 떠 있으면서도, 전혀 힘들어하지 않는 사도명의 안색을 살폈다.

“내가 약에 당하지 않았더라면, 우린 즐겁게 싸웠을 텐데.”

“싸웠겠지. 그리고 귀하는 죽었을 거고. 물어볼 게 많소. 약을 썼기에 귀하는 살아 있는 거요.”

“음이 있어야 양이 생기고, 양이 성해야 음도 생긴다. 조화무제. 너는 내가 존재하기에 비로소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거다.”

“기왕 존재한 김에 귀하를 존재할 수 없게 만들 참이오만.”

“나를 이길 수 있겠나?”

“당신이 이미 말했잖소. 이길 수 없다면, 내 존재의 의미가 없는 셈 아닌가?”

“나는 오래 준비했다. 반면에 너는 숨 가쁘게 그 뒤를 따라오고 있을 뿐이야. 저 녀석들처럼.”

건물 아래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서둘러서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벽공은 웃었다.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널 위해서 참 많은 것을 준비했거든.”

계단을 통해 은교교와 왕삼이 함께 올라왔다.

은교교는 말할 것도 없고 왕삼의 내공도 어지간하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노인처럼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왜 그리 긴장했나, 둘?”

사도명이 묻자 왕삼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은교교를 보았다.

은교교가 한숨을 내쉬었다.

“본단으로 서둘러 돌아가셔야겠어요, 무제.”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 그대로가 나쁜 소식이었다.

사도명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혹은 누구에게 사고가 생긴 거야?”

“조화결사대장이, 연자강 소협이…. 검에 찔렸습니다.”

왕삼이 옆에서 울먹거렸다.

“가슴에 워낙 깊이 박혀서! 중태이십니다, 무제.”

“누가? 대체 누가? 누구에게 연자강을 찌를 수 있는 능력이 있더란 말인가, 왕삼?”

왕삼은 대답하지 못했다.

은교교가 입술을 깨물었다.

“곽소혜 소저입니다. 두 사람은 밀실에서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곽 소저가 갑자기 검을 뽑아 연 대장을 찔렀다 합니다.”

“흐흑. 워낙 중상이셔서…. 전 무제께 알리고자 그 길로 곧장 달려왔습니다.”

사도명은 울먹거리는 왕삼을 보다가, 발작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벽공은 웃고 있었다.

“말했잖아.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고. 가장 훌륭한 작품이니 부디 마음에 들기를.”

사도명이 움직였다.

허공에서 건물 안으로 곧장 들어오며, 벽공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텅!

벽공은 여전히 웃었다.

“이 정도로 내가 아플 리가 없잖아. 더 강하게! 숫제 나를 죽이는 것 어때, 조화무제?”

사도명의 두 손에서, 강력한 기운 두 줄기가 일어났다.

기운은 벽공의 몸속으로 들어가더니, 안에서 만나 폭발했다.

콰콰-콰콰콰콰쾅!

일의생멸은 발생과 소멸이 자유자재하다.

부드러운 기운으로 벽공의 몸 안에 들어간 일의생멸이, 합해지면서 폭발했던 것이다.

벽공이 처음으로 신음했다.

“크으-!”

사도명은 여전히 벽공의 멱살을 잡은 채, 은교교에게 외쳤다.

“무림맹으로 돌아가!”

“하, 하지만 연자강 소협이 중상이라면, 그분이 기다리고 있을 사람은 분명히….”

“나도 따라 간다. 어서 가!”

사도명은 벽공의 멱살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하지만 방여립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 있다. 이 방여립은 두 번째야. 가장 첫 번째의 방여립, 즉 세상 모든 방여립의 시작을 알아낼 열쇠라고.”

“크흐. 내가 마, 말할 것 같으냐? 알아낼 수 있겠느냐?”

사도명의 눈이 빛났다.

“막을 자신이 있나, 벽공?”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뚫어볼 수 있는 밀소림의 빛이 벽공의 온몸을 훑었다.

벽공이 다시 웃었다.

“무공이 아니라 이걸로 싸우는 것도 재밌구나. 흐흐. 어디 한 번 뚫어보아라. 나는 막아볼 테니!”

퍼퍼퍼-퍼퍼펑!

벽공의 몸속에서 다시 한번 폭발이 일어났다.

사도명은 내공을 흘려 벽공이 고통 속에 마음의 빗장을 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은교교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모르겠어? 어서 가! 위험한 건 자강이 아니라 곽소혜야.]

[그, 그게 무슨 말이죠?]

[남편을 검으로 찔렀다. 평범한 상태라면 가능한 일이겠어? 어서 가! 당장 가서 곽소혜를 구해.]

꽈드-등!

잔뜩 흐리던 하늘에서 뇌전이 일고 천둥이 쳤다.

은교교는 비로소 상황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녀는 벽공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사도명을 안에 두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곽소혜가 아무런 이유 없이 연자강을 찔렀을 리 없다.

벽공은 그런 상황을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설마 방여립이 곽 소저에게까지 침습했다고? 그래서 연자강 대장을 찌른 거라고?”

“가, 같이 가십시다, 선자.”

뒤에서 왕삼이 헐레벌떡 따라오면서 소리쳤다.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은교교는 전력으로 빗속을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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