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해 보든지, 가능하다면!
<황실 변고에 대한 소문이 갑자기 세상에 파다하게 퍼졌다.
황제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는 소문이었다.
그 와중에 서역 정벌에 대한 소식도 들려왔다.
파천마궁의 분쇄.
불가능해 보였던 성과였다.
황제의 짐작대로 파천마궁이 흑막의 근원이라면, 네 명의 장군과 황군의 힘만으로 부술 수 있는 조직이 아니었다.
생사객 몽염의 힘이 보태진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알려졌지만, 황제의 판단은 옳았다.
파천마궁이야말로 방여립이 모든 힘을 키우고, 마련하고, 계획을 세우는 근본이었다.
방여립은 파천마궁에 오대마교의 무공을 모두 모았다.
다섯 가지 색채의 무공.
그 다섯 색채를 하나로 뭉치는 방법을 마련해, 수라겁황이 탄생하도록 만든 자가 바로 방여립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방여립 이전의 방립, 방립 이전부터 존재하던 지극한 악의 자체였다.
악의는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만들려는 의지이기도 했다.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것을 파괴하였기에 악이라고 불릴 뿐.
방여립은 천하에서 모은 명교 제자를 파천마궁으로 보냈다.
그곳에서 그들을 수라겁황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마인으로 변모시켰고, 그들을 조종했다.
그 힘은 방여립의 자산이었다.
황제는 그 자산을 파괴하는 수를 던졌고, 결국 성공했다.
생사객 몽염이 도왔어도 불가능했던 그 일은, 네 명의 천사가 나섬으로써 가능으로 변했다.
소화!
무화!
흑화!
그리고 밀화.
명교는 팔대마문을 상대하기 위해 천사들을 길렀다.
전대 교주 석단궁이 그들을 길렀고, 현 교주 방여립에 의해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그중의 네 명은 방여립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황제는 파천마궁의 정벌을 정화 장군에게 명령하고, 그를 도울 사람을 열심히 찾았다.
생사객 몽염을 보내고도 안심이 되지 않았던 황제는 천사들을 불러서 상의했다.
“결국 모든 시작은 명교다. 명교에서 벌어졌던 일이니, 명교도인 너희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천사들은 명교를 아낀다.
그것이 그들이 파천마궁에 갔던 이유였다.
그들은 파천마궁에서 나온 괴인들이 명교도임을 확인하자 주저하지 않고 싸웠다.
싸움은 처절했다.
상황이 이상함을 느낀, 밀림 외곽의 군사들이 모조리 들어왔다.
그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전사했다.
좌부장 노량과 우부장 동연이 전사했고, 중부장 풍시혁은 중상을 입었다.
네 명의 천사도 한 명이 죽고 세 명만이 남았다.
하지만 결국 황제의 군대는 파천마궁을 괴멸시켰다.
즐비하게 쓰러진 시체를 보며, 소화 천사는 눈물을 흘렸다.
“모두 같은 명교의 교도인데, 왜 죽이고 죽임을 당해야 하지?”
파천마궁 괴멸의 소문은 천하에 매우 빠르게 퍼졌고, 황궁 변고에 대한 소문을 덮었다.
또한 사람들이 방여립이 일으키는 혈겁에 대한 공포를 잊을 수 있게 만들었다.
방여립은 명교의 멸망을 황실 공격의 명분으로 삼고 있었다.
황실이 명교를 멸망시켰기에, 그 복수를 위해 자신이 황실을 엎고 천하를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파천마궁의 멸망으로 그 명분이 사라졌다.
파천마궁의 괴인들이 명교의 교도였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탁!
제갈평은 쓰고 있던 책을 덮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휴우. 황제는 좋은 수를 두었다. 판단 또한 옳았다.”
뒤에서 제갈청미가 정신을 맑게 만드는 차를 한 잔 가져와 탁자 위에 놓았다.
“하지만 변고의 소식도 있잖아요, 아버지. 황제는 자신의 안위에 대한 판단도 옳게 했을까요?”
“그런 의문을 지니는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의문을 갖는 사람은….”
제갈평은 차를 마셨다.
향을 깊이 음미한 후에 잔을 내려놓는 그의 눈이 깊이 빛났다.
“바로 방여립, 그 녀석이 아니겠느냐, 청미야.”
**
세 갈래의 빠른 그림자가 자금성의 성문을 넘었다.
세 그림자 모두 더없이 은밀하고, 지극하게 조용했다.
성문을 지키는 여러 명의 위사들 누구도 그들을 보지 못했다.
자금성은 구중궁궐이라는 이름답게 첩첩이 겹치는 아홉 개의 성벽으로 이뤄져 있다.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위사들의 무공도 강해진다.
세 그림자의 기척을 처음으로 느낀 위사는, 일곱 번째 성벽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제칠벽 위사 중의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료를 보았다.
“방금 향기가 나지 않았는가? 능소화의 향기 말일세.”
“나도 맡긴 했네만….”
동료 위사는 높은 허공을 올려다보면서 웃었다.
“바람이 멀리서 부는 모양이군. 근방에 꽃이 없는데 꽃향기가 선명하게 느껴지니 말일세.”
[들었지?]
가장 뒤에 가는 그림자가 가장 앞의 그림자에게 전음을 보냈다.
[일곱 번째 성벽을 넘었어. 여덟 번째를 지키는 놈들은 능력치가 더 높을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지, 능화?]
[알아들었다.]
능화라 불린 그림자가 자신의 몸 주변에 내공을 휘감았다.
그는 언제나 능소화의 향기를 몸에 달고 다닌다.
그 향기를 내공으로 수습해 감추면서, 능화는 제팔벽을 넘었다.
[하하하. 좋군. 이번엔 누구도 내 냄새를 맡지 못한다, 비화.]
가장 뒤에서 달려가던 비화가 다시 전음을 보냈다.
[방심하지 마. 제팔벽을 넘어가면 위사들의 수준이 다르다. 몽화. 능화를 좀 말려.]
중앙에서 달려가던 그림자가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뿌연 연기가 일어나면서 앞으로 뻗어 나갔다.
몽화는 짙게 만들어 뿜어낸 몽연을 이용해 앞서 달려가는 능화의 어깨를 잡았다.
[비화의 말이 옳다. 교주님의 명령을 잊어선 안 된다. 황궁 안에는 우리보다 강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 이런, 능화!]
황금빛 한 줄기가 가장 앞에서 달려가는 능화의 몸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능화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장력을 쏟아내면서 소리쳤다.
“이미 들킨 모양이네. 그렇다는 건, 더 이상 조용히 말할 필요가 없단 소리잖아-!”
꽈-아앙!
“이런 젠장.”
능화는 손목이 시큰함을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
그의 눈앞에서 황금색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몽화가 달려오던 속도를 높이면서 소리쳤다.
“조심해! 하나가 아니야.”
몽화는 장심에서 뿜어낸 몽연의 기운을 강기로 바꾸었다.
그 기운을 연달아 뿜어내, 능화를 노리는, 또 다른 황금 인형 두 개를 공격했다.
콰쾅! 콰콰-쾅!
황금 인형은 부서졌다.
하지만 반발력이 엄청나서 몽화는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몽화는 멈춘 채로 자신의 손을 보았다.
부서진 황금 인형이 전한 반발력으로 양손이 저릿저릿 울렸다.
능화가 몽화의 옆으로 다가오면서 앞을 보았다.
그는 자신이 부순 황금 인형 하나와 몽화가 부순 황금 인형 두 개 외에도 수십 개의 인형들이 늘어서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비화가 두 사람의 사이에 섰다.
“살아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인형. 대법에 의해 인형에 힘을 싣고, 누군가 그 힘을 멀리서 조종하고 있는 거다.”
몽화가 고개를 흔들었다.
“조종이고 뭐고 저렇게 많은 숫자를 부수려면, 우리 손목이 남아나질 않을 텐데.”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지.”
“어떤 다른 방법, 비화?”
비화가 수십 개의 황금 인형 사이를 가리켰다.
“조종하는 사람을 쓰러뜨리면, 인형도 틀림없이 멈추겠지?”
황금 인형 너머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도광효였다.
도광효가 걸어오자, 황금 인형들이 좌우로 빠르게 갈라지면서 길을 열었다.
도광효는 천천히 걸어왔고, 이윽고 세 사람의 앞에 섰다.
“내가 누군지 아시오?”
비화가 고개를 저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뭘 하는 사람인지는 아오.”
“누구든 알 수 있겠지. 나는 보다시피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
“내가 아는 건 다른 거요.”
“어떤 건지 물어도 되겠소?”
“여기 인형들의 이름은 밀금위대. 귀하는 우리가 올 것임을 짐작하고, 여기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
도광효가 한숨을 길게 쉬었다.
“밀금위대를 아는군.”
“내가 모르겠는 건 귀하가 왜 기다린 건지, 우리가 올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하는 거요.”
“방여립이 누군가를 보낼 거란 생각은 했소.”
“아!
“하지만 천사들 중의 세 분이 오실 줄은 몰랐소.”
“한 번에 우릴 알아보고! 황궁에서 마음대로 움직이고! 귀하는 황제의 두뇌라는 도광효구려.”
도광효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큰일 났군.”
“왜 갑자기 큰일이란 거요?”
“밀금위대는 황궁에 남겨진 가장 큰 힘이오. 귀하들은 지금 막, 그 밀금위대로도 막을 수 없는 사람임을 증명하였소.”
도광효는 바닥에 흩어진 황금 파편을 살폈다.
비화가 미간을 찡그렸다.
“무섭군.”
능화가 비화를 돌아보았다.
“왜 갑자기 무섭단 거냐, 몽화?”
“이 사람의 대답은 지나치게 솔직해.”
도광효가 빙그레 웃었다.
“솔직함이 귀하를 무섭게 한다? 나는 무한정 솔직해져야겠구려.”
“스스로의 약점에 대한 솔직함은 그 약점 뒤에 또 다른 반전을 준비해 놓았다는 증명 아니겠소?”
도광효의 웃음이 짙어졌다.
“그렇다면 귀하들도 솔직하면 어떻겠소? 나를 두렵게 만들어 볼 생각이 없으시오?”
세 명의 천사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몽화와 능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화가 입을 열었다.
“교주님은 임무를 내렸소. 황궁으로 가서 황제를 만나라.”
“솔직한 말이긴 한데, 나를 두렵게 만들 말은 아니구려.”
“황제를 만나면 알아보라. 병세가 얼마나 깊은지 알아보고 빨리 죽지 않을 것 같으면….”
비화는 뒷말을 잇지 않았다.
하지만 도광효는 그 생략된 뒷말을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래서 비로소 두려워졌다.
“귀하는 성공했소. 나는 이제 충분히 두렵구려.”
비화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능화는 왼쪽을 지켜라. 몽화는 오른쪽. 도광효가 두려워졌으니, 황금 인형들이 공격할 것이다.”
도광효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소. 내가 두려워진 이유는, 이렇게 되면 귀하들을 안내하라고 명령받았기 때문이오.”
“명령? 누가 말이오?”
“귀하들이 온 이유는 구중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함이잖소?”
“그렇소.”
“그런데 여긴 여덟 번째요.”
도광효는 몸을 돌려서 걷기 시작했다.
“갑시다. 날 따라오면 구중천의 안에 편히 도착할 테니.”
도광효는 휘적휘적 걸었다.
그가 앞장서서 걷자, 황금 인형들은 좌우로 도열한 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능화와 몽화가 다시 비화를 쳐다보았다.
비화가 빙그레 웃었다.
“따라가지 않고 뭘 해? 그가 걷는데 우리가 멈춘다면, 두려워하는 걸 들키게 되잖아.”
**
자금성의 복도는 깊고 길며 은밀했다.
걸어갈수록 곳곳에서 지키고 있는 위사들의 능력도 강해졌다.
몽화가 미간을 찡그렸다.
“이런 식이라면, 제구벽을 돌파하기 전에 들켰겠는걸.”
능화가 웃었다.
“들켰다면 죽였겠지. 이 녀석들, 귀하 덕분에 살아난 셈이니까 고마워해야겠네, 도광효.”
내공을 푼 능화의 몸에서는 능소화의 향기가 진하게 피어났다.
꽃향기를 풀풀 풍기며 살인을 얘기하는 능화의 모습은 단아해서 오히려 더 끔찍했다.
도광효가 시녀들이 시립한 마지막 문을 가리켰다.
“황상을 뵈러 왔다 했지? 안에 계시오. 건강한지 보고 싶다고 했지? 더없이 건강하오.”
시녀들이 문을 열었다.
세 명의 천사는 도광효를 따라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한 사람이 용상에 앉아 있었다.
비화를 비롯한 세 명의 천사가 신음을 삼키며 주먹을 쥐었다.
도광효는 다시 말했다.
“건강하다면 그 생명을 끊어놓고 오라고 방여립이 말했댔지? 해 보든지, 가능하다면. 저 사람을 상대할 자신이 있다면 말이오.”
용상에 앉은 사람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도광효가 그를 가리켰다.
“저 사람이 황제를 해쳤소. 황제는 자신의 모든 권력을 저 사람에게 넘겼소. 모두들 아시지? 한 번 싸워 보았으니까 말이오.”
사도명이 말했다.
“오래 기다렸는데, 방여립은 직접 오지 않았군. 어쨌거나 반갑소, 세 명의 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