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황실 변고
도광효는 사도명과 황제를 번갈아 보았다.
사도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더 이상 자신에게 없음을 안다.
막으려고 했었다.
황제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알기에, 자신이라도 우선 나서서 사도명을 막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사도명은 모든 장애를 뚫고 강해졌다.
이제 사도명을 막을 힘을 지닌 사람은, 적어도 황실에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도광효는 몸을 떨었다.
“결국 그렇게 결론을 낸 거냐? 역도가 되기로 했느냐?”
사도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로 했소.”
“황상은 겉보기와 다르시다. 자신의 이득이 아니라, 천하를 위해 희생하고 계시다.”
“자신의 희생으로 타인의 희생을 정당화시킬 순 없소.”
황제가 껄껄 웃었다.
“보았느냐, 도연? 내가 말했지? 결국 저 녀석은 제대로 된 답을 찾을 거라고!”
도광효는 한숨을 쉬었다.
황제는 자신을 ‘나’라고 부르지 않고, ‘짐’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황제는 스스로를 나라고 칭하고 있었다.
그는 사도명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황상의 말씀을 들었느냐?”
“잘 들었소.”
“저 말씀이 악인의 것 같으냐? 벽씨 가문을 희생한 일이 황상을 해치고, 하늘을 바꿔도 될 정도로 큰일이다 싶으냐?”
사도명은 도광효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은 방여립과 전혀 다를 것이 없군.”
“그게 무슨 소리냐?”
“목적을 위해 수단 따위는 상관없나? 방여립이 세상을 멋대로 하려는 것과 귀하가 세상을 멋대로 하려는 게 달라 보이나?”
“…너는 기어코 황상을 해칠 생각이구나. 나는 절대 동의해 주지 않겠다.”
“방여립은 어떤 계획을 세웠건, 그 끝에서 황제를 찾아올 거요. 내가 황제의 자리에서 기다린다면, 나는 그의 본체를 만날 수 있지 않겠소?”
도광효는 몸을 떨다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난 동의할 수 없다고 이미 말하였다!”
콰아-앙!
좌우 양쪽의 벽이 부서졌다.
황금으로 된 인형이 좌우에서 각각 네 개씩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손에서 눈부신 강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강기는 금빛이었고, 봉황의 날개를 닮은 모양새였다.
사도명은 자신을 노리는 금빛 봉황의 날개를 장력으로 쳐냈다.
“또다시 어기전혼이오? 금으로 빙의체를 만든 것인가?”
콰콰-콰쾅!
사도명에게 달려들었던 황금 인형들이 뒤로 밀려났다.
“밀금위대라고 부른다!”
도광효가 본래 튕겨 나가는 네 개의 황금 인형들을 왼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왼손을 거두고 오른손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뒤쪽, 다른 네 개의 인형들을 가리키면서 흔들었다.
“그 몸은 금강호갑으로 보호되고, 그 힘은 봉황신공을 타고 발현한다. 본래 방여립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 만들었으나….”
또 다른 네 개의 황금 인형이 사도명을 덮쳤다.
“네게 사용키로 한다.”
사도명은 양손을 휘저어 네 개의 황금 인형을 진기로 감았다.
오른손의 강기로 인형들이 방출하는 봉황천익의 강기를 부수고, 왼손으로는 인형들을 충돌시켰다.
꽈-콰쾅!
폭음이 일어났지만, 단 하나의 인형도 부서지지 않았다.
금강호갑으로 보호되는 황금 인형은 쓰러지면서도 빛을 발했다.
“과연 황제를 지키는 인형다운 색깔! 그리고 재료!”
사도명이 좌우로 섞어 휘젓던 손을 멈추었다.
도광효는 오히려 양손을 모아 휘두르며, 여덟 개의 황금 인형을 동시에 조종했다.
“싸움을 포기한 거냐? 물러난다면 해칠 생각은 없다. 돌아가서 황상의 명령을 수행해.”
여덟 개 황금 인형의 여덟 쌍의 손이 사도명의 목 주변을 원형으로 가리키면서 멈췄다.
사도명은 도광효를 두고 황제 쪽을 돌아보며 한숨을 쉬었다.
“밀금위대는 무척이나 강하구려, 나리!”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너는 결국 나를 황제라고 인정하지 않는구나.”
“그러는 나리는 스스로를 황제라 인정하고 있소?”
황제는 고개를 젓더니, 이윽고 도광효를 보았다.
“조화무제를 풀어주어라, 도연. 그의 판단이 옳다.”
“하, 하지만 황상!”
“나는 더 이상 황제가 아니다. 자격이 없어. 방여립을 상대하기 위한 준비는…. 나보다 조화무제가 더 잘할 것이다.”
도광효가 버럭 소리 질렀다.
“이미 싫다고 말했습니다. 신 도광효, 더 이상은 황상을 명을 받들지 못합니다. 밀금위대에 명한다. 그를 죽여-!”
멈췄던 황금 인형들의 손이 앞으로 뻗었다.
저마다 봉황천익의 공력을 갖춘 손은 사도명이 서 있던 장소를 네 쪽의 방위 높은 곳과 낮은 곳에서 각각 찔렀다.
피는 튀지 않았다.
여덟 쌍의 손이 사도명의 몸을 관통했건만, 사도명은 태연했다.
도광효가 몸을 떨었다.
“이, 이럴 리 없다. 밀금위대의 힘은 너의 능력을 계산해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그 말은, 고백인 거군!”
사도명은 여덟 개의 황금 인형 사이에서 태연히 걸어 나왔다.
“방여립과 싸우려다가 날 상대시킨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날 막으려고 준비했다는 고백이오?”
“아, 아니 나는….”
사도명은 황제를 향해 걸었다.
“열아홉 명 방여립을 동시에 상대하지 않았다면, 나는 길 너머의 길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도광효가 소리쳤다.
“새로운 깨달음은 얻었다는 건가, 조화무제? 믿지 못한다. 사람은 그렇게 빨리 변할 수 없다.”
“저 고함은 황제, 귀하를 위한 충성입니다. 귀하는 그래도 황제일 최소한의 자격은 갖추고 있군요. 충신 말입니다.”
황제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슬퍼하지 않는다. 도연 같은 충신이 사는 나라를 위해, 나는 좀 더 빨리 죽거나 느리게 죽거나 상관없다.”
“가장 빨리 죽을 겁니다.”
사도명은 오른손을 들었다.
“유언을 하세요. 짧게.”
“생사객은 강하다. 그가 정화를 도우면 남만의 파천마궁을 무너뜨리고 올 수 있을 것이다.”
“파천마궁?”
“파천마궁이 방여립 속 어둠의 시작이라 확신한다. 마궁이 사라지면 방여립은 자신의 계획을 서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유언입니까?”
“방여립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만이 기회다. 세상에 퍼진 방여립이 누구든, 그들을 없애라.”
황제가 눈을 감았다.
“시작하자. 매 순간이 고통이다. 나 때문에 죽어간 이들이 떠오른다. 이제, 그들을 만나러 가게 해 다오. 도연아. 너는 방해하지 말거라.”
도광효도 더 이상 손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는 부들부들 떨다가 황제처럼 눈을 감고 말았다.
사도명은 손을 저었다.
천극멸의 힘이 일어나 황제의 몸을 뚫었다.
피가 많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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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합지는 깜짝 놀라서 몸을 뒤로 돌렸다.
“지금 뭐라고 했소?”
뒤에 서 있던 생사객 몽염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냐? 나는 아무 말도 한 적이 없다.”
마합지는 잠시 멍한 표정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니오.”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느냐? 나도 그랬었다.”
생사객은 빽빽한 밀림 사이로 보이는 검은색 바위를 가리켰다.
“어쩌면 저것 때문일까?”
바위는 거대했고, 검었고, 군데군데가 뾰족했다.
언뜻 보면 흡사 성 같았고, 대충 지은 건축물 같기도 했다.
풍시혁은 잔뜩 긴장하여 호흡을 여러 번 몰아쉬었다.
“한데 파천마궁은 왜 아직 아무 반응이 없을까요, 대장군?”
황군은 바깥에서 대기 중이다.
밀림에 들어온 사람은 생사객과 마합지, 그리고 세 명의 부장군 뿐이었다.
비록 다섯 명뿐이지만 파천마궁이 그들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할 리는 없었다.
“둘 중의 하나겠지?”
마합지는 기묘한 형상의 거대한 바위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았다.
“우릴 인지하고도 겁이 나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약하거나! 알면서도 무시할 정도로 끔찍하게 강하거나.”
생사객이 앞을 가리켰다.
“둘 중의 하나를 찍으라면, 나는 후자에 판돈을 걸 테다.”
생사객 몽염이 가리키는 곳에서 무수한 검은 그림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은 네 사람 모두에게 익숙했다.
그들은 무림 출신이었고, 천하를 뒤덮었던 아수라혈교의 혈겁을 겪었던 사람들이었다.
좌부장 노량이 식은땀을 흘리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마, 말이 안 됩니다. 아수라혈교의 수라겁황이잖습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우부장 동연이 신음했다.
“저 많은 놈들 모두가 수라겁황에 버금가는 힘을 가졌다고 말하는 편이 좋겠소, 좌부장.”
“말이 안 되는군.”
풍시호의 말에 마합지는 허리의 검을 천천히 뽑았다.
“말이 안 된다는 건 단지 생각!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사실이며, 느껴지는 현실.”
풍시호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대장군님. 저자들은 너무 강합니다.”
“우리도 강하다. 지금의 세상은 설청산이 홀로 수라겁황을 상대해야 할 때와는 또 달라졌다.”
마합지는 부장군들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앞으로 달렸다.
검은 바위에서 쏟아져 나오던 수많은 검은 그림자들이, 다섯 가지 색의 강기를 온몸에 두르며 그를 맞았다.
“대장군!”
“대장군님!”
세 명의 부장군들이 분분히 소리를 지르면서, 마합지의 뒤를 쫓아 혼전 속으로 뛰어들었다.
생사객 몽염은 가장 마지막 순간에, 느릿하게 움직였다.
“지금의 황제가 내린 판단이 부디 옳기를 바란다.”
몽염의 온몸을 휘감고 도는 강기가 바닥의 잘린 나뭇가지와 썩은 풀잎을 휘감아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내가 모셨던 진짜 황제처럼, 잘못된 자들의 농락에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콰우우우우우우-!
몽염은 말 그대로 거대한 회오리바람으로 변했다.
그 상태 그대로, 몽염은 수십 명의 마인들이 포위하여 싸우고 있는 네 명의 황실 장군들을 도우러 돌진했다.
“약속대로 귀하의 장군을 돕는다. 귀하도 약속대로 세상의 장막을 걷어내라, 지금의 황제.”
검은색 괴인들의 주변을 감싸는 다섯 색채의 강기는 오대마문의 힘을 의미한다.
몽염은 어리석지 않았다.
그는 자신과 황제의 장군들이 힘을 합해도,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음을 안다.
밀림 먼 곳에 남아 있는 군사들이 모두 함께 들어와도, 파천마궁과의 싸움은 패배로 끝날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몽염은 싸움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는 세상에 죄를 지었다.
진시황이 만든 세상을 빼앗아간 조고를 저주하여, 몽염은 오히려 조고의 의지가 세상을 지배하는 일에 도움을 주었다.
다섯 색채의 강기가 앞뒤와 좌우 모두에서 몽염을 공격했다.
마합지는 잘 싸우고 있었지만, 부장군 세 명의 처지는 달랐다.
중부장인 풍시혁과는 달리, 노령과 동연은 이미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쓰러진 검은 괴인의 숫자는 이제 겨우 둘!
풍시혁과 마합지가 각각 한 명씩을 쓰러뜨린 것이었다.
몽염은 전력을 끌어올려 단번에 두 명의 괴인을 더 쓰러뜨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오늘 죽는다. 모두 죽고 살아남지 못한다.”
생사객 몽염의 기세는 그야말로 무적이었다.
하지만 그 기세가 영원히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몽염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다.
마합지가 봉황천익으로 다시 한 명의 괴인의 심장을 부수면서 소리쳤다.
“이 괴인들이 본래 누구였는지 알 것 같소.”
마합지를 비롯한 세 명의 부장군들이 모두 몽염의 주변으로 모였다.
오행의 진식을 형성해, 부족한 힘을 보충하면서 마합지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괴인을 가리켰다.
“저자는 천응사자다.”
풍시혁이 놀라서 외쳤다.
“천응사자? 과거 명교의 칠대사자중의 한 명 말입니까?”
“여기 괴인들은 모두 과거 명교의 교도들이다. 황상의 판단이 맞았다. 여기가 방여립의 본거지다.”
몽염이 양손을 휘저었다.
“그렇다면 우리 죽음은 더더욱 의미가 있겠군.”
휘감아가는 폭풍우 속에서, 다시 괴인 한 명이 더 폭발했다.
“이로써 방여립의 뿌리 하나가 아니라 그 근본이 잘려나간다.”
콰콰콰콰콰-콰콰쾅!
거대한 검은 바위의 한쪽이 무너졌다.
그리고 또다시 무수한 숫자의 검은 괴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친! 대체 얼마나 숫자가 많단 말인가?”
마합지가 신음할 때, 맑은 휘파람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몽염은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네 줄기의 강력한 힘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