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50화 (150/168)

150화. 대풍자(大瘋子)

개봉성의 철탑.

본래는 절이 있었으나, 절이 파괴된 후에는 사리탑인 철탑만이 남았다.

철탑은 파괴된 절의 이름인 개보사(開寶寺)보다 훨씬 유명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철탑의 아래에서 동냥하는 노인이 유명했다.

노인은 언제나 철탑의 아래에 앉아 있었다.

동냥 그릇 하나를 앞에 두고, 씻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으며 거적 위를 떠나지 않았다.

노인이 언제부터 그곳에서 동냥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개봉성의 노인들은 모두 손자들에게 말하곤 했다.

“이 할애비가 너만 했을 때도 저 노인은 저기에 저런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심지어 나는 이 얘기를 내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들었단다.”

사도명은 동냥하는 노인이 보이는, 아주 먼 곳에 서 있었다.

옆에 선 화운악을 보면서, 사도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들어본 것도 같소. 나도 어렸을 때, 개봉성 철탑에서 동냥하는 노인에 대해서 들었소.”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사부로부터! 그러니까 삼황오제를 거친 후 사람의 수명이 지금처럼 되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었을 참이었소.”

사도명은 잠시 말을 쉬었다.

감회가 복잡했다.

부모와 사부의 생각만 해도, 사도명의 마음은 아렸다.

분노와 슬픔이 애증으로 변해 흘렸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었지. 사부! 세상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화운악은 동냥하는 노인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럼 누구나 저분을 말했을 겁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저기에 앉아있다는 거렁뱅이.”

“나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것이 아팠소. 싫었지.”

“어떻게 하면 사람이 오래 사는지 궁금했던 거군요, 무제.”

사도명은 힘없이 웃었다.

“아마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살려내고 싶었던 것 같소. 그때 사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네?”

화운악은 사도명의 부모가 누구에게 살해당했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오. 대풍자의 얘기를 합시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오신 분이 왜 대풍자라 불리는 거요?”

화운악이 쓰게 웃었다.

“지켜보시면 압니다.”

**

동냥 그릇은 비어 있었다.

지나가던 중년인 하나가, 빈 그릇을 보고 혀를 끌끌 차더니 은자 하나를 꺼내 거기 넣었다.

땡그렁!

중년인은 동전을 넣은 뒤 한숨을 길게 쉬었다.

“노인장. 우선 몸이라도 씻으시오. 요기도 하고.”

동냥하던 노인, 대풍자가 고개를 들었다.

“어이, 거기!”

중년인은 대풍자가 자신을 부르자,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나? 날 불렀소?”

“불렀지.”

“고맙단 말을 하려는 거면 됐소. 갈 길이 매우 바빠서, 난 이만 가야겠소.”

“너, 이 근방 놈 아니지?”

중년인은 미간을 찡그렸다.

“놈? 이런 미친.”

“맞아. 나 미쳤어. 대풍자라 부르면 돼.”

“알겠소, 미친 노인. 난 개봉성에 일이 있어서 왔고, 급한 일을 하러 가는 도중에 당신 모습이 마음 아팠던 것뿐이오. 나는 이제 가야 하는데.”

“그냥은 못 가. 넌 나한테 돈을 줬잖아. 여기!”

“너무 작단 거요? 더 달란 거요? 얼마나 더 달란 거요?”

“더 줄 필욘 없지. 넌 모르나 본데, 돈을 준다는 건 네가 착한 일을 했다는 뜻이잖아.”

“착한 일? 그 정도까진 아니고, 노인장 보니 그냥 좀 씻고 옷이라도 사 입으라는 거니….”

“착한 일을 하면 어찌 되겠어? 극락정토에 가지 않겠어? 쉽게 말해서, 너는 내 덕분에 극락에 갈 수 있게 되는 셈이라고.”

“딴은 그렇군. 알겠소. 노인장 덕분에 나는 극락정토에 가는 걸로 칩시다. 고맙소.”

돌아서서 서둘러 가려는 중년인을 대풍자가 다시 불렀다.

“가지 말고 서라니까.”

“나는 가야 한다고 말했소.”

“사람이 은혜를 모르면 짐승과 다름이 없지.”

중년인은 미간을 찡그렸다.

“대체 무슨 소리요?”

“넌 내 덕분에 극락에 가게 됐잖아. 그런 은혜를 입어놓고 그냥 간다고?”

중년인이 당황하여 눈을 크게 뜨더니, 결국 한숨을 길게 쉬고 말았다.

“그래, 은혜를 입었다고 칩시다. 그럼 어떡하면 되겠소? 넣었던 은자, 되가져 가면 되오?”

“이건 이미 내 거야.”

“끄응. 그럼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오?”

“돈은 내 거니까 못 줘. 그러나 은혜를 베풀었으니까 고마움의 표시는 해야겠지?”

“방법을 속히 말하시오. 난 정말로 바쁘다니까.”

대풍자가 자신의 거적 앞쪽 바닥을 가리키며 웃었다.

“감사의 절을 하고 가라.”

중년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귀하에게? 내가 절을 해야 한단 말이오? 왜?”

“은혜를 베풀었으니까.”

중년인은 멍한 표정으로 대풍자를 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절하지 않고는 내가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소?”

“당연히 없지. 은혜에 감사하는 일에 핑계를 대면 안 돼.”

중년인은 허탈하게 몇 번 웃더니, 대풍자의 앞에 절했다.

대풍자가 히죽히죽 웃으며 중년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냐 오냐. 은혜를 베풀었으면 마땅히 갚아야지.”

중년인은 일어섰다.

“일진이 좋지 않군. 은자를 주고, 절까지 하고! 그래도 죽어서 극락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다행이라 칩시다.”

중년인이 멀리 걸어갔다.

대풍자는 동냥 그릇에 놓인 은자를 들고 빙글빙글 손안에서 돌리더니 웃었다.

“뭘 숨어서 보고 있느냐? 왔으면 냉큼 사부에게 인사 않고.”

화운악이 사도명과 함께 멀리서 걸어왔다.

“오늘은 왜 또 애꿎은 사람에게 억지를 부리신 겁니까?”

“억지라니!”

대풍자는 은자를 화운악을 향해 던졌다.

“이미 설명했잖느냐? 나는 그가 극락에 갈 수 있도록 도왔다. 마땅히 절을 받아야지.”

“사부는 나와 처음 만났을 때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무제.”

화운악이 사도명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낡은 행색에 마음이 아파 돈을 주었는데, 그때부터 절하라고 난리를 쳤죠.”

사도명은 웃었다.

“돈을 받아 공덕을 쌓을 기회를 주고, 절을 받아 마음을 다스릴 기회도 주셨습니다. 중년인은 손해 본 것이 아니지요. 사도명이 대풍자 어른을 뵙습니다.”

대풍자는 포권하는 사도명을 보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절을 하기 시작했다.

놀란 사도명이 옆으로 비켜서자, 대풍자는 절하는 방향을 바꾸어 계속 고개를 숙였다.

“왜 그러십니까?”

마침내 절하기를 마친 대풍자가 사도명을 보았다.

“보고도 모르느냐? 난 은혜에는 반드시 감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전 대풍자 님께 아직 은혜를 베푼 적이 없습니다.”

“어제 베풀면 오늘 절하고, 내일 베풀 것이기에 또한 오늘 미리 절하는 거다. 넌 상관 마라.”

화운악이 옆에서 사도명에게 전음을 보냈다.

[말투가 본래 저러십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무제.]

사도명은 대풍자의 말에 숨은 의미를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내일 베풀 은혜?”

그는 조금 전 대풍자가 중년인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 한 줄기 내공을 뻗어 그의 몸에 심어주는 것을 보았다.

“혹시 미래를 예언하십니까?”

“예언은 아니지만 조금 볼 수는 있다. 우리 전진파의 비술이 대부분 실전되었으나, 마지막까지 간직한 능력은 그것이니까.”

대풍자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지 않았다.

화운악과 함께 온 사도명이 조화무제임을 알기에, 굳이 숨길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다.

“아까의 중년인은 누굽니까?”

대풍자는 사도명의 물음에 대답 않고, 대신 화운악의 손에 들린 은자를 가리켰다.

“시내에 장운객잔이 있다. 우린 거기에 가서 요리 세 접시와 술 두 병을 주문할 것이다.”

“요리와 술입니까?”

“철필 기대홍은 오랫동안 무림을 떠나 살았다. 거친 싸움을 마치고 나면 무척 배가 고프고 목도 마를 것이다.”

화운악은 중년인의 이름이 기대홍임을 알았다.

“기대홍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여기서부터 백여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정심서원의 원주다. 무림인이면서 학문도 게을리하지 않아, 근방의 아이들에게 글과 문장을 가르치기도 했지.”

“그는 개봉성에 매우 급한 볼일이 있는 듯 보였습니다.”

“사망탑의 탑주인 망혼창 악군은 정심서원이 가지고 있는 논과 밭을 무척 탐냈다. 기름진 땅이라 곡식이 많이 나오거든.”

“자신의 것이 아닌 걸 가지려는 자들이 세상에 많습니다.”

“그러던 차에 정심서원의 학동 하나가 실수를 했다. 사망탑에서 관리하는 과수원에서 과일을 몇 개 몰래 따 먹은 것이다.”

대풍자가 한숨을 쉬었다.

“망혼창 악군은 그 학동을 잡아 가두고, 구하고 싶다면 기대홍에게 직접 오라고 말했다.”

“조건을 걸었겠군요.”

“비무. 기대홍이 이기면 학동을 살려주고, 기대홍이 진다면 정심서원 소유의 논과 밭을 모두 내놓아야 하는 조건이다.”

“기대홍의 볼일이란 그럼?”

“맞다, 제자야. 기대홍은 망혼창 악군과 싸우러 갔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철필이라, 그는 질 것이고 죽을 것이다.”

사도명은 계속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기대홍이 죽게 될 거란 말이 나오자, 비로소 대풍자에게 물었다.

“기대홍이 죽게 하지 않으려,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의 몸에 내공을 넣어주셨던 건가요?”

대풍자는 사도명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사내자식이 눈치 빠르긴.”

“하지만 이러한 모든 일들을, 단지 전진파의 비술로만 알아낸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당연하지, 멍청아.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의 정세를 알려주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런 방법으로 방여립이 세상에 저지르는 일들을 알아 오고 있으셨습니까?”

“우린 전진교라 불렸다. 교도들이 흩어지고, 전진파라 불리며 몰락한 지 오래되었다.”

대풍자의 웃음은 미친 사람답지 않게 슬퍼 보였다.

“남아 있는 건 이제 단 한 가지, 거짓 제자 방립이 훔쳐 간 이혼대법의 폐해를 막는 것이다.”

“그것이 좀 전에 해주신 기대홍의 이야기와 관련 있습니까?”

대풍자가 일어났다.

그가 몸을 움직이자, 걷잡을 수 없는 악취가 사방으로 퍼졌다.

“우선 보여주려고 한다. 전진이 미래를 본다는 것의 의미를.”

대풍자가 걷기 시작했다.

화운악이 그 뒤를 따랐다.

“놓치면 안 됩니다.”

사도명도 따라서 걸었다.

“어딜 가시는 겁니까?”

“아까 이미 말했잖아.”

대풍자가 히죽 웃었다.

“장운객잔이란 게 있다니까.”

**

화운악은 대풍자의 말대로, 장운객잔에서 세 접시의 요리와 한 병의 술을 시켰다.

요리가 나오고 잠시 후, 기대홍이 장운객잔에 나타났다.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하지만 자신의 피는 별로 없었고, 정작 대부분의 피는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너무 배가 고프군! 주인장, 여기에 요리와 술을…. 아!”

기대홍은 주문을 하다가 객잔 한쪽의 대풍자를 보았다.

“수고했다. 배고프고 목마를 테니, 이리 와서 들어라.”

대풍자의 말에, 기대홍은 즉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했다.

“저를 구해주신 거죠? 생명의 은인께 절합니다.”

기대홍은 악군과 싸웠다.

싸움은 위험했으며, 기대홍에게 지극히 불리했다.

한데 마지막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대홍은 뒷머리에서 일어나는 한 줄기 기운을 느꼈다.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기대홍의 손이 악군의 가슴을 가른 후였다.

기대홍은 대풍자를 보자마자,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승리한 이유가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대풍자의 손에서 뻗어 나온 진기가 기대홍의 몸을 바로 세웠다.

“너는 이미 내게 절했는데 다시 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

“그렇다면 요리라도 시키십시오. 무엇이건 대접하겠습니다.”

“시켜 놓은 요리 또한 본래 네가 준 것이다. 그 은자 말이다.”

대풍자는 기대홍에게 극락에 갈 수 공덕을 쌓아준다 말했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기대홍의 뺨에 눈물이 흘렀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제자 아이도 구했습니다.”

사도명이 대풍자를 만나러 온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대풍자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하게 보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화운악이 사도명을 보았다.

“제가 줄곧 주장했던 겁니다, 무제. 저의 세 번째 사부를 한시라도 빨리 만나야 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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