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33화 (133/168)

133화. 금륜과 은편

사람들은 긴장했다.

제갈평이 언급하는 이유가 천하정세의 핵심을 짚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설명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결국 모든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니까요.”

제갈평은 오른손 손가락 다섯 개를 들어 보였다.

“모아진 자료의 분석만으로 십자의 고수들을 분류했습니다. 다섯의 은밀한 움직임이 있기에 오은이라 이름 붙였죠.”

화운악이 물었다.

“그들이 여와방의 다섯 여인이라는 건 조금 전 말씀하셨습니다. 육객은 누구인가요?”

“여섯 명의 사람. 분명 매우 강하고 중요하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있어, 그들을 육객이라 분류했습니다. 우선 구패객.”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제갈평은 연자강을 보았다.

“연 대협께서 이제는 구패객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연자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하지만 진짜 신분을 말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군요. 그냥 진심으로 세상을 위했던,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정도만 말합시다.”

“다음으로 비객이 있습니다. 그의 정체는 이제 밝혀졌지요. 황실에서 보낸 혼돈마인들을 이끌고 나타났던 마합지.”

제갈평은 천사들 중, 소화를 보며 웃었다.

“그는 황실 무공 중 파천봉황을 사용합니다. 물론 천사들만큼 강하진 못합니다만.”

소화가 미간을 찡그렸다.

“왜 나를 보고 웃는 거지, 제갈평? 마합지와 내가 무슨 관계라도 있는 건가?”

소화는 본래의 나이가 많지만, 소녀의 외모를 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갈평을 향한 소화의 하대에 미간을 찡그렸다.

정작 제갈평은 개의치 않았다.

“그 역시 소화천사와 마찬가지로 서역 출신입니다. 그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하지요. 다음은 모두가 아시는 회천객입니다.”

회천객은 개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십자천하록을 쓰는 당시, 제갈평으로서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하나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석단궁 교주님이 완전히 회천하신 지금도, 회천객들은 강호 어딘가에서 성화산인들의 죽음을 막으며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누구요?”

“생사객! 말 그대로 삶과 죽음을 다루는 사람이지만 진정한 정체는 모릅니다. 오래전부터 강호에 존재했고, 그 출신 문파가 황천법문임만을 압니다.”

모두의 시선이 황천법문의 문주인 야율라에게로 향했다.

화운악은 직접 물었다.

“야율 문주는 생사객의 정체를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저도 몰라요.”

야율라의 답은 간단했다.

“하지만, 생사객의 출신 문파가 알려진 것에는 이유가….”

“황천법문이 줄곧 추구해왔던 건 하나였어요. 생사의 경계를 넘어선 이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

야율라는 무엇인가를 회상하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그런 의미에서 짐작이 가는 사람은 있어요. 아주 오래 전, 우리 법문이 생겼던 초기, 단 한 명이 성공 직전까지 갔다더군요.”

“성공 직전?”

“죽음에서 되돌아오기.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석단궁과 방여립이 보여주고 있잖아요?”

“같은 얘기가 아닙니다. 검성의 경우는 진짜 되살아난 것이 아니라, 그저 혼은 사라지고 백만 남아 있는 몸을 이용해….”

“그 혼까지 되돌리는 일에 성공했다는 단 한 명의 사람. 그가 바로 생사객일지도요.”

자중이 조용해졌다.

모두들 한 가지의 가능성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방여립은 죽은 고금구천강의 몸을 되살릴 수 있는 대법을 이미 만들어냈다.

거기에 황천법문이 더해지면?

황천법문이 혼까지 돌아오게 만들면, 그야말로 죽은 이의 완전한 부활이 이뤄지는 셈이 아닌가?

“그,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실로 하늘의 이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 아니요?”

화운악의 말에 야율라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러니 단 한 명만 성공했다잖아요. 제가 태어나기도 까마득히 전의, 황천법문이 처음 생기고 나서의 일이니 더 이상 자세한 건 묻지 마세요. 몰라요.”

“현실은 참으로 기괴하군.”

가만히 있다가, 한 소리를 나직히 말한 사람은 무화였다.

소화가 무화를 보았다.

“멀리 볼 것 없어. 우리들 천사의 존재도 사실은 기괴하기 그지없는 거니까.”

“네 말이 옳았다, 소화. 무림은 남겨놓아야 해. 그래야 이렇게 재밌는 일을 더 많이 보고 경험할 것이 아니냐?”

무화가 제갈평을 보았다.

“계속하자, 제갈 가주. 나는 점점 더 흥미가 동한다. 남은 두 명의 육객은 대체 누구인가?”

“내가 여의객이라고 분류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의객. 하하하 이 또한 실로 흥미로운 호칭이군.”

“그는 놀랍게도 생각만으로 사물을 만들어내는 재주를 지녔습니다. 몇몇 강호인들에 의해 목격담이 전해지나, 하도 황당한 일이라 정식 기록은 남지 않았습니다.”

제갈평은 화운악에게로 시선을 향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난 믿었죠. 죽음에서 돌아오는 일도 가능한데,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이 불가능해야 할 이유는 없잖습니까?”

화운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마지막, 제 육객은 누구입니까?”

“나는 어둠 속에서 움직이던, 정체를 알 수 없던 그를 무명객이라 불렀소. 그때는 나도, 천하의 누구도 그의 이름을 몰랐지.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그의 이름을 알게 됐군요.”

제갈평은 무명객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이제는 모두가 무명객의 이름을 안다.

화운악이 신음하듯 말했다.

“방여립!”

“나는 십자천하록에 적었었소. 어쩌면 무명객이야말로 천하제일인일지도 모른다고. 그가 나타나면, 일황인 무황 설청산이 나서도 상대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한 사람이 갑자기 소리쳤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잖소이까, 제갈 가주.”

권제 구양걸이었다.

“설청산 맹주의 사후, 일황의 자리는 바뀌었잖소. 지금의 일황인 조화무제라면 당연히 방여립을 상대할 수 있을 거외다.”

모두들 공감했다.

그리고 그 공감 속에서, 몇몇 사람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조화무제께서 보이시지 않는군.”

“은령선자도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신 겐가? 아니라면 전대의 맹주시니 자리가 불편하여 피하시기라도 한 건가?”

당황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연자강이나 서문용맹처럼, 사도명으로부터 미리 전갈을 받은 사람은 당황하지 않았다.

“영세탑이란 이름을 아시오?”

제갈평이 외쳤다.

“그 너머에 영원의 세상에 펼쳐지기에, 한 번 그곳에 들어간 사람은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전설을 가진 탑.”

모두가 제갈평을 보았다.

화운악이 물었다.

“전설은 들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영원이 산다뇨? 누구도 영세탑이 실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갈 가주님!”

“영세탑은 있습니다, 맹주. 심지어 나는 그 위치를 알고 있고, 그래서 조화무제께 전했습니다.”

“그, 그렇다면…?”

“조화무제는 지금 은령선자와 함께 영세탑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무제는….”

콰-앙!

굳게 닫혀 있던 지하 밀실의 문이 폭음과 함께 열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한 사람이 열린 문 너머에 나타났다.

종심기가 그를 알아보았다.

“엽경 부령주.”

엽경은 종심기가 거느리는 기찰령의 부령주였다.

종심기가 소리쳤다.

“모여 계신 분들이 보이지 않느냐? 어이해 무례를 범하느냐?”

“의, 의제 원일경님이 여기에 계십니까?”

“부령주-!”

“천하 곳곳에서 대형 폭발 사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화산인들이 스스로 죽으며, 무수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엽경은 숫제 눈물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백마사에서도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기찰령 산하 이십여 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종심기는 엽경이 다짜고짜 의제 원일경을 찾았던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왼쪽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원일경이 일어섰다.

“나는 여기 있네. 안내하시게, 엽 부령주. 최선을 다해서 치료해 드리겠네.”

**

사도명은 은교교와 함께 거대한 구릉 앞에 있었다.

“여기가 영세탑인가요?”

“제갈 가주께서 알려준 위치에 의하면 그렇다는군.”

“하지만 전혀 탑의 모습이 아니잖아요.”

사도명은 빙그레 웃었다.

“탁천산도 때론 탁천탑이라 불렸지만, 전혀 탑의 모습이 아니었지. 커다란 바위산이었을 뿐.”

탁천산은 되살아난 검성 설운경에 의해 반으로 쪼개졌다.

하지만 영세탑은 구릉이었고, 바위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온통 흙으로 되어 있었다.

“선우척을 기억해?”

“보광의 친구 말인가요? 보광이 성화산인이어서 당신이 죽을 뻔했던 건 기억이 나요.”

사도명은 쓰게 웃었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어.”

“선우척은 그렇다 쳐도, 보광은! 흥, 세상에는 남을 죽이는 좋은 사람도 존재하나요?”

“선우척을 땅을 파는 재주를 지녔지. 어떤 흙을 파면 쉽게 파지고, 어떤 흙이 한 번 파냈다가 다시 메꾼 것인지를 구분하는 재주를 갖고 있었어.”

사도명은 조심스레 걸었다.

때론 보폭을 넓게 걷고, 때론 종종걸음 쳤으며, 때로는 일 장 이상의 거리를 단숨에 뛰었다.

은교교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사도명이 밟은 곳만을 조심스레 밟으며 따라서 걸었다.

사도명이 돌아보고 웃었다.

“따라 할 필요는 없는데.”

“떠나기 전, 제갈평 가주님이 진법 운운하면서 파해법을 알려줬잖아요. 지금 그 파해법을 따라 걷고 있는 것 아녜요?”

“그냥 흙길에 진법은 무슨! 진법은 저 아래로 내려가고 나서.”

“이런!”

사도명이 오른손에 내공을 실어 위로 들었다.

“하하. 억울해하지는 마. 연습은 아무리 많아도 헛된 건 아니잖아. 혹시 모르지? 지금의 연습이 저 아래쪽에서 우리의 목숨을 구해줄지. 하하.”

사도명의 손이 땅을 팠다.

단단한 수강으로 무장된 손은, 흙과 돌을 마치 두부를 파내듯 손쉽게 뚫어갔다.

“참 다행이에요.”

“다행? 뭐가?”

“당신은 도굴꾼이 될 재능을 타고 있네요.”

“엥?”

은교교는 순식간에 구멍이 뚫린 구릉을 보며 방긋 웃었다.

“그럼에도 나처럼 좋은 여자를 만나서 조화무제가 되었으니, 정말로 다행이지 뭐예요?”

**

지하는 어두웠다.

본래 뚫린 구멍이 없었고, 들어온 입구는 다시 메꿨으니, 빛이 들어올 리도 없었다.

그럼에도 어둡지 않았다.

어디선가 스며 나오는 희미한 빛이, 본래 어두워야 마땅한 지하 공간 곳곳을 보게 해주었다.

“여긴, 무덤이군요.”

은교교가 지하에 마련된 통로와 그 통로의 생김새를 한참 살핀 후에 말했다.

“단순한 무덤이 아니지. 황제의 릉이야.”

“영세탑이 황릉이라고요?”

“또한 보통 황제도 아니지. 황제란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한, 최초의 황제 시황의 무덤이지.”

은교교는 비로소 깨달았다.

진시황은 불사의 꿈을 꾸며, 불로초를 찾아 신하를 천하 모든 곳에 보냈다.

그의 무덤이라면 영세탑이란 이름이 붙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시황이 묻혀 있군요. 그는 죽어서도 영세의 꿈을 꾸는군요.”

“신이 돼버린 인간에 대한, 신강성의 전설을 아나?”

“몰라요. 그런 게 있나요?”

“어떤 인간이 온갖 방법을 동원한 끝에 신이 되지. 영원히 살게 된 거야.”

사도명은 무덤 밖에서 했던 것처럼 이상하게 걸었다.

종종걸음 치다가, 성큼성큼 걷고, 뛰기도 했다.

“영원한 시간을 얻자 그는 심심해졌지. 할 만한 일이 없었어. 뭘 해도 시시했거든.”

은교교는 사도명의 걸음을 흉내 내다가, 그가 웃는 것을 보았다.

“뭐죠 지금?”

“하하하. 당신을 놀리는 건 시시하지 않아. 언제나 재밌어.”

“캭! 또 장난이었군요.”

“기관과 진법이 펼쳐진 곳에 닿으면 알려 줄게. 그때는 반드시 날 따라서 해야 해.”

“몰라요. 이젠 절대로 따라 하지 않겠어요. 기관에 닿으면 콱 다쳐버릴 겁니다.”

“끄응. 미안해. 아무튼 신이 된 남자는 심심해졌어. 그래서 아주 재밌는 놀이를 고안하지.”

“…어떤 놀이인지 전혀 알고 싶지 않네요.”

“사람을 괴롭히기. 심지어 사람을 죽이기.”

“아!”

“자신과 달리 불사의 능력이 없는 사람을 괴롭히고 죽이기 시작하자, 그는 더 이상 심심하지 않았어. 고통을 받는 사람을 보며 자주 웃음도 터뜨렸지.”

은교교가 미간을 찡그렸다.

“그럼 더 이상 신이 아니잖아요. 신이 된 사람이 아니라, 악마가 된 사람의 얘기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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