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55화 (155/168)

155화. 자랑스러운 이유

사천에는 명문 대파가 많다.

아미산 금정봉에 아미파가 자리를 잡았고, 삼대 도교 성지인 청성산에는 청성파가 있다.

그런데도 강호인들이 사천이란 이름에서 떠올리는 문파는 무엇보다 당가였다.

사천의 당씨 가문!

독으로 유명한 가문이고 암기로 알려져 있는 문파다.

문파 구성원들의 성격이 음험하고 표독하다고 알려졌건만, 기이하게도 무림에서 정파를 선정할 때는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개인보다 가문의 명예를 중히 여기는 오랜 가풍 때문이었다.

가문의 명예는 천하의 공도에 기여하고, 척마멸사하며, 올바른 길을 걸을 때 얻어진다.

사천 당가의 독과 암기는 유구한 역사 동안 한 번도 외부로 누출된 적이 없다.

당가는 같은 핏줄이라도 외부로 시집갈 딸에게는 가문의 비전을 전하지 않는다.

반면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시집온 며느리에게는 가문의 비전을 제대로 전한다.

당가는 그렇게 강해졌고, 자신들의 비전을 온전하게 지켰다.

당서정은 당가의 딸이었다.

딸임에도 그녀는 당가 비전의 암기술과 독공을 이어받았다.

열다섯 살 때, 그녀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 것이라 선언했고, 당가 가주가 선언을 공증했다.

- 내 몸에 흐르는 피가 자랑스럽다. 피보다 자랑스러운 것은 우리 당씨 가문의 정신이다. 세상은 독과 암기의 우리 무공을 음습하다 하지만, 그 마음은 세상 어떤 문파보다 당당하다.

스물세 살이 된 지금, 당서정은 당씨 가문의 경비를 총괄하는 일을 맡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저녁에도, 당서정은 두 명의 사촌 동생과 세가의 정문을 경비하는 중이었다.

“소문이 흉흉합니다. 며칠 사이 제가 들은 폭발 사건만 해도 다섯 건이 넘습니다, 누님.”

당산평의 말에 그의 친동생인 당산군도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요, 형님. 듣자 하니 모든 폭발 사고가 명교 짓이라 합니다. 성화산인들이 스스로 죽으며 일으키는 폭발이라 하던데요.”

“낯선 이를 경계해라. 죄 없는 타인도 죽이고자 스스로 죽는 자들이 강호에 넘친다.”

당산평은 당산군에게 말한 후, 당서정을 보았다.

“누님은 닷새 전에 조화무제를 뵙고 오셨잖습니까? 혹시 들었던 이야기가 없습니까?”

당서정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세가의 정문 앞, 먼 곳만을 보고 있었다.

노인 한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당산군이 아는 노인이었다.

“삼 리 밖, 경작지를 소작하는 왕씨 노인입니다. 이미 해가 지는데 왜 여기로 올까요?”

당씨 가문의 세 남매는 모두 눈이 밝았다.

먼 거리지만,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왕씨 노인의 얼굴을 똑똑하게 볼 수 있었다.

“울고 있습니다.”

당산군이 당산평을 보았다.

“왜 울까요?”

당산평은 당산군에게는 대꾸하지 않고, 당서정을 보았다.

“누님! 왜 그렇게 계속 손을 떨고 계십니까?”

당서정의 오른손이 바람 앞에 선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바로 옆에 서 있는 당산평에게는, 손이 떨리는 소리가 똑똑하게 들릴 지경이었다.

당서정이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잡으며 웃었다.

“반응하는 거란다.”

“반응요?”

“조화무제를 뵈러 가니, 그분이 말하시더라. 성화산인은 몸에 굉천환을 집어넣은 자들이다. 그리고 회천객은 그 굉천환을 분해하여, 성화산인이 죽지 않게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왕씨 노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당산군은 그의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보았다.

“이 밤에 왜 여길 오시오? 그보다 왜 우는 거요, 왕 노인?”

“은혜를 입었습죠. 나리들은 제게 늘 잘 대해 주셨습죠.”

“더 이상은 오지 마시오. 우리는 주변을 경계하는 중이오.”

“그런데 그 은혜를 결국 못 갚게 됐습니다. 갚고자 했는데, 오히려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왕씨 노인의 배 부분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당산군은 그의 떨림이 당서정의 손에서 일어나는 떨림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누님! 그 손…. 혹시 왕 노인과 관련 있습니까?”

“그러면서 무제께서 가르쳐 주셨다. 굉천환을 제거하는 방법.”

“!”

당산군이 검을 뽑았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당산평도 곧장 검을 뽑았다.

당서정은 두 동생의 앞을 막아, 그들의 검이 왕 노인을 해치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가르쳐 주셨다. 제거하려는 굉천환을, 탐지하는 방법.”

심하게 떨리는 오른손.

당서정은 그 손을 그대로 왕 노인을 향해 뻗었다.

퍼-어!

해체의 술이 펼쳐지면서, 왕 노인의 복부에 작은 폭발이 생겼다.

왕 노인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주저앉은 채로 울부짖었다.

“으헝.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평생을 명존을 모시며 살았습니다. 명존을 위한 희생을 하라는 교주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으허어엉.”

당산평과 당산군은 당서정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보았다.

“폭발 사건이 계속이랬지?”

당서정은 큰일을 해낸, 자신의 오른손을 보며 웃고 있었다.

“이젠 괜찮을 거야. 이 손이 있으니까.”

“무제께서 주신 능력입니까?”

“나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사람에게 이미 이 손을 나눠주셨다. 굉천환을 탐지하고, 해체시키는 회천객의 손이다.”

당산군은 겉옷을 벗었다.

그 옷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왕 노인을 덮어 주었다.

“잘못된 신념을 따르는 건 그 자체로 잘못입니다. 방여립은 천하 공적이 된 지 오랩니다.”

사람은 변하기 어렵다.

왕 노인은 평생을 명교의 교도로, 목숨을 버릴 준비를 한 성화산인으로 살아왔다.

노인이 한순간에 신념을 바꾸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당산군은 왕 노인의 등을 쓰다듬으며 당서정을 보았다.

“굉천환이 제거됐으니 왕 노인은 이제 단순히 평범한 명교 신도에 불과합니다. 보내주어도 되겠지요, 누님?”

“마음의 갈등이 컸나 보다. 너무 지쳐있으니, 혼자 가긴 힘들겠구나. 데려다줘라, 산군아.”

당산평이 왕 노인이 걸어왔던 길을 보았다.

청년 한 명이 거기 보였다.

“데려다줄 필요 없겠습니다. 저 친구를 압니다. 왕 노인의 손자입니다.”

손자는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로 걸어왔다.

당서정이 미간을 찡그렸다.

“웃는다고? 할아버지가 주저앉아 울고 있는 걸 보면서, 저렇게 활짝 웃는다고?”

왕 노인은 손자를 발견하자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당서정이 자신의 오른손을 보았다. 손은 떨리지 않았다.

“굉천환의 흔적은 없다. 그런데 왜? 왕 노인! 왜 손자를 보고 떨기 시작하는 거요?”

“…아, 아니오.”

“아니라니! 지금 확실히 떨고 있으면서….”

“저분은 내 손자가 아니오. 모습은 분명 나의 손자이나, 거기에 깃든 영혼은….”

더 이상 듣지 않고도, 당서정은 뒷말은 짐작했다.

그녀는 몸을 날렸다.

곧장 다가오고 있는 손자, 아니 방여립을 향해 날아가면서 두 명의 동생에게 소리쳤다.

“안으로 들어가라. 세가 전체에 비상을 걸고 봉문하라. 방여립이라면 우리가 당해낼 수 없다. 우리가 당해낼 수 있다면, 방여립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당서정은 사도명이 전하는 경고를 분명하게 들었다.

- 방여립의 영혼이 깃든 자들은 천하 어디든 있소. 성화산인을 만나면 구해주시오. 하지만 방여립을 만나면, 무조건 피하시오.

“압니다. 하지만….”

당서정이 땅을 박차고, 공간을 건너뛰는 시간은 찰나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짧았다.

그 순간 청년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분명 비웃음이었다.

당서정은 자신의 가문을 너무나 사랑했다.

무조건 피하라는 사도명의 말을 기억하면서도, 발작하듯 방여립을 덮친 이유가 그것이었다.

사천 당가, 자신의 가문에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방여립이 오른손을 뻗었다.

그의 장심에서 일어난 빛이 당서정의 심장을 단숨에 뚫었다.

당산군이 울부짖었다.

“누님!”

당산평은 억지로 마음을 억누르며, 호각을 꺼내 불었다.

삐이-! 삐이이이-!

미리 약속되어 있는 신호였다.

당가의 이곳저곳이 빠르게 깨어났다.

호응하는 호각이 사방에서 울리고, 철로 된 덧문들이 여기저기서 내려지기 시작할 때!

당서정은 쓰러졌다.

뭉클거리며 피를 흘리는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방여립은 비릿하게 웃었다.

“시간 끌어 본단 거냐? 그게 소용이 있을 듯싶어?”

당서정의 얼굴에서 검은 피가 뭉클뭉클 솟았다.

당산평과 당산군에게 달아나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녀는 당가의 딸로 태어났다.

가문의 자랑스러운 무공을 익히고 싶었고, 전통을 계승하고 싶었다.

그 때문에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당가의 제자로 살았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피와 자신의 가문에 부끄럽지 않게 죽는다.

“나는…. 나, 나는….”

당서정은 마지막 힘을 다해, 방여립에게 물었다.

“나는 내 삶이 자랑스럽다. 너는…. 너는 어떠냐?”

당서정은 죽었다.

방여립은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산평과 당산군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방여립이 두 사람을 보았다.

“왜 달아나지 않느냐? 너희도 이 여자처럼 죽으면서 삶을 자랑스러워하고픈 자들이냐?”

당산평은 그 자리에서 검을 고쳐 잡았다.

당산군이 빙그레 웃었다.

“겨우 알겠습니다, 형님. 누님이 왜 그토록 우리 당씨의 가문을 자랑스러워했는지.”

“그야 뻔한 것 아니냐?”

당산평이 몸을 날렸다.

곧장 방여립을 향해 날아가면서 웃었다.

“누님은 우리와 같은 동생들을 뒀다. 어찌 자랑스러워하지 않겠느냐? 하하하.”

방여립이 오른손을 들었다.

당서정을 뚫었던 것과 똑같은 빛이 일어나, 두 사람의 몸을 동시에 꿰뚫었다.

**

사도명은 앉아있었고, 세 명의 천사는 서 있었다.

사도명이 앉은 용상은 황제의 증명이었다.

왼쪽 높은 곳에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한 마리의 전서구가 날아왔다.

도광효가 전서구를 받아, 다리에 달린 전신통을 열었다.

내용을 읽은 후, 도광효가 사도명에게 보고했다.

“상(上)이시여. 사천의 당가가 공격을 받았습니다. 성화산인은 검색하여 막았으나, 방여립이 나타나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사도명은 세 명의 천사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방여립은 무척 바쁘군.”

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이 바쁜 건 누구나 알지. 하지만 여기 직접 오지 못하고 우리만 보내신 건 바쁘기 때문은 아니다, 사도명.”

“귀하들 세 명이면, 황제를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지? 하지만 내가 기다릴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을까?”

비화는 입을 다물었다.

몽화도, 능화도 사도명의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방여립의 능력이라면 사도명이 기다릴 가능성을 알았을 것이다.

“방여립은 설마 귀하 셋이 날 이겨낼 거라 생각했을까?”

능화가 신음했다.

“그랬을 것 같진 않군.”

사도명이 도광효를 보았다.

“계속 보고해 보라, 도연. 사천 당가는 어찌 되었나?”

“가주가 팔을 잃고, 문하 제자 절반 이상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이겼습니다. 농사꾼 노인의 손자 몸에 스며들었던 방여립은, 결국 죽었습니다.”

“한 명이지만 성과긴 하군. 당가는 준비를 잘했구나.”

“당서연이 공을 세웠습니다. 당가가 준비할 시간을 벌었죠. 지난번, 상으로부터 회천객 자격을 배웠던 여자입니다.”

사도명은 다시 비화를 비롯한 세 명의 천사를 보았다.

“들었다시피다. 세상의 준비는 점점 빨라진다. 방여립의 의도는 결국 좌절될 거다.”

사도명이 밖을 향해 외쳤다.

“모두들 들어와도 좋소.”

황궁 제구벽 안의 거대한 문이 열렸다.

여러 사람이 들어왔다.

비화, 몽화, 능화는 그중에 낯익은 세 명의 얼굴을 알아보고 깊이 신음했다.

소화와 흑화와 밀화가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한 사람과 더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천사들이 신음한 이유는 그 보이지 않는 사람 때문이었다.

“무화는? 왜 보이지 않지?”

비화가 묻자 소화는 길고 짙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죽었어.”

“죽어? 무화가?”

무화는 여덟 명의 천사들 중 소화와 더불어 가장 강했다.

소화가 눈을 감았다.

길고 짙은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나 때문이야.”

“너 때문이라니?”

밀화가 소화의 어깨를 잡아 다독거렸다.

“파천마궁의 힘은 엄청났어. 모두 목숨을 걸고 싸웠지. 무화는 더 많이 걸었고. 그는 자신보다 소화를 먼저 지켜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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