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38화 (138/168)

138화. 행동으로써 말하다

“생사객을 속였구나.”

좌인홍이 소리쳤다.

“무슨 말로 속였느냐? 우리가 생사객과 달리 세상의 파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느냐?”

사도명은 고개를 저었다.

“거짓을 말하지는 않소. 나는 진실을 확실하게 알렸지.”

“그럼 생사객의 마음이 왜 달라졌단 말이냐?”

사도명은 몽염을 보았다.

몽염이 좌인홍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는 내게 질문을 했다. 대답하다가 문득 깨달았지. 시황께서 원하셨던 것과 환관 조고, 그 간악한 놈이 원했던 것을.”

몽염의 오른손바닥에서 가공할 흡력이 일어났다.

좌인홍이 내공을 끌어올려 저항했지만,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맥없이 끌려갈 따름이었다.

몽염은 오른손바닥으로 좌인홍의 머리를 쥐었다.

“시황께서 세상을 부수셨던 건 새로운 제국의 창건을 위함이셨다. 환관 조고는 달랐어. 그는 그저 부수고 싶기에 부쉈지. 자신이 만든 게 아니니까. 부수면, 스스로의 권력을 느낄 수 있으니까.”

“끄으으!”

좌인홍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은교교가 한숨을 쉬었다.

“좌인홍은 본래 저런 식으로 날 죽이려 했어요.”

“세상의 원리는 단순하지. 남에게 하려던 짓만큼, 되돌려받기 마련이야.”

“그래요. 하지만 지금은 구해주고 싶네요. 어떤 경우라도 사람이 죽는 건 보기 싫어요.”

사도명이 고개를 흔들었다.

“생사객은 우리말을 듣지 않을 거야. 그는 내 질문에 대답하면서 깨닫고 말았거든.”

“깨달아요? 뭘?”

“자신이 세상을 떠돌며 느꼈던 깊고 어두운 암막! 그 암막의 정체가 어떤 것인지를.”

“저도 알 수 있을까요?”

“올바른 것에 대한 거역. 힘겹게 세운 균형에 대한 파괴. 진 제국의 초기에도 그러한 짓을 저지른 놈이 있었잖아.”

“환관 조고?”

“그는 시황제의 옆에서 불사를 향한 모든 시도를 도왔어. 그의 의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남겨졌을까?”

은교교는 놀라서 부릅뜬 눈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좌인홍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손의 주인을 보았다.

“…방여립! 맞아요?”

사도명이 한숨을 쉬었다.

“너무 거대한 악의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아. 하지만 나타나면, 기이하게도 비슷한 모습이지.”

세상에 대한 방여립의 악의는 환관 조고의 악의와 매우 닮았다.

생사객의 오른손 안에서 좌인홍은 고통에 울부짖었다.

“사, 살려 줘. 아니, 죽여 줘, 제발! 끄으으.”

은교교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차피 죽일 거라면, 무의미한 고통을 주는 이유가 뭐죠?”

생사객은 좌인홍을 든 채로, 은교교를 돌아보았다.

“좌인홍은 방여립이 아니다.”

“그건 저희도 알아요.”

“좌인홍이 방여립의 진짜 정체를 과연 알까? 방여립은 내 앞에 나타날 때 얼굴을 숨겼다. 이 자의 앞에서도 마찬가지였을 테니, 좌인홍은 방여립을 모른다.”

“그럼 고통을 줄 필요가 더더욱 없죠. 넘기세요. 무림맹의 율법에 따라 처리하겠습니다.”

“나는 세상을 사랑했지만, 또한 계속 증오해 왔다.”

몽염은 좌인홍을 더욱 높이 들어올렸다.

“그러다가 조화무제 덕분에 깨달았다. 내가 사랑한 세상과 증오한 세상은 다른 세상이더구나.”

은교교가 소리쳤다.

“안 돼요!”

퍼-억!

좌인홍의 머리가 터졌다.

“이 녀석은 말하자면 고름이다. 무림삼성 중의 하나라면서도 세상을 망치는 데 앞장섰다.”

은교교가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율법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내가 말했잖아요! 죽일 필요가 없는 사람을, 대체 왜 죽인 거죠?”

“오랫동안 속고 살았다.”

몽염은 내공을 피워, 핏물로 물든 오른손을 말렸다.

“증오해야 하는 자를 증오하지 않고, 증오하지 말아야 할 세상을 증오했다. 나는 어리석고 멍청한 바보 새끼였다.”

사도명이 한숨을 내쉬면서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몽염 장군.”

은교교는 사도명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고 소리쳤다.

“악! 하지 마세요!”

하지만 이미 늦었다.

몽염이 오른손을 휘둘러 자신의 왼팔을 잘라냈다.

잘린 왼팔은 바닥에 떨어져 잠시 꿈틀거리더니, 이내 먼지로 변해 흩어졌다.

은교교는 다시 소리쳤다.

“왜 이러는 거죠? 왜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해요?”

“나는 세상에 죄를 지었고, 황제께도 죄를 지었다.”

몽염의 잘려나간 왼쪽 어깨에서는 피가 거의 흐르지 않았다.

“죄는 갚아야 한다.”

사도명이 몽염의 옆으로 왔다.

“하지만 당신의 왼팔을 잘라낸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사도명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몽염의 눈빛은 어두웠다.

하지만 그의 말을 옳았고, 그의 행동은 단호했다.

“황자는 좋은 분이셨다.”

몽염은 자신과 나이를 초월한 관계를 맺었던, 진시황의 맏아들, 부소 황자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분의 원한을 풀어드리고 싶다.”

“세상 깊은 곳의 어둠. 그 암막을 미워합니까?”

“나의 황제를 죽게 하고 세상을 빼앗은 환관 조고, 그놈과 똑같은 자를 도왔던 나의 모든 죄를 왼쪽 팔에 담아서 잘랐다.”

사람마다 자신의 잘못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고, 그에 대해 속죄하는 방법도 다르다.

누군가는 웃고 넘어가지만, 어떤 사람은 스스로의 목숨을 던질 정도로 통렬하게 후회한다.

생사객 몽염과 같은 사람은 자신을 속인 자도, 속임을 당한 자신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에 비하면 몸의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천 년이 넘는 시간을 살면서, 나는 그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몽염은 어느새 피가 멈춘 왼쪽 어깨를 오른팔로 잡고서, 비틀거리면서 걷기 시작했다.

은교교가 소리쳤다.

“방여립이 금륜, 은편을 되살렸어요. 제갈평 가주는 그들과 싸울 방법을 생사객이 알 거라 말했기에, 우린 여기 왔던 거예요.”

몽염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이미 알려 주었다.”

“알려줬다고요? 우린 들은 기억이 없는데 뭘 말했단 건가요?”

사도명이 은교교의 손을 잡았다. 은교교가 자신을 보자, 사도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은 이미 말했고, 나는 분명하게 들었소.”

은교교의 눈이 커졌다.

“언제요? 난 듣지 못했어요.”

천천히 멀어지는 듯 보이던 몽염은 어느새 사라지고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사도명은 몽염의 잘린 왼쪽 팔이 놓였던 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이제 먼지로 흩어진 옅은 흔적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행동으로 말하는 편이 언제나 확실하니까.”

“행동요?”

“생사의 경계. 죽은 사람의 혼이 그 불가사의한 선을 넘도록 만드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은교교는 깊이 생각했다.

생사객 몽염의 몸은 먼지로 흩어지지 않는데, 왜 잘려나간 왼팔은 사라졌을까?

“알겠어요. 이미 당신이 말했던 바가 있는데, 깜빡했네요. 의지! 살고자 하는 의지. 맞죠?”

생사객의 몸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몸에서 잘린 팔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잃었기에 먼지로 변한 것이다.

사도명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좌인홍의 시신을 살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발견했다.

“이 시신엔 굉천환이 없어.”

“있었다면, 생사객이 자신을 죽일 때 이미 터뜨렸겠죠.”

“성화산인이 아닌데도 왜 좌인홍은 무림맹을 배신했을까? 좌인홍이 명교의 교도였다면, 왜 방여립은 좌인홍에게만은 굉천환을 심지 않았을까?”

은교교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명교도가 아니면서도, 방여립을 돕는 자들이 있단 건가요?”

“생사객은 계속 좌인홍에게 물었지. 방여립의 부하냐고? 좌인홍은 끝내 대답하지 않았어.”

사도명이 미간을 찡그렸다.

“생사객은 환관 조고와 방여립의 하는 짓이 서로 닮았다고 말했는데,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닮은 것을 넘어섰다면?”

은교교의 안색이 핏기를 잃고 창백해졌다.

사도명이 다시 말했다.

“환관 조고는 시황제의 불사 비법을 옆에서 계속 보았겠지? 그걸 죽은 후 자신에게 시전했다면?”

은교교는 무서운 상상을 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은 악의! 그 악의가 현재의 세상에서도 숨어서 세상을 움직인다면, 그 근원은 혹시… 아!”

“생사객은 어렴풋하나마 느끼고 있었던 게 틀림없어. 그래서 제갈평 가주의 앞에 나타나 십자천하록을 쓰게 했겠지?”

“의심스러워했지만, 결정하지는 못하고 기다렸단 뜻인가요?”

“그는 방여립이 금륜과 은편을 데려가는 걸 막지 않았지만, 또한 우리를 막지도 않았어.”

“방관자인 건가요?”

“그렇다해도 결국은 결정을 내리겠지. 그가 내린 결정이 적어도 무림 전체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

사도명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은교교도 뒤늦게 먼 곳에서 달려오는 움직임을 눈치 채고, 그가 보는 곳을 보았다.

화운악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로 곽소혜가 보였다.

화운악은 핏물과 먼지로 엉망이었고, 곽소혜는 울고 있었다.

은교교가 놀라서 물었다.

“무슨 일이지요?”

사도명은 화운악과 곽소혜의 뒤쪽을 응시할 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두 사람과 함께 달려, 교교. 뒤를 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미친 듯이 달려.”

“갑자기 왜 그래요? 저 뒤에 뭐가 있기에… 아!”

은교교의 눈이 커졌다.

화운악과 사도명의 뒤.

하늘과 땅 사이를 온통 뒤덮으며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콰오오오오-!

“달아나. 내가 상대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은 제발, 모두 최대한 속력으로 이곳에서 멀어져!”

**

하늘에 금륜과 은편이 각각 떠 있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운으로, 사람들의 몸속 피가 진동했다.

진동하는 피는, 코와 입에서 저절로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부상자의 상처가 다시 터졌다.

엽경은 그 모든 모습을 보면서, 흐느껴 울었다.

제갈평은 엽경의 가슴에서 빛나고 있는 굉천환을 보았다.

“죽음 직전에 우는 성화산인을 많이 보았네. 엽경 부령주. 성화산인이라는 스스로의 숙명이 그토록 절망스럽고 슬픈가?”

“어찌 절망 않습니까, 제갈 가주? 자신을 버리고 좋아했던 이마저도 죽여야 하는 운명입니다.”

“그러면 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제 삶이니까요.”

엽경은 자신의 굉천환을 제거하려고 시도했던 종심기를 뒤로 밀어내면서 외쳤다.

“반드시 죽을 결심으로 평생을 살았는데, 어찌 그 결심을 쉽게 버린단 말입니까? …아!”

엽경은 소리를 지르다가 놀라서 뒤를 보았다.

어느새 나타난 화운악이 엽경 가슴의 굉천환을 제거했다.

“남을 도우려는 결심이야 쉽게 버리지 못하겠지만, 남도 죽고 자신도 죽는 결심은 쉽게 버릴수록 좋은 게 아니겠소, 엽 부령주?”

“맹주께서도 회천객 중의 하나십니까?”

“본래는 아니었지. 하지만 배웠소. 당신 같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회천객은 계속 늘어난다오.”

제갈평이 미소를 지었다.

“한쪽은 줄고, 한쪽은 늘고. 방여립은 결코 회천연합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네.”

엽경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당신들은 저 하늘 위의 금륜과 은편, 둘 중 누구도 당해내실 수 없잖습니까?”

“그건 노력해 봐야지.”

화운악이 왼손으로 칠절산수를, 오른손으로는 매화영롱검법을 펼치며 금륜을 행해 날아갔다.

연자강도 만천개화를 펼쳐, 허공 모든 곳에 꽃을 퍼뜨리며 금륜을 공격했다.

금빛의 륜이 허공에서 일어나, 칠절산수와 매화영롱검을 단번에 자르고 소멸시켰다.

금륜의 내공이 회전하며 화운악의 몸마저 자르려고 다가올 때, 땅에서 아홉 명의 고수가 동시에 몸을 날렸다.

“악을 용납할 순 없지.”

“우리들 구파와 일방은 늘 힘을 합친다 하면서도 진심으로 서로를 돕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어.”

구파와 일방의 장문인들이었다.

이미 자신이 회천객 중의 한 명임을 밝힌 무당파의 청수진인이 그들의 중심에 있었다.

“무량수불. 더는 공을 다툴 여유가 없소. 방여립의 음모를 막지 못하면 모두가 공멸이오.”

구파일방의 고수들이 모두 금륜 한 사람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은편의 채찍도 폭발했다.

연자강의 만천개화가 허공 모든 곳에 피운 꽃!

은빛의 채찍은 그 모든 꽃들을 단숨에 허물어버렸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사방에서 네 개의 그림자가 달려왔다.

“고금구천강과 싸워 본 경험은 오직 우리들에게만 있지.”

무화가 소리쳤다.

소화, 밀화, 흑화가 각각 오행 중의 한 방향씩을 맡으며, 연자강의 위치를 그 중심에 두었다.

“게다가 이겼다고, 우리들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