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35화 (135/168)

135화. 생사객

쩌어-어어엉!

폭음은 강렬했다.

사도명으로서도 처음 경험하는 미증유의 힘.

거기에 맞서, 사도명 역시 전력을 다한 상태였다.

빛을 명멸시킬 정도의 충돌이 통로 안에서 일어났다.

은교교는 그 빛 속에서 상대의 얼굴을 보았다.

곳곳이 시커멓게 부패했고, 더러 삭아내리고 있었다.

그는 죽은 사람 같았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가공할 힘을 뿜어낼 수 있을까?

빛이 꺼졌다.

사도명은 뒤로 은교교를 보호한 채, 어둠 속의 사람에게 말했다.

“대체 얼마나 이 어두운 무덤 속에서 산 겁니까??”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답했다.

“너는 나에 대해 아느냐?”

“통로 속의 희미한 빛! 그건 오랜 시간 동안 작동 된, 기관이 있다는 뜻이겠죠? 귀하는 그걸 끄는 법을 압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목소리는 다시 말했다.

“질문을 듣지 못했느냐? 내가 누군지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불을 켜 주겠습니까?”

어둠 속에서 목소리의 주인이 손을 저었다.

다시 희미한 빛이 생겨나서 주변을 밝혔다.

목소리의 주인은 진시황릉의 기관이 작동하는 방식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도명의 시선은 여전히 목소리의 주인을 향했다.

하지만 질문은 은교교를 향해 던져졌다.

“상상해 봐. 대체 얼마나 오래 살면 사람의 모습이 저린 식으로 변할까?”

은교교는 대답하지 못했다.

목소리의 주인이 다시 물었다.

“벌써 세 번째 묻고 있다. 너는 내가 누군지를 알고 있느냐?”

“살아 있으나 죽은 모습. 그런 모습의 사람에 대한 소문이 강호에 떠돈 지는 오래 됐습니다.”

사도명의 시선은 여전히 목소리의 주인에게 향했다.

하지만 질문 또한 은교교에게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수백 년으로도 부족하지 않을까? 그 이상을 살아야, 겨우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은교교는 비로소 깨달았다.

“생사객. 저 사람이 바로 생사객인가요? 우린 저 사람을 만나러 왔던 건가요?”

“이미 사라졌을 것이 확실한 금륜과 은편을 만나러 왔을 리는 없잖아?”

사도명은 비로소 생사객을 향해 말을 걸었다.

“제갈평의 앞에 나타나, 십자천하록을 쓰도록 시켰던 그 사람이 바로 귀하 맞습니까?”

은교교가 놀라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쓰게 했던? 지금 제갈 가주에게 쓰게 했던, 이라 말했나요?”

너덜거리는 생사객의 얼굴 살점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맞네.”

“친키스 칸이 죽었을 때, 남은 신하들 앞에 나타나 생사의 경계를 뛰어넘는 방법을 찾아보게 유도했던 그 사람이 맞습니까?”

“그것도 맞네.”

“금륜과 은편은 천하 무인들과 싸워 이겼으나, 차마 그들을 해치지 못하고 이곳 무덤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신이 되었다가 악마가 된 사람의 전설을 세상에 퍼뜨렸던 사람도 맞습니까?”

생사객은 또다시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다.

“한꺼번에 대답하기로 하겠네.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대부분의 것이 맞네. 나는 워낙 오래 살아왔고, 워낙 많은 일을 했지.”

사도명은 생사객의 몸을 다시 살핀 뒤 물었다.

“살아 왔다고요? 혹시 죽어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비슷할 수도 있고.”

생사객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네 번째 묻고 있네. 자네는 내가 누군지 아는가? 모른다면, 나는 모든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하니 대답해.”

사도명은 다시 은교교를 향해서 시선을 돌렸다.

“야율라가 말해 줬어. 황천법문에 생사의 경계를 건넜던 사람이 단 한 명 있었다고.”

사도명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참. 아니구나. 생사의 경계를 건넜던 사람이 황천법문을 만들 근거가 됐다 말해야 하나?”

생사객이 빙그레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는 살점 떨어져 나간 백골의 비틀림이었다.

“내가 누군지를 알고 있구나. 어서 말해 보게.”

“진시황이 죽고 환관 조고의 가짜 유서로, 첫 번째 황자 부소가 죽었습니다.”

“…아득한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을 말해라 했네. 못한다면, 죽는 편이 좋겠지?”

“부소는 고집스럽게도 그게 가짜 유서임을 알면서도 자결했습니다. 이후, 부소와 나이를 떠난 친구였던 몽염장군도 죽었죠.”

생사객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은교교는 사도명이 쓸 데 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 굳이 부소와 몽염의 이야기를 말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서복은 사기꾼이었어요. 진시황에게 불로불사초를 찾아오겠다 말하고, 동남동녀와 막대한 재산을 받아 도망쳤죠.”

“당신은 이제 상황의 본질에 거의 접근했소. 교교.”

“혹시 서복이 사기꾼이 아니었던 건가요?”

“불로불사의 술을 안다고 접근한 사람들 중, 적어도 하나쯤은 비슷한 재주를 지닌 이가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아?”

“불로불사의 술은, 성공했던 거군요! 그럼 저기에 서 있는 생사객이 혹시 진시황? 그래요?”

“하하. 그럴 리가.”

사도명은 껄껄 웃었다.

“진시황이 정말로 되살아났다면, 어찌 호해가 왕이 되고 진 제국이 무너졌겠어?”

은교교는 화려한 관 속에 들어 있던 진시황의 시체를 떠올렸다.

“그럼 생사객은 누구죠? 자결했다는 황세자, 부소인가요?”

사도명은 주변 통로의 벽을 가리켰다.

“나와 생사객의 격돌은 강력했소. 하지만 벽은 너무나 멀쩡하지. 왜겠소?”

“누군가 충격을 흡수….”

은교교가 미간을 찡그리며 생사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당신이 그럴 필요는 없으니… 혹시 귀하인가요?”

“맞네.”

“싸움의 와중에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당신은… 충신인 거군요. 진의 시황을 미워하면서도, 충심을 버릴 수는 없는 진 제국의 충신. 맞죠?”

은교교는 마침내 생사객이 누군지를 알아냈다.

“몽염 장군! 그렇군요. 당신은 진 제국의 몽염 장군이군요.”

생사객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황자 부소는 현명했지. 하지만 마지막 선택은 어리석었어. 가짜 유서를 거부하는 것조차, 불효이며 역심이라 생각하다니.”

사도명이 다가와서 은교교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섰다가 돌아와는 과정에 대해서,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아.”

그 역시 한 번 경계를 건넜다가 돌아왔었다.

“중요한 건 운 따위가 아냐. 의지. 죽어도 죽지 않겠다는, 무조건 돌아오겠다는 의지.”

사도명은 생사객을 보았다.

“몽념 장군! 당신에게는 그게 있었지만, 진시황에게는 그게 없었습니다. 맞죠?”

생사객 몽념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는 이룬 것이 너무 많았네. 살아생전에,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었지.”

“원이 없으니, 경계를 넘어 삶으로 돌아올 이유가 없었군요.”

“반면에 나는 이유가 넘쳤네. 억울한 것이 너무 많았어. 평생을 진 제국을 넓히고 굳건하게 세우는 일에 바쳤는데도, 결국 반역자로 몰려 죽었지. 나는 돌아와야 했어. 돌아와서 할 일이 많았어.”

사도명이 은교교를 보며 설명을 덧붙였다.

“몽념 장군은 살았을 때, 금륜이나 은편에 필적할 고수였던 게 틀림없어. 아까 나와 일장을 주고받는 걸 봤지?”

“황제는 살아 있을 때, 나를 자신의 호위로 쓰려 했네.”

몽념은 고개를 흔들었다.

“내 충성심을 알았으니까. 나는 황제의 진짜 유언에 따라 황제에게 베풀어졌던, 부활의 의식을 똑같이 시전 받았다네.”

사도명도 한숨을 쉬고 말았다.

그의 한숨은 몽념의 것과 똑같이 깊고 아득했다.

“그 결과가 지금이군요. 황제는 되살아나지 못했는데, 귀하만 되살아난 거군요.”

“처음 살아났을 때, 아득했네. 지하 무덤 속! 만에 하나 황제가 살아나면 그를 막겠노라 스스로를 가둔 금륜과 은편의 시체. 시신들 속에서, 나만 혼자 살아 있었지.”

몽념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황제는 죽어서도 자신을 지키라고 병마용을 만들었더군. 인간이 아닌, 인간의 흉내를 내는 존재들. 나는 어쩌면 황제에게 저런 병마용과 비슷한 존재였을까?”

“모든 건 변합니다. 시작할 때의 황제는 귀하가 충성을 바칠 만한 사람이었지만, 그 후엔 변한 거죠. 영세의 탑이, 신이 된 사람조차 악마로 바꾸듯이.”

“어쩌면 아닐지도. 황제는 처음부터 악마였던 것일 수도.”

사도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다 한숨 쉬는 버릇이 생기겠습니다. 귀하는 언제쯤 깨어났습니까? 진 제국이 이미 멸망한 다음이었나요?”

“한참 후였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살아났기에, 이렇게 온몸이 썩고 말았어. 부활의 의식도 썩은 몸을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더군. 나는 허탈했네. 복수건 해명이건, 대상조차 사라졌으니”

“그래서 뭘 했습니까?”

“세상을 떠돌았네. 악마가 되는 신의 이야기도 해 주면서, 나는 늘 생각했지.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내게 주어진 이 영원한 생명을 어떻게 활용해야 옳지?”

“그래서 결정 내렸습니까?”

“떠돌다 보니 알게 되더군. 세상의 진짜 어둠. 아무 일 없는 듯 보이는 세상의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악의!”

사도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것이야말로 처음부터 그가 듣고 싶어 했던 내용이었다.

영세탑에 온 이유였다.

그는 신 무림맹을 떠나기 전의 일을 떠올렸다.

소림사의 지하에서, 사도명은 제갈평과 남몰래 만났었다.

**

“어떻게 모르는 일을 책에 쓸 수 있습니까?”

사도명은 다짜고짜 물었다.

제갈평은 순순히 인정했다.

“무제시라면 그 점을 분명히 간파해 내실 줄 알았소.”

십자천하록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육객!

제갈평은 생사객과 무명객에 대한 것을 분명히 적어 놓았다.

사람은 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기록할 수는 없다.

“네, 알고 있었습니다. 보아서 아는 것이 아니라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십자천하록 속에, 아는 것을 적었던 겁니다.”

“가주에게 이 모든 걸 알려준 사람은 누구요? 우리들이 이 모진 혈겁의 끝에서야 겨우 알아낸 것들을 미리 알려준 사람이?”

“그는 아주 오래 살았습니다. 그는 강호의 뒤에 숨겨진 진짜 암막을 압니다.”

“진짜 암막?”

“모든 저주는 그때 시작되었다 합니다. 천하가 처음으로 일통이 되었던 그때에.”

“첫 번째의 황제? 진의 시황제에 대해 말하는 거요?”

“모든 건 직접 물으십시오.”

“직접?”

제갈평은 사도명에게 영세탑과 그곳에 생사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영세탑이 바로 진시황릉이라는 사실을, 사도명은 은교교와 함께 도착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는 제게 십자천하록을 쓰도록 시키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세상을 어떻게 할지.”

“그게 무슨 소립니까? 세상을 무너뜨리려는 암막을 보았다면 반드시 막아야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니요?”

“그는 죽음 이후를 보고, 다시 생사의 경계를 넘어 살아난 사람입니다. 생각이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을까요?”

제갈평은 사도명의 눈빛을 깊이 살피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무제는 어떠십니까? 무제 역시 생사의 경계를 건너, 다시 살아나신 분이지 않습니까?”

**

거대한 폭발.

아들의 몸도 그 폭발하는 힘의 끝자락에 말려 흔들렸다.

폭발의 근원이 어디인지 아들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

산산조각 몸이 터져나갔을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아들은 울었다.

성화산인의 숙명.

아들은 아버지가 이루고자 하는 신념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평범한 가정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어머니는 바느질 솜씨가 좋았고, 음식 또한 맛있었다.

어머니가 만든 옷을 입고 따뜻한 밥을 먹으면, 언제나 충분히 행복했었다.

아들이 눈물을 닦아내는 사이, 한 사람의 아들의 앞에 다가왔다.

“아버지의 죽음이 그토록 슬프다면, 자네는 왜 아버지의 자살을 막지 않고 도왔는가?”

“아버지의 평생이 그러했던 것을 내 어찌 만류하겠소?”

아들은 고개를 들어 앞에 나타난 사람을 보았다.

의제 원일경이었다.

아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당신이 어찌 살아 있소?”

“내가 살아 있어야, 자네 아버지의 상처도 치료할 게 아닌가?”

원일경이 뒤를 보았다.

그곳에서, 아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의 가슴에는 굉천환이 제거된 작은 상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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