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악마가 된 사람 이야기
사도명이 멈추어서 은교교를 보자, 은교교는 확신을 갖고 다시 한번 말했다.
“그건 악마가 된 사람의 이야기가 틀림없어요.”
“사실은 영원에 대한 이야기야. 영원이 사람을, 어쩌면 신조차 악마로 만든다는 이야기.”
사도명은 주변을 보았다.
“진시황은 결국 불사를 얻지 못했지. 만약 영원을 살았으면, 그는 어떤 존재가 됐을까?”
“영원을 살지도 못했으면서, 그는 조금씩 악마가 되고 있었죠. 아방궁. 분서갱유.”
“하긴!”
사도명은 진시황이 저지른, 수 많은 악행을 알고 있었다.
분서갱유에 의해 수많은 학자들이 죽었, 역사는 단절되었다.
“더 오래 살았다면, 세상은 진짜 살아있는 악마를 만났겠죠.”
“여기서부터야.”
“예?”
사도명은 은교교를 돌아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폴짝 뛰더니 종종걸음치고, 보폭을 넓게 걷기 시작했다.
은교교는 찡그리며 그를 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설레설레 고개를 젓다가, 결국 사도명의 동작을 흉내 내어 걸었다.
“이번에도 장난이면 정말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생각해보면 죽음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걸지도 몰라.”
사도명은 심각했다.
“사람은 사라지기에 진지할 수 있지. 심지어 어떤 죽음은 세상 사람들에게 축복이기도 하고.”
“…다행이네요. 이번은 장난이 아니어서.”
“진시황릉이 왜 영세탑이라 불렸을까?”
“시황이 불사의 힘을 얻어 영원히 살고 싶어 했으니까.”
“신이 들어가서 악마가 되어 나온다는 전설을 가진 영세탑! 이란 말을 하는 거야.”
“신강성의 전설 말인가요?”
은교교는 사도명이 마침내 통로의 끝에 도착한 것을 보았다.
그곳에 하나의 커다란 관이 보였다.
수없이 많은 병마용에 둘러싸인, 화려하기 그지없는 관이었다.
“악마가 된 신이란, 바로 시황제를 말하는 거였나요?”
“아마도!”
은교교도 관 앞에 도착했다.
사도명은 시황제의 관을 보고, 뒤이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지.”
좌우에 각각 하나의 대(臺)가 보였다.
모두 돌로 된 좌대였는데, 각각 금색과 은색이 창연했다.
“진 시대의 사람이었어. 그들은 진시황이 이미 악마가 되었다 생각하고, 그를 막으려고 했지. 세상을 위해서.”
사도명은 소림사 지하에서 떠나기 전, 제갈평이 들려준 이야기를 은교교에게 짧게 말했다.
“금륜과 은편. 두 사람은 부부이면서 모두 고금구천강에 속하는 절대의 고수였어.”
“아! 처음 들어요.”
“그들은 시황이 진짜 악마가 되면 자신들이 막겠노라며, 스스로 진시황릉에 들어와서 죽었어.”
두 개의 좌대는 금륜과 은편이 각각 앉아 있던 곳이었다.
돌에 불과한 좌대가 여전히 찬란한 금빛과 은빛을 발하는 건, 살아생전 그들의 내공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증거였다.
“그럼 그들의 시체는 어디 있죠? 돌이 여전히 빛난다면, 시신도 남아 있어야 하잖아요.”
“제갈평 가주는 이 전설을 알고 있고, 또한 믿었어. 분명히 방여립도 알고 있었겠지?”
은교교는 상황을 깨달았다.
장차 천하에 닥칠 재액을 막고자 자신들의 힘을 후세에 남긴 영웅, 고금구천강.
그들의 힘을 되살려, 오히려 천하를 무너뜨리는 계획!
그것이야말로 방여립이 기획한, 최악의 재액이었다.
“방여립은 금륜과 은편의 시신을 찾으려 했을 테고, 우린 그걸 확인하러 온 거군요.”
사도명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확인했지.”
두 개의 좌대는, 여전히 빛나면서도 비어 있었다.
본래 그곳 위에 앉아 있었던 두 구의 시신은, 좌대보다 더욱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은교교가 파르르 떨었다.
“금륜과 은편은 살아났겠군요. 방여립에 의해서! 그리고 그들이 지키려던 세상을, 이제부터 파괴하겠네요.”
“그럴 수도.”
사도명은 앞으로 걸었다.
그리고 내공을 뻗어, 닫혀 있는 화려한 관의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시신이 있었다.
화려했을 보물과 금관은 여전했지만, 이미 부패하고 뼈만 남아 있는 처참한 시체였다.
“재밌고도 슬프지 않아? 영원히 살고자 했던 사람은 결국 죽었어. 하지만 영원히 사는 걸 막으려 했던 사람은, 자의가 아님에도 살아나게 되다니.”
“난 두려워요.”
“하긴, 금륜과 은편이 살아났다면 막을 사람이 없긴 하지.”
“힘으로 막는 건 당신이 가능하잖아요. 내가 두려워하는 건, 세상이에요.”
“세상? 아! 무슨 얘긴지 알겠어. 세상 사람들의 절망. 고금구천강이 악마로 변한 것에 대한 실망을 말하는 거지?”
“이건 꼭 그 전설 같군요. 악마가 된 신!”
“금륜과 은편은 사람들을 해치고 싶어 하지 않아. 즐기지도 않고. 그 점이 다르지.”
“그분들 말고요.”
은교교가 고개를 흔들었다.
사도명은 은교교를 보았다.
“방여립! 그는 세상을 구한다는 명존을 받드는 명교의 교주예요. 하지만 이미 악마가 되어 버렸죠. 우린 악마와 싸워 이길 힘을 갖출 순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악마가 전하는 마음은! 그 절망을 막을 방법이 과연 있을까요?”
- 없을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의 목소리가 통로를 따라 들려왔다.
빛이 사라졌다.
진시황릉 지하 통로는 분명 빛이 없어야 마땅한 장소였지만, 어딘가에서 스며 나오는 희미한 빛으로 밝혀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빛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은교교가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소리쳤다.
“이게 무슨! 거기 누구죠?”
“인간은 구제받을 수 있을까? 세상은 구함을 받은 자격이 있을까? 흥! 그럴 리 없지 않느냐?”
어둠 속에서 목소리의 반응이 되돌아왔다.
사도명은 황급히 은교교의 앞을 막고, 내공을 극한까지 올렸다.
미증유의, 사도명으로서도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거력이 통로를 따라 밀려왔다.
사도명의 일의생멸이 그 힘에 맞부딪쳤다.
번쩌-억!
힘의 충돌로 일어난 빛이, 어두워졌던 통로를 다시 밝혔다.
**
백마사.
낙양 경내에 위치한 백마사는 불교가 전해지고 세워진 최초의 사찰이었다.
그곳으로 지금, 천하 곳곳에서 다친 환자들이 계속 밀려왔다.
성화산인들의 자폭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
화운악은 신 무림맹이 노출될 위험을 불사하면서까지, 부상자들을 받겠노라 선언한 상태였다.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의제의 건의 때문이었다.
이송되어 오는 부상자들의 상처는 대부분 깊고 컸다.
의제 원일경은 의술을 이용해, 부상자들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치료했다.
하지만 부상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부분을 야율라가 보완했다.
그녀는 황천법문 특유의 환각술을 활용해, 부상자이 고통을 잊게 만들어주고 있있었다.
“모두 세 갈래입니다.”
야율라가 갑자기 말했다.
의제가 자신을 보자, 야율라는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아! 불사, 혹은 영생을 추구했던 큰 흐름 말이에요.”
기찰령 산하 무사를 치료하던 원일경이 빙그레 웃었다.
“의가(醫家)도 나름의 방법으로 영생을 추구하오. 병이 생기면 병을 고치고, 다친 곳이 생기면 치료하고.”
“그렇군요. 아무튼 영생 추구의 시작은 역시 진의 시황으로 봐야 하겠죠? 그는 서복을 땅끝까지 보내 불사의 방법을 찾았어요.”
“하지만 실패하고, 그 역시 죽고 말았잖소.”
“시황제가 실패하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칸을 되살리기 위해 다시 한번 비슷한 시도가 시작됐어요. 불사라기보다는 부활을 연구한 거죠.”
야율라가 방긋 웃었다.
“바로 우리, 황천법문이요.”
“황천법문의 연구가 많은 성공을 거뒀음을 아오. 조화무제의 회생도 그 덕분이라 들었소.”
“하지만 의제께서도 한 가지는 모르실 겁니다. 황천법문의 업적이 시황제의 추구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요.”
“그런 이면이 있었소?”
“칸의 사후,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죽음으로부터 살아난 사람이라 불렀고, 그것이 시황제의 불사에 대한 연구로부터 비롯되었다 했어요.”
부상자를 치료하던 의제의 손이 처음으로 멈췄다.
의제는 야율라를 보며 물었다.
“불사의 술이 실패한 것이 아니었단 말이오?”
“저도 몰라요. 그저 한 사람이 찾아왔고, 그로 인해 황천법문이 만들어진 것만 알죠.”
“그 사람이 누구요?”
“제갈 가주가 생사객이라고 불렀던 사람! 아마도 그가 그 사람일 거라 생각해요.”
“생사객? 황천법문은 수백 년 전 만들어졌는데, 그럼 그가 수백 년간 살아 있단 말이오?”
“죽음으로부터 살아났다고 말했잖아요. 계속 죽지 않고 사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죠.”
야율라가 시선을 백마사의 정문쪽으로 옮겼다.
“심지어 그의 말을 믿는다면, 그는 진 시대부터 살았어요.”
의제 원일경도 야율라의 시선을 좇아 정문을 보았다.
두 마리의 백마상.
그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평범한 옷을 걸친, 평범한 외모의 노인이었다.
노인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걸어왔다.
야율라와 원일경이 그를 주목한 이유는, 노인의 뒤쪽 먼 곳에서 한 사람이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달려오는 사람은 기찰령 부령주인 엽경이었다.
엽경은 노인과 달리 매우 절박한 표정이었다.
무엇인가를 계속 외쳤는데, 이상하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원일경이 미간을 찡그렸다.
“엽경이 고함을 지르는군. 그런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 같소?”
“누군가 진기를 이용해 소리 전달을 막고 있어요. 저 사람이군요. 두 사람 사이의 사람.”
노인과 엽경의 사이에, 노인처럼 매우 평범한 옷과 외모의 중년인이 있었다.
그는 일그러진 입매에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평범한 옷. 매무새와 바느질이 같아요. 같은 사람이 만든 옷이 틀림 없네요. 앞의 노인이 아버지고, 뒤의 중년인은 아들입니다.”
야율라가 빠르게 분석했다.
의제의 말도 빨랐다.
“아버지의 표정은 밝고, 아들의 표정은 참담하오. 아버지는 매우 중요한 사명을 다하게 되었기에 밝고, 아들의 그것이 비극이기에 참담해 함이 틀림없소.”
내공으로 소리를 막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평범하지 않은 내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은 사연이 숨겨져 있다는 의미다.
야율라는 즉시 몸을 날렸다.
“피하세요, 의제!”
걸어오는 노인의 가슴 부분이 희미한 빛을 발했다.
방여립은 천하의 성화산인들에게 최후의 명을 내렸다.
그건 스스로 죽음으로써 타인을 죽이는 명령이었다.
회천객들은 전력으로 성화산인들을 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화산인의 숫자에 비해 회천객은 너무 적었다.
회천객이 구하지 못한 성화산인은 스스로 죽이며, 수많은 사람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혔다.
부상을 입은 사람을, 의제 원일경이 전력으로 구하고 있었다.
현재 상황에서, 방여립에게 가장 큰 적은 원일경일 것이다.
야율라가 걸어오는 노인의 앞을 막았다.
“거기 멈춰!”
기찰 부령주 엽경은 그제야 겨우 노인의 뒤까지 달려왔다.
“피하십시오, 의제! 성화산인이 의제를 없애고자 합니다.”
노인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늦었다 생각 않소?”
그는 엽경에게 말했지만, 시선은 엽경의 뒤쪽에 있는 자신의 아들을 향했다.
노인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강해졌다.
아들의 얼굴은 참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죽을 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도울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평생 성화산인의 임무를 자신의 사명으로 살았다.
그리고 이제 그 사명을 다하면서 기뻐하고 있었다.
죽음이 기쁨인 사람도 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아버지라면, 아들은 그의 죽음을 축하해야 할까, 아니면 막아야 할까?
어떤 선택을 하든 아들의 마음은 참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버지!”
아들은 울음보다 아픈 탄식을 길게 뱉었다.
노인의 가슴이 뿜어내는 굉천환의 빛은 더욱 강해졌다.
야율라의 탄식도 뒤를 이었다.
“치잇. 이미 늦었나?”
꽈-아아앙!
폭발이 일어났다.
거대한 폭발은 주변 모든 것을 휘감았다.
야율라를 휘감고, 의제를 휘감았으며, 울고 있는 아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