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57화 (157/168)

157화. 역병이 퍼지는 모양새

은교교가 지도를 펼쳤다.

광혜원 후원의 조용한 방!

그녀는 사도명 외에도 원중양까지 방으로 데려왔다.

“두 분이 부상자를 치료할 때, 나도 도운 거 기억하시죠?”

은령의 방울 소리에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용이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면서, 나는 계속 그들이 어디에서 다쳤는지를 물었어요.”

은교교는 지도 위에 빠른 손놀림으로 표시를 시작했다.

부상자들이 다친 장소를 열십자로 표시한 것이다.

십자는 몇 개에서 십여 개로, 다시 수백 개로 늘어났다.

“치료에 바쁜 원 의원까지 모시고 온 이유는, 과연 이 모양이 일반적인가 보라는 뜻이었어요.”

지도 위의 십자들은 평범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았다.

한 곳을 위주로 빽빽하게 모여 있었고, 그곳에서 멀어질수록 듬성듬성 배치되어 있었다.

사도명은 열십자가 빽빽하게 모이는 지도 위의 한 점을 가리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곳은?”

은교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아는 곳이죠?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었죠. 무제는 그 일로 분노했었고요.”

“믿기지 않는군.”

사도명은 바로 얼마 전에, 십자가 모인 장소를 갔었다.

그곳에서 마을의 이장인 벽공 노인을 만났고, 하늘을 바꿔 달라는 부탁을 받았었다.

은교교가 한숨을 쉬었다.

“잔잔한 물에 먹을 떨어뜨리면, 먹은 중앙은 짙게, 겉으로 갈수록 옅은 모양새로 퍼지죠. 이 모습과 같아요.”

옆에 있던 원중양이 무거운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병이 퍼지는 모습도 비슷합니다. 아니, 똑같습니다.”

황군에 몰살당한 벽씨 가문이 있던 장소.

“그러니까 여기에서 먹이, 혹은 전염병이 퍼졌단 건가? 황제의 판단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소린가?”

사도명은 지금까지 벽씨 가문의 멸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서역 정벌의 명분을 만들고자, 사람들을 희생시킨 결정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면?

사도명은 한 명의 방여립이 영혼을 분리시켜, 또 다른 자신을 만드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두 명의 방여립은, 서로 떨어져서 각각 자신의 분신을 다시 만든다.

“감기가 퍼져나갈 때, 가장 환자의 숫자가 많은 곳은 처음 감기가 퍼지기 시작한 장소일 테지.”

사도명은 원중양을 보았다.

“의원들을 모아서, 이 마을로 보내주실 수 있겠소?”

원중양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도명의 말을 이해했다.

“환자가 발생합니까? 저곳에서 전쟁이 벌어집니까?”

“우선 도광효를 만나야겠소.”

**

벽공은 마을의 이장이다.

그는 바깥이 훤히 보이는, 이 층의 난간에 앉아 멀리 보이는 지평선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 지평선 가까운 곳에 지금은 무너진 벽씨 가문이 존재했었다.

노을이 지면서, 세상을 붉게 물들였다.

“아름다운 장소였지.”

찐빵을 들고 막 이 층으로 올라오던 청년이 벽공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청년은 주민들 사이에서는 흑곰이라 불린다.

덩치가 정말로 곰처럼 좋았고, 성미는 곰보다 훨씬 유순했다.

“또 벽씨 가문의 일을 생각하십니까, 이장님?”

흑곰이 찐빵을 놓았다.

따끈따끈하여 김을 피우는 찐빵은 모두 세 개였다.

벽공은 그중의 한 개를 집어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배가 고팠었다.”

“모두 드십시오.”

벽공은 두 번째의 찐빵을 천천히 먹었다.

깊고 구수한 곡물의 맛을 느긋하게 음미했다.

배고픔을 어느 정도 해결한 후에야, 벽공은 비로소 흑곰의 물음에 대답했다.

“죽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 죽었다. 실로 아깝기 그지없는 죽음이어서 계속 안타깝다.”

“이장님께서 벽씨 가문의 하인이셨단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 벽씨 가문의 사람들이 매우 잘 해주었던 모양입니다.”

“그렇진 않았단다. 잘해 주기는커녕, 매우 못되게 굴었지.”

뜻밖의 말에 흑곰은 놀랐다.

“예?”

“원망을 많이 하더구나. 복수 운운하기에, 내가 물었다. 힘을 갖고 싶으냐? 복수를 할 방법이 있는데, 받아들이겠느냐?”

흑곰은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벽공의 말이 너무 어려웠다.

누가 들어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어서, 흑곰은 멀뚱멀뚱 눈만 굴리고 서 있었다.

벽공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되었다. 나도 흐릿한 기억이니 개의치 말아라.”

벽공은 세 번째의 찐빵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배가 불러 반만 먹고 내려놓았다.

“배부르구나, 흑곰.”

“다 드신 겁니까?”

“충분히 먹었다.”

“그럼 되었네요.”

흑곰은 찐빵이 반 개가 남은 접시를 들어 올렸다.

벽공이 자신의 배를 톡톡 치면서 웃었다.

“혹시 특별히 연락 오거나, 찾아온 사람이 없었느냐?”

“그럴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라면 되었다. 충분히 의심할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높이 평가한 건가?”

흑곰이 갑자기 빙그레 웃었다.

“너무 높이 평가, 라는 것은 누굴 대상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조화무제? 혹은 저입니까?”

벽공은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흑곰을 보았다.

흑곰은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힘을 합해 그를 길렀기에, 흑곰은 마을 주민 모두의 아들이자 손자였다.

흑곰은 세상을 모른다.

그러니 흑곰의 입에서 조화무제와 같은 이름은 나올 수 없었다.

“너는 흑곰이 아니구나.”

벽공의 말에 흑곰은 입을 활짝 벌리고 웃었다.

“그러시는 이장님도 이장님이 아니시잖아요!”

벽공은 흑곰이 들고 있는 반 개의 찐빵을 보았다.

“그 찐빵을 준 것이 누구냐?”

“누구일 것 같습니까?”

여전한 흑곰의 웃음에, 벽공은 하나의 무공을 떠올렸다.

“심마문의 어기전혼?”

“그것까지 알아냈으니 이젠 질문에 답할 수 있겠군요, 이장님. 내가 누구 같습니까?”

벽공은 계단을 보았다.

거기에서 한 사람이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흑곰의 눈이 빛을 잃더니, 그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텅! 투툭!

흑곰이 손에 들었던 접시가 떨어졌고, 반 개의 찐빵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벽공은 계단을 걸어온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도광효!”

“나를 아는군요.”

도광효는 자신의 앞으로 굴러온 반 개의 찐빵을 집어 들었다.

“한낱 시골 촌부가 황궁 심처에만 머물렀던 나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게 정상일까요?”

“어기전혼으로 흑곰을 조종한 거냐?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아마도 이런 짓?”

벽공은 광효의 손에 잡힌 찐빵에서, 시퍼런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도광효는 웃고 있었다.

“또 모르죠, 이장님! 혹은 다른 짓도 이미 해 놓았을지.”

“네놈은 생각보다 멍청하지 않은 것으로 해 두자.”

“주둥이를 조심하는 게 좋아.”

도광효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의 말투도 변했다.

“계속 이장님이라 불러주니까, 네가 정말로 이 마을의 이장이라도 된 것 같나, 방여립?”

벽공, 아니 방여립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제 정신을 잃고 멍하니 서 있을 뿐인, 흑곰을 보았다.

“내 대답에는 거짓이 없었다, 흑곰! 벽공은 벽씨 가문을 증오했고, 난 그 복수를 도왔지.”

- 그렇다면 내게도 솔직하면 좋겠구려.

목소리는 옆에서 들렸다.

벽공은 놀라지 않았다.

천천히 몸을 돌려, 언젠가부터 난간의 바깥쪽 허공에 둥실 떠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그가 빙그레 웃었다.

“진짜 벽공의 영혼도 몸 안에 있다면, 벽씨 세가뿐만이 아니라 귀하에게도 복수를 원할 거 같아서 말이외다, 방여립.”

“사도명!”

“이렇게 되면, 나도 귀하의 예측처럼 멍청하지는 않은 거요?”

“…찐빵에 넣은 약은 뭐냐? 네가 직접 넣은 것이냐?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많은 귀하를 만났소. 물어볼 것이 많았는데, 묻지 못했지. 모두가 즉시 죽어서 말이오.”

벽공은 어지럼증을 느꼈다.

몸을 바로 세우려 했지만, 무릎에 힘이 빠져서 주저앉았다.

“이건, 선인보가 맞느냐?”

“찬모가 좋은 사람이더군. 황실 비전이라 설명하니까. 기꺼이 넣어주더군. 이장님을 위해서.”

황실 비전의 선인보는 확실히 보약이었다.

하지만 약효가 너무 강해서 오히려 역효과를 발생시킨다.

벽공은 몸속의 내공이 모두 사라짐을 느끼고, 주저앉은 채로 몸을 떨었다.

“나, 나는 방여립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난간 밖, 허공에 떠 있는 사도명이 웃었다.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알아내는 재주가 내게 있소. 그 점은 잘 알고 있잖소, 방여립?”

방여립은 턱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혀는 잘리지 않았고, 피만 조금 흐를 뿐이었다.

사도명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종류의 일 처리는 도광효가 확실하지. 흑곰이 왜 귀하가 배고플 때를 기다렸겠소?”

“내가… 방여립이라는 사실은 언제 알았느냐?”

“자폭한 성화산인의 분포는, 성화산인 자체의 분포와 같을 거요. 기존의 성화산인은 회천객의 활약으로 거의 치유되었으니까.”

“자폭하는 자의 분포?”

“모든 게 여길 가리키더군. 내가 화가 나는 건 다른 부분이오.”

사도명은 도광효를 힐끗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도광효! 이런 걸 미리 알면서도 내가 물어보기 전까지는 굳이 입을 다물고 있었더군.”

도광효가 포권했다.

“상이시여. 저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예를 차릴 필요 없다, 도광효. 네가 진심으로 내게 충성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예전의 황상께서 제가 금언의 명령을 내리셨지요. 물어야만 대답할 수 있는 규칙입니다.”

도광효는 시선을 사도명에게 둔 채로, 벽공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각처에서 올라온 상소문을 분석했습니다. 그중에서 같은 사람이 쓴 것으로 보이는 글을 모두 가려냈지요. 그 상소문이 올라온 장소를 지도에 표시했습니다.”

“들었소, 방여립? 아니, 벽공! 도광효는 상소문이 출발한 장소를 표시했고, 은교교가 부상자의 발생 장소를 표시한 것과 같은 결과의 그림을 얻었다 하오.”

“상이시여. 저는 제 분석 결과를 지금도 신뢰하고 있습니다.”

도광효의 시선에 사도명을 떠나 벽공에게로 옮겨갔다.

“어떤 방여립이, 나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한 유력한 가문의 구성원 전체를 모두 방여립으로 바꾸고 있다고 판단했지요.”

벽공이 앉은 채로 껄껄 웃기 시작했다.

“허를 찔렸군. 상소문으로 내 계획을 파악하다니. 이건 재밌다. 참으로 싸울만 해, 하하하.”

그의 웃음에는 내공이 없었다.

하지만 난간에서 웃는 그 웃음소리는 마을 전체에 퍼져나갔다.

“황제를 과소평가해서는 아니 되었는데!”도광효가 웃었다.

“황제의 옆에는, 이 몸, 도광효가 언제나 있으니까.”

마을 곳곳에서 주민들이 밖으로 나왔다.

대부분은 집 앞으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갔지만, 그들 중의 일부는 이 층 난간에 보이는 사도명과 벽공을 향해 걸어왔다.

사도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방여립인가?”

벽공이 웃었다.

“직접 알아보시지, 무제.”

사도명은 오른손을 들었다.

장력을 내쏘려다 말고, 그는 문득 한숨을 길게 쉬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귀하는 아직도 우리를 과소평가하는구려.”

사도명은 손을 내리고 도광효를 보았다. 도광효가 호각을 꺼내 길게 불었다.

삐이이이이-!

요란한 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벽공은 내공을 잃었지만, 주변에서 무형 중에 흐르는 기세를 읽은 재주는 간직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을 주변에 나타났다.

그들은 진법을 펼쳐, 마을을 둥글게 에워쌌다.

진법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마을을 주변과 하늘을 덮었다.

뿌옇게 흐려진 하늘 아래에서 주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아녀자 한 명이 벽공을 향해서 소리쳤다.

“무슨 일인가요, 이장님? 왜 하늘이 저렇게 회색인가요?”

“아무 일도 아닐세, 화정댁. 집으로 들어가게. 괜찮아.”

벽공이 온화하게 말했다.

사도명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지금 같았지, 원일경도!”

벽공이 사도명을 보았다.

“무슨 의미냐, 조화무제?”

“방여립으로 죽기 직전까지도 원일경은 의제로서의 자신을 삶을 놓치기 싫어했지. 귀하는 어떻소, 벽공으로서의 방여립? 주민들에게 존경받는 이장으로서의 삶이, 지겨웠소? 혹은 즐거웠소? 지금 귀하는 누구로 살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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