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44화 (144/168)

144화. 스스로에게 대답하라

방여립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사도명의 힘을 보았다.

똑같은 외양의 힘이 똑같은 중심을 공유하고 있었다.

방여립은 두 손을 들었다.

“내게는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아직 알려준 자가 없더냐, 조화무제?”

대방 선사가 소리쳤다.

“건곤대나이신공입니다. 조심하십시오, 무제. 공격한 힘 모두를 그대로 반사합니다.”

사도명은 태연했다.

“정말로 모든 힘을 반사할 수 있을지 시험하는 중이오.”

오히려 놀란 쪽은 건곤대나이를 시전하려던 방여립이었다.

다가오는 수천 가닥의 동심원은 일견 같아 보였었다.

앞선 힘과 뒤떨어진 힘이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 형태가 구분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막상 부딪치려 하니, 확연하게 달랐다.

어떤 것은 모든 것을 활성화시키는 생(生)의 힘이었고, 어떤 것은 멸(滅), 그 자체였다.

겉보기만 비슷했을 뿐, 거기 실린 힘은 검은색과 흰색이 자유분방하게 섞인 혼돈이었다.

“자! 반사해 보라, 방여립! 생과 멸을 똑같은 방법으로 반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 보라.”

방여립은 자신의 계산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급히 손을 오므리며 몸을 뒤로 뺐다.

“두 개의 상반된 힘을 동시에 일으킨다고? 이런 건 불가능하다. 이게 대체 뭐냐?”

“일의생멸!”

뜻과 의지에 따라, 생의 힘과 멸의 힘을 동시에, 혹은 자유자재로 일으킬 수 있는 깨달음!

방여립이 생의 힘을 밀어내려면 역을 흐름을 취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뒤따라 달려온 멸의 힘은 방여립에게 두 배의 충격을 전할 것이다.

만약 방여립이 그 두 배의 충돌을 되돌리려고 하면?

그때는 다시 뒤에 덮쳐오고 있는 생의 힘이 네 배의 충격으로 방여립을 덮칠 것이다.

방여립은 감히 건곤대나이신공을 시전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나의 장점을 오히려 치명적인 위험으로 바꾼다는 것이냐? 이런 응용법을 대체 누구로부터 배운 것이냐, 조화무제?”

사도명은 수많은 실전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했다.

일로종횡의 와중, 사도명은 적과 무수히 싸웠고 이겨냈다.

“세상으로부터, 어쩌면 당신의 계획으로부터 배운 임기응변이라고 대답하지. 그러니 귀하 또한 대답해 봅시다.”

사도명은 일의생멸로 방여립을 몰아붙이면서, 왼손으로 금강일양지를 끌어올렸다.

“만족하오? 방여립으로 사는 지금이 만족스럽소?”

“너의 질문에 내가 왜 대답을 해야 하느냐?”

“내가 아니오. 스스로에게 설명해야지. 방여립의 삶이, 정말 의제의 삶보다 좋소?”

방여립은 대답 대신 소리쳤다.

“뭐 하느냐? 여기에 적이 있다. 널 되살린 이유를 모르느냐?”

철목진이 즉시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화운악이 도중에 그를 막았다.

금빛이 철목진을 공격했고, 은빛은 주변을 방어했다.

공격과 방어가 모두 정교하게 호응하여 철목진을 막는 모습은 숫제 아름다웠다.

야율라의 눈이 살기를 뿜었다.

“감히 칸에게!”

그녀의 분노는 화운악이 아니라 방여립을 향했다.

화운악은 철목진을 막아섰을 뿐이지만, 방여립은 철목진에게 명령했고 그를 조종했다.

황천법문은 철목진을 죽음의 잠에서 깨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부활은, 위대한 왕의 새로운 군림을 위한 것이었다.

위대한 자를 노예로 만들기 위한 시도가 결코 아니었다.

“칸을 모욕한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야율라는 몸을 띄웠다.

그녀는 칸의 충신으로 교육받았고, 그렇게 자랐다.

역대 모든 황천법문의 문주가 그러했듯, 야율라의 삶은 온통 칸에게 충성하기 위함이었다.

희뿌연 안개가 야율라의 몸에서 일어나 방여립을 감았다.

황천법문의 법술은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작용한다.

환영을 보게 만들고, 현실을 잊게 만든다.

방여립은 눈앞까지 날아오던 사도명의 힘이 홀연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짐을 느꼈다.

텅 빈 공간에, 방여립은 혼자 서 있었다.

하늘이 검붉게 물들었다.

물든 하늘 곳곳이 갈라지더니, 붉디붉은 빗방울을 쏟아냈다.

그 비 군데군데 몸이 잘리거나 갈라져, 울부짖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그렇게 죽어가는 자들을 쏟아내는 하늘 위에, 누군가가 있었다.

거대한 그림자를 땅에 드리운 사람은, 울고 있었다.

눈물이 그대로 피가 되었고, 피에서 시신이 흘러나왔다.

방여립은 하늘 위의 사람을 보았고, 그가 누군지를 느꼈다.

“의제 원일경!”

그는 자신이었고, 또한 자신이 아니었다.

방여립은 사도명의 질문을 신경 쓰지 않으려 했었다.

하지만 결국 생각하고 말았고, 그 답이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정말로 어떤 삶을 살고자 했을까?’

만인에게 존경받는 의원, 의제 원일경으로서의 삶.

그리고 모든 이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세상을 멸망시키는 명교 교주 방여립으로서의 삶.

“두 사람의 삶을 모두 살고 싶었다. 모두가 그렇지 않으냐? 나 역시 살 수 있는 삶 속에서, 살고 싶은 삶도 꿈꾸었다.”

방여립은 사도명에게 비로소 대답했다.

또한, 자신에게도 대답했다.

그는 하늘 너머에서 울고 있는 원일경을 가리키며 외쳤다.

“황천법문의 법술이냐? 이런 것이 내게 통할 듯싶으냐?”

“하지만 이미 통했잖소.”

사도명의 목소리는 바로 앞에서 들렸다.

야율라가 만든 환영이 산산조각이 나며 사라졌다.

방여립은 자신의 바로 앞에 나타난 사도명의 왼손 지풍이 자신의 심장을 뚫고 있음을 보았다.

“어, 어떻게? 내 몸의 주변을 층층금강의 호신강기로 보호한 지 오래되었는데.”

“금강일양지는 궁극의 응축이며 집중이오.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이지.”

사도명이 한숨을 쉬었다.

“공교롭군. 귀하의 호신강기도, 나의 지풍도 모두 금강이라 불린다니 기묘하오.”

“내 심장을 뚫을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모든 불가능은 가능으로 바뀌기 위한 준비요. 사람이 앞으로 나가는 한 불가능이란 없소.”

“…그런 건가? 정말?”

“귀하의 대답을 잘 들었소. 귀하가 의제의 삶 역시 선택하고 싶었다면, 우리 이렇게 합시다.”

“어떻게 말이냐?”

“천하의 가장 깊은 암운. 그 검은 그림자를 의제 원일경 님이 걷는 거요. 내가 아니라 의제 원일경 님이 방여립을 죽여, 세상을 구했다 기록을 남기는 거요.”

“…재밌겠구나. 세상을 구한 의제 원일경. 하하하. 자랑스럽고, 영광되겠구나.”

“그럼 그렇게 합시다. 나는 너무 오래 싸웠소. 이제 귀하와의 싸움이 마지막이겠지?”

사도명은 자신의 왼손에 다시 한번 힘을 주었다.

금강일양지의 빛이 다시 한 차례 더 일어났다.

“그런데 말이다….”

방여립이 빙그레 웃었다.

“불가능은 없으며, 가장 희박한 가능성조차 일어난다는 그 생각! 그걸 너만 했을 듯싶으냐?”

사도명의 눈이 커졌다.

그는 방여립이 천천히 뒤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구멍 뚫린 방여립의 심장에서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표정조차 없었다.

“너, 너는…?”

방여립은 고개를 돌려 야율라를 보았다.

“고금구천강! 죽은 자들을 깨우며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야율라는 방여립을 향해 쏟았던 자신의 희뿌연 안개가 모조리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화, 환무의 흐름은 역행할 수가 없는 것인데….”

“나는 계속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이들처럼 죽을까? 죽으면, 난 스스로를 되살려야 할까?”

야율라의 눈이 커졌다. 커진 눈에 검은 동자가 사라졌다.

그녀는 갈라진 하늘과, 거기서 흘러내리는 피와 시신을 보았다.

방여립이 보았던 환영이 그대로 야율라에게 돌아온 것이다.

그 끔찍한 환영 속에서도, 방여립의 목소리는 선명했다.

“죽고 되살아날 바엔, 차라리 당장 죽으면 어떨까? 한 번 죽은 자가 세상을 망치려 들면, 누가 그걸 막을 수 있을까?”

야율라의 눈에, 하늘 위에서 우는 방여립이 보였다.

방여립은 눈물 흘리며 죽은 자들을 슬퍼하고 있었다.

갑자기 울고 있는 그의 얼굴과 몸이 동시에 갈라졌다.

차갑게 웃는 방여립의 거대한 얼굴이 그렇게 갈라진 방여립의 몸을 뚫고 솟아올랐다.

땅으로 떨어지는 빗속의 모든 시신들 역시 모조리 방여립으로 변해 웃고 있었다.

“나는 고금구천강을 깨웠다. 도움을 받기 위해서지. 그런데 어떤 도움일까? 나 대신 싸우도록? 죽일 사람을 대신 죽이도록?”

야율라는 가슴과 배에 심각한 통증을 느끼고 아래를 보았다.

투둑!

투두두두둑!

심장이 찢겨나가고, 배가 갈라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도 방여립의 웃는 얼굴이 솟구치고 있었다.

“시, 싫어. 싫어-!”

야율라의 온몸이 피를 뿜으며 갈가리 찢겨나갔다.

**

야율라가 비틀거렸다.

그녀의 입과 코에서 시꺼멓게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방여립이 건곤대나이신공으로 역행시킨 황천법문의 법술.

그 힘이 본래 법술의 시전자였던 야율라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지 마시오, 아미타불!”

대방이 선장을 들어 방여립의 등을 뒤에서 때렸다.

방여립이 오른손을 흔들었다.

쩌-엉!

대방 선사는 폭음과 함께 선장에 얻어맞고,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건곤대나이신공을 시전한 방여립의 오른손은 터럭만 한 상처조차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알고 있잖아. 내가 반사하지 못하는 것은 사도명의 일의생멸 뿐이란 것을!”

“그리고 금강일양지도!”

번-쩍!

빛은 나타난다 싶은 순간에 이미 사라졌다.

극단의 응축.

지나치게 강력해서 반사시키려는 시도마저 무산시키는 힘.

방여립의 오른팔이 잘렸다.

팔꿈치 아래로 잘려서 바닥으로 떨어진 방여립의 오른팔은 꿈틀거리지도 않고 먼지로 변했다.

“정말이구나. 정말로 귀하는 스스로를 이미 죽어버린 시체로 만들었구나.”

“중요한 건 육체가 아니라 의지다. 나는 죽었으나 살아 있다. 내 의지는 그래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방여립이 오른발로 땅을 힘껏 굴렸다.

땅을 타고 알 수 없는 기운이 빠르게 흘러갔다.

사도명은 놀라서 소리쳤다.

“조심하시오, 맹주.”

신 무림맹의 맹주인 화운악은 철목진을 막고 있었다.

금륜과 은편의 힘을 모조리 소진하면서, 그는 철목진이 방여립을 돕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땅을 타고, 알 수 없는 힘이 돌진해 왔다.

힘은 철목진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그의 눈빛이 변했다.

철목진의 몸에서 일어나던 기운이 순식간에 증폭되었다.

꽈드-드드등!

팽팽하던 우열이 갑자기 무너졌고, 화운악은 답답한 신음과 함께 핏물을 쏟으며 뒤로 십여 장 이상 튕겨 나갔다.

“어, 어떻게 갑자기…?”

방여립이 웃었다.

“하하하. 한계를 풀었다. 네가 보는 것이 철목진의 진짜 힘이다. 철목진. 저 여자를 죽여라!”

화운악을 물리친 철목진은 곧장 야율라로 노리고 날아왔다.

“용납 않는다.”

사도명이 철목진의 앞을 막으며 전력을 끌어올렸다.

“소용이 있을 것 같나?”

쩌-어엉!

사도명은 놀랍게도 철목진의 일장에 뒤로 날려가고 말았다.

방여립이 다시 웃었다.

“죽을 자를 깨울 때 한계치를 설정해 둔다. 조금 전, 바로 그 한계치를 내가 풀었다.”

사도명의 눈이 찢어질 정도로 커졌다.

“그러지 마-!”

퍼-어!

그의 눈앞에서 야율라의 몸이 터져 나갔다.

환영이 아니라 실제에서, 야율라는 온몸이 터져 죽었다.

그녀가 평생 섬길 것을 교육받았던 칸의 손에 의해서!

“하하하. 이번엔 저 녀석이다. 조화무제를 죽여라, 철목진.”

철목진의 무심한 시선이 야율라의 시신을 앞에 둔 채로 사도명을 보았다.

보았다 싶은 순간, 철목진의 커다란 손이 공간을 뛰어넘어 사도명의 눈앞에 나타났다.

꽈아-아앙!

철목진이 옆으로 휘청거렸다.

생사객 몽염의 단단한 어깨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철목진을 밀쳐냈던 것이다.

새롭게 뒤엉키는 철목진과 몽염의 싸움을 옆에 둔 채로, 사도명은 고개를 돌려 방여립을 보았다.

“나, 나는…. 나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일이 돌아감을 본 방여립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사도명이 오른손을 들었고, 방여립의 목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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