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25화 (125/168)

125화. 흑화와 마합지

여섯 명의 천사 중, 사도명의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 대답을 얻는 방법은 모두 알고 있었다.

사도명의 옆에는 효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사들 중에서, 소화는 효경과 매우 친했다.

살아남은 천사들 중, 그들 둘 만이 여자였다.

“밀화, 설마 우리에 대해서 무제에게 알려준 거야?”

효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 한 명에 대해서 알려줬지. 특히 소화. 네가 천사들 중 가장 강해서 은연중 우두머리의 역할을 한다는 것도 말했다.”

“고맙네. 좋게 봐 줘서. 하지만 적에 대해 알려준다고, 본인이 강해지지는 않아.”

소화는 한숨을 쉬었다.

“그 외 무슨 짓을 한 거지?”

“조화무제를 내가 더 강하게 만들어줬다 생각하는 거야?”

“아니란 건가? 내가 들었던 조화무제의 소문은 저런 정도까지는 결코 아니었거든.”

“황제가 그를 택했어.”

“난 황제가 머리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무제에게 고금 구천강의 인연이 몇 개나 이어진 줄 알아?”

소화가 미간을 찡그렸다.

효경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시대가 그를 택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니, 소화?”

소화의 눈빛이, 닿으면 살이라도 벨 듯 차가워졌다.

“많이 변했구나.”

“변할 수밖에 없었어.”

여인의 몸으로 천사로 선택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효경은 소화와 더불어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었다.

“나는 교단 내부에 계속 머물던 너희와 달리, 줄곧 황제의 옆에서 같이 지내야 했거든.”

효경의 말에 소화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너를 바꾼 게 황제라고?”

“어쩌면! 혹은 황제를 둘러싼 사람들의 의지겠지? 자신의 선택이 악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그 참담함에 남몰래 우는 자들의 눈물.”

“그들은 죄를 지었어. 명교는 건국을 도왔건만, 나라가 안정되어야 한다며 명교를 없앴어.”

“그들도 희생자야. 죄를 지은 자들의 후예일 뿐.”

“올바른 일을 위해서 때로 어쩔 수 없는 희생이 필요해. 너도 잘 알잖아?”

“알아.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서 하는 말인데….”

효경은 소화, 그리고 다른 다섯 명 천사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들도 똑같이 생각하지 않았을까? 명교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야.”

아무도 대꾸하지 못했다.

천사들이 모두 입을 다무는 이유는 하나, 그들도 한 번 이상씩은 같은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은교교가 사도명의 옆으로 와서 섰다.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우리는 애초 되도록 해치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었어요.”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수 없이 많은 시체들.

배화교도의 시신이 많았고 신 무림맹의 시신도 또한 많았다.

은교교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왜 이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나요? 아무도 죽지 않아도 좋았는데, 도대체 왜?”

그때, 땅을 흔드는 울림이 먼 곳에서 들려왔다.

두두두두두두두-!

배화교도들이 처음 몰려왔을 때처럼, 흙먼지가 일어났다.

멀리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효경은 그들을 알고 있었다.

“나라를 위해 스스로 혼을 바친 자들. 혹은 속아서 그 자신의 혼이 제거된 자들.”

그녀는 혼돈마인과 아수라혈마인을 이끌고 달려오는, 가장 앞의 마합지를 보며 말했다.

“황제가 준비한 비장의 한 수가 저 사람이야. 환관이면서도,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장수!”

멀리서도 확연하게 보였다.

마인군단을 이끄는 마합지의 몸 뒤로 반투명의 거대한 날개가 환영처럼 겹치고 있었다.

황실 비전의 파천봉황신공을 극한까지 익힌 것이 분명했다.

“우리 팔대 천사는….”

소화가 입 끝만 위로 들어 올리면서 웃었다.

“이제 신무림맹과 저 마인들의 군단, 그리고 조화무제까지 꺾어야 저 산속의 그분을 만날 수 있다는 거지?”

“불가능해. 알잖아? 천사는 이제 팔이 아니라 육이니까.”

효경의 말에, 천사들 중 얼굴 전체가 까만 청년이 앞으로 나서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난 모르겠다, 밀화!”

그는 흑화 천사라 불리며, 가장 마지막에 팔대 천사의 대열에 합류했던 막내였다.

흑화는 죽은 율천의 옆에 떨어져 있는 칠흑검을 집었다.

“처음부터 칠흑검은 혈화가 아니라 내게 더 어울렸다는 거, 너희도 모두 알고 있지?”

검을 집는 흑화의 손은 얼굴보다 훨씬 검었다.

흑화의 몸 전체가 검은 이유는 그가 익힌 무공 때문이었다.

스스로 흑공(黑功)이란 단순한 이름을 붙인 그 무공은 모든 것이 검은 색 일색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

마합지가 이끄는 마인군단이 마침내 도착하여, 사방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신지를 잃고, 단지 주인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일념만 지닌 마인들!

그들에게 에워싸이는 내내, 천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합지가 말은 탄 채로 포위망의 가운데로 나왔다.

그는 사도명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천사들과 그들의 앞에 서 있는 소화를 보았다.

“황상의 명을 전한다. 죄인들은 즉시 각자의 내공을 폐하고 오라를 받으라. 황명에 불복할 시, 모두 죽임당할 것이다.”

[세상은 참 어려워.]

사도명의 전음이 은교교의 귓속에서 울렸다.

[누가 적인지, 누가 선인지, 악인지를 구분하기 어렵잖아.]

은교교는 가라앉은 눈빛의 천사들과 흉흉한 마기로 물든 마인군단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네요. 우리는 마기로 물든 군단을 도와 신심이 깊은 명교의 교도를 막아야 하는 거죠?]

[천사들을 제압한 후, 마합지가 이끄는 마인군단이 우리를 향해 지금 명교도들에게 한 말을 똑같이 외친다 해도 나는 전혀 놀라지 않을 거야.]

배신은 손쉬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마합지와 마인군단을 도와 명교와 싸워야 했다.

마합지가 다시 외쳤다.

“계속 답이 없을 시, 황명을 거역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모두 베겠다. 신 무림맹의 무인들도 황명에 따라, 우리가 배화교도들을 참살하는 것을 도우시오.”

천사가 마침내 움직였다.

조금 전 칠흑검을 집어 올렸던 흑화천사였다.

그는 말에 타고 있는 마합지의 앞으로 걸어가면서 웃었다.

“신지를 금제 당하고 마인이 된 저 사람들은 과연 즐거울까, 아니면 고통스러울까?”

마합지가 외쳤다.

“개인의 일은 작고 나라의 일은 크다. 큰일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함부로 평하지 말라.”

“희생? 그러네! 효경의 말이 옳은 면도 있어. 큰일을 위한 희생. 우리 명교의 절박함도 밖에서 보기엔 너와 같아 보이겠지?”

흑화가 칠흑검을 들었다.

검의 끝에서 새까만 기운이 먹구름처럼 일어났다.

뭉클뭉클.

마합지가 봉황의 날개 수십 개를 뿜어내며 소리쳤다.

“감히 복종하지 않고 저항을 해보겠다는… 헛!”

마합지가 놀란 이유는, 자신이 타고 있는 말이 갑자기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었다.

흑화가 뿜는 기운!

그 기운에 놀란 말이 갑자기 복종하듯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 사이, 흑화의 칠흑검에서 피어난 새까만 기운이 수백 개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곧장, 동쪽을 포위하고 있는 일단의 마인들을 향해서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쐐애-액!

“무슨 짓을… 헉!”

고함을 지르려던 마합지가 크게 놀랐다.

날아간 수백 개의 검은 공이 마인들과 마주치자, 닿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막지 못한 마인은 머리가 날아가고 몸이 사라졌다.

손을 들어 막으려 했던 마인들은 그 손에 구멍이 뚫리고, 뒤이어 머리가 날아갔다.

닿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면서, 검은 공은 그 자신도 소멸되었다.

“흑공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없애는 무공! 막을 방법은 없고 오로지 소멸되어 사라지는 길뿐인, 나만의 무공이다.”

흑화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워하는 빛이 가득했다.

칠흑검의 끝에서 다시 한번 새까만 먹구름이 일어났다.

“황명을 거스르는 자, 용서 없다. 죽인다.”

마합지가 큰소리로 외치면서 흑화의 옆을 덮쳤다.

수백 개의 봉황날개가, 마합지의 능력을 알려주었다.

마합지는 파천봉황신공 중의 봉황천익을 이미 극한까지 익히고 있는 상태였다.

“흥!”

흑화가 냉소하면서, 검을 쥐지 않는 왼손을 들었다.

왼손바닥, 장심에서 검은 색의 공이 뿜어 나왔다.

검은 공은 곧장 마합지의 가슴을 노렸다.

“어림없다.”

수백 개 봉황의 날개가 모두 안으로 모이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은 공을 쳤다.

퍼퍼퍼-퍼퍼퍼퍼퍼-!

날개가 소멸되면서, 흑화의 검은 공도 함께 소멸시켰다.

“말했잖아! 막을 방법은 함께 소멸하는 것뿐이라고. 결국….”

흑화가 빙그레 웃었다.

“나보나 내공이 약한 자는 결코 견뎌내지 못한다.”

팔대천사가 강한 이유는 아주 많았다.

그들은 뛰어난 기재들 중 골라졌고, 치열한 노력 끝에 높은 무공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내공!

팔대천사의 몸속에는, 천사를 기르기 위해 기꺼이 죽어간 명교 여러 고수들의 내공이 뭉쳐서 남아 있는 것이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

수백 개의 봉황천익을 소멸시키면서, 흑화가 내쏜 검은 공은 점점 그 크기가 작아졌다.

확실히 작아지고 있었으나 아주 조금씩 작아졌고, 완전히 소멸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검은 공은 봉황의 날개를 모두 없애고도 여력이 남아 마합지의 심장 바로 앞까지 날아갔다.

그리고 폭발했다.

퍼어-어!

마합지는 자신의 심장이 멀쩡함을 느끼곤, 식은땀 가득한 얼굴을 돌려 사도명을 보았다.

사도명의 오른손 검지가 황금색으로 휘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금강일양지. 불패지왕의 금강일양지!”

마합지는 환관이지만, 황제가 황실의 모든 힘을 다하여 길러낸 고수였다.

그는 황실 비고에 보관된 수많은 무공 관련 책자를 읽었다.

불패지왕은 대리국의 개국조인 단사평이며, 금강일양지는 그가 세상으로 흘러나간 북명신공을 상대하고자 만든 무공이었다.

“세상 모든 내공을 흡수해, 북명이 되고자 하는 야욕조차 꺾기 위해 만든 금강일양지라면….”

사도명이 흑화를 보며 말했다.

“당신의 검은 공 정도는 충분히 소멸시킬 수 있지. 안 그래?”

멀리서 효경이 긴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만둬라. 그에게는 이미 고금구천강 중 여섯 명의….”

“시끄럽다. 배신자야!”

흑화는 칠흑검에 주입했던 흑공을 자신의 몸으로 되돌렸다.

그의 주변 공간을 감싸며 먹구름이 크게 일어났다.

검은 기운은 한 차례 출렁이더니 뒤이어 넓고 짙게 또다시 확장되었다.

소화가 나직이 말했다.

“본원지기까지냐, 흑화?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고금구천강이고 뭐고 관심 없다. 우리들은, 우리 천사들은 명교도의 비원을 딛고 서 있다.”

흑화는 자신의 몸 전체를 흑공의 분신으로 만든 뒤, 땅을 박차고 사도명을 향해 날았다.

“나의 모든 것이다. 막아 보거라, 조화무제!”

사도명은 내심 한숨을 쉬며 날아오는 흑화를 보았다.

흑공을 막기 위해서는 똑같은 크기의 힘을 소모할 수밖에 없다.

흑화는 자신을 던져 사도명을 죽이거나, 사도명의 힘을 소모시키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소화를 비롯한 천사들 누구도 흑화를 막지 않았다.

그저 가라앉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냉정하다거나, 비겁하다고 판단하지 마라.]

사도명의 귀에 효경의 전음이 낮게 울렸다.

[승리는 자랑스럽고 패배는 수치스런 것이라 배웠다. 우리는 그렇게 키워졌다.]

팔대마문을 상대하기 위해 키워졌으니, 당연히 그 성정 또한 그에 걸맞게 냉정할 것이다.

사도명은 진심으로 천사들을 비겁하다 여기지 않았다.

흑화를 희생시킴으로써, 천사들은 사도명을 상대할 또 다른 방법을 궁리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불리한 사람은 오히려 사도명이었다.

사도명은 고금구천강의 진전 중, 여섯 가지를 얻었다.

그중에서 극심한 내공의 소모 없이 흑화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은 최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축융의 반지.

거기에 깃든 불꽃이라면 흑화의 내공을 소모시키고도 여력을 충분히 남길 수 있다.

그리고 무상반야대능력.

무상반야대능력을 역의 방향으로 진전시킨 역천반야대능력이라면, 흑화의 힘으로 흑화 스스로가 소멸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전략을 구상하며, 사도명이 오른손을 든 순간이었다.

- 그만두거라, 모두! 내 목숨을 두고 싸울 필요 없느니!

웅장한 음성이 사방을 감싸며 울려왔다.

직후 아주 눈부신, 더 없이 성결해 보이는 빛이 탁천산 한 곳에서 일어나 앞으로 뻗어 나왔다.

빛은 흑화의 온몸을 단숨에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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