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귀하 하나면 되는 거 맞지
방여립은 의도와는 달리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는 애초 자신이 구양걸을 비롯한 신 무림맹의 고수 모두를 죽일 수 있음을 경고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피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만 구양걸에게 알렸을 뿐이었다.
“그래. 피로하지.”
구양걸은 방여립의 말 속에 숨겨진 이면을 알아차리고 웃었다.
“너도 결국 사람이구나, 방여립! 천하인을 모두 죽이려 하면서, 그래도 본인이 직접 죽이는 일은 피로하다 말하는구나.”
구양걸은 용기를 얻었다.
죽음은 언제나 한 번이다.
그의 뒤를 이어 방여립에게 덤비고, 결국 죽은 모든 사람들도 단 한 번 죽을 뿐이다.
하지만 방여립은 살아남는다.
그는 계속 죽여야 하고, 피로는 끝없이 쌓일 것이다.
방여립이 한숨을 쉬었다.
“죽으면서 만족한다는 건가? 너희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어리석으냐?”
방여립은 하늘을 보았다.
그곳에서 철목진과 다섯 명의 싸움은 점입가경, 시간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었다.
“그래, 와라.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죽여주마. 영원히 피로해도, 절대 포기는 하지 않겠다. 내가 이루고 싶은 세상을, 나는 반드시 이루고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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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교는 계속 잠이 든 곽소혜를 안고 달렸다.
곽소혜는 진원지기까지 손상될 정도로 지쳐, 쉽게 깨어날 것 같지 않았다.
앞서가고 있는 사도명과 화운악과의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그냥 먼저 가요. 백마사의 상황이 급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가서 도와야 합니다.”
기다렸다는 듯, 사도명과 화운악이 속도를 냈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은교교와 곽소혜를 까마득한 점으로 떨어뜨리면서 달렸다.
“이 속도로 계속 달려도 꼬박 하루 이상의 시간을 지체한 결과가 될 겁니다, 무제.”
화운악의 낯빛은 초조했다.
사도명이 한숨을 쉬었다.
“모든 노력을 다해도 모든 일을 해결한다는 건 불가능하군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사도명은 빛살처럼 빨랐다.
하지만 화운악의 신법은 그런 사도명을 뛰어넘고 있었다.
금륜과 은편이 남긴 공력 모두가 그의 몸 안에 있었다.
달려가는 뒤쪽으로, 금빛과 은빛이 뒤섞인 회오리가 보석처럼 남겨졌다.
“강해져야 하는 이유를 이제야 제대로 알겠습니다, 무제.”
“어떤 이유인가요, 맹주?”
“강해야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약하다면, 그저 자신의 일을 처리하기에만 급급합니다.”
사도명과 화운악은 똑같이 금륜과 은편을 생각했다.
그들은 완전히 소멸했다.
죽기 전에 두 사람은 자신의 모든 힘을 화운악에게 전했다.
- 불사는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이제야 알겠구나. 생장성쇠! 사라지고 후세에 전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은 발전하고 또한 우리도 영원히 산다.
“금륜이 남긴 말씀을, 저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겁니다.”
화운악과 사도명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전력으로 달렸다.
밤이 깊었다.
두 사람이 백마사에 도착했을 때, 정문의 두 백마상 사이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소림사의 방장 대방이었다.
대방은 사도명과 화운악을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길게 쉬었다.
“성공하셨구려, 맹주! 오셨구려, 무제.”
화운악은 대방선사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어디에도 상처가 없었고, 옷에도 피가 묻어 있지 않았다.
“여기서 어떤 일이 더 벌어졌습니까? 싸움은 없었습니까?”
대방선사는 방여립의 정체에 대해서 설명했다.
화운악은 신음했다.
“과연 그랬군요. 곽소혜 소저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그 후로, 또 다른 고금구천강이 나타났소. 놀랍게도 칭기즈 칸. 철목진이 부활하였다오.”
대방은 누가 철목진에 대항해 싸웠는지도 설명했다.
그는 백마사 안으로 걸어갔고, 사도명과 화운악이 뒤를 따랐다.
“그들은 아직도 싸웁니다. 끝날 기미는 없습니다.”
사도명과 화운악은 허공에서 얽혀 싸우는 여섯 사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둠 속, 칭기즈 칸과 그에 맞서 싸우는 다섯 사람의 충돌은 마치 두 개의 서로 다른 세상이 부딪치는 느낌이었다.
사도명은 그들 중에 연자강이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도 그는 허공이 아니라 땅을 보았다.
방여립이 거기 있었다.
그는 한 사람과 마주하여 앉아 있었다.
그들 주변에는 시체가 많았다.
대방이 설명했다.
“처음에 방여립과 싸운 분은 구양걸 대협이셨소. 방여립은 건곤대나이신공을 이용해, 그분의 권풍으로 그분을 죽였소이다.”
바닥에 숨이 끊어진 구양걸의 시신이 보였다.
그의 가슴은 자신이 내쏜 주먹에 의해 움푹 패여 있었다.
“다음으로 남궁세가주께서 나섰소. 남궁태보 검협은, 겨우 삼초 만에 자신의 검에 복부가 찔려 돌아가셨소.”
사도명이 한숨을 쉬었다.
일로종횡하면서, 그는 남궁태보와 꽤나 긴 시간을 같이 보냈다.
“좋으신 분들이 유명을 달리하다니. 내가 늦고 말았소.”
“아미타불. 방여립은 상대의 힘을 이용해 상대를 해칩니다. 우린 한 명 한 명 죽으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방선사의 눈이 빛났다.
화운악이 미간을 찡그렸다.
“모두가 죽을 결심을 하셨던 겁니까? 한 명씩 죽음으로써, 방여립을 막으려 했습니까?”
“아닙니다.”
대방선사가 바닥에 놓인 시체들의 행렬을 가리켰다.
“막을 방법이란 없다는 걸 알았죠. 저 하늘의 싸움이 끝나고 나면, 칭기즈 칸 또한 방여립에게 합세할 것도 알았고요.”
“그냥 죽음을 각오하셨던 겁니까? 왜 도망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뜻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저 하늘에게! 우리가 죽고 남겨질 미래에게!”
대방선사의 손이 시체를 떠나, 방여립의 앞을 향했다.
“그리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사도명은 방여립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 그가 누군지를 비로소 깨달았다.
“갑자기 저분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우리가 더 이상 방여립과 싸우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대신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대방은 긴 이야기를 마쳤다.
화운악은 방여립과 싸우는 사람이 누군지 몰랐다.
하지만 사도명은 알고 있었다.
“생사객 몽염!”
화운악의 눈이 커졌다.
그는 사도명을 보며 놀라서 소리쳤다.
“무제는 영세탑으로 그를 만나러 갔었지 않습니까?”
“만났었소. 그는 우리보다 일찍 떠났고, 지금 이곳에서 저런 모습으로 있군.”
사도명이 대방을 보았다.
“생사객은 언제부터 방여립과 싸웠습니까?”
“햇살이 높았을 무렵부터요.”
사도명은 허공 높은 곳에서 싸우는 철목진과 다섯 명을 올려다보았다.
“차근차근 해결합시다.”
“네? 아, 네. 아미타불.”
“우선, 맹주께서 저쪽의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제 생각도 같습니다.”
화운악의 정수리에서 위쪽으로 한 자루의 검이 솟았다.
화산파의 매화영롱검법이 실질의 검이 아닌 검강의 형태로 피어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색이 이상했다.
평소에는 분홍빛이던 영롱 매화의 색이 금빛과 은빛으로 번갈아 물들어서 신비로웠다.
“무제 말씀대로 저곳은 제가 맡죠. 아래는 무제께서 맡아 주시겠습니까?”
화운악은 서서히 움직였다.
그런데도 움직인다 싶은 순간에 이미 하늘 위에 나타나, 철목진과 천사 네 명의 사이에 위치했다.
연자강은 당황했다.
우주오검에서 자신이 발전시킨 일곱 번째의 초식 만천개화!
그는 허공 곳곳에 검기의 꽃을 피워 천사 네 명을 돕고 철목진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곳에 화운악이 나타났다.
당연히 만천개화의 공격을 받아야 하지만, 연자강이 피워낸 꽃은 화운악에게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양, 만천개화는 화운악을 통과하여 철목진만을 노렸다.
“맹주! 그 짧은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연자강은 내공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잠시 의아한 표정이던 천사 네 명 역시 연자강이 물러나자, 따라서 손을 거뒀다.
“신 무림맹주 화운악?”
소화는 미소를 지은 채로, 화운악의 온몸에서 피어나는 은빛과 금빛의 휘감김을 보았다.
바닥에 내려서는 그녀의 두 발이 저절로 비틀거렸다.
꼬박 하루가 넘는 시각을 허공에 뜬 채로 철목진과 싸웠다.
오랜 시간 잠들었던 절대자는 여전히 강했고, 흉포했었다.
“젊음이란 새롭다는 의미인가? 늘 발전하기에, 시련조차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것인가?”
뒤섞여 돌던 금빛과 은빛이 허공에서 둘로 갈렸다.
화운악은 그렇게 풀어낸 금빛으로 철목진을 밀고, 길게 늘인 은빛으로 자신의 주변을 감았다.
소화는 자신들이 힘을 합해 그렇게 밀어내려 해도 밀려나지 않던 철목진이, 거짓말처럼 튕겨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용권풍이 사라졌다.
철목진이 바닥에 내려섰다.
화운악은 그보다 조금 늦게 땅에 몸을 세웠다.
대방은 신음했다.
“처음으로! 드, 드디어 처음으로 고금구천강을….”
마침내 고금구천강을 혼자 물리치는 사람이 나타났다.
소화는 화운악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무화는 그런 소화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철목진을 물리치고 강기의 폭풍을 소멸시킨 화운악에게는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무화는 심하게 다쳤다.
그에 비해 소화는 크게 다친 곳이 없었다.
흑화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진기가 고갈되도록 싸운 건 처음이다. 소화는 멀쩡한데 왜 너만 그렇게 다쳤냐, 무화?”
“잘난 척 계속 나섰으니까 그렇지 뭐. 소화가 다칠 몫까지 얻어 다친 셈이야.”
밀화 효경은 기진맥진한 동료를 둘러보며 웃었다.
“그나저나 친구란 건 좋네. 함께 싸우고! 함께 지치고! 설령 함께 죽게 되더라도 즐겁다.”
철목진은 가만히 서 있었다.
야율라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최대한의 예를 표했다.
“칸이시여.”
철목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사도명이 한숨을 쉬었다.
“부활시킨 사람은 혼이 돌아오지 않소. 경험해보니, 그들에게 혼이 돌아오는 순간은 완전히 영면하기 직전의 찰나더군요.”
사도명은 검성뿐만이 아니라 금륜과 은편을 영면에 들게 했다.
그들에게 전할 것은 언제나 한 가지였다.
죽은 자를 살게 만드는 힘.
살아야 한다는 의지!
세상을 위하고자 하는 의지가 거꾸로 세상을 무너뜨림을 알리는 것이었다.
사도명은 야율라를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철목진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도 조아리고 있었다.
“기다리시오, 당신의 주군도 영원히 쉬게 해 줄 테니까.”
사도명은 방여립과 생사객 몽염의 앞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은 내공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건곤대나이신공의 약점.
생사객은 방여립을 해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이와 접촉하지 못하게 막을 뿐이었다.
방여립은 죽이려고 내민 검을 되돌릴 수 있었지만, 앞을 막는 벽을 부수지는 못했다.
벽을 부수기 위해서는 그 벽보다 큰 힘을 가져야 했다.
하지만 천년 넘는 세월을 살아온 몽염보다 강한 내공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막지 않음으로써 나를 막아 내는 거구나, 몽염!”
방여립은 미간을 찡그렸다.
“한때 나의 일을 도우더니, 이제 나를 막는 거냐? 이 모든 변화의 중심이 바로 너구나. 네가 있구나, 조화무제.”
그는 자신과 생사객을 향해 다가오는 사도명을 보았다.
사도명은 오른손을 들어 커다랗게 원을 그렸다.
원에서 일어난 힘이 생사객 몽염을 뒤로 밀어냈다.
방여립은 자유롭게 풀려났다.
그는 사도명의 뒤에 길게 늘어선 무림맹 고수들을 보았다.
방여립은 결심했다.
모두가 덤비면, 모두 죽일 생각으로 살기를 가득 품었다.
몽염이 그 살기를 막았다.
이제 몽염은 물러났지만, 방여립은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몽염이 만든 벽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이 그를 막고 있었다.
힘의 근원은 사도명.
방여립은 화운악이 쏟아 낸 힘이 금륜과 은편의 것임을 보았다.
“네가 금륜과 은편을 막았느냐? 그들의 힘이 화운악에게 가도록 만들었느냐?”
사도명이 오른손을 다시 한번 저었다.
“많은 이들이 다치고 죽었소, 의제 원일경. 그들을 고쳐주고, 죽음에 슬퍼하던 귀하가 방여립이었다니!”
오른손에서 수천, 수만 개의 동심원이 일어나 방여립을 향해 날아갔다.
“귀하 하나면 되는 거지? 귀하 하나만 없애면, 정말 이 모든 암운이 걷히는 게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