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47화 (147/168)

147화. 중요한 선택

사도명은 처음부터 도광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갑자기 들려온 대답에 놀랄 이유는 없었다.

사도명이 놀란 것은 도광효 대답 속에 깃든 내용이었다.

“나를 통제한다? 그 방법을 귀하가 알고 있다?”

사도명의 몸에서 일어난 무형의 기운이 도광효를 휘감았다.

“아직은 아니 되지.”

도광효는 서둘러 마음의 문을 닫았다.

그는 사도명에게 사람의 마음을 읽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내 마음을 읽는 시도 정도는 용서한다. 하지만 황상의 어심을 읽으려다가는, 대역죄로 심판할 것이다.”

사도명은 황제를 돌아보았다.

황제 역시 이미 마음의 문을 닫아,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다.

도광효가 소리쳤다.

“시도하는 것만으로 대역죄라는 것을 듣지 못했느냐?”

“그간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왔는지, 감시했으니 알 거요.”

도광효는 부인하지 않았다.

“알고 있다. 보고 받았다. 부활한 고금구천강을 만났다지?”

“그중에 철목진도 있었소. 황제 중의 황제. 나는 그와 싸웠지. 그건 대역죄가 아닌가?”

“그가 죽은 지 언제인데 아직 황제란 말이냐? 세상이 변했는데 싸운들 어떠하단 거냐?”

사도명은 피식 웃더니 황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들으셨소? 세상이 변했다는군. 지금까지 변했으니 앞으로도 변할 거요.”

“무슨 말이 하고 싶으냐?”

“어제의 황제가 오늘의 황제가 아니듯, 당신 또한 결국 내일의 황제는 되지 못한다는 거요.”

황제는 말을 멈췄다.

그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늘을 바꿀 생각을… 마음에 두고 있느냐?”

“지금은 다만 물어볼 뿐이요. 호북의 벽씨 가문. 그들은 왜 죽었소? 아니, 왜 죽였소?”

황제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도광효가 고개를 흔들었다.

“천하를 다스리다 보면, 하고 싶지 않은 일조차 결국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다른 방법은 없었나?”

“명분을 만드는 일이란 쉽지 않다. 서역 정벌의 명분을 보여주자면, 눈앞에서 시체를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지.”

사도명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는 지금! 다른 방법이 없었는지를 물었다, 도광효!”

“방법이야 찾자면 있었겠지. 하지만….”

“하지만?”

사도명의 물음에 도광효는 느긋하게 대답했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자아, 마음을 다시 열었으니 읽어라.”

사도명의 기운이 도광효의 마음까지 스며들었다.

그의 마음속에 몇 가지의 단어들이 떠올랐다.

여와방. 은요진. 그리고….

“은요경? 교교의 이모? 교교에게 혈육이 존재한다고?”

사도명은 도광효의 마음에서 여와방의 금제에 대해서 읽었다.

여와방은 한 명의 방주와 다섯 명의 여인으로 이루어진다.

방주는 도광효이며, 다섯 여인은 오은이라 불린다.

오은은 모두 몸에 금제를 심어두고 있고, 그 금제는 방주에 의해 언제든 발동한다.

생사여탈이 방주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의미였다.

“치졸하다!”

폭풍 같은 살기가 사도명의 마음에서 일어났다.

살기에 반응하여 마음의 검이 뻗었고, 검은 황제의 목에 곧바로 닿았다.

도광효를 보는 사도명의 시선에 가득 담긴 것은 분노였다.

“협박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졸렬한 방법뿐인가? 네가 금제를 이용하여 교교의 이모를 죽일 수 있다면, 나 역시 내 살기로 황제를 죽일 수 있다.”

도광효는 담담했다. 그리고 황제는 도리어 웃었다.

“잊었느냐, 조화무제? 짐은 오래 살지 못한다.”

사도명은 기억하고 있었다.

황제에게는 적어도 한 가지의 강점이 존재했다.

그는 자신의 목숨과 타인의 목숨을 차별하지 않았다.

전대의 황제였던 구패객이 자신의 모든 것을 넘기고 황위에서 내려온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사도명은 결국 마음의 검으로 일으켰던 검강을 거두었다.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하는 것으로 변명한다는 건가?”

몸을 돌려 도광효를 보았다.

황제에게 협박이 통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귀하는 어떠냐, 도광효? 귀하는 황제와 달리 목숨이 귀하다는 것을 알겠지?”

도광효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렇다. 나는 물론 나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지.”

사도명이 다시 검을 일으켜 도광효를 겨누었다.

“그럼 다른 변명을 찾아봐야 할 거야. 네가 교교의 이모를 해치기 전, 내가 널 죽일 테니까.”

사도명은 도광효를 향해 검을 겨누다가, 이내 멈추었다.

그는 끝내 검을 앞으로 밀어내지 못했다.

도광효가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 보였기 때문이다.

“연결되어 있다고?”

사도명의 물음에 도광효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원하면 오은은 모두 죽는다. 내가 죽어도 당연히 금제는 발동한다. 그때도 역시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

“교교는 강한 여자다.”

사도명은 도광효를 겨누던 검기도 결국 거두었다.

“혈육으로 협박한다고 그녀가 받아들일 것 같나?”

“은교교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지. 그래서 너를 협박한다, 조화무제! 사랑하는 여자의 혈육이다. 사내라면 지켜줘야지?”

황제와 도광효는 죄 없는 벽씨 가문을 몰살시켰다.

그럼으로써, 두 사람은 자신들의 잔인함을 증명했다.

도광효는 마음을 활짝 열고 스스로 읽혔다.

그러한 행동으로, 그는 자신의 협박에 거짓이 없음도 증명했다.

사도명은 황제를 돌아보았다.

“백성을 죽여 모략을 꾸미고, 백성을 죽이겠다 협박해서 모략을 다시 꾸민다. 아시오? 당신은 이미 황제의 자격을 잃었소.”

“본래 없었지. 알고 있다.”

“지금 당장은 날 협박할 수 있을 거요. 하지만 떠나간 모든 것은 언젠가는 돌아오지.”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이 모든 죄악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지마.”

“어떻게 질 거요?”

“죽음! 그보다 더 절절한 게 있다면 그것까지.”

사도명은 황제와 도광효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서, 벽 쪽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도광효가 소리쳤다.

“감히! 황상의 면전에서 이리 무엄하느냐?”

사도명이 오른손을 저었다.

그 간단한 동작에 도광효는 자신의 왼쪽 팔목 뼈가 박살이 나는 것을 느끼고 비명을 질렀다.

“크아악! 이놈!”

“더 이상 너희 둘을 인정하지 않는다. 황제도 아니고, 나라의 관리는 더더욱 아냐.”

“끄으. 정녕 네놈이.”

“여와방의 오은. 이미 돌아가신 분을 제외하고 모조리 금제를 풀어라.”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마.”

“일이 끝나면, 약속한 책임을 져라. 제대로 지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책임을 묻겠다.”

황제는 도광효를 보았다.

“그것도 그렇게 하마. 가져오거라, 도연.”

도광효가 상소문 하나를 가져와 사도명의 앞에 활짝 펼쳤다.

황제의 손이 거기에 적힌 이름들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하고 싶지 않은 일! 그런데 이 상소문을 보자, 나는 그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했다.”

황제는 상소문을 처음 봤을 때 핏기를 잃었었다.

사도명의 얼굴도 그때의 황제처럼 창백하게 질렸다.

상소문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조목조목 근거를 들며, 이 사람이 바로 방여립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사도명이 도광효를 보았다.

“여기 적힌 내용들은…?”

“확인했다. 근거로 드는 내용들은 모두 사실이고, 따라서 여기에 적힌 이름들 모두는 방여립이 분명하다.”

이름은 하나가 아니었다.

하나의 이름이었다면, 황제와 사도명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변할 이유가 없었다.

정확히 열아홉 개였다.

십구성좌!

각각의 문파마다 한 명씩의 방여립이 존재하고 있었다.

모두 사도명이 익히 아는 이름이었다.

“각각의 문파에서 두 번째, 적어도 세 번째의 서열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군.”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 무림맹은 십구성좌로 이뤄져 있다. 전쟁이 벌어지고 일인자 혹은 이인자까지 죽으면, 이들이 모두 십구성좌의 주인이 된다.”

사도명이 몸을 일으켰다.

도광효가 그 앞을 막았다.

“어딜 가려는 거냐? 아직 황상의 말씀이 끝나지 않았다.”

“끝까지 듣지 않아도 들리는 얘기가 있다. 내게 요구하는 건, 황실이 서역 정벌로 천하의 이목을 끄는 사이 이 열아홉 명을 제거하는 것. 그 외에 더 있나?”

“황제의 면전이니 무례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크악!”

도광효가 절뚝거리며 물러났다.

사도명은 황제를 돌아보았다.

“죽이는 건 문제가 생기지만, 고통을 주는 건 다른 문제지.”

“…그런 말투! 짐을 황제로 인정치 않는 건 인정하마. 하지만 오늘 약속한 일은 반드시 완수한다고 맹세해다오.”

“귀하들도 약속을 지켜라. 날 속인다면, 고통 속에서 영원히 죽지 못하게 만들 걸 약속하마.”

사도명의 몸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이 사라졌다.

황제는 도광효를 보며 쓰게 웃었다.

“저 녀석이 짐을 영원히 죽지 못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구나, 도연. 도움을 청해 볼까?”

도광효는 발목이 부러졌고, 손목도 흔들거렸다.

“고통 속에서라 했잖습니까? 지금 매우 아픕니다. 이런 상태라면, 오래 사는 것도 별로 행복한 건 아니겠습니다.”

황제는 다시 한번 상소문에 적힌 이름들을 훑어 내렸다.

“그래. 그게 진실이야. 오래 산다는 건, 하기 싫으나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을 그만큼 많이 해야 한다는 뜻이지.”

“그래도 저는 황상이 되도록 오래 사시기를 바랍니다.”

“짐은 오래 살기 싫다. 그런데 왜 방여립은 그걸 원할까? 다른 몸으로 나뉘면서까지 대체 왜 그렇게 살고, 그렇게 세상을 망치려고 하는 것일까?”

**

은교교는 화운악과 함께 황궁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연자강은 곽소혜를 치료하면서 신 무림맹 총단에 남았다.

자정이 넘어 사도명이 황궁으로부터 나왔다.

그의 표정을 알아차린 은교교가 놀라 물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화난 것이 아니다. 구역질을 겨우 참는 중이다.”

“…구역질요?”

“큰일을 핑계로 남을 희생시킨다. 벽공 노인의 말이 옳다. 그들은 자격이 없다. 하늘은… 바뀌어야 한다.”

화운악의 눈이 빛났다.

“정말로 황제를 바꿀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무제?”

사도명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을 하고 있소, 맹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요?”

사도명은 은교교를 보았다.

“한 여자가 당신을 만나러 갈 거야. 반가운 얼굴일 거야. 그녀가 오면 내게 알려 줘. 그럼 나와 화운악 맹주가 매우 중요할 일을 시작할 거니까.”

설명을 건너뛰었기에, 은교교와 화운악은 사도명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

사도명은 하늘 높은 곳으로 솟은 달을 보았다.

화가 치솟았던 밤인데도 달빛은 교교했다.

그는 어렸을 때 부모를 잃었다.

부모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외로운지 잘 안다.

은교교도 부모의 정을 거의 받지 못하고 살았다.

아버지의 사랑을 겨우 깨달았을 때, 그 아버지는 죽고 말았다.

“달이 예쁘다. 저 달빛 아래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참 좋겠지, 교교?”

“…네? 아, 뭐 그렇겠죠.”

사도명은 처음으로 후회했다.

산속에서 은교교를 만난 후, 세상으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슬프고, 아픈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또한 후회하지 않았다.

아픈 일이 없다면 다시 찾아올 기쁜 일도 없을 테니까.

**

사흘 후, 은교교는 세상에 남은 유일한 혈육을 만났다.

은요경은 언니와 함께 여와방의 방도가 되었다.

오은으로 분류되는 다섯 명의 여인은, 도광효의 은밀한 명령을 받으며 천하의 중요한 일들을 뒤에서 돕거나 도모했다.

그러다가 비로소 풀려났다.

금제에서 풀려난 은요경은 죽은 자신의 언니와 꼭 닮은 조카를 만나서 울었다.

사도명은 멀리서 서로 껴안고 우는 이모와 조카를 보았다.

화운악이 그 옆에 있었다.

“이제 말씀하셨던 그 매우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가 된 것입니까, 무제?”

“그렇습니다, 맹주.”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사도명은 몸을 돌려 화운악을 똑바로 보았다.

“이제 선택을 할 거요.”

“선택…입니까?”

“열아홉을 죽일 것인지! 하나를 죽일 것인지! 혹은….”

사도명의 눈이 빛났다.

“그 둘을 합하여, 스물을 모두 죽일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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