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되돌리려는 사람들
어떤 종류의 이유에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천사들은 모두 무화가 소화에 대해 어떤 마음이었는지 안다.
오직 소화만 몰랐었다.
소화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무화는 멍청하지 않았는데, 결국 멍청해지고 말았어.”
사랑은 어디에서나 싹튼다.
생존보다 살인을 먼저 배운 천사에게도 사랑은 솟아나서,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 것이다.
사도명은 용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있는, 두 다리와 왼쪽 팔을 잃은 한 사람의 앞으로 가서 섰다.
그는 생사객 몽염이었다.
“고통스럽지 않으십니까?”
“전에도 말한 거 같은데. 몸의 고통이 마음의 고통보다 큰 경우는 없다고.”
“이렇게까지 해 주셨군요.”
“내가 세상에 지은 죄는 오직 나만이 갚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은 죽은 한 명도, 살아남은 세 명도 마찬가지인 거 같군.”
사도명은 비화, 몽화, 능화를 한 명 한 명 둘러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사천 당문의 싸움과 파천마궁의 싸움에 대해 그들 세 명에게 설명했다.
“뭘 느꼈나?”
“뭘 느꼈기 바라지, 사도명?”
“현실. 방여립과 세상. 무엇이 올바른가에 대한 고민. 판단.”
사도명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너희는 악과 싸우기 위해 길러졌다. 이제 너희의 발아래, 갈림길이 있다. 판단하고 선택해라. 방여립의 길이, 정말 옳으냐?”
사도명은 물음은 간단했다.
비화를 비롯한 세 명의 천사도 간단하게 대답했다.
세 사람의 몸에서 힘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비화의 몸에서 솟은 날렵한 기운과 몽화의 몸에서 솟은 몽롱한 기운 사이에 능화의 몸에서 솟은 향기가 일렁거렸다.
삼재를 하나로 만든 진!
삼위일체의 진식으로 세 명은 사도명을 공격했다.
사도명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귀하들의 선택인가? 그럼 나는 그러한 선택을 따라주는 수밖에 없구나.”
**
밤이 깊었다가 다시 밝았다.
황실의 깊은 곳에, 사도명이 제갈평, 대풍자와 도광효, 그리고 화운악을 모았다.
하도 깊은 밀실이라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켜놓은 등잔불의 흔들림이 모여 있는 사람들의 불안감 같아서, 사도명은 마음이 무거웠다.
대풍자는 그 등잔불 아래에 눈을 바짝 들이민 채 웃었다.
“흐흐, 요것 참 세상처럼 생겼네. 흔들리는 불꽃 아래가 가장 어두운 거 보여?”
제갈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방여립과 그를 낳은 흑막은 어둠 속에서도 가장 깊은 어둠에 숨어있습니다.”
“조화무제가 널 만나라더라. 네 지식과 내 계획을 합하면, 방여립을 궁지로 몰 수 있다고.”
“꽤나 몰고 있잖습니까? 회천객을 퍼뜨리고, 방여립에 대한 방어책도 마련 중입니다.”
“한 놈을 죽이는데, 사천 당문의 절반이 날아갔다며? 반면 그놈은 이혼대법으로 지금도 계속 증식하고 있을 것이다.”
대풍자가 갑자기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연달아 때렸다.
“우리 전진파의 잘못이다. 절절하게 반성하마.”
화운악이 한숨을 쉬었다.
“장난처럼 말씀하시지만, 사부는 정말 절실하십니다. 평생을 방여립을 없애고 이혼대법을 회수하는 일만을 고민하셨습니다.”
“방법이 한 가지 있군요.”
사도명이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사도명은 어색하게 웃었다.
“세상을 뒤져, 가장 흑막일 가능성이 낮은 사람을 찾습니다. 그럼 그가 바로 흑막일 겁니다.”
회의는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빠르게 진행되었다.
도광효는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회의 내내 사도명만을 바라보았다.
눈도 잘 깜빡이지 않고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
회의를 마치고 모두 흩어졌다.
도광효는 복잡하게 이어진 황실의 복도를 돌다가, 모퉁이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몸에서 냄새가 풍겼다.
차림새는 대풍자처럼 낡고 추레했지만, 그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는 악취가 아니었다.
개방의 용두방주만 익힐 수 있다는 옥령신공.
옥령신공을 대성하면 저절로 몸에서 풍긴다는 단향이었다.
그는 현 개방의 용두방주인 옥현신개였다.
도광효가 지나쳐 걸어가자, 옥현신개가 그의 뒤에서 말했다.
“나는 무제를 존경합니다.”
도광효는 걸음을 멈추었다.
옥현신개가 말을 이었다.
“생명을 구함을 받기도 했죠. 무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겁니다.”
“나는 무제를 존경하지 않소. 그는 황상을 해쳤고, 황상의 권능을 빼앗았지. 비록 지금은 상이라 부르지만, 그를 증오하오.”
“표정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내 표정이 어떠하기에?”
“반역의 죄를 지은 역도를 보는 표정. 경멸과 증오!”
“그런 말을 하려고 나를 붙잡은 거요, 옥현신개?”
“다른 말을 하고 싶습니다. 무제를 존경하지만, 반역의 죄를 용서하지는 못한다는 말. 나는 어쨌거나 이 나라의 백성입니다.”
비로소 도광효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옥현신개의 아래위를 훑어보다가 말했다.
“더 말해 보시오, 옥현신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신 무림맹 안에 많습니다.”
“아!”
“따라오시죠. 그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도광효.”
옥현신개가 앞장을 섰다.
도광효는 옥현신개가 돌고 돌면서 안내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모두 신 무림맹에서 일정한 직위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크고 작은 문파를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옥현신개가 말했다.
“어제 세 명의 천사가 무제를 공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식이 빠르구려.”
“계속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세 명의 합공을 무제가 단숨에 이겨냈다고도 들었습니다.”
옥현신개가 한숨을 쉬었다.
“무제는 강합니다.”
“매우 강하지. 세상에서 상을 당해낼 사람은 거의 없소.”
“방여립도 강하죠. 끔찍하도록 강하고, 교활한 데다가, 그 숫자가 무한히 늘어날 수 있습니다.”
도광효는 미간을 찌푸렸다.
옥현신개가 하고 싶은 말을, 그는 대부분 이해했다.
“강하고 교활한 자와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매우 강하며 용감한 사람뿐이겠지.”
“그러니 기다리기로 합니다.”
옥현신개가 모여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무제가 방여립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그 순간에, 비로소 반역의 죄를 묻기로 합니다.”
도광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모의 죄를 물을 때, 내가 도와주기를 바라서 나를 미리 부른 것이오?”
“우리들은 스스로를 복명단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무제가 사라지게 만드려는, 명을 반드시 되살릴 것입니다.”
“좋군. 매우 좋아.”
옥현신개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솔직히 마음은 좋지 않습니다. 문득 생각해보니 태조께서 명교를 제거할 수밖에 없었던 속마음이 이러지 않으셨나 합니다.”
“재밌군. 태조의 속마음.”
“석단궁 교주께서 알면서도 태조의 뜻을 따라준 그 속마음도 비슷했을 것이고요.”
“이제는 명교 교주의 속마음까지 헤아려 보는 것인가?”
도광효가 옥현신개를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보다 한 가지가 더 궁금하구려.”
“무엇이 궁금합니까?”
“이렇게 말하는 귀하가 진짜 옥현신개인지 아니면 또 다른 방여립인지를 내가 어찌 알겠소?”
옥현신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의혹이라면, 내겐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증명하지 못한다면, 단지 믿을 방법뿐이란 건가?”
“언제나 선택하는 거지요. 믿고서 협조할지. 혹은….”
“혹은?”
옥현신개와 함께 모여 있는 복명단들의 눈이 일제히 빛났다.
“믿지 않고서 무제가 명나라를 없애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을 용납하고 지켜볼지를!”
**
밤이 깊었다.
사도명은 광혜원을 방문했다.
황궁에 달린 의료원인 광혜원에서, 지금 수많은 부상자들이 치료받는 중이었다.
성화산인의 희생자들.
아직 충분한 숫자의 회천객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죽은 이들이야 땅에 묻었지만, 다친 이들은 치료해야 했다.
끝없이 늘어선 병상.
그 위에 누워 고통에 찬 신음을 삼키는 부상자들.
사도명은 은교교와 함께 그들을 둘러보며, 내공을 이용해 사람들의 치료를 도왔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사도명은 은교교에게 말했다.
“누가 제일 아쉬운 줄 알아?”
어려운 답이 아니었다.
은교교는 남들이 들을까 봐 전음으로 대답했다.
[의제 원일경?]
[방여립은 수없이 퍼져 있다. 그 자신조차 확인을 위해, 약속한 대화를 주고받아야 할 정도로.]
사도명은 내공으로 부상자의 생존력을 높여주면서 말했다.
[그 많은 방여립들 중 왜 하필 의제 원일경이 먼저 나섰을까? 이곳의 모습이 그 대답이다.]
광혜원에 의원은 많았다.
그들은 모두 의제의 제자이거나 그 제자의 제자였다.
천하의 모든 의원은 의제를 탄생시킨 의성문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십여 명이 넘는 의원이 광혜원에 있음에도, 부상자들이 회복하는 속도는 더없이 더뎠다.
의제 원일경의 몸과 머리에는 의성문이 지금까지 이룩한 모든 의술이 구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제자들은 다르다.
열 개의 의술 중 서너 개를 지녔고, 미비한 것이 많았다.
사도명은 그런 의원들 중에서도, 그나마 손놀림이 익숙한 의원 한 명을 보았다.
의제 원일경만큼 빠르진 못했지만,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원일경만큼이나 진지했다.
“아!”
사도명이 자신을 지켜봄을 느낀 의원이, 다른 환자로 넘어가기 전에 사도명의 앞으로 왔다.
“원중양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를 의절이라 불러줍니다.”
사도명은 그의 성씨가 원일경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의제와는?”
“친부이십니다.”
의제는 결코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었다.
방여립이 되기 이전, 그는 의성문의 제자였고 의성문의 의술을 한층 높인 의원이었다.
혼인을 했고 자식도 낳았다.
의제의 자식과 제자들은 원일경이라는 사람의 후손일 뿐, 방여립과는 아무 관계없었다.
사도명은 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노고에 감사하오.”
“제 아버지는 결국 무제의 손에 숨지셨음을 압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소.”
“압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드리려 하는 겁니다.”
사도명이 입을 다물자, 원중양이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희생자십니다.”
“희생자?”
“아버지가 원하셔서 방여립이 된 것이 아닙니다. 방여립의 혼이 아버지를 잠식한 것입니다.”
사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소.”
“아버지의 혼은 열심히 싸우셨을 겁니다. 저는, 제 아버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명은 혼신의 힘을 다해, 환자를 치유하던 의제 원일경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 순간이 원일경의 진짜 모습이었을 것이다.
방여립에게 잠식당하지 않은, 자연인 원일경의 진심이었을 거라고 사도명은 믿었다.
“나도 그렇게 믿소. 의제께서 구하신 분이 세상에 많소.”
“그런 아버지를 무제께서 해치셨습니다.”
“미안하오, 그 일은! 나를 원수로 대하여도 할 말이 없소.”
“원수가 아닙니다.”
원중양의 목소리가 커졌다.
“무제는 은인이십니다.”
“은인?”
“제 아버지를 해친 것이 아니라, 방여립에게 잠식당한 아버지의 삶을 구해주신 겁니다.”
사도명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한숨만 애써 삼키며, 원중양의 두 손을 잡았다.
원중양이 사도명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그 은혜를 갚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미 갚고 계시지 않소. 환자들을 치료해주시잖소.”
원중양은 다른 의원들을 둘러 보면서 말했다.
“저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생각입니다. 무제께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사도명은 은교교를 보았다.
은교교가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웃었다.
“이렇게 되면, 방여립과 싸워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느네요.”
“그렇군. 방여립에게 혼이 잠식당한 사람들. 그들을 구해주어야 하는 것도 나의 의무로군.”
은교교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말이에요. 이상한 점이 있어요.”
“이상한? 무엇이 이상하오?”
“이 부상자들의 발생 장소. 그걸 살피다가 제가 정말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