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이혼대법
힘과 힘이 부딪치는 싸움에서는 단순한 공격이 오히려 최선의 방어가 된다.
몽염의 몸통 부딪치기.
천년 넘는 세월 동안 쌓은 몽염의 내공은 철목진으로서도 쉽게 물리치지 못할 크기였다.
몽염과 철목진은 서로 싸웠다.
힘과 힘이 엉켜, 주변으로 강기의 폭풍을 뿌려댔다.
대방 선사가 소리쳤다.
“우리에게 기회요. 모두 생사객을 도웁시다.”
십구성좌의 주인들이 일제히 철목진의 뒤를 노렸다.
그 와중에 방여립은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상황이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돌아감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사도명이 오른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목이 허공으로 날았다.
방여립의 몸은 목을 잃고도 뒤로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철목진의 몸이 갑자기 격하게 떨더니, 뒤로 쓰러졌다.
사도명이 소리쳤다.
“이제 칸과 싸우지 마십시오. 더 이상은 적이 아닙니다.”
생사객 몽염이 손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대방 선사도 상황을 깨닫고 고수들의 앞을 막았다.
방여립의 몸은 뒤늦게 뒤로 쓰러졌다.
화운악이 그 옆에 섰다.
“끝이 아닙니다, 무제.”
그는 손바닥을 편 채로 방여립의 가슴에 대었다 뗐다.
그리고 사도명을 다시 보았다.
“의제 원일경은 방여립이었습니다. 하지만 또한 방여립이 아니기도 합니다.”
화운악의 말에는 숨겨진 뜻이 있었다.
사도명은 몽염과 신 무림맹 고수들이 물러난 사이, 쓰러진 철목진의 옆에 섰다.
“내 말이 들립니까? 정신이 돌아오는지 묻는 겁니다.”
죽은 자는 부활한 후, 오직 새로운 죽음을 맞이할 경우에만 자신의 혼을 찾는다.
제정신을 찾고 말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쓰러져 있는 철목진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났다.
“왜 여기에 있는지, 네가 누군지, 대충은 안다. 혼이 없는 와중에도 주변은 느끼고 있었다.”
그는 사도명을 보더니, 고개를 옆으로 돌려 처참하게 변해 있는 야율라의 시신을 보았다.
“또한, 저 아이가 누군지 확실히 알겠다. 내게 충성을 바치던 누군가의 후손이구나. 대체 시간이, 세월이 얼마나 흐른 거냐?”
“귀하의 천하가 사라지고, 귀하가 천하를 보호할 필요가 없을 만큼 흘렀습니다.”
사도명은 철목진에게, 금륜과 은편에게 했던 설명을 다시 했다.
“세상은 이제 스스로를 지킵니다. 세상을 지키려 굳이 하늘의 순리를 거스르지 마세요.”
철목진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끝부분부터 풍화되고 있었다.
“편안하구나. 사라져야 할 때, 사라진다는 것은!”
“그렇습니까?”
“살아생전 장춘에게 요청했다. 불사의 방법을 찾고자 했다.”
철목진이 시선을 돌려 화운악을 보았다.
“장춘이 대답하더구나. 불사의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칸의 뜻이 정녕 그러하다면, 비슷한 방법은 찾아보겠습니다.”
화운악이 미간을 찌푸렸다.
“칸은 왜 저를 그런 눈빛으로 보십니까?”
“장춘이 말한 비슷한 방법이란 이혼대법을 의미한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너는 알고 있지?”
화운악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말 그대로 혼을 옮기는 수법입니다. 사람의 몸과 몸으로 혼을 옮길 수 있습니다. 옮긴 혼과 남겨진 혼이 구분되지 않아서, 마치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는 듯한, 금단의 대법입니다.”
“장춘은 장춘자. 본명은 구처기. 그는 나의 살아생전에 전진파의 제오대 교주가 되었다. 전진파는 지금 몇 대냐?”
화운악은 망설이다 대답했다.
“…대가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명맥이 끊어졌었고, 겨우 몇몇 가지만이 남았습니다.”
화운악의 대답은 놀라운 사실을 의미했다.
전진파에 대한 지식.
결코, 내부의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화운악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사도명은 화운악이 자신에게 패한 후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돌아왔음을 안다.
그 사이, 화운악은 놀라울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전진파의 인연을 이은 것이오, 맹주?”
전진파는 왕중양이 창건했다.
오대 문주인 장춘자 구처기가 삼만 명의 노예를 석방하여 한때 천하에 명성이 높았지만, 어느새 세상에서 잊혀졌다.
철목진은 빠르게 풍화되었다.
팔과 다리는 이제 거의 전부가 먼지로 변했을 정도였다.
“이혼대법은? 전진파의 이혼대법은 보존되어 있느냐?”
“그것을 잃는 바람에, 그때 전진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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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명에게 패한 뒤 화운악은 세상을 떠돌았다.
그는 무공에 있어서만 패한 것이 아니었다.
마음에 있어서는 더욱 철저하게 패했다.
화운악은 강해지고자 세상을 배신했지만, 사도명은 아무것도 배신하지 않고 강해졌다.
자신을 지킴으로써 더더욱 강해졌다.
철저한 패배감에 휩싸인 화운악은 자신을 버려서 새로운 강함을 찾고자 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전진파의 명맥을 마지막으로 잇던 대풍자였다.
대풍자는 매희구와 설청산의 뒤를 이어, 화운악의 세 번째 사부가 되었다.
“전진은 무너졌다. 이혼대법을 빼내 가기 위해, 거짓으로 제자가 되었던 놈이 전진을 무너뜨렸다. 내 사조의 사부 대에 있었던 일이다.”
대풍자는 무려 이백여 년 전의 일을 말해 주었다.
성세가 사라진 전진파가 완전히 무너진 사건에 대한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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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여 년 전에, 거짓 제자 한 명이 전진파에 잠입했습니다. 그는 이혼대법을 빼내 갔고, 그 일을 하며 전진파 모든 사람을 중독시켜 죽였습니다.”
화운악의 말에 철목진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누가 한 짓이냐?”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흑막! 그들의 짓이라고 대풍자 사부가 말했습니다.”
“나의 때에도 있었다. 어딘가에 존재하는 흑막! 다시 태어나면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내가, 불사의 방법을 찾고자 했던 이유가 그들 때문이었다.”
“대풍자 사부는 그 흑막을 찾으라 하며, 나를 강하게 만들었고 세상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사도명은 천천히 걸어와서 화운악과 철목진의 옆에 섰다.
“이혼대법을 훔쳐 간 이를 찾고자 무림맹을 재건하였소, 맹주?”
“훔쳐 간 자라면 이미 찾았습니다. 무제.”
화운악은 바닥에, 서로 분리된 채 떨어져 있는 방여립의 몸뚱이와 목을 보았다.
“이백여 년 전의 거짓 제자, 그의 이름이 방립(方立)이었습니다. 누군가와 비슷하지요?”
방립과 방여립(方餘立)!
혼자 서 있던 ‘립’은 이혼대법을 얻고 비로소 넉넉하게 서는 ‘여립’이 되었을 것이다.
사도명은 방여립이 세상의 소멸을 위해 준비한 세월이 일이십 년에 그치지 않음을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흑막!
전진파의 거짓 제자였듯, 방여립은 명교의 거짓 제자로 분해서 결국 세상을 모두 무너뜨린 계획을 완성시켰다.
바닥에 쓰러져 죽은 의제 원일경의 시체는 방여립이 이혼대법을 완성했다는 증거였다.
“몸과 몸을 바꾸면서 계속 살아온 건가? 너의 근원은 환관 조고인 거냐? 혹은 그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자냐?”
의제 원일경은 죽었다.
몸과 목이 분리된 자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방여립도 죽었을까?
이토록 쉽게 죽을 거라면, 방여립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세상을 가장 오랫동안 속여 왔던 사람이며, 불가능조차 고려하는 자였다.
사도명이 화운악을 보았다.
“사람의 몸에서 다른 몸으로 혼을 옮기면, 옮겨 나간 몸은 어떻게 됩니까, 맹주?”
화운악은 이제 절반 가까이 풍화되고 있는 철목진의 몸을 살피며 대답했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한 장의 종이에서 다른 종이로 글을 옮겨 적으면, 원래의 종이와 옮겨 쓴 종이가 모두 남는 것처럼요.”
철목진이 쓰게 웃었다.
“그것참 안타까운 일이군. 다른 사람은 모르겠으나, 나는 그 사실을 잘 안다.”
사도명은 의제 원일경의 몸도 풍화되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불사는 불사가 아니로군.”
“그러하다. 나를 깨운 저자는 스스로 불사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사람이란 유한한 생명이기에 비로소 영생할 수 있다.”
“천하에 귀하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소. 영웅, 혹은 악마! 저마다 판단은 다르지만 칭기즈 칸이란 이름은 아오.”
“나의 이름을 기억하는 자들이 나의 제국을 영원히 지켜주기를 바랐었다.”
“귀하의 제국은 이미 사라졌소. 이름만 남겨졌소.”
“그런 건가?”
철목진의 몸은 이제 거의 먼지로 변해 버렸다.
“아무튼 편안하다. 안온한 휴식이다. 내 충신의 후예를 저승에서 만나면 사죄하마. 해친 것은 나의 본의가 아니었다.”
철목진은 사라졌다.
사도명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야율라를 떠올렸다.
그는 야율라와 오래 만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큰 신세를 졌고, 그 은혜는 갚지 못했었다.
“결국 방여립은….”
사도명은 완전히 사라진 철목진을 향해 한 차례 고개 숙인 후, 몸을 돌려서 화운악을 보았다.
“자신의 혼을 복제했고, 여기에 죽은 의제 원일경은 그렇게 복제된 혼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얘기가 맞지요, 맹주?”
“그렇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모두의 낯빛은 어두웠고, 웃는 사람은 없었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사도명이 돌아왔지만, 죽은 이들은 살아날 수 없었다.
제갈평이 제갈청미의 부축을 받고 걸어왔다.
“이겼다 싶으면 진 것이고, 졌다 싶으면 또한 더욱 비참한 패배를 당하는 건가?”
제갈평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마지막 흑막 방여립을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구려, 무제.”
사도명은 제갈평이 왼쪽 다리를 절고 있음을 보았다.
“다리는 왜 그런 겁니까?”
“너무 무리한 모양이오. 혼자서 걷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제갈평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제 다리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입니다.”
대방 선사가 불호를 읊었다.
“아미타불. 그래도 패배하지 않았잖소. 희생은 있었으나, 방여립의 의도는 봉쇄하였소.”
사도명이 고개를 저었다.
“봉쇄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그러하오?”
“고금구천강의 부활은 막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방여립은….”
“방여립도 막았잖소.”
“오늘의 일이 세상에 소문나지 않게 막아 주세요. 세상 사람들이, 방여립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며, 어떤 모습으로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음을 알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사도명은 제갈평을 보았다.
제갈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록에도 이 내용은 적지 않겠소. 이혼대법에 대한 것을 알리지 않겠소.”
세상은 어두웠다.
죽은 의제 원일경의 시신도 철목진처럼 완전한 먼지로 변했다.
사도명은 머리를 흔들었다.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미래의 환영이 눈에 보았다.
원일경과는 다른 모습을 한, 수많은 또 다른 방여립이 세상을 걸어 다니는 광경이었다.
“절대로 세상에 오늘의 일이 알려져선 안 되오. 세상이, 공포를 느끼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위협하기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방여립처럼, 스스로의 죽음까지 이용하여 세상을 위협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세상에는 많은 방여립이 존재했다.
이혼대법이 그런 일은 가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개개의 방여립에게도 자신의 삶이 존재했다.
아무리 또 다른 자신이 남아 있다 해도, 각자에게 죽음이란 굳은 결심을 필요로 하는 결단이었다.
“스스로 죽어 원하는 것을 얻는 자. 그런 자들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녀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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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이치는 항상 비슷하다.
의도한 일을 성사시키는 것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일은 언제나 쉽게 이루어지고, 돌이켜 보면 그러한 일을 막을 방법이란 없다.
신 무림맹은 방여립의 일을 세상이 모르도록 만들려 했다.
하지만 막으려는 시도만큼이나 강하게, 방여립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혼대법이라는 것이 있다는군. 혼을 분리시켜서,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요술이래.”
“방여립은 귀신이라며?”
“나도 들었네. 죽지 않고 세상을 모두 망가뜨릴 때까지 모습을 바꾸며 산다던데.”
소문은 금세 황궁에까지 가서 닿았다.
천하 곳곳에서 들어온 방여립에 대한 상소가 쌓여 있었다.
황제는 상소문을 훑어보고, 다시 옆에 서 있는 도광효를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 녀석들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도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