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36화 (136/168)

136화. 진짜와 가짜

아들은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멀쩡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종심기가 있었다.

“성화산인은 스스로 죽는다. 반면, 회천객은 죽지 않고 오히려 남을 살린다.”

종심기의 손에, 제거되어 기능이 사라진 굉천환이 보였다.

그것이 아버지의 가슴에서 제거된 것임을 아들은 알아보았다.

“성화산인은 죽기에 사라지고, 회천객은 살기에 자신의 재주를 남에게 전할 수 있다. 굉천환 제거의 재주를 넘겨받은 사람은 또 다른 회천객이 되지. 그 둘의 싸움에서 결국 누가 이길지는, 이로써 명백하지 않은가?”

종심기가 부서진 굉천환을 아들을 향해 던지며 물었다.

“이름이 뭐요?”

아들은 굉천환을 받으며 얼떨결에 대답했다.

“위행(僞幸)! 호위행.”

“가짜 행복이라고?”

종심기는 노인을 보았다.

“아들의 이름치곤 너무 괴이하지 않소, 성화산인?”

노인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감았다.

“세상에 진짜 행복 따위가 있을까? 거짓이라도 잠시나마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귀하는 평생 죽음을 향해 달렸소. 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은 지금 마음이 어떻소? 슬프오?”

아버지는 파르르 눈썹을 떨다가 결국 눈을 떴다.

앞쪽 멀리서 자신을 보고 있는 아들이 보였다.

“아버지.”

“…위행아.”

노인은 참지 못하고 달려갔다.

그리고 울고 있는 아들을 힘껏 안았다.

옆에 서 있던 의제 원일경이 두 사람의 등을 다독거렸다.

“사람이 어제의 잘못을 오늘 고칠 수 있다면, 누구나 진짜 행복을 가질 수 있지.”

“흐흐흑!”

노인이 울기 시작했다.

아들, 호위행의 울음도 그 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노인은 종심기를 보며 결국은 인정했다.

“아니오. 행복하오. 세상에는 진짜 행복이 있고, 나는 오래 전부터 그걸 갖고 있었지만 미처 모르고 살아왔었소.”

가족이라는 행복.

평범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행복과 만족!

종심기가 야율라를 보았다.

“황천법문의 법술은 이렇게도 쓰일 수 있군요. 환상을 보여주어 성화산인의 죽음을 늦추어 주셨기에, 그 사이에 내가 굉천환을 제거할 틈을 찾았습니다.”

“방여립은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부수고 있어요.”

야율라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노인과 그의 아들을 보았다.

“분노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도 그를 용서하지 못할 거예요.”

“그러한 이유로, 지금 무제께서는 영세탑에 계십니다.”

옆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했다.

제갈평이 걸어왔다.

“영세탑이란 어디요?”

“신이 악마로 변한다는 전설을 지닌 곳. 무제는 지금쯤 그곳에서 생사객을 만나셨을 겁니다.”

야율라가 입속으로 말했다.

“생사객. 죽지 않는 사람. 죽었으나 살아난 사람.”

“그리고 생사객은 무제를 시험할 것입니다.”

연자강이 또 다른 방향에서 걸어오다가 물었다.

“시험? 어떤 시험 말이오?”

“방여립은 고금구천강을 부활시켰습니다. 그 재액을 막을 방법이 생사객에게 있습니다.”

제갈평의 표정은 딱딱했다.

“생사객은 무제를 보며 선택할 것입니다. 그 방법을 알려줄지, 혹은 알려주지 않을지를.”

연자강이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버럭 고함을 질렀다.

“재액을 이겨낼 방법을 안다면 마땅히 말해야 하오. 그건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잖소!”

**

사도명은 생사객을 계속 쳐다보며 말이 없었다.

생사객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네는 왜 묻지 않는가?”

“뭘 물어야 합니까?”

“세상 속의 진짜 어둠. 나는 말했네. 그 어둠의 장막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고! 암막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내게 물어야지.”

사도명은 묻지 않고, 은교교를 보며 소리쳤다.

“이곳은 무너질 거야.”

은교교가 영문을 몰라 맑은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조금 전 부딪쳤을 때, 저 남자는 나와 싸운 여력이 주변 통로를 부수지 않도록, 힘을 흡수하는 여유를 보였어. 이제부터 나는, 그따위 여유는 주지 않을 생각이야.”

“생사객과 다시 싸운다고요?”

“모든 힘을 다해서!”

백골 위에 덧씌워져 있는 생사객의 눈알이 흔들렸다.

“암막의 정체를 묻지 않고, 오히려 나와 싸우겠다? 왜?”

“귀하는 기관을 작동시킬 수 있을 정도로 이곳을 잘 압니다. 여기에 오래 있었지요?”

“오래 있었네. 아주 오래.”

“방여립이 들어와서 금륜과 은편의 시신을 가져갈 때도 이곳에 있었을 겁니다. 맞죠?”

“부인할 생각 없네.”

사도명이 다시 소리쳤다.

“들었지, 교교? 생사객은 세상의 가장 어두운 어둠을 안다. 알면서도 방치했어. 방여립이 금편과 은륜을 데려가게 그냥 두었다.”

고오오오오오오-!

사도명의 몸을 휘감으며 피어오르는 서기가, 주변을 환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제갈 가주가 착각했어. 생사객은 천하를 구할 방법을 알고, 그걸 알려주려고 살아 있는 게 아냐. 그저 결정하지 못한 거다.”

사도명의 몸에서 강력하기 그지 없는 일여생멸의 힘이 앞으로, 그리고 뒤로 뻗었다.

앞으로 나간 힘은 모든 것을 부수는 일체멸의 기세로 생사객을 덮쳤다.

뒤로 뻗은 힘은 조화생!

그 부드러운 힘은 은교교의 몸을 휘감아 통로의 밖으로 날려가도록 만들고 있었다.

“나만 도망치게 하려는 건가요? 싫어요! 같이 가요, 도명!”

콰우우우-우우우우우!

생사객의 몸에서도 이전과 비교하기 힘든 기운이 일어났다.

살아생전 진 제국의 대장군이었던 몽염!

되살아난 후 천 년 넘는 세월을 축적하면서 쌓여간 또 다른 힘.

진 제국의 모든 기술을 다한 지하 무덤이 흔들렸다.

무너질 수 없도록 지어진 무덤이 사방으로 삐거덕거리며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아아! 도명!”

사도명이 전개한 여의생의 기운은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은교교는 통로를 되돌아갈 수가 없었다.

이미 앞쪽의 동굴 입구는 곳곳이 무너져 막혀가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사도명이 왜 갑자기 생사객을 공격하고, 자신을 도망치도록 했는지 알았다.

제갈평은 착각을 했다.

그는 생사객이 어둠 속의 암막을 깨닫고, 그걸 깨뜨릴 방법을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건 잘못된 판단이 아니었다.

하지만 생사객이 세상을 위해, 자신이 아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란 판단은 틀렸다.

생사객은 진시황을 향한 만고의 충신이었다.

천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후에도, 진시황이 묻힌 무덤이 무너지는 것을 차마 두고 보지 못했다.

몽념에게 천하는 아직 진시황이 건설한 제국이었다.

또한 진시황을 배신한 자들이 만든 지옥이기도 했다.

그 지옥이 무너지게 만들지, 혹은 지킬지, 몽념은 아직 결정하지 않고 있었다.

은교교의 머릿속에 사도명이 남긴 전음이 아직도 맴돌았다.

[몽념은 강해. 강한 자가 신이 될지 악마가 될지 결정하지 않았으니, 나는 이 크나큰 위험을 내버려 둘 수 없어.]

쿠르르! 크르르-릉!

은교교는 어쩔 수 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무너지는 통로의 너머, 안쪽 먼 곳에 아직도 싸우고 있는 두 절대고수의 기세가 뚜렷이 전해왔다.

은교교는 뒷걸음질 치다가 방향을 바꾸어서 달렸다.

사도명은 살 수도 있고, 혹은 희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건 은교교는 죽지 않고 살아야 했다.

딸랑 딸랑 딸랑.

달려가는 은교교의 허리에서 방울이 계속 흔들렸다.

**

은교교는 통로가 모두 무너지기 전, 가까스로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뒤로, 구릉이 흔들리고 다시 흔들리더니 곳곳이 가라앉았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지형 자체가 바뀌고 있었다.

은교교는 지친 몸을 세웠다.

몸을 돌려 무너지고 있는 구릉을 보는 그녀의 표정은, 허탈함과 근심으로 가득했다.

“알겠어요. 나더러 살아서 세상에 알리란 거죠?”

은교교는 사도명이 자신을 살려 밖으로 보낸 뜻을 헤아렸다.

“금륜과 은편이 부활했고,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생과 사의 경계를 연구해 본 사람들이 안다는 걸.”

생과 사의 경계를 넘는 일에 성공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조화무제 사도명.

하지만 경계를 넘는 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더 있었다.

황천법문주 야율라.

그녀라면 생사객이 내어줄 답을 대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을 알기에, 사도명은 생사객을 제거하고자 목숨을 걸었다.

생사객은 결정에 따라, 강호의 위험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은교교는 눈물을 닦았다.

아버지를 떠올렸다.

설청산은 세상의 위험을 제거하고자 목숨을 던졌다.

그리고 지금 사도명은 또다시 그와 비슷한 결정을 한 것이다.

“당신은 도대체 몇 번이나 이런 결정을 하는 거죠? 이런 일이 정말 세상에 도움이 될까요?”

- 어쩌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아닐 수도 있지.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은교교는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려 자신의 왼쪽 십여 장 거리에 서 있는 한 명의 복면인을 보았다.

은교교가 놀라지 않자, 복면인이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는 왜 놀라지 않느냐?”

“놀라야 하나요?”

“혹시 내가 나타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느냐?”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굳이 죽음을 선택하는 광경을 벌써 여러 번 보았어요.”

은교교는 흘렸던 눈물을 닦아내며 복면인의 오른손을 보았다.

“혹시 모르죠? 그 복면을 벗고 진짜 얼굴을 보여주면 놀랄지.”

복면인의 오른손에 단심을 상징하는 붉은 빛 반지가 있었다.

반지는 단심환이라 불린다.

길고 오랜 시간을 무림맹을 위해 공헌하여, 천하를 향한 단심을 증명한 사람만이 무림맹으로부터 단심환을 받게 된다.

복면인의 입 주변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웃는 것이다.

“너는 이미 내가 누군지를 짐작하는 모양이구나.”

“법허 선사께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분명 그러한 단심환을 받으셨을 거예요.”

“불의의 사고가 아니었지. 법허는 성화산인이었다. 자신의 숙명을 결국 피하지 못한 거지.”

“무림성에는 그와 같은 단심환을 받은 사람이 두 분 있었어요. 그들 두 명은 법허 선사와 함께 무림삼성이라 불렸죠.”

법허는 불성(佛聖)이었다.

복면인은 자신의 복면을 벗으면서 웃었다.

“똑똑한 여인을 짝으로 가진 남자는 행복하지. 조화무제는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복면 속에서, 풍성한 백발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가진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교교의 예상대로, 과연 그는 삼성 중의 한 명인 성심천자 좌인홍이었다.

“그런데도 운 나쁘게 그만, 무덤 속에서 죽고 말았구나.”

“좌 노선배는 무제가 죽었다고 생각하나요?”

“생사객 몽염은 천 년보다 훨씬 이전에 대제국을 건설했던 대장군이다. 죽음에서 되살아난 그와 싸워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좌인홍이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다. 되살아난 금륜과 은편이라 해도, 생사객을 이겨낼 수는 없다.”

“되살아난? 역시 노선배가 방여립이었던 건가요?”

“역시? 혹시 나를 예전부터 의심하고 있었느냐?”

“신 무림맹을 세우고, 많은 은거 기인과 전대의 고수들이 되돌아 왔어요. 삼대재액이 한창일 때도 숨어 지내더니, 갑자기 돌아오는 사람이 매우 늘었습니다.”

“점점 커지는 위기! 혈겁을 넘어 천하 무림의 존망까지 치닫고 있다. 어찌 한가로이 초야에 묻혀만 있을 수 있겠느냐?”

“좋은 뜻을 가진 분이 많은 것을 압니다. 하지만 본래 가짜는 진짜 속에 숨는 법이죠.”

은교교가 방긋 웃었다.

“이건 제 말이 아니라, 그분의 말이에요.”

“그분? 누구? 혹시 조화무제가 그리 말했느냐?”

“오래 전에 말했어요. 진짜 흑막은 진짜들 속에 숨어 스며들어 올 거다. 그러므로 신 무림맹이 세워지고 나면, 그 속에 새로이 들어온 사람 중의 하나가 진짜 흑막이다.”

좌인홍의 눈이 한껏 커졌다.

“너는 나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는데, 나는 이미 죽은 조화무제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는구나.”

“앞으로는 놀랄 일이 더더욱 많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이미 죽었다.”

좌인홍이 반지를 낀 손을 은교교의 눈앞으로 들었다.

“너는 똑똑하니, 내가 굳이 이 단심환을 숨기지 않고 끼고 나온 이유를 알 것이다.”

은교교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오직 죽은 사람만이 비밀을 지키죠. 노 선배는 처음부터 절 살려둘 생각이 없으셨던 거죠?”

“정답이다.”

좌인홍의 팔이 길게 늘어났고, 커다란 손은 은교교의 얼굴 전체를 완전히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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