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괴멸
수십여 명의 고수가 동시에 방여립을 노렸다.
그들이 뿜어낸 내공의 기운이 방여립이라는 한 점을 까맣게 덮어 버렸다.
무화의 안색은 창백했다.
“왜? 도대체 왜? 왜 교주는 지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거지?”
방여립을 노리고 달려들었던 고수들이, 달려든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뒤로 튕겨 나갔다.
“크윽!”
“으윽! 어떻게 된 거냐?”
모두가 상처를 입고 있었다.
놀랍게도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무공에 부상을 당한 것이다.
자신의 칼에 팔이 잘린 서문굉과 다르지 않았다.
연자강은 신음했다.
“건공대나이신공을 저렇게 완벽하게? 어떻게 상대하지? 대체 저런 걸 어떻게 상대하나?”
바람이 없는데도 무화의 옷자락이 저절로 펄럭거렸다.
“건곤대나이는 하늘과 땅을 바꾸는 수법이다. 상대의 내공을 흘러가게 만들어, 공격의 방향을 바꾸고, 상대의 힘 자체를 흡수했다가 반사시키기도 한다.”
그는 연자강을 보며 웃었다.
“우리 명교의 무공이다. 역시 우리가 상대하는 게 맞겠지?”
동서남북.
네 개의 방위를 무화와 밀화, 흑화, 그리고 소화가 점령했다.
그들은 건곤대나이를 안다.
방여립처럼 대성하진 못했지만, 네 개의 단계로 이루어진 건곤대나이 신공의 일 단계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건곤대나이 신공을 완성시킨 사람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공이다. 압도하는 내공의 크기, 혹은 적어도 비슷한 내공을 가지고 압박하는 것뿐이다.”
네 명의 천사가 방여립의 주변을 완벽히 에워쌌다.
신 무림맹 고수들은 그들이 만든 사상의 진법 바깥으로 서둘러 물러났다.
회오리가 일어났다.
사상진(四象陣)을 따라 연결된 천사 네 명의 내공이 상호보완을 일으키며 주변의 공기까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방여립은 웃었다.
“너희를 깨우기 잘했다. 세상을 상대로 이 정도의 위용을 보여주는구나. 명교의 제자들아. 너희가 자랑스럽다.”
“여기에서 더 나가지 못합니다. 내가 멈추게 해드리죠, 교주.”
소화가 모든 것의 시작인 동(東)의 방위에 선 채로 말했다.
그녀는 은연중에 천사들의 대표 역할을 맡고 있었다.
무화가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모든 것은 마무리인 서(西)의 방위에 있었다.
“소화. 네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하는 거야.”
“누가 하든!”
회오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다.
방여립은 천사 네 명의 힘을 건곤대나이로 이전시키려 했지만, 번번이 회오리에 막혔다.
“소용없어요.”
만물에 활력을 전하는 남(南)의 방위에 서 있는 밀화 효경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우리 힘은 모든 방위에 있고, 모두가 연결됩니다. 하늘과 땅을 바꾸려 시도해봤자, 그 하늘과 땅이 또다시 교주를 공격합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방여립은 자신이 건곤대나이를 시도할 때마다, 동서남북이 자리를 바꾸고, 건곤감리가 변형됨을 느끼며 당황했다.
“뛰어난 제자들이다. 하하. 내가 참으로 잘 가르쳤다.”
“귀하가 아닙니다.”
북(北)의 방위에 서서, 어둡고 아득한 기운을 발하고 있는 흑화가 미간을 찡그렸다.
“우릴 가르친 분은 석단궁 교주님이시고, 나는 그분을 위해 당신과 싸웁니다, 방여립 교주.”
방여립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쿠오오오오-!
동서남북과 건곤감리를 모두 점하며 일어난 회오리!
시간이 갈수록 강해진 회오리는 방여립 주변을 모두 덮었다.
도언직이 연자강의 옆으로 다가오면서 들뜬 음성으로 말했다.
“천사들이 힘이 됩니다. 저렇게 되면, 우리가 방여립을 없앨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 하지만….”
연자강은 눈을 감아버렸다.
검은 구름을 유인하여 떠나갈 때, 마지막으로 돌아보던 곽소혜의 눈빛은 슬픔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인 연자강은 곽소혜가 슬펐던 이유를 안다.
‘짐작하고 있었던 거다.’
눈을 감자, 감각은 오히려 영민해졌다.
연자강은 멀리서 다가오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힘을 느꼈다.
금륜과 은편이 뿜어내던 기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압도감!
‘방여립은 본래 정체를 들킬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육합전성을 전개하고, 서문용맹을 해쳐서 자신이 원일경임을 알렸다.’
연자강은 겨우 용기를 내어,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지평선을 뒤덮으며 다가오는 거대한 폭풍을 보았다.
바닥에서 하늘 끝까지 올라가는 소용돌이!
사막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자연재해라는 용권풍 같았다.
하지만 바람이 아니었다.
사람의 몸이 뿜어낸 내공이 만드는, 인공적인 재해(災害)였다.
방여립을 감싸고 돌던 사상진의 회오리는 이미 멈췄다.
다가오는 용권풍을 바라보는 소화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도, 도대체 저건…?”
“나는 고금구천강을 되살리려 했다. 그리고 셋만 성공했지.”
천사 네 명의 가운데에 선 채로, 방여립은 환하게 웃었다.
“저것이 가장 큰 성공작이다. 일찍이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고자 했던 존재! 아니, 조금만 더 오래 살았어도, 세상을 진짜로 파괴할 수 있었던 인간.”
좌중에는 야율라도 있었다.
그녀는 본래 부상자를 치료하는 원일경을 돕고 있다가, 원일경의 정체가 드러나자 놀라서 먼 곳으로 물러나 서 있었다.
야율라가 부들부들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회오리의 중심에 누가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칸이…. 칸이 돌아오셨다. 으으, 정말로 부활하신 거다.”
칭기즈 칸!
세상을 공포와 파괴로 몰아넣었던 대초원의 전설이 부활하여 재앙으로서 다가오고 있었다.
**
곽소혜는 계속 달렸다.
그녀는 울었다.
소멸운을 유인해 사도명이 있는 영세탑으로 향하면서, 내내 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뒤에 남겨두고 온 연자강이 어떤 운명을 마주하게 될지를 짐작했다.
방여립은 말하지 않아도 될 장소에서 굳이 목소리를 냈었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방여립이 내가 짐작하는 그 사람이라면? 부상자를 만들어, 신무림맹 사람들을 모은 거라면?’
결론은 명확했다.
방여립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친 상태인 것이다.
그는 백마사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을 안겨주려 계획한 것이다.
‘괴멸! 신 무림맹의 괴멸! 정말 의제 원일경이 방여립이라면, 상처 입은 사람을 구하겠다는 신 무림맹의 선한 의지마저 괴멸된다.’
소멸운이 자신을 따라올 때, 곽소혜는 확신했다.
‘자신이 없다면 방여립은 구름이 우릴 따르는 걸 막았겠지.’
그래서 연자강에게 뒤를 부탁했다.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라 직감했기에, 돌아볼 때 눈에 고이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았다.
곽소혜는 화운악과 함께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겨우겨우 영세탑에 도달했다.
그리고 사도명을 만났다.
사도명은 과연 곽소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단숨에 검은 구름의 위험성을 알아보았다.
“저 두 사람과 함께 달려, 교교. 뒤를 돌아보지 말고!”
곽소혜는 멈추지 않았다.
놀라서 눈을 크게 뜬 은교교의 손을 붙잡고, 그녀는 계속 앞으로만 달렸다.
화운악은 지금까지처럼 곽소혜의 앞과 뒤를 오가며, 위험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했다.
“곽 소저가 잘못되면, 나는 나중에라도 연자강 대협을 바라볼 면목이 없소.”
화운악은 최선을 다했다.
언제나 검은 구름의 위험에 자신을 먼저 노출시켰다.
화운악도 사도명을 지나쳐갔다.
하지만 곧바로 멈춘 후, 몸을 돌려서 사도명을 보았다.
막상 도망치라고 외쳤던 사도명이,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다가오는 소멸운을 바라보면서, 사도명은 오른손을 들었다.
“기억이 난다. 저 구름! 생과 사의 경계에 깔려 있었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기운이다.”
사도명의 오른손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공도, 기세도 끌어올리지 않은 채 사도명은 그 오른손을 다가오는 소멸운을 향해 내밀었다.
“두 사람이군. 그 속에 있소? 당신들도 생사의 경계를 넘었소?”
검은 구름이 사도명의 오른손을 덮쳤다.
하지만 사도명의 손은 소멸하지 않았다.
애초 내공을 끌어올리지 않았기에, 검은 구름이 소멸시킬 내공이 사도명의 손에는 없었다.
번쩌-어억!
눈부신 빛이 일어났다.
검은 구름이 두 갈래로 갈리더니, 금빛과 은빛을 사방으로 뿜어내면서 소용돌이쳤다.
화운악은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소멸의 기운. 탄생과 발전의 힘을 역행하는 그 기운을, 다시 반전시킨 거요, 조화무제? 나는…. 나는 정말로 영원히 귀하를 당해낼 방법이 없겠군.”
사도명의 손에 의해 검은 구름은 완전히 갈라졌다.
“일의생멸은 역천과 순천을 모두 가능하게 하는 깨달음!”
갈라진 금빛과 은빛이 각각 뭉치며, 구분되지 않는 형체로 변했던 금륜과 은편이 나타났다.
그들은 바닥을 뒹굴더니, 몸을 바로 세우고 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사도명이 다시 중얼거렸다.
“역천에 역천을 더하면, 다시 순천이라고 할 수 있겠지? 불화께서 남기신 깨달음이 있었다 해도, 생사객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검은 구름을 감당해 낼 수 없었을지 모른다.”
생사객은 의지와 마음의 중요성을 가르침으로 남겼다.
은교교가 계속 달리려는 곽소혜의 손목을 잡고 멈추었다.
“저 남자는 언제나 믿을 만해요. 그렇지 않나요?”
사도명이 쓰게 웃었다.
“시작할 때는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 몰랐어. 또 이런 상황이 생겨도, 그때 역시 날 믿지 말고 우선 달아난다고 약속해.”
곽소혜는 검은 구름이 다시 금륜과 은편으로 분리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아!”
곽소혜는 몸을 떨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에게도 믿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틀림없이 남겨진 다음에, 방여립의 정체를 밝혀냈을 것이고, 위험해졌을 것이다.
“돌아가야 해요. 남편이 위험해요. 바, 방여립이….”
곽소혜는 그대로 쓰러져서 정신을 잃었다.
은교교는 그녀가 금침을 자신의 몸에 여럿 찔러놓았음을 살피고는 한숨을 쉬었다.
“잠재력을 극한의 극한까지 사용했어요. 지쳐서 잠이 든 거니, 걱정 마세요, 도명.”
사도명은 화운악을 보았다.
화운악의 온몸은 성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
이미 피딱지가 앉은 상처보다 아직도 피를 흘리는 상처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귀하는 귀하가 세상에 진 빚보다 훨씬 더 많이 갚고 있구려, 화운악. 괜찮소?”
“백마사로 가야 합니다, 무제. 방여립이 나타났습니다.”
사도명은 바닥에 앉아 있는 금륜과 은편의 옆으로 갔다.
“진시황을 막고자 하시지요? 그 의지로 부활하신 거지요?”
금륜과 은편의 몸에서 동시에 빛이 일어났다.
그들은 둥실 떠오르더니, 각각 좌우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금륜이 금빛을 환하게 발하는 눈빛으로 사도명을 보았다.
“너는 누구냐? 나와 아내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이냐? 이곳은 천당이냐? 혹은 지옥인 것이냐?”
“그냥 세상입니다. 두 분은 죽으셨고, 되살아나셨습니다.”
“폭군이 부활한 게로구나. 걱정 마라. 우리가 그를 막는다. 그를 막기 위해, 모든 걸 바쳤다.”
“말씀하시는 폭군이 진 제국의 시황이라면, 그는 이미 죽었습니다. 되살아난 것은 그가 아니라 조고의 악의(惡意)입니다.”
“조고? 환관 조고?”
“두 분의 선한 의지는 그의 악업에 이용당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그만 쉬세요. 우리 시대 세상에 대한 걱정은, 우리들에게 맡겨주시면 됩니다.”
금륜이 금빛이 휘황한 눈으로 사도명을 보았다.
은편도 어느새 가부좌를 한 채 눈을 뜨고 사도명을 보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두 분이 남기신 선한 의지. 다른 분들도 남겨주신, 세상에 대한 염려와 호의. 그런 마음들이 얽힌 작은 나무…. 정도라고 생각해 주세요.”
금륜이 주변을 살폈다.
지쳐 잠든 곽소혜와 피투성이의 화운악을 보더니 말했다.
“내가, 우리가, 어떤 나쁜 짓을 저질렀느냐?”
“아무것도! 두 분은 오래전 돌아가셨고, 나쁜 짓을 저지른 건 두 분이 아니라 암막입니다.”
“암막?”
“검은 장막. 세상 가장 깊은 곳의 어둠.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며, 그 시절에는 조고를 통해, 지금 시대에서는 방여립을 통해 발현하고 있습니다. 파괴를 원하죠.”
“그런 것이 있다면, 우리가, 우리들이 도와야지 않겠느냐?”
“과거는 언제나 현재를 향해 자신의 의지를 전하려 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현재 또한 스스로의 의지로 미래를 만드니까요.”
사도명은 조금씩 먼지로 흩어지는 금륜과 은편의 몸을 살폈다.
“편히 쉬세요. 모든 의지를 놓고, 편안히 영면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되겠느냐?”
사도명은 미소를 지었다.
은교교도 고개를 끄덕였다.
화운악은 억지로 다친 몸을 일으켜, 금륜과 은편을 향해 포권했다.
“어렴풋하나 기억이 난다. 먼저 죽겠노라며, 나와 아내를 유인하여 이곳까지 왔지? 내 죄를 막아준 자여, 이름이 무엇이냐?”
“화운악 입니다.”
“그래. 화운악.”
금륜이 은편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이 손을 마주 잡은 곳에서 금빛과 은빛이 뒤엉키더니, 갑자기 화운악을 향해 뻗었다.
눈부신 빛은 정수리와 단전을 통해 빠른 속도로 화운악의 몸에 스며들었다.
“크윽! 노, 노선배님.”
“우리는 이미 죽은 몸이다. 어쩌면 기억이란 것조차 착각인지도 몰라. 그래도 생각나는 걸 어쩌랴. 우리 부부는 늘 자식을 원했었다. 너와 같이 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질 아들 녀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