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27화 (127/168)

127화. 두 개의 명교

“이웃을 평안케 하여 세상을 밝게 만든다. 이것이 명존의 가르침이요, 명교가 추구하는 바다.”

석단궁은 모두를 둘러보면서 낮지만 또렷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그 의지를 이어받아 이 나라, 명을 열었다. 이제 물으마, 천사들이여. 명이 열리면 그 후에는 어찌 되겠느냐?”

소화가 입술을 잘근잘근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뭘 묻는 건가요? 묻지 말고 그냥 말하세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원하지.”

“그냥 말하라니까-!”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의지다. 의지를 잇는 것은 힘이지. 세상이 바뀌어도 그 힘은 여전히 남는다. 새로운 폭력이 되는 거다.”

석단궁은 바닥에 쓰러진, 수많은 시체를 둘러보았다.

“폭력은 사람은 해친다.”

“헛소리 말아요!”

“방여립이 만든 새로운 명교가 지금까지 세상에 어떤 일을 해오고 있는지, 잘 알지 않느냐?”

“당신 때문이잖아! 당신이 명교를 해치지 않았더라면, 모든 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야-.”

“방여립은 야망이 컸다.”

석단궁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어느 날, 당시 부교주였던 그가 나를 찾아와 묻더구나. 이 나라가 왜 주 씨의 것이냐? 뜻을 펴기 위해서는, 명교가 세상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

갑자기 흑화가 소리쳤다.

“그딴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 죽엇, 배신자!”

그의 몸이 땅을 떠났다.

석단궁을 노리며 날아가는 흑화의 몸은, 조금 전 사도명을 공격할 때보다도 오히려 빨랐다.

“팔대천사! 본교의 가장 강한 전사들 사이에 자신의 수하를 네 명이나 집어넣어 놓았던 건, 그 야망의 실현을 위해서였다.”

석단궁이 오른손으로 허공에 커다란 원을 그렸다.

후우-우웅!

당기는 힘과 밀치는 힘이 동시에 원 안에서 일어나며, 원의 내부가 변했다.

검디검은 우주의 공간이, 그 원을 통해서 지상과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그, 그게 무슨…?”

흑화는 자신이 쏟아낸 흑공의 내공이 석단궁의 원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가, 이내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저항하면 아니 된다, 네 자신의 힘이니, 거부하면 크게 다치지만 받아들이면 편안하리라.”

흑화는 왼손을 다시 내밀려다가, 석단궁의 말을 듣고 즉시 힘을 풀어버렸다.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무공을 전수할 때도, 명교의 경전을 읽으며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르칠 때 석단궁의 목소리는 항상 지금처럼 차분했다.

그 목소리를 따르다 보면, 언제나 숨어 있던 길이 보였다.

그렇게 나타난 길을 열고서, 지금까지 발전해왔다.

흑화는 돌아오는 자신의 힘을 다시 받아들이며 뒤로 물러났다.

처음 출발했던 바닥에 다시 내려섰다.

석단궁은 갑자기 크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검은 색 피가 입을 막은 그의 손가락 사이로 튀어 나왔다.

석단궁은 또 다시 만류귀원의 힘을 전개해 흑화를 물리쳤으나, 결국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충격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교주!”

소화가 소리칠 때, 흑화는 가까스로 바닥에 몸을 멈췄다.

그는 석단궁을 향해 큰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 천사들 중 절반을 방여립 교주가 심어 놓았다니요?”

- 아마 이런 의미가 아닐까?

스컥!

허리가 시큰했다.

흑화는 허리에서 출발해 온몸으로 퍼지는 시큰한 통증을 느끼며 옆을 보았다.

능소화를 좋아하여, 자신의 별호를 그렇게 지은 능화천사가 검을 든 채 울고 있었다.

능화천사의 검은 검신이 주황색이라 아름다웠다.

그 주황색의 검신을 타고 흑화의 피가 흘렀다.

흑화의 피는 피부나 얼굴과 달리 검지 않고 붉었다.

“…왜?”

현실이 믿기지 않아 혈화는 화를 내지 않고 그저 물었다.

“무슨 짓이야?”

오히려 소화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와 능화의 가슴에 일장을 퍼부었다.

쩌-엉!

소화의 장력을 막은 것은 능화가 아니라 무화였다.

무화는 천사들 중 나이가 가장 많았고, 소화와 더불어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소화는 다섯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 겨우 몸을 바로 세웠다.

무화는 단지 한 걸음만을 물러났다.

소화가 무화보다 약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흑화는 소화의 허리도 자신의 허리처럼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꼬리가 붉은 은빛의 침!

비화가 사용하는 탈명비침이 소화의 허리에 깊이 박혀 있었다.

비침을 던진 자세 그대로 오른손을 앞으로 뻗고 있는 비화의 옆에서, 입과 코를 두건으로 가린 몽화가 껄껄 웃었다.

“하하. 내가 몽연을 피워 시선을 가리고, 비화가 비침을 던지고! 그러고도 다섯 걸음과 한 걸음인가, 무화? 우리들 중의 최고는 역시 소화인 게 맞네. 하하하.”

능화가 흑화의 허리에서 검을 뽑았다.

솟구치는 피를 보며, 능화는 자신의 검을 닦았다.

“너희들이 대체 왜 이런 짓을… 으으!”

흑화는 허리의 상처를 부여잡고 네 명을 둘러보았다.

석단궁이 겨우 기침을 멈추고 말했다.

“네 명인 것은 알았다. 그러나 어떤 네 명인지는 알지 못했다.”

무화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석단궁을 보았다.

“이제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지요, 교주?”

“교주라? 나를 그리 부를 양심이 네게 있느냐, 무화?”

“최소한 황제에게 명교를 팔아먹은 당신보단, 충분히 양심이 있지 않을까요?”

“나는 팔지 않았다.”

석단궁이 소리쳤다.

“내가 가만히 있었다면, 명교는 나라를 다시 한번 전란에 빠뜨렸을 것이다. 백성들은 또다시 죽고 도탄에 빠졌을 것이다.”

사도명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세상을 위해 스스로 죽는 길을 택했단 건가? 쉽지 않다.”

은교교가 다가와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마찬가지로 세상을 위해 스스로 고통과 죽음을 택한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무림맹의 역대 맹주들이 그랬고, 설청산이 그랬었다.

누구보다도 사도명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인 것이다.

“그러게요. 쉽지 않죠. 정말로 쉽지 않아요.”

효경은 사도명의 옆에서 입술만 계속 깨물고 있었다.

석단궁이 그녀를 보았다.

효경은 옆으로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낡은 청강검 하나를 당겨서 손에 쥐었다.

검을 든 채로, 효경은 석단궁을 향해 걸어갔다.

“정말로 그 방법뿐이었나요? 죽지 않고 살 방법은 없었나요?”

“명교가 죽지 않으면, 세상이 죽어야 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그럼 당신은 왜 완전히 죽지 않고, 굳이 연명하고 있나요?”

“성화산인은 믿음이 깊은 교도들이다.”

석단궁이 길게 한숨을 쉬자, 입과 코에서 다시 피가 흘렀다.

“방여립은 그들에게 죽음을 건넸다. 그들이 죽어야, 그의 야망이 이뤄진다.”

성화산인의 임무는 스스로 자폭하여 비밀을 지키고, 적을 제거하고, 세상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석단궁은 자신이 회천연합을 만들고, 회천객을 기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효경은 석단궁의 바로 앞에서 오른손으로 검을 들었다.

석단궁을 겨누지 않았다.

“모두 들었지? 방여립 교주가 야심을 품었고, 그 야심은 세상을 태울 수 있는 거였다. 이것이 내가 황실에서 알게 된 것.”

그녀는 몸을 돌려 석단궁을 지키는 자세로 무화를 보았다.

“당시 명교의 가장 큰 적은 명교였다. 석 교주님의 선택이 아니었으면, 우린 세상이 부르는 것처럼 진짜 마교가 됐을지 몰라.”

무화의 뒤에 능화와 비화, 몽화가 섰다.

네 명은 자신들의 선택을 명확하게 밝힌 것이다.

한편 소화는 효경의 옆에 섰다.

“진작 말해주면 좋았잖아.”

소화는 한 차례 냉소한 후, 허리의 비침을 뽑았다.

“복수하겠다 증오하고, 배신당했다 분노하고! 괜한 감정 낭비 하지 않았을 거잖아요, 교주!”

“고맙다. 고맙구나, 소화.”

석단궁은 힘없이 웃었다.

그리고 흑화를 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시선이 흑화를 향했다.

“젠장!”

흑화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오른손의 칠흑검을 뻗었다.

검은 공이 하나 날아가서 능화의 가슴을 노렸다.

능화가 검을 뻗어 흑공을 둘로 쪼갰다.

스-컥!

갈라진 검은 공이 한 차례 허공을 맴돈 후 다시 뭉쳤다가, 또다시 능화의 가슴을 노렸다.

“이 자식!”

능화는 허리를 틀며 옆으로 몸을 피했다.

본래 가슴을 노렸던 흑공이 그의 허리를 스쳤고, 살점이 떨어져 나간 허리에서는 피가 튀었다.

“석 교주님이고 방여립 교주고, 난 누구든 상관없어. 그저 받은 걸 돌려주고 싶을 뿐.”

흑화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허리에 피를 흘리는 능화를 보더니, 그들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능화. 네놈에게 돌려줬으니 이제 세상에도 돌려줘야지. 난 지금은 이쪽 편이다.”

화난 능화가 흑화의 앞으로 가려는 걸, 무화가 막았다.

“흑화의 말이 맞잖아. 둘은 비겼고, 지금은 우리 쪽이다.”

무화는 자신의 주변에 선 네 명과, 석단궁의 앞을 막으며 선 두 명을 번갈아 본 후 피식 웃었다.

“다섯이고 둘! 이곳에 우리와 겨룰 절대 고수가 더 있나?”

비화가 오른손을 들었다.

그 손가락 사이에 잡혀있던 탈명비침 두 개가 갑자기 사라졌다.

사라졌다 싶은 탈명비침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신 무림맹 고수들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이까짓!”

앞에 서 있던 청성파 제자가 검을 휘둘러 비침을 막았다.

“방심하지 마라!”

청성파의 장문인 곽인후가 그 앞을 막으며 도로 도막을 펼쳤다.

기기-기기긱!

도강으로 만든 막은 강했지만, 비화가 던진 비침은 그 사이를 뚫고 어김없이 들어왔다.

그리고 청성파 제자의 이마 바로 앞에 와서야 멈추었다.

까-앙!

스스로 멈춘 것이 아니었다.

강력한 일도!

도가 아니라 손칼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쳐져, 탈명비도를 허공에서 멈춘 것이다.

땅에 깊이 박힌 비침.

사도명은 내려쳤던 손칼을 거두며 비화를 보았다.

“무림맹 삼대 맹주셨던 금강도객님은 청성파 출신이셨다. 비화라 불린다지? 싸워볼까?”

비화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 한 걸음 물러났다.

팔대 천사는 아무도 사도명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었다.

그는 분명히 강했다.

“아까의 싸움이 정당했음을 인정한다면….”

연자강이 혼자서 걸어와 소화의 옆에 섰다.

“혈화천사의 복수를 뒤로 미루는 조건으로, 일단은 너희 편에 서기로 하지.”

연자강은 혈화천사 율천을 이김으로써, 자신의 강함을 증명했다.

무화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편을 드는 천사는 흑화까지 포함하여 다섯 명.

상대는 현재 네 명이었다.

“한 명이 남는데, 우리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

화운악이 걸어와 연자강의 옆에 섰다.

혼자가 아니었다.

서문용맹와 은교교, 그리고 곽소혜가 함께였다.

곽소혜가 천사들 중 비화천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린 저자를 맡을게요, 무제. 혼전을 틈타 비침을 어지럽게 날리면 곤란하니까.”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침이 잡혀 있었다.

절대고수의 싸움에서 일반 고수는 아무리 많아도 의미가 없다.

토끼의 떼가 땅끝까지 덮는다 해도, 한 마리의 호랑이를 당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화운악과 함께 모인 사람들은 사나운 늑대였다.

여러 늑대가 힘을 합하면, 아무리 호랑이라 해도 곤란을 겪을 것이 분명했다.

무화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럴 줄 알고 모습을 드러낸 거요, 교주?”

그는 석단궁을 보며 소리쳤다.

“이길 자신이 생겨서? 죽지 않을 준비를, 모두 마쳐 놓았다고 생각해서?”

“그 반대란다. 나는 오히려 죽을 준비를 마친 거지.”

“흥. 가만히 있어도 죽게 될 텐데, 뭣 하러 굳이 죽을 준비까지 한단 말이오.”

“왜냐하면 나는 방여립을 잘 아니까. 그가 일을 준비할 때,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응?”

무화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양손으로 머리를 쥐었다.

“뭐, 뭐야? 내 머릿속에 왜 이런 기억이? 내가… 성화산인?”

몸을 떠는 건 그만이 아니었다.

신 무림맹 무사들 중, 무화와 마찬가지로 몸을 떠는 이가 많았다.

석단궁의 몸이 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회천객들의 금약을 해제한다. 신분이 알려져도 좋다. 모두들 전력을 다해, 성화산인들의 생명을 구하라.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명교의 신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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