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서역괴사
옥문관을 넘어서면 서역이 시작된다.
황제가 보낸 군대는 서역을 정복하란 명령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마합지가 사실상 정복하려는 땅은 남만이었다.
남만의 깊은 밀림에는 비밀스러운 문파가 존재한다.
세상은 그들은 마궁이라 부르고, 경원시한다.
“전설이 있다. 언젠가 마궁이 세상에 진면목을 드러내면, 그때 하늘이 부서진다는 전설이다.”
마합지는 끝없이 펼쳐지는 남만의 밀림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저 안쪽의 곳을 단순히 마궁이라 부르지 않고, 파천마궁이라고 불렀다.”
마합지는 황제로부터 대장군의 칭호와 정화라는 이름을 받았다.
아래로 세 명의 부장군이 그를 보좌했다.
부장군 중의 한 명인 풍시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장군. 조금 전 ‘우리는’이라고 하셨사온데….”
“나는 운남성 출신이다. 지금의 황상께서 내가 태어난 땅을 정복하시어, 나는 명의 신민이 되었지. 그러나 마음으로는 아직 서역민에 꽤나 가깝다.”
“아! 그럼 착잡하시겠군요.”
풍시혁은 마합지가 자신을 보자 어색하게 웃었다.
“마음으로 가까운 서역을 정벌하려 오셨잖습니까.”
“정벌? 누가 그러더냐?”
“하, 하지만 우리의 출정에 대해 세상에 알려진 바는….”
“방여립은 역도다. 천하의 전복을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악이며 어둠이다.”
마합지의 눈이 빛났다.
“그자는 황실을 전복시킬 명분으로, 명교의 복수를 말한다. 하지만 황상의 판단은 다르다.”
“황상께서는 어떻게 판단하고 계십니까?”
“저기 앞.”
마합지가 밀림을 가리켰다.
“저 안에 있는 비밀스런 궁!”
“…파천마궁 말입니까?”
“황상께서 천하 어둠의 근원을 오래 조사하셨다. 그리하여 의심하게 된 것이 저곳이다.”
풍시혁은 비로소 웃었다.
“애초부터 서역을 정벌하기 위한 출정이 아니었군요.”
“왜 웃는 게냐?”
“모든 전쟁의 바닥엔 무고한 백성이 놓입니다. 서역 백성의 죽음이라 해서, 마음이 편안할 리는 없잖습니까?”
“너의 마음은 약하구나.”
“약하지 않습니다. 적을 맞아 싸울 때의 저는 누구보다 용감하고 과감합니다.”
풍시혁은 뒤를 돌아보았다.
중부장인 자신 외에, 좌부장인 노량과 우부장인 동유가 보였다.
노량과 동유는 군사를 좌우로 나누어 군진을 펼치고 있었다.
진법이 완성된 것을 확인한 풍시혁은 마합지를 보며 웃었다.
“이제 진군을 명하시면, 역도를 쳐부수는 전투에서는 제가 얼마나 용감한지를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대장군.”
“진짜 정벌을 위해서라면 난 말이 아니라 배를 탔을 것이다.”
마합지는 검을 뽑았다.
“해로를 이용해, 명과 서역의 교역을 방해하는 자들을 쳤을 것이다. 그로써, 중원과 서역은 이웃이 될 게다. 고향 운남을 아직 잊지 못하는 나의 사명이다.”
검이 밀림을 가리켰다.
깊은 밀림의 안, 파천마궁을 향한 황군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후드드드!
우거진 나무를 자르고 풀숲을 밟고 전진하는 느린 걸음!
하지만 군세는 웅장했다.
“파천마궁을 부순다. 천하의 이목을 서역으로 모은다. 그 사이에 황상께서 마련한 안배가 방여립을 없앤다.”
군사들이 모두 전진한 후, 마합지는 풍시혁과 함께 중앙군을 이끌고 천천히 움직였다.
“하사받은 이름은 그때 비로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정화는 서역을 무너뜨리는 이름이 아니라, 하나로 잇는 이름이니까.”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중앙에서 전진하는 정예 황군!
마합지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내공을 끌어 올려 가장 앞에 선 병사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소리 질렀다.
“멈춰라! 모두 거기서 멈춰!”
드드드드드드드드드!
발걸음 소리가 갑자기 귀청이 떠나갈 듯 높아졌다.
마합지의 명령에 의해 황군이 멈추었음에도, 오히려 땅을 디디는 소음은 커진 것이다.
좌부장인 노량이 칼을 앞으로 곧추세우며 소리쳤다.
“적입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진군을 멈춘 황군의 앞쪽, 밀림 속이 흔들리고 있었다.
“철궁대는 장전하라.”
마합지가 왼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자, 우부장 동유가 외쳤다.
“발사!”
쇠로 된 화살이 나무 사이를 뚫고 날아갔다.
밀림 속은 화살로 싸우기엔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성한 나무 사이로 날아간 몇몇 화살은 적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화살은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안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거의 동시에, 아무런 공격도 받지 않은 동유 휘하의 병사 몇 명이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동유가 소리쳤다.
“적이 무형의 공격을 해 왔습니다, 대장군!”
마합지는 양손을 들어 넓게 펴고 둥글게 허공을 저었다.
노량과 동유가 군사를 더욱 넓게 펼치며, 가장 바깥에 선 병사들을 선봉군으로 진격시켰다.
“외곽부터 돌격!”
밀림 속으로 사라진 병사들!
곧바로 그들의 비명이 들렸다.
“크아악!”
“이, 이럴 수가!”
고통과 놀람이 하나로 섞인 비명이었다.
노량은 외가기공을 익힌 고수로 검과 창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온몸을 덮은 철갑에 호신강기까지 더한 채로 말 위를 떠나 밀림 속으로 날아갔다.
“내가 도우러 간다.”
똑같은 음성이 밀림 속으로부터 들려왔다.
“내가 도우러 간다.”
마합지를 비롯, 모든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날아가는 노량의 앞, 밀림에서 한 사람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노량이었다.
날아가고 있는 노량과 똑같은 차림을 한, 똑같은 얼굴의 누군가가 밀림에서 솟구쳐 나온 것이다.
마합지가 소리쳤다.
“싸우면 안 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노량은 밀림에서 나온 자신과 이미 칼을 부딪치고 있었다.
콰콰-콰쾅!
풍시혁이 마합지를 보았다.
“저게 어찌 된 일입니까?”
마합지는 밀림 속의 파천마궁에 대해 알고 있었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괴사에 대해서도 알 것이라고 판단했다.
마합지는 신음했다.
“파천마궁에 대한 전설! 마궁 안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어, 그걸 부수려는 자는 스스로 부서지게 될 거라는 경고!”
그는 말 위에서 몸을 날려 두 노량의 싸움 사이에 내려섰다.
“싸우지 마라, 노량. 또 다른 너는 환영이 아니라 실제다.”
퍼퍼-펑!
파천봉황신공의 봉황천익이 일백 개의 날개를 펼치며 일어났다.
두 명의 노량은 마합지의 힘에 의해 갈라졌다.
노량은 뒤로 넘어지려는 몸을 가까스로 바로 세웠다.
“실제라는 건 대체 어떤 말씀입니까, 대장군?”
“크흐흐. 이런 의미다.”
밀림에서 나온 노량이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자신의 검으로 스스로의 뺨을 그은 것이다.
검은 한 번 휘둘러졌지만, 피는 두 곳에서 튀었다.
노량은 검에 닿지도 않았는데 잘려나간 자신의 뺨을 잡았다.
“이, 이런 사술이 도대체!”
“사술이 아니다.”
설명한 사람은 마합지였다.
또한 마합지가 아니었다.
밀림 속에서 또 다른 마합지가 걸어 나오며 웃었다.
“마궁에는 세상이 있다. 우리는 너희다.”
밀림에서 나온 마합지는 본래의 마합지보다 얼굴이 조금 검었다.
그러고 보니 밀림의 노량 역시 본래의 노량보다 검었다.
마합지는 또 다른 자신을 노려보며 봉황의 날개를 일백여 개 뿜어냈다.
“처음에 궁수대가 철화살을 쏘았을 때, 아무 이유 없이 병사들이 죽었다.”
마합지는 봉황의 날개 중 하나를 움직여, 자신의 팔을 그었다.
피가 튀었다.
하지만 한 곳뿐이었다.
마합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적을 해치면 우리도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우리 상처는 적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단 건가?”
검은 마합지는 웃었다.
“마궁이 만드는 마계다. 마계는 세상에 존재하지만, 세상은 마계 속에 없다.”
검은 마합지의 뒤로, 또 다른 동유까지 걸어오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오는 군사들은 마합지가 이끌고 온 정벌군의 모습 그대로였다.
“마궁은 세상이다.”
검은 마합지가 웃었다.
“마궁을 부수려 하면, 세상이 부서진다. 그래서 마궁이 파천마궁이라 불리는 거다.”
마합지는 식은땀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에게는 아무리 강한 적과도 싸울 용기가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자신과 싸울 방법은 없었다.
적을 죽이면 자신도 죽는다.
그에 비해 자신이 죽는 건 적에게 타격을 주지 못한다.
“이건 싸워봤자….”
검은 마합지가 자신의 검은 군사를 향해 소리쳤다.
“전군 진격! 적을 없애라.”
검은 황궁들이 검을 뽑았다.
노량은 당황하여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이건 싸워봤자 소용없습니다. 어떡하면 좋습니까, 대장군? 적을 죽이면 우리도 죽게 됩니다.”
부장군이 물러서자, 병사들도 놀라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마합지는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또 다른 자신을 향해 걸어가며 날개를 한껏 뿜어냈다.
헤아릴 수 없는 개수의 날개가 부채처럼 공간을 덮었다.
“우리가 죽게 되어도, 적을 죽인다면 정벌이 헛되진 않겠지.”
퍼퍼퍼퍼-퍼펑!
봉황의 날개가 검은 마합지의 몸에서 폭발했다.
피가 튀었다.
똑같은 피가 마합지의 몸에서도 튀었다.
“세상에 충분히 소문날 것이다. 이목도 쏠릴 것이다. 해상 정벌의 꿈은 깨지겠지만, 그거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정말로 충분하다면….”
뒤로 물러서던 검은 마합지가 검을 들었다.
그리고 곧장 자신의 심장을 스스로의 검으로 겨누었다.
“이것으로 만족이겠지?”
검은 마합지가 죽으면, 본래의 마합지도 죽는다.
마합지는 한숨을 억지로 감추며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들 후퇴해라. 돌아가서 마합지가 황제의 장군, 정화로 서역에서 죽었다고 전하라.”
“대장군!”
풍시혁이 검은 마합지를 노리며 날아왔다.
하지만 또 다른 풍시혁이 나타나 그를 막았다.
검은 마합지는 자신의 가슴을 찔러갔다.
피가 튄다 싶은 순간에, 걷잡을 수 없이 강한 기운이 해일처럼 일어나 두 명의 마합지를 동시에 덮쳤다.
- 마계번생이란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기운은 검은 마합지를 휘감아 가루로 만들었다.
마합지는 놀라서 자신의 가슴을 만졌지만, 그의 몸은 부서지지 않고 무사했다.
생사객 몽염이 나타났다.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회오리 같은 기운은 검은색 병사들의 몸을 계속 무너뜨렸다.
하지만 몽염이 부순 병사들의 본신은 죽지 않았다.
마합지는 몽염을 안다.
하지만 몽염이 죽인 병사는 어째서 그 본신이 죽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요, 생사객?”
“마계번생은 생사의 경계 너머에 존재하는 세상이다. 윤회가 시작되는 지점이고, 살지 않았고 죽지도 않은 세상이다.”
몽염은 오른손을 들어 저었다.
검은색 분신들이 속절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황제의 부탁을 받고 왔다. 널 도우라더군, 정화.”
“아직 마합지요. 그 이름을 달 자격이 아직은 없소.”
마합지는 검은 병사들이 모두 사라졌음에도 자신의 병사는 무사함을 확인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 생사의 경계 너머는 뭔가 이 세상과 다른 법칙이 적용된다는 건가?”
“파천마궁을 의심한 황제의 판단은 옳았던 거 같다.”
“어떤 점에서 그러하오?”
몽염은 밀림 너머, 아직은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보았다.
“저곳에 생사의 경계를 넘어본 존재가 있다. 그렇기에 조금 전 마계번생이 가능했던 거다.”
몽염은 걸어갔다.
밀림의 나무와 풀은 전과 조금의 다름도 없이 흔들렸다.
하지만 또 다른 몽염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이미 한 번 죽었기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모두들 따라와라. 파천마궁을 없애자.”
군사들의 눈에는 더 이상 두려움의 빛이 없었다.
생사객 몽염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합류는 모두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마합지는 풍시혁을 보았다.
“파천마궁이 아수라혈교의 근원이라는 전설도 있었다.”
“그렇다면 파천마궁을 없애는 것이 천하의 평화와 안녕에 기여하는 것이란 황상의 판단은 매우 정확한 것이군요.”
“어떤 이상한 일이 더 벌어질지 모른다. 병사를 물려라.”
“하, 하지만 대장군!”
“너와 나. 그리고 부장군들만 생사객을 따른다. 안에서, 또다시 어떤 이상한 괴사가 벌어질지 모르니까.”
마합지는 덧붙였다.
“여긴 이미 우리가 알던 세상이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