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24화 (124/168)

124화. 꽃과 열매

그들의 싸움은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냉겸과 혁담.

가장 먼저 시작된 싸움은 대부분의 싸움이 끝난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연자강과 혈화천사의 싸움이 폭음을 터뜨렸다.

커다란 검과 커다란 검의 충돌은 천외천의 싸움에 묻혔지만, 그래도 여전히 흉험했다.

“자네와는 언젠가 한 번은 싸우고 싶었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합을 멈추었을 때, 혁담이 날 빠진 자신의 검을 살피며 웃었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다른 나라의 운명을 걸고 싸우는 각각의 대장군.”

“총수가 누구신지 자네는 이미 알잖는가? 그런데도 계속 해치려 한단 말인가?”

냉겸의 말에 혁담은 다시 한번 웃었다.

“총수가 누군지를 이미 알면서도 지키려드는 자네보단 낫지.”

냉겸은 거도를 고쳐 잡았다.

두 사람은 같은 나라의 장군으로 태어났다.

마찬가지로 같은 신념을 갖는 명교의 신도로 자라났었다.

하지만 명교는 갈라졌다.

회천연합의 총수는 그 분열의 대척점에 존재했다.

죽이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혁담이 다시 달려들었다.

거대한 검을 거대한 도가 다시 막고, 진행되어 왔던 싸움이 또다시 진행되었다.

카캉! 차차창!

두 사람의 무공은 강했다.

하늘에서 싸우는 연자강과 율천 같은 절대고수는 아니었지만, 한 나라의 대장군다운 강함이었다.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누구도 더 강하지 않았고, 누구도 더 약하지 않았다.

싸움은 길게 이어졌지만, 승패는 사실상 이미 정해져 있었다.

결의의 차이!

냉겸은 혁담을 해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혁담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명존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동료라 생각했다.

혁담 역시 냉겸을 해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탁천산 속에 있는 총수를 죽이고 싶어 했고, 살기를 온몸에 지닌 채 싸웠다.

그 사소한 차이가 결국 승패를 결정지을 터였다.

냉겸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밀리는 자신을 느꼈다.

그는 미래를 알고 있었다.

‘결국 내가 패할 거다. 혁담은 산으로 들어가서 그분의 앞에 서겠지? 이 녀석은 정말로 그분을 해칠 수 있을까?’

까-앙!

냉겸이 들고 있던 거도가 결국 옆으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찢긴 손아귀.

“자넬 해치고 싶지 않아. 알지? 내가 원하는 건, 그분의 목숨으로 족하단 말일세.”

혁담이 소리쳤다.

냉겸은 한숨을 쉬었다.

“해치지 못할 걸세.”

“왜 그렇게 생각하지?”

“죽이고 싶다 말하면서도, 그분이라 부르고 있잖나. 자네만이 아냐. 모두가 같아.”

냉겸은 연자강과 싸우고 있는, 하늘의 율천을 보았다.

“저기의 팔대천사. 그들이라고 다를까? 막상 총수를 뵈면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혁담이 소리쳤다.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일세. 자넨 졌고 내가 이겼어. 내 앞에서 비켜서게, 당장!”

혁담의 검이 냉겸을 겨눴다.

냉겸은 비켜서지 않았다.

그가 놓친 도는 멀리 떨어진 바닥에 꽂혀 있었다.

“비키지 않으면 베겠네. 도를 들고도 버티지 못했는데, 맨손으로 싸우려는 건 아니겠지?”

냉겸이 혁담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왜 아니겠는가?”

“뭐?”

냉겸의 오른손은 아구가 찢겨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 손이 갑자기 움직였다.

냉겸의 허리와 혁담의 팔목을 잇는 미묘한 곡선이었다.

“그래봤자… 헉!”

느릿한 움직임이라 막아낼 수 있다 생각했던 혁담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검을 움직여 냉겸의 손을 막으려 했는데, 허공이 잘못 요리한 죽처럼 뻑뻑했다.

혁담은 그제야 냉겸의 손이 느린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워낙 자연스러운 곡선을 따라 움직여, 느려 보였을 뿐이었다.

“이, 이건!”

소음조차 없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혁담은 자신의 검이 어느새 냉겸의 손에 넘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이게 뭔가? 자네는 언제 이런 무공을…?”

“나도 모르네.”

냉겸은 자신의 손에 넘어와 있는 혁담의 검을 살피며 말했다.

“무영수(無影手)라고 이름 붙이는 편이 좋겠다고, 말하는군.”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말해? 누가?”

- 아마도 나인 것 같소.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혁담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사도명이 보였다.

그의 옆에는 미모의 여자 한 명이 궁녀 차림으로 서 있었다.

“미안하오. 끼어들었소.”

사도명은 망연자실하여 서 있는 혁담을 보며 말했다.

“전음으로 조금 일러 주었을 뿐인데, 정확하게 그 길을 짚은 건 냉겸 대장군의 능력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소?”

냉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정정당당하지 못했소. 좌도독. 내가 졌네. 하지만 여기서 멈춰줘야겠네.”

혁담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검을 빼앗아간 냉겸의 손동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영수는 사도명이 무영섬을 응용해 만든 것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닷새.

사도명은 그동안 계속 효경과 대련했다.

그 결과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움직임의 선을 창안했다.

그 선에 무영섬을 붙여서, 손으로 시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혁담이 고개를 흔들었다.

“들어가고 말고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닐세.”

“그럼 누가 결정하는가?”

냉겸의 물음에 혁담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몰라서 묻는가? 모든 일은 교주님이 결정하시네. 우리 모두의 교주, 방여립 님만이 모든 일을 결정할 수 있잖는가?”

“교주가 없다면?”

혁담은 여전히 연자강과 싸우고 있는 율천을 보았다.

그 아래, 다섯 명의 청년과 한 명의 여인이 서 있었다.

여섯 명의 천사는 모두 태연했고, 율천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혁담이 말했다.

“당연히 천사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봉인되었던 천사가 깨어난 것은 교주의 뜻이니, 그 결정을 따르는 것이 교주님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고.”

냉겸은 사도명을 보았다.

사도명은 옆에 서 있는 효경을 보며 물었다.

“당신 생각은 어떻소? 당신도 율천이 연자강을 이길 거라고 생각하오?”

“나는 다만 놀랄 뿐이다.”

효경의 말에 사도명은 웃었다.

“놀랐다? 어떤 점에서?”

“너와 난 이미 꽤나 오래 전에 나타나 있었다. 그런데도 내 친구들이 단 한 명도 네가 온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갑자기 연자강과 율천을 둘러싼 기세가 폭발했다.

효경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감았다.

“힘을 기르는 건 어렵다. 하지만 기른 힘을 감추는 건 어렵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네가, 친구가 패배할 것을 알고도 가만히 있을 리는 없잖느냐.”

꽈-아아아아아앙!

연자강과 율천 사이에서 천지를 개벽시킬 듯한 폭발이 일어났다.

**

연자강은 검성은 후예다.

그의 검공의 시작은 사도명과 완전하게 동일했다.

율천과 싸우면서 연자강의 초식은 자청합일에서 우주홍몽으로 이어졌다.

우주홍몽은 우주오검의 끝이었지만, 연자강이 추구하는 검술의 완성은 아니었다.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자라게 하고 가지를 뻗는다.

하지만 가지가 나무의 완성이자 끝은 아니었다.

무성한 잎을 만들지 않으면, 나무는 호흡하지 못 한다.

우주홍몽은 우주오검이라는 나무를 완성시킨, 무성한 잎이었다.

하지만 모든 나무는 꽃을 피워야만 절정에 이른다.

연자강은 사도명이 자신만의 꽃을 피운 것을 보았다.

우주오검을 넘어서는 새로운 초식의 이름은 천지일명이었고, 자신과 상대의 힘의 흐름 모두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었다.

상대의 힘과 기세에 동화됨으로써 가장 강해지는 도리.

신기하게도, 연자강이 깨달은 여섯 번째의 우주검도 비슷했다.

사도명의 것처럼 하늘과 땅의 흐름에 순응하는 검공이었다.

그 능력으로, 연자강은 오랫동안 율천과 동수를 이루며 싸울 수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시작은 반드시 끝을 향해 달려야 한다.

연자강은 꽃을 넘어서는 것을 원했다.

꽃이 지고 탐스러운 과일이 자신의 검공에도 달리기를 원했다.

사도명에게는 그것이 바로 일의생멸이었다.

하지만 연자강은 달랐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고 마음의 방향이 다르기에, 비록 나무와 가지의 모양은 비슷해도 열린 과일은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연자강은 율천과의 싸움을 이어가면서, 자신의 꽃이 점차 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조금씩 영글어가는 달콤한 과일.

율천의 칠흑검은 공간을 접고 도약하며 움직인다.

방향을 예측할 수 없고, 어디서 나타나 어디로 사라질지 알 도리가 없었다.

연자강은 칠흑검이 공간을 도약하는 방식을 어느 정도 깨닫고 있었다.

‘검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야. 공간 자체가 움직인다. 내공이 아니라 강력한 의지가 공간을 휘게 한다. 그렇게 휘어진 공간이 제대로 돌아올 때, 검은 공간을 도약해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연자강은 율천의 칠흑검이 접는 공간의 변화를 감지했다.

그래서 현란하고 어지러운 율천의 공격을 때로는 피하고, 때로는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공격은 달랐다.

검처럼 현란하게 공간을 이동하는 율천을 잡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필요했다.

꽃을 넘어선, 극상의 열매!

‘모든 공간에 존재하는 검! 피할 방법이 없고, 피할 방법을 허락하지 않는 검!’

그것이 연자강이 원하는, 자신만의 검이었다.

그 완성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연자강과 율천 사이에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폭발이 일어났다.

꽈-아아아아앙!

천지가 개벽하는 듯, 공간을 찢는 폭발이었다.

연자강이 피를 토하며 뒤로 날려갔다.

여태껏 움직이지 않던 사도명이 처음으로 몸을 날렸다.

“자강!”

그의 손에서 일어난 부드러운 강기가, 날려가는 연자강의 몸을 허공에서 잡았다.

연자강의 온몸, 수십 군데의 근육이 끊겨있었다.

여섯 쌍의 눈은 연자강을 보지 않았다.

그를 붙잡은 허공의 사도명, 그 한 명만 보고 있었다.

여섯 천사의 눈은 부릅 떠져서, 감겨질 줄을 몰랐다.

그들은 지금까지 사도명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었다.

“…조화 무제.”

사도명은 연자강을 부축한 채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고, 율천의 몸은 그보다 훨씬 빨리 떨어졌다.

추락!

콰-앙!

율천의 몸이 땅바닥에 깊이 박혔다.

소화가 다가와서 그의 몸 상태를 살폈다.

“진 거야? 진 거네!”

율천의 호흡은 실낱처럼 가늘었고, 심장의 박동 역시 때로 끊어질 정도였다.

연자강의 몸에서 폭발이 일어난 순간, 사방과 천지가 모두 검으로 가득 차서 피할 곳이 없었다.

공간을 건너뛰어도, 아무리 건너도 여전히 검이 있었다.

율천은 졌다.

철저하게 져서 바닥에 쓰러졌지만, 그렇다고 연자강도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 방어를 포기하고 내쏜 칠흑검이, 연자강의 온몸 근골을 조각조각 끊어놓았다.

“…그분을 죽이는 건… 나는… 못하겠다. 너희들이… 해라. 너희들끼리….”

소화는 힘없이 말하는 율천의 입과 코를 손으로 막았다.

거의 힘을 주지 않고 단지 막았지만, 율천은 부들부들 떨었다.

“억울하지? 패배해서! 나도 그래. 오직 승리하기 위해 자란 나의 친구가 멍청한 놈한테 지고 말았으니, 화나고 억울해.”

“으읍! 으으읍!”

“안심해. 복수는 해 줄게. 친구를 죽인 복수는 철저하게, 아주 철저하게 해 줄게.”

다섯 천사 중의 단 한 명도 소화를 말리지 않았다.

무심한 눈으로 호흡이 끊겨가는 율천을 볼 뿐이었다.

율천의 호흡은 결국 끊겼다.

소화는 몸을 일으켰다.

“내 친구를 죽게 했어. 우리는 이런 종류의 원한은 절대로 잊지 못하지.”

차갑게 가라앉아 살기를 뿜는 소화의 시선이 사도명을 보았다.

사도명은 연자강의 몸에 속명술을 시전한 뒤, 몸을 일으켰다.

“더 빨리 올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제야 왔을까?”

사도명은 소화와 그 뒤쪽, 다섯 명의 천사를 한 명 한 명 둘러보면서 말했다.

“알아 맞춰봐. 내가 이 닷새 동안 뭘 하며 왔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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