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49화 (149/168)

149화. 생사여일

제갈평은 연자강과 함께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았고, 차를 마시지도 않았다.

두 사람이 식사조차 하지 않고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은 지, 꼬박 하루가 지났다.

“저도 들어갈 걸 그랬네요.”

연자강의 말에 제갈평이 쓰게 웃었다.

“안에 들어갔던 나도 나왔지 않은가? 무제의 뜻은 방여립을 없애는 것에서 그치지 않소.”

연자강은 지하 석실 안에서 열아홉 명의 방여립과 싸우고 있을 사도명을 상상했다.

방여립은 강했다.

열아홉 명 각각은 모두 방여립이니, 저마다 강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기에 공수의 협력 또한 완벽할 것이다.

“무섭군. 이혼대법이란 것! 다른 사람의 몸에 복사된 혼. 끔찍하구나. 수없이 많은 방여립이 세상에 퍼져 있다는 건!”

이어지는 연자강의 혼잣말에 제갈평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무제는 저 싸움에서 스스로를 시험하고, 또한 길을 찾으려는 거요. 그 수많은 방여립들과 자신이 대체 얼마나 싸울 수 있는지를! 그 싸움이 가능할지까지.”

연자강 정도의 고수는 먼 곳의 기운을 파악할 수 있다.

지하에서 벌어지는 싸움.

다수와 개인의 싸움.

처음에 일방적으로 느껴지던 지하의 기운들은 차츰 그 우열이 달라지고 있었다.

사도명은 혼자 싸우겠노라며 제갈평까지 밖으로 내보냈다.

연자강은 사도명의 친구다.

아무리 사도명이 혼자 싸우고자 해도, 사도명이 불리했다면 연자강은 곧장 달려갔을 것이다.

연자강은 고개를 들어 넓게 퍼져 있는 나무의 가지를 보았다.

바람이 불었다.

나뭇잎 몇 개가 떨어졌다.

떨어지던 나뭇잎이 허공에서 일순간 멈추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정지하는 듯!

혹은 되돌아 감겼다가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듯!

연자강은 한숨을 쉬었다.

“너는 또다시 더 먼 곳으로 나아갔구나, 도명.”

연자강과 사도명은 같은 출발선을 지녔다.

두 사람 모두 검성이 남긴 무공을 익혔고, 거기에 자신만의 깨달음을 더하여 앞으로 갔다.

우주오검의 뒤쪽!

여섯 번째 검은 사도명과 연자강이 비슷했고, 일곱 번째의 검은 전혀 달랐다.

사도명은 우주오검 외에도 고금구천강이 남긴 또 다른 깨달음을 여러 가지 얻었다.

하지만 떠나간 것은 돌아온다.

모든 완성은 출발선으로 되돌아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연자강은 사도명이 여덟 번째의 검을 얻었음을 알아차렸다.

그 여덟 번째 검의 기운이 시간의 회오리를 만들었고, 연자강은 그것을 느낀 것이다.

“방여립 열아홉 명과의 싸움을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 계기로 만들다니! 과연 너답구나, 도명! 당신다우시오, 무제!”

지하로 통해 있는 문이 천천히 열렸다.

사도명이 걸어 나왔다.

온몸이 피투성이였지만, 눈빛은 형형해 지친 기색이 없었다.

제갈평이 일어나서 달려갔다.

“괜찮소? 다친 곳은 없소?”

“다른 이의 피입니다. 방여립이고, 방여립이 아니기도 한!”

사도명은 연자강을 보았다.

연자강이 빙그레 웃었다.

“여덟 번째의 검은 어떤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나?”

“느꼈나?”

“무척 자극받은 참이네. 친구가 너무 빨리 달려가니 뒤를 따르기가 점점 버거워.”

연자강이 왼쪽 먼 곳을 보았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던 곽소혜가 음식을 챙겨 가져왔다.

은교교는 그 뒤에서 술병 가득한 상자를 들고 오며 웃었다.

“꼬박 하루를 기다리며 굶었더니, 배가 등에 붙었어요.”

다시 그 뒤로 십구성좌의 장문인, 그리고 중요 직책의 사람들이 걸어왔다.

사도명은 이겼다.

하지만 그 승리는 축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각파의 이인자, 혹은 삼인자들이 모두 방여립이었음이 밝혀졌기에 침울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불가능해 보였던 사도명의 승리였다.

한 명의 방여립을 상대해 싸우며 고전했던 신 무림맹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이겼다.

은교교가 들고 온 두 병의 술은 더러 축하로, 더러 우울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졌다.

사도명은 가장 먼저 한 잔의 술을 비웠다.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잘 삶아진 닭의 다리 살을 먹은 후, 사도명은 맹도들을 둘러보았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했던 것이 아니라, 이길 수 있다 믿었기에 혼자 싸웠습니다.”

뜨거운 술이 사도명의 마음을 데웠고, 고소한 고기는 지친 몸에 활력을 전했다.

“방여립은 자신을 무수히 복제했습니다. 그 자신조차 대체 누구의 몸에 자신의 혼이 들어가 있는지를 모릅니다.”

“아미타불. 그렇다면 싸움의 와중에 자신이 다른 자신을 해치는 경우도 생기지 않겠소?”

대방선사의 질문이었다.

“그럴 경우를 대비하여, 마음속으로 암호를 정한 모양입니다. 햇살은 여전히 구름에 가려 있는가? 모두 비로 내려 햇살은 다시 나타났다.”

사도명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혹시 이 질문과 그 대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제갈평이 한숨을 쉬었다.

“나는 신 무림맹 내부는 모두 살폈소. 열아홉 명 외의 방여립은 찾아내지 못했다오, 무제.”

“방여립은 스스로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어쩌면 복제한 혼이 마음 안에 꼭꼭 숨어 있어, 자신이 방여립이면서도 알지 못할 수도 있지요.”

사도명은 좌중을 다시 보았다.

“정녕 아무도 없소?”

“아미타불. 있다 해도 자신을 밝힐 리가 없지 않소이까.”

“그렇다면 있든 없든, 제가 열아홉 명을 동시에 상대하여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말씀드리죠.”

사도명은 오른손을 들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일어나, 옆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흔들었다.

잎이 여러 개 떨어졌다.

“방여립은 강했습니다. 혼을 복사시킨 본래의 몸이 지닌 강함에 따라 약간은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강했습니다.”

떨어진 힘은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나풀거리며 낙하했다.

사람들은 귀로 사도명의 말을 들으며, 눈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잎의 궤적을 쫓았다.

“열아홉 명 방여립의 생각과 행동은 마치 저 잎과 같았습니다. 자유자재로 분방했지만, 모두가 같은 방여립이었죠.”

“아미타불.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소?”

“흔들린다는 것. 그리고 반드시 떨어진다는 것.”

“알겠소이다. 어떠한 방여립이건, 어떠한 생각과 행동을 하건 결과적으로 원하는 건 단 하나라는 의미구려.”

“방여립들은 싸우는 방법조차 각각 달랐지만, 싸움을 시작하는 방법과 끝내고자 하는 방향은 정확히 같았습니다.”

사도명의 오른손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떨어지는 나뭇잎이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고 생각했다.

혹은 거꾸로 허공을 거슬러 본래의 나무로 되돌아간다고도 생각하는 이도 있었다.

다시 보니 착각이었다.

나뭇잎은 그대로 떨어지고 있었고, 결국 바닥에 닿았다.

사도명이 다시 말했다.

“문득 나와 싸웠던, 죽었다가 되살아난 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삶과 죽음이 구분되지 않는구나. 저기의 방여립들처럼, 삶도 죽음도 결국 그 시작과 끝이 모두가 같구나.”

“아미타불. 생사여일이라는 것인가? 무제께서는 그 순간에 견불(見佛)하신 거구려.”

“생사여일. 그 이름 좋습니다. 그렇게 부르는 걸로 하죠.”

사도명은 비틀거리고 흔들렸지만, 결국엔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보며 웃었다.

“생사여일을 깨닫자 방여립들의 공격이 더러 느려지고, 더러 되돌아가기도 하여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겼죠.”

연자강도 떨어진 나뭇잎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는 허공에서 흔들리던 나뭇잎의 모습에서, 또 다른 검의 길을 보고 있었다.

사도명처럼 연자강도 여덟 번째의 검을 발견하기 직전이었다.

“아미타불. 얼마나 놀라운가? 시련을 주시고 절망을 주시면서, 희망도 함께 주시는구려, 부처여.”

대방은 지하 석실에서 벌어졌던 싸움의 양상을 상상했다.

**

거기 모였던 열아홉 명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방여립이었다.

그 때문에 누가 가장 먼저 덤벼들었고, 누가 가장 먼저 죽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 극단적으로 불리했을 싸움이 유리한 상황으로 바뀌는 순간만이 중요했다.

열아홉 명은 많은 숫자였다.

혼자서 상대하여 싸우기에는 지나치게 많았다.

더구나 그들은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장점이어야 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단점으로 변했다.

사도명이 생사여일을 깨달은 바로 그 순간!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기에, 시간은 때로는 흐르고 때로는 멈췄다.

가장 먼저 사도명을 공격했던 구양단적이 가장 먼저 죽었다.

구양단적은 사도명의 몸이 갑자기 사라지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느낀 후, 죽임을 당했다.

사도명은 그렇게 열아홉 명 중의 한 명을 이겨냈다.

뒤이어 적양곤이 사도명의 천극멸에 심장이 뚫렸다.

“더 이상 덤비지 마. 이미 승패는 결정이 났다.”

사도명은 한 명을 이기는 순간에 나머지를 이길 방법도 깨달았다. 그들은 한 명이기에 유리했지만, 결국 한 명이기에 불리해지고 말았다.

“승패가 결정이 났다 해도, 나는 멈추지 않는다. 아니, 우리는 그 누구도 멈추지 않아.”

사도명은 모두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을 하는 자들을 한 명 한 명씩 둘러보았다.

그들은 많았다.

세상에 퍼진 자들은 석실에 모인 자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래서 사도명은 오래 싸웠다.

마지막으로 목숨이 끊어진 것은 소림사의 장경각주인 대법이었다.

숨이 끊어지기 전, 그는 구양단적과 비슷한 말을 남겼다.

“내 혼이 들어가기 전의 대법 각주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나는 솔직히 알지 못한다.”

사도명은 긴 한숨을 쉬었다.

“최소한 방여립, 너보단 좋은 사람이었겠지.”

“알지 못하는데도, 가끔씩 내 것이 아닌 기억이 떠올랐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겠지?”

사도명은 판에 먹을 묻혀 찍어내는 판화를 떠올렸다.

계속 찍어내면, 똑같은 그림이면서 조금씩 흐려질 것이다.

사도명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계속 흐려지다 보면, 본래의 그림과 다른 그림도 나타날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지하 석실의 모든 방여립은 서로 같으면서도, 또한 저마다 조금씩 달랐다.

**

대방은 사도명이 죽인 방여립 중에 소림사의 장경각주인 대법도 포함되어 있음을 안다.

대법은 그의 사제였고, 불문의 자비심으로 충만한 승려였다.

“그러한 대법의 혼을 지우고, 네 혼을 덧씌우다니, 방여립! 얼마나 사악하며, 얼마나 잔악한가? 네가 아무리 천하에 많이 퍼져 있다 해도, 반드시 응보가 있을 것이다. 아미타불.”

인과에는 응보가 따른다.

대방은 방여립의 사악함이 만들어 낸 부처의 응보가 사도명이라고 생각했다.

“이겨 주시오. 반드시 방여립을 물리쳐 주시오.”

“어쩌면 제 사명이 그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도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그런 일을 시키기 위해, 모든 인연들이 주변에 모여왔던 것일지도요.”

- 하지만 방여립 개개인을 싸워 이기는 방법을 알았다 해도, 그 방법이 전체 싸움의 승자를 결정짓는 건 아닙니다, 절대로!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도명은 몸을 돌려 화운악을 보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아오, 맹주! 대풍자! 그를 만나러 가자는 말씀을 하려는 거지요?”

“그분만이 방여립을 완전히 물리칠 방법을 아십니다. 가짜 제자 방립에게 이혼대법을 강탈당한 후부터 전진파는 오직 그를 물리칠 방법만을 연구했습니다.”

“갑시다. 가는데, 가기 전에 모두에게 한 가지 물읍시다.”

곽소혜가 가져온 음식은 모두 먹었고, 은교교가 가져온 술도 거의 동났다.

사도명은 자신의 앞에 놓인 마지막 술잔을 비웠다.

“열아홉을 이미 죽였소. 거기에 한 명을 더하여 죽일까?”

제갈평은 사도명이 말하는 한 명이 누구인지를 안다.

“무제!”

화운악도 놀라서 외쳤다.

“진정으로 하늘을 바꾸실 겁니까? 역천을 하실 겁니까?”

“생사여일. 삶과 죽음조차 구분되지 않는데, 인간이 정한 황제의 신분 따위를 구분할 필요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맹주?”

사도명은 다시 한번 모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사도명의 말뜻을 알아차린 사람들의 눈에 경악이 떠올랐다.

은교교가 나직이 물었다.

“역모, 입니까?”

“나는 방여립과 싸우도록 운명 지어진 모양이오. 그런데 다른 운명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도명의 안색은 어두웠지만, 눈빛은 더없이 형형하게 빛났다.

“하늘이 하늘답지 않소. 그러니 그것도 바꾸어야 하는지를 지금 모두에게 묻는 거요, 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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