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37화 (137/168)

137화. 모두에겐 모두의 세상이

“재액을 이겨낼 방법을 안다면 마땅히 말해야 하오. 그건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잖소!”

연자강의 고함에, 제갈평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생사객이 진심으로 세상을 위한다면, 재액을 이겨내는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제갈청미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놀라 소리쳤다.

“만약 생사객의 목적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요?”

야율라가 한숨을 쉬었다.

“만약 생사객이 칸을 되살리려 황천법문을 만들게 한 사람이 맞다면, 그의 목적은 여러분과 다를 겁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야율라를 향했다.

제갈평의 얼굴은 마치 피를 모두 잃은 듯 창백했다.

“그 말의 뜻은?”

“나는 여러분과 달라요. 중원인인 여러분의 세상은 나의 세상과 다를 수밖에 없겠죠? 나는 마지막 칸의 후계자인 무제를 되살렸지만 그 목적은, 천하 무림을 보호하려는 여러분과 달랐어요.”

야율라의 말은 복잡했다.

하지만 제갈평만은 그녀의 말뜻을 완전히 알아들었다.

생사객은 황천법문을 만들어 죽은 칭키스 칸을 되살리려 했다.

대초원의 유목민에게는 그것이 위대한 왕의 부활이었다.

하지만 생사객은 달랐다.

제갈평은 신음했다.

“몽골의 위대한 왕. 하지만 대중원의 입장에서는 학살자. 생사객의 목적이 만약 학살자를 되살리려 한 것이었다면. 그건….”

연자강이 신음했다.

“생사객의 목표가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이었다고 판단한다면…?”

제갈평이 비틀거렸다.

급히 제갈청미가 달려와 부축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을 것이다.

“아버지!”

“아아. 터무니없는 실수를 했다. 재액을 극복할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재액의 근원으로 무제를 보냈다.”

제갈평은 연자강을 보았다.

“맹주를 구하러 가야 하오. 가주실 분은 대장뿐이시오. 조화결사대를 이끌고 영세탑으로 가주시오. 영세탑의 위치는….”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연자강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운악도 검을 뽑았다.

앞쪽, 먼 거리에서 무엇인가가 접근하고 있었다.

거대한 두 개의 기운이었다.

내공이 강한 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일반의 무사들마저도 또렷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세가 다가왔다.

부상자를 치료하던 의제 원일경이 식은땀을 흘렸다.

“어, 어떻게 이런….”

퍽!

퍼퍼퍼퍽!

지혈했던 부상자들의 상처가 저절로 다시 터지기 시작했다.

기찰령의 부령주 엽경이 갑자기껄껄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재밌지 않습니까, 여러분? 세상은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모두에겐 저마다의 세상이 따로 있죠. 하하하.”

엽경은 백마사에서 벌어졌던, 성화산인의 자폭으로 인한 부상자의 현황을 가장 먼저 알려왔던 사람이었다.

그의 전갈로 인해, 신 무림맹의 주요인물들 모두가 백마사로 달려왔다.

엽경의 가슴에서도 빛이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굉천환의 빛이었다.

그가 지금 자폭한다면 신 무림맹의 주요인물 등 중에 살아남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종심기가 달려와 굉천환을 떼어내려 손을 뻗었다.

“너도였느냐? 너도 성화산인이었단 거냐, 엽경?”

종심기는 엽경의 무공 수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뻗은 손이 엽경에 의해 단숨에 제압당할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령주님.”

“이, 이 손을 놔. 죽게 된다. 모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너도 죽게 된다고, 멍청아!”

“항상 제게 잘해 주셨죠? 압니다. 하지만 각자의 세상은 달라요. 령주님의 세상이 무림을 지키는 거라면, 제 세상은 언제나 그 무림을 부수는 거였답니다.”

“다가오는 게 누구냐? 저 끔찍한 기운은 대체 누구냐?”

“짐작하시잖습니까? 그들입니다. 세상을 구하고자 했던 영웅들. 그러나 결국 세상을 무너뜨리게 될 악마들.”

콰아아아아-!

마침내 두 가지 기운이 모두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백마사의 하늘.

금빛과 은빛으로 각각 빛나는 두 개의 존재가 떠 있었다.

금편과 은륜!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난 두 명의 절대자는 단지 허공에 떠 있는 것만으로도,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단숨에 장악했다.

엽경의 가슴에 반짝이던 빛은 더욱 빠르게 명멸하기 시작했다.

종심기는 자신의 코에서 저절로 핏물이 흘러내림을 느꼈다.

제갈평도 자신의 코를 만졌다.

자신의 코에서도, 제갈청미의 코에서도 흘러내리는 피는, 금륜과 은편의 가공할 기세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이었다.

“이 모든 비극은 방여립이 만든 것이다. 도대체 그는 누구냐? 그가 이미 신 무림맹에 들어와 있음을 안다. 방여립이 누군지를, 제발 말해라, 엽경!”

“그게 중요합니까, 제갈 가주? 여기의 모두는 죽습니다. 세상은 신이 악마가 되어 세상을 멸망시키려 함을 알게 될 겁니다.”

엽경은 울었다.

제갈평은 성화산인들이 항상 마지막 순간에 우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법허 대선사도 성화산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택했고, 숙명을 거부했다.”

“미안합니다. 제게는… 그러한 용기가… 없네요.”

**

좌인홍의 커다란 손이 은교교의 얼굴 전체를 덮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좌인홍은 본래 은교교의 머리를 자신의 악력으로 부수려 했으나 그의 손은 은교교의 얼굴 바로 앞에서 멈추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심장을 등에서 앞으로 꿰뚫은 검을 보았다.

검은 실제의 것이 아니라 내공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심검을 활용한 검강!

좌인홍의 심장을 뚫을 때는 강하고 날카로웠는데, 심장을 뚫고 나와 은교교에게 닿을 때는 솜털처럼 부드럽게 변했다.

“이건 말도 안 돼.”

좌인홍은 심검강의 주인이 누군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믿을 수가 없었다.

검강이 사라졌다.

몸이 자유롭게 풀린 좌인홍은 은교교의 얼굴 바로 앞까지 뻗었던 손을 내렸다.

계속 올리고 있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의 심장을 뚫은 검은, 이미 좌인홍의 모든 힘을 깨끗이 앗아가 버린 후였다.

좌인홍은 몸을 돌렸다.

사도명이 거기 서 있었다.

“지하 무덤 속에서, 생사객 몽염과 싸운 것이 아니었나?”

“싸운 게 맞소.”

“몽염은 금륜, 은편에 버금가는 강자였다. 그리고 되살아나서 더욱 더 강해졌지.”

“확실히 강하더구려.”

“너도 강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생사객을 죽이며 자신은 상처조차 하나 없을 정도의 고수라곤 절대로 믿지 않아.”

“생사객을 죽였다? 왜 그리 생각하오? 내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를 죽인단 말이오?”

사도명은 좌인홍의 뒤, 은교교의 너머를 보았다.

좌인홍은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후에야, 백골이 썩어가는 살점이 붙어 있는 한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이 좌인홍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왜 사도명이 날 죽였다고 생각했느냐?”

사도명은 은교교에게 다가가 살며시 끌어안았다.

“한 가지 확인했군. 생사객은 방여립을 만났었는데, 저 사람은 몰라봐. 그는 방여립이 아냐.”

“성심천자 좌인홍은 무림 삼성 중의 한 명이에요.”

은교교의 손이 사도명의 팔뚝을 꼬집었다.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날 걱정시키면 그땐 정말 용서하지 않겠어요.”

사도명은 팔뚝의 내공을 풀어, 은교교의 손톱이 충분한 고통을 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고통에 걸어 약속하는데, 또다시 걱정은 시킬 수 있겠지만 그때도 반드시 살아 돌아올게.”

좌인홍은 생사객 몽염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귀하의 목적은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것이고, 우리의 목적과 일치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의? 너는 방여립이 아니다. 그의 부하구나.”

“좌인홍입니다. 귀하와 같은 분 앞에서 나이를 내세울 수는 없겠죠? 저는 교주님을 존경하고, 교주님의 뜻을 따릅니다.”

“왜 또 다른 교주인 석단궁은 따르지 않지?”

“왜 제게 적대감을 보이십니까? 왜 사도명과 함께 나오셨습니까? 세상을 무너뜨리겠다는 목적을 잃으신 겁니까?”

몽염이 질문하며 사도명을 보았다.

사도명은 멍이 든 팔뚝을 만지면서 웃었다.

“생사객은 달라지지 않았소. 그의 목표는 여전히 같아. 세상을 부수는 것.”

“무슨 뜻이냐?”

“천하는 넓고, 넓은 만큼 여러 종류의 세상이 있소. 나는 처음부터 생각했지요. 생사객이 누군지, 그의 세상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

꽈아-아앙!

수 분 전.

무덤 속의 통로를 이루는 벽이 모조리 흔들렸다.

생사객은 사도명의 목적이 자신의 생각과 다름을 깨달았다.

생사객은 사도명과 마주 싸울 생각이었다.

그 부딪침으로 발생하는 충격파는, 첫 번째의 부딪침처럼 그 자신이 흡수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도명은 달랐다.

그가 내쏜 장력은 생사객 몽염이 아니라 통로의 벽을 향했다.

쿠르르르르!

천장에서 크고 작은 돌조각들이 떨어졌다.

“그만해!”

생사객은 사도명을 향해 장력을 날렸다.

사도명은 그 장력을 피하면서, 다시 벽을 쳤다.

“네놈은 이곳을 기어이 무너뜨리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나는 진시황릉을 반드시 무너뜨려야겠습니다.”

“네놈이 왜?”

“당신은 조고와 이사를 증오했지요? 진시황이 세운 나라를 사랑하면서도, 그들이 진시황으로부터 빼앗은 나라를 증오했지요?”

“그만! 제발 그만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진 제국이 무너진 후에도, 다시 세워지고 무너지는 모든 세상을 사랑하면서 또한 증오하는 것 아닙니까?”

“그만하지 않으면, 나는 네놈을 반드시 죽일 테다.”

사도명이 손을 멈췄다.

쿠르르르르-!

하지만 이미 여러 곳이 부서진 무덤이 흔들리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생사객. 삶과 죽음! 세상에 대한 사랑과 증오. 당신의 별호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모순이 숨어 있는지. 직접 지었습니까? 아니면 제갈평 가주가 지어줬습니까?”

“너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조금도 이해 못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사도명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죽음 너머에 또 다른 삶이 존재함을 이미 알고 있지요.”

“그따위를 아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이냐? 나는 이 세상을 아끼며, 또한 증오한다.”

“아끼기에 지켜보고, 증오하기에 역시 지켜본 겁니까? 세상이 여전하기를 원하며 동시에 세상이 무너지기를 바랐습니까?”

몽염의 눈이 이글거렸다.

“나에 대해 잘 안다고 해서, 내가 널 죽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죽이지 않을 겁니다.”

“뭐? 왜?”

“아니, 죽이지 못할 겁니다. 나는 지금까지 진짜 힘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사도명의 몸에서 이글거리는 기세가 고요히 일어났다.

몽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애초 일 장을 부딪쳤을 때, 전력이 아니었느냐?”

“전력을 다했다면 여긴 무너졌고, 귀하가 이곳을 얼마나 아끼는지 볼 수 없었겠죠?”

“너는… 처음부터 내가 몽염일 가능성을 생각했느냐?”

“혹은 부소 황자나, 환관 조고! 지금 세상의 모든 모순과 비극이 그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생각하고 짐작해 보았습니다.”

“네가 사랑하는 여자를 먼저 내보낸 건, 내 손에 죽을 각오를 했기 때문이 아니구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사도명의 눈은 어느 때부턴가 생사객의 시선을 전혀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귀하를 설득할 시간. 귀하가 부수고자 하는, 구하고자 하는 세상을 재구성할 수 있는 시간.”

쿠르르르르르르!

무덤 속의 흔들림은 더욱 거세고 심각해졌다.

사도명은 천장을 보았다.

균열이 만들어져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곧 무너지겠군요. 일부만 무너져도, 수백, 수천 년간 아무도 이 무덤을 찾지 못하겠죠?”

“네놈 때문이다. 네놈을 죽이고, 무너지는 무덤 속에 나도 같이 묻힐 것이다.”

“시황제는 아무도 여길 찾지 못하기 바랐을 겁니다.”

사도명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몽염의 해일 같은 살기를 느끼면서도 웃었다.

“그런데 자신이 일통하여 제국으로 만든 세상은 어떻게 되길 바랐을까요?”

“그, 그분은… 그분은 분명히 세상이 번영하기를….”

“그럼 환관 조고는? 이사는? 그들의 세상은 훔쳐 빼앗아 가진 것입니다. 그들이, 빼앗은 세상에서 바란 게 무엇일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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