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영원히 사는 방법
칭기즈 칸, 철목진(鐵木眞)!
그는 위대한 정복자였다.
싸움에 임하여 철저했고, 적에게는 잔인했다.
점령지에 들어서면, 기존의 지배계층을 모두 잡아서 죽였고, 질서를 완벽하게 와해시켰다.
하지만 백성에게는 달랐다.
칸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으며, 계급제를 폐지시켰다.
그의 지배하에 들어간 백성은 나이가 들면 누구나 영광스러운 신분인 전사가 될 수 있었다.
일상생활은 무척 소탈했다.
사치를 싫어했으며, 자신이 절제한 혜택이 일반의 백성에게도 골고루 돌아가기를 바랐다.
그는 늘 말하곤 했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평범한 사람으로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늙어서 죽고 싶다.”
또한,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종교의 지도자를 불러 묻고, 상의하고, 배려를 베풀었다.
구처기는 전진칠자 중의 한 명으로, 나중에 제오대 교주가 되는 사람이다.
칸은 자주 구처기를 불러 불로장생의 비결을 물었다.
구처기는 그러한 비법은 없노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칸은 화내지 않았으며, 오히려 구처기를 천하 도교의 대종사로 임명했다.
병들어 죽어가면서, 칸은 구처기에게 다시 한번 서찰을 보냈다.
서찰 속에서, 칸은 장차 세상을 닥칠 대겁난을 염려했다.
<…하여 다시 묻는다.
불로불사의 길은 정녕 없는 것이냐?
다시 태어나면 평범하고 싶었던 소망이 욕심임을 이제야 비로소 알았다.
나의 몸은 사라져도 나의 왕국은 남는다. 세상을 지키고 싶은 나의 뜻도 세상에 머물 것이다.
그 뜻을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 장춘.>
장춘자는 구처기의 별호였다.
칸의 죽음 이후, 불사의 길을 찾았던 그의 뜻을 받들어 황천법문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칸의 부활은 실패했다.
적어도 황천법문에 의한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불사의 연구를 추구한 곳이, 유사 이래로 황천법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진시황에 의해 연구된, 또 다른 갈래가 존재했다.
그 갈래는 환관 조고에 의해 이어졌고, 현시대에서는 방여립이 대를 이었다.
그리하여 방여립은 마침내 칸을 되살리는 일에 성공했다.
살아난 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
그가 지금 지평선과 하늘을 잇는 용권풍을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
“석단궁 교주는 명나라를 건국한 후, 명교를 없애려 했지.”
소화가 말했다.
“그 이유를 이제 알겠어. 모든 종류의 힘은 결국 위험이 된다.”
무화는 소화의 등 뒤에 있다가, 그녀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설령 세상을 지키려는 힘조차 변할 수 있다는 얘긴가?”
연자강은 다가오는 용권풍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무섭다 못해 끔찍하다. 감당할 자신이 없다. 사도명. 어디 있는 게냐? 와라. 네가 오지 않으면 오늘 우린 모두 결국….”
소림사의 장문 방장인 대방선사가 소리쳤다.
“모두 달아나시오. 십로파진으로 각각 달아나되 생존자는 제삼 집결지에서 보름에 모입시다.”
십로파진은 만약을 가정하며 만들어놓은, 말 그대로 열 개 방향으로 흩어지는 도주법이었다.
십대문파가 움직였다.
구대세가의 사람들도 제각각 흩어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호랑이가 다가오자, 토끼와 노루 떼가 놀라서 흩어지는 모양새였다.
“정교하게 계산된 움직임이다.”
연자강은 부상자를 보았다.
“칭기즈 칸이 아무리 강해도, 십로 중 두 개 이상을 공격할 방법은 없다. 팔할 이상이 도망칠 수 있다는 결론. 하지만….”
부상자들을 데리고 도망칠 여유는 누구에게도 없었다.
용권풍은 그만큼 강했다.
방여립이 웃었다.
“걱정 말거라. 나는 방여립이면서 또한 의제 원일경이다. 부상자를 버려두진 않는다.”
“당신은 살리면서 죽이잖소?”
“세상이 그러하다. 빛나려면 무엇인가를 태워야 하지.”
방여립은 연자강의 형형한 눈빛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나는 명교의 교주! 스스로 태워 세상을 밝히는 것이 불의 본분이 아니겠느냐?”
“지랄 같네요, 정말!”
짧은, 그러나 명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음성이 들렸다.
소화였다.
“석 교주님은 검성을 되살리면서, 성화령을 이용해 그를 제어하려고 했어요. 당신은 다르네. 그저 파괴만 가능하면 만족하나요?”
방여립이 웃었다.
“모든 것이 부서진 폐허에, 다시 명교를 세운다. 굳이 더 바랄 것이 무엇 있느냐?”
“들었지, 모두들? 저게 지금 명교의 교주라는 사람이다. 우리들은 그 명교의 천사고.”
소화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동료를 보았다.
“우린 팔대마문과 싸울 전사로 키워졌잖아? 그런데 명교가 마교가 되고 말았네. 우리,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흑화의 몸에서 검은색 공이 여러 개 떠올랐다.
“묻고 답할 필요가 어디에 있나? 뿌린 사람이 거두면 그만.”
밀화 효경도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너무 오래 황실에 숨어 지냈지. 근질근질하던 참이야.”
무화는 여전히 미간을 찡그린 모습으로 고함을 질렀다.
“저 기세가 안 느껴져? 그냥 싸우는 게 아냐. 목숨을 거는 거다. 아니, 바쳐야 하는 거라고.”
“강자와의 싸움이 즐겁다고 한 건 너 아니었나, 무화?”
소화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그게, 가능한 일에만 부딪치는, 놀이 같은 거였어?”
그 기세 그대로 그녀는 다가오는 용권풍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뒤처질세라, 흑화와 밀화도 용권풍, 아니 그 속에 들어 있는 한 사람을 향해 몸을 날렸다.
무화는 연자강을 보았다.
“어떻게 할 거냐, 너는? 저 힘을, 감당할 계산이 서느냐?”
연자강은 구파일방과 구대세가의 고수들을 보고 있었다.
십구성좌에 속한 그들은, 무림을 이루는 바탕이며 근간이었다.
“계산은 이미 섰소. 당연히 우리 모두가 죽을 것 같군.”
연자강은 소멸운에 기운을 빼앗긴 후 짧은 시간만을 운기조식했을 뿐이다.
다시 모은 내공은 평소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연자강은 검을 다시 고쳐 잡았다.
“그러나 달아나다 죽는 것과 싸우다 죽는 것은 다르지.”
연자강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달아나던 십구성좌 고수들의 귀에는 또렷이 들렸다.
연자강은 남은 내공을 끌어모은 뒤 용권풍을 향해 달렸다.
“승패는 나중의 문제. 불가능하다 싶어도 싸우는 용기만이, 우리의 의지를 증명하니까.”
무화가 주먹을 힘껏 쥐었다.
“하, 하지만 결과가 뻔하다면 싸워봤자 무슨 소용이냐?”
땀이 그의 이마에 맺혔다.
그는 뛰어난 고수다.
마음의 갈등이 없다면, 무화 같은 고수가 땀을 흘릴 일은 없을 것이다.
꽈드드-등!
퍼퍼퍼퍼펑!
연자강이 합세하여, 사대일의 싸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위대한 왕, 정복자 칸.
그리고 세 명의 천사와 검성의 후예 연자강!
“나는 시간을 건넌 스승과 목숨을 걸고 싸웠소. 귀하를 용납한다면, 저승에서 그분이 분노하실 거외다, 칸!”
연자강의 고함이 무화의 마음을 채찍처럼 때렸다.
무화는 주변에서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모든 사람의 표정이 무화 자신과 비슷했다.
달아나는 치욕.
하지만 목숨을 거는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범벅된 표정이었다.
“하긴 명교가 만든 재앙이니까 명교가 푸는 게 순리는 맞네.”
무화도 결국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일대 사의 싸움을 향해 몸을 날렸다.
“좋다. 그 순리에 충실한다고 치자. 목숨 같은 것. 걸어볼 가치도 충분하다고 치자.”
흑화가 웃었다.
“하하. 목숨을 걸면 거는 것이지, 그렇게 치자는 말은 대체 무슨 말장난이냐, 무화?”
“변명이라도 하고 싶어서.”
무화는 용권풍을 뚫고 달렸다.
오행진의 효능을 이용해, 때로는 다른 네 명의 힘을 합하고, 때로는 분리시켰다.
그 속에, 사내 한 명이 있었다.
사자의 기세와 호랑이의 용맹함을 한 몸에 지닌 남자였다.
어깨는 곰처럼 넓었고, 두 눈은 독수리처럼 날카로웠다.
칭기즈 칸, 철목진!
그 한 명을 상대로 다섯 명의 강자가 진법의 힘을 빌리고서도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젠장할!”
무화가 울부짖었다.
“그러게 처음부터 달아나자고 말했잖아. 싸워서 이길 수가 없는 상대다. 그런데도 싸우는 거다. 이제 어쩔 거냐, 소화? 대체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
“도망치고프면 달아나세요.”
야율라는 용권풍 속, 일대오의 싸움을 바라보면서 십구성좌의 고수들에게 말했다.
“비난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서서 기다리다 연자강 등이 패하면, 결국은 모두가 죽을 뿐입니다.”
구양걸이 물었다.
“그렇게 말하는 황천법문주는 왜 달아나지 않소?”
“저는 칸을 부활을 기다려온 사람이니까요. 부활한 칸을 직접 뵙게 됐는데, 마땅히 명령을 기다리며 대기해야죠.”
“우리도 마찬가지요.”
“마찬가지? 당신들 중원인이 왜 칸의 명을 기다립니까?”
“칸이 아니라, 삶! 혹은 운명의 명령을 기다려야만 하겠소?”
구양걸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남자는 불사의 방법을 얻어서 살아났소. 그러나 우리 역시 불사는 아니라 해도, 영원히 사는 방법만은 알고 있다오.”
“영원히 사는 방법? 그런 것이 정말 있습니까?”
“우리가 달아나다 죽으면, 세상은 이내 우릴 잊을 거요. 아무것도 달라질 것이 없지.”
“…그럴 겁니다.”
“하지만 싸우다 죽으면, 모든 것이 달라지오. 세상은 우릴 기억할 것이고, 우리의 의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요.”
야율라는 구양걸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뜻과 의지가 전해지는 한, 사람은 죽은 것이 아니다.
사람은 포기하는 순간에 죽고, 잊히는 순간에 다시 죽는다.
십구성좌의 고수들은 이제 누구도 달아나려 하지 않았다.
모두가 자리에서 멈췄다.
그들은 하늘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올려다보았다.
일대오의 싸움.
그러나 유리한 쪽은 오히려 한 명인, 칸이었다.
방여립이 웃었다.
“선택하는 것이 어떠한가, 신 무림맹? 저 싸움이 끝난 후, 정복자의 손에 죽을 테냐, 아니면 지금 당장 내 손에 죽을 테냐?”
방여립은 강했다.
천사들이 하늘에서 싸우는 이상, 그를 감당할 사람이 신 무림맹에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구양걸이 고개를 저었다.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푸하하. 선택하지 않는다고 해도, 죽음은 피하지 못한다.”
“그 길뿐이라면, 스스로 선택하마. 우린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영원히 살려고 한다.”
방여립의 미간이 좁혀졌다.
지금까지는 모든 일이 그의 계산속에서 이뤄졌었다.
백마사로 신 무림맹을 끌어들여, 다시 한번 멸망시키고, 세상을 절망에 빠뜨리려는 것이 그의 본래 계획이었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해졌다.
신 무림맹 고수 중 누구도 눈에 절망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구양걸은 방여립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방여립. 네 계획은 틀어졌다. 세상은 우리의 죽음에서 절망이 아니라, 절망을 딛고 일어나야 할 희망과 의지를 배울 것이다.”
방여립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팔대마문과 삼대재액, 그리고 그들을 막기 위한 싸움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무공을 계속 연구했다.
죽은 이의 근맥을 살피고 그가 사용한 무공 구결을 상상하면서, 방여립은 무섭도록 강해졌다.
그는 사람의 신체가 내공을 작동시키는 원리와 일반적으로 반응하는 원리 대부분을 이해했다.
건공대나이신공은 익히기가 매우 어려운 무공이다.
사 단계 중에서 이 단계 이상을 익힌 역대 교주가 없었으나, 방여립만은 사 단계를 모두 익혔다.
의선 원일경으로 살아왔던, 오랜 시간 덕분이었다.
삶과 죽음은 서로 통한다.
방여립에게 있어, 다가오는 구양걸을 죽이는 일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구양걸의 주먹이 갑자기 방여립의 얼굴을 노리면서 날아왔다.
“권제와 의제. 같은 무림사제의 신분으로, 너와 한때나마 친구였던 내가 부끄럽다.”
손가락을 조금 움직이는 것으로, 방여립은 구양걸의 막강한 권풍을 옆으로 돌렸다.
그렇게 돌린 힘을 한 번 더 돌려서 내쏘았다.
꽈-앙!
구양걸은 자신이 쏟아낸 권풍에 반격당하여 피를 토했다.
“끄윽!”
“살육을 겁내지 않는다.”
방여립은 비틀거리는 구양걸의 뒤, 다른 고수들을 보았다.
“다만 무의미한 살인은 피로하다. 너희가 할 일은 절망하는 것. 그리고 내게 구원을…. 이런!”
고함지르던 방여립은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구양걸이 방여립을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