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23화 (123/168)

123화. 팔대천사

본래 제갈청미의 신법은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도명과 함께하며 와의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는 매우 빨라졌다.

제갈평이 한 번 눈을 깜빡인 후에는, 제갈청미가 이미 혼전 속으로 몸을 섞은 후였다.

“휴우. 어리석게도.”

제갈평은 딸을 부르려고 들어 올렸던 오른손을 천천히 아래로 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천사들의 봉인은 이미 완전히 풀렸다. 총수의 정체를 알았으니, 천사들은 그를 보호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분노하게 된다.”

제갈평도 제갈청미처럼 뒤쪽의 동굴을 슬쩍 보았다.

그곳에 한 사람이 있었다.

“왜 이러한 상황을 만든 거요? 죽었다면 그냥 죽었어야 저런 비극은 없을 것 아니오?”

회천연합의 총수는 본래 죽었으나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배화교도들이 그를 죽이겠노라 모여들었다.

제갈평은 머리가 좋다.

하지만 당금의 천하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지나치게 복잡했다.

오늘의 싸움만 해도 결론을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지평선 너머에 일곱 갈래 기운이 다가오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제갈평은 눈을 감고 머릿속에 각종의 변수를 집어넣었다.

파르르!

감은 눈이 거칠게 떨린 후, 제갈평은 한숨과 더불어 눈을 떴다.

“은교교의 옆으로 가면 안 된다. 그 옆이 가장 위험해.”

**

은교교는 계속 싸웠다.

그녀는 강했지만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앞의 적과 싸우면, 옆과 뒤의 적들이 달려들었다.

뒤로 몸을 돌리면, 앞에 있었던 적이 다시 뒤의 적이 된다. 언제나 사방을 모두 경계해야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뒤쪽의 적들이 덤비지 않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뒤에 생긴 듯한 느낌이었다.

‘누구야? 누가 내 등 뒤를 보호해 주는 거지?’

단지 생각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뒤의 사람은 그 질문을 짐작한 듯 말로 답을 주었다.

“우리 이런 것 처음이지? 힘 합쳐 싸우니 정말 좋네.”

은교교와 제갈청미는 친했다.

목소리만으로도 단번에 누군지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청아!”

“뒤는 걱정 마. 나도 뒤는 걱정 않고 싸워도 되지?”

사방이 적이다.

하지만 등 뒤를 친구가 지킨다면, 앞만 경계하고 좌우는 합심하면서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은교교와 제갈청미가 힘을 합하자, 배화교도들을 상대하는 속도는 네 배 이상 높아졌다.

전황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십구 성좌의 무사들은 강했다.

분노로 고양되어 있었다.

하지만 계속 유리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았다.

가부좌하고 있던 연자강이 눈을 떴다.

“온다. 아니, 이미 왔다.”

은교교가 배화교도들을 지휘하던 위장 중의 한 명을 공격해 들어가던 순간이었다.

- 따져보면 네 덕분이야.

그녀의 귀에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구멍이 나타났다.

공간이 뒤틀리는 느낌에, 은교교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리며 청상검을 휘둘렀다.

“율천!”

“악! 그게 뭐야?”

은교교와 등을 맞대고 싸우던 제갈청미가 갑자기 은교교의 왼쪽에 나타난 허공의 구멍을 보곤 놀라서 소리쳤다.

검은 갑자기 나타났고, 더구나 뒤가 아니라 옆이었다.

“네가 성화령의 출처를 알려준 덕분에, 연합 총수가 누군지를 확신해 냈어. 정말 고맙군.”

율천의 목소리 방향과는 다른 위치에 뚫린 구멍!

그리고 구멍에서 치솟는 검.

‘이렇게 되면 피할 방법은 없다! 그렇지만….’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은교교의 눈빛은 결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에, 검만큼이나 갑작스럽게 공간을 찢으며 나타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이 칠흑의 검을 쳐냈다.

까-앙!

은교교는 튕겨 나가는 칠흑의 검과 자신의 옆에 나타난 연자강의 모습을 동시에 보았다.

은교교는 율천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고, 처음부터 공격하고 있었던 배화교의 위장을 베었다.

“크윽!”

쓰러지는 위장을 내버려둔 채, 은교교가 다시 연자강을 보았다.

“약속대로입니다. 율천은 당신에게 맡길게요.”

연자강은 웃었다.

그는 은교교가 자신을 믿고 있음을 느꼈다.

믿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연자강은 검성의 후예였다.

여덟 개 마문을 막아서기 위해 준비된 무인이, 팔대천사 중 한 명을 막지 못한다면 모순이었다.

“생각했다. 도명은 무섭게 강해지는데, 나는 왜 정체하고 있을까? 내게 부족한 것을 마침내 찾아냈지. 절박함!”

연자강은 튕겨난 칠흑의 검을 회수하는 율천을 보았다.

“너는 내게 그 점을 일깨워주었다, 율천.”

율천의 뒤로 다섯 명의 청년과 한 명의 여인이 내려섰다.

하지만 연자강이 보는 건 오직 율천 뿐이었다.

“그럼 고마워해야지? 내 손에 너의 사부가 죽는 바람에, 너는 매우 절박해진 거잖아.”

“그래, 고맙다. 고마운 만큼, 너도 절박하게 만들어 줄게.”

율천의 표정이 변했다.

노할 필요도 없는 상황에서 분노하는 사람은 하수다.

하지만 마땅히 분노해야 할 상황에서조차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하기가 매우 어려움을, 율천은 잘 알고 있었다.

“…달라졌구나.”

연자강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기세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율천의 말은 단순히 기세만을 두고 한 것이 아니었다.

“사도명이 아니라 네가 있어 실망했었다. 그런데, 꼭 실망할 일만은 아니었군.”

연자강은 입을 다물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집중할 때 말은 거의 필요가 없다.

오직 의지와 행동, 그 두 가지만이 중요했다.

연자강은 천천히 율천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 걸음에 한 호흡이 걸릴 정도로 느렸지만, 그래도 꾸준했다.

율천의 뒤에는 여섯 명의 천사들이 더 서 있었다.

그 중의 젊은 여자가 웃었다.

“의지가 느껴지는 행동. 널 죽이겠다라는 의미 맞지, 혈화?”

“맞다. 소화.”

젊은 여자의 옷에는 흰색의 꽃(素花)이 그려져 있었다.

소화천사가 빙그레 웃었다.

“그럼 너는 당연히 저 녀석을 죽이겠구나. 이것도 맞지?”

“그래. 맞다.”

소화의 미소는 아주 환해져서, 기뻐하는 빛이 역력했다.

“호호. 그럼 내게 맡겨 줘. 내가 대신 죽여줄게.”

주변은 여전히 배화교도와 신 무림맹의 싸움으로 어지러웠다.

일곱 명의 천사는 은교교의 주변에만 머무를 뿐이었다.

몇 명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들이 나타난 사실조차 몰랐다.

“허접한 싸움에 끼어들긴 싫어. 내가 죽이게 해주라, 혈화.”

율천은 고개를 저었다.

“싫어.”

“뭐?”

“전에 봤던 놈과 달라. 저 기세, 분명히 검성의 무공이다. 제대로 배웠고, 제대로 영글었어.”

율천은 앞으로 걸어갔다.

“맛있는 먹이! 내가 먹는다.”

연자강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계속 움직였다.

여전히 말은 없었다.

그의 정신은 오로지 율천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율천이 고개를 흔들었다.

“나만 노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러나 다른 사람은 어떡하나? 내 뒤에는 여섯 명이나 더 남아 있는데.”

연자강은 여전히 말하지 않았고, 은교교가 대신 대꾸했다.

“우리도 많이 남아 있어요.”

은교교는 천사들의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안다.

겉보기에 이삼십 대로 보이지만, 무공을 익힌 후 수십 년을 다시 수정관 속에서 내공을 흡수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강해지기 위한 수련에 더해진, 일종의 인위적인 제조!

천사들의 감정 상태가 이상한 것은 그런 행위의 부작용이었다.

“당신들이 믿는 건 무엇인가요?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하늘의 불? 이미 흘러간 원한?”

은교교의 뒤로 사람들이 한 명 두 명씩 모여들었다.

서문용맹이 내려섰다.

구양걸이 커다란 주먹을 으스러져라 쥐면서 다가왔다.

대연검호 남궁태보는 어검술을 이용, 검을 머리 위의 허공에 띄운 모습으로 걸어왔다.

십구성좌의 장문들과 각파의 고수들이 모두 은교교의 뒤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형산파의 장문인 습근탁의 모습도 보였다.

형산파의 참전으로 십구성좌가 이십성좌로 변해야 한다는 주장도 공감을 얻어가고 있었다.

율천은 웃었다.

“승리를 거두니 모두들 즐거운가? 우리가 믿는 것? 다른 교도들을 모르겠으나, 나는 내가 지닌 힘을 믿는다. 너희를 모두 죽일 수 있을, 강력한 힘.”

율쳔이 신 무림맹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바닥에 쓰러지거나 죽임을 당한 배화교도들을 가리키면서 웃었다.

“십구성좌의 장문들? 잠시 후 너희의 모습은 어떨까? 연자강이 만에 하나 이긴다 한들, 남은 내 친구들은 누가 상대하지?”

“어떤 싸움이든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순 없어요.”

은교교는 사도명을 떠올렸다.

숭산의 싸움에서, 사도명은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려 했었다.

그 결과 네 달 넘는 시간 동안 사도명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생사의 기로를 헤맸었다.

무림은 무너졌고, 사도명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사도명이 조화무제로 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신 무림맹은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 일이 또다시 벌어져서는 안 된다.

은교교는 내공을 돋아 말했다.

“각자 자신의 일을 합시다. 나머지는 동료를 믿고, 친구를 믿고, 세상을 믿으며 맡깁시다.”

“그렇구나. 사도명의 영향인지, 네 개인의 품성인지 모르나 그 녀석이 없을 때는 네가 모든 자들의 중심에 서는구나.”

율천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이 녀석을 죽인 후, 다음의 먹이는 너로 하자, 은교교.”

율천이 이 녀석이라 부른 상대는 연자강이었다.

연자강은 땅에서 사라졌고, 곧장 율천의 앞에 나타났다.

우주오검 중의 네 번째 초식인 자청합일이 펼쳐져, 율천의 온몸을 한꺼번에 휘감았다.

콰아아-!

자청합일은 한때 천라대제의 손에서 펼쳐져 당대의 아수라혈황을 소멸시킨 바 있었다.

그러나 율천은 밀리지 않았다.

그의 앞을 칠흑검으로 막으면서, 격공도약을 통해 연자강의 등과 주변 네 군데를 거의 동시에 위협했다.

은교교는 생사를 결하는 폭음을 들으며 싸움을 지켜보았다.

소화가 은교교의 옆으로 다가오며 환하게 웃었다.

“그거 알아? 나와 친구들은 너무 오래 쉬었어.”

은교교는 소화를 보고, 그녀 뒤쪽의 여섯 명 천사들을 보았다.

“뭘 하고 싶은가요?”

“살인! 뭐, 여하튼 부수고, 파괴하는 것.”

팔대천사는 세외팔천, 즉 여덟 개의 마문을 상대하기 위해서 길러진 자들이었다.

마음속에 살기가 깃드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결코 아니었다.

은교교가 한숨을 길게 쉬었다.

“나부터 죽이고 싶죠?”

“맞아. 내 친구들이 죽이기 전에 먼저! 넌, 맛있어 보여.”

“살인하기 좋아 보인다는 소린가요? 당신들은 재밌네요. 하지만 조금 미루면 어때요?”

은교교는 허공 높은 곳에서 정신없이 싸우고 있는 연자강과 율천을 가리켰다.

“저 승부를 보고 난 후, 그때 시작해도 늦지는 않을 텐데.”

“그럴 필요 없어. 빨리 끝날 테니까.”

소화가 오른손을 들었다.

하얀 서리 같은 기운이 검지 끝에서 피어올랐다.

“피 흘리지 않도록 죽여줄게. 나는 아름다운 걸 좋아해. 여자라면 마땅히 살아서도, 죽어서도 아름다워야지.”

은교교가 느끼기에 소화의 장담은 허언이 아니었다.

싸움이 시작되면, 소화가 자신을 십여 초 안에 제압할 수 있을 것임을 은교교는 느꼈다.

하지만 은교교의 말처럼, 세상은 혼자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은교교의 뒤에 서문용맹이 서고, 습근탁이 섰다.

그리고 제갈청미가 서면서 인상을 썼다.

“나도 아름다운 건 좋아한다, 이 년아. 그런데 나는 널 추하게 죽여줄 테다. 그 얼굴 어디에도 지금의 네 모습은 흔적이 없도록 베고, 태우고, 잘라줄게.”

소화의 안색이 변했다.

본래 십여 초면 끝낼 자신이 있었는데,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소화는 결국 고개를 들어 허공을 보았다.

“뭐, 혈화의 싸움이 끝난 후 싸울 거라면 그렇게 하고.”

싸움은 허공에서만 펼쳐지는 것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시작되었으나,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싸움이 또 다른 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냉겸과 혁담의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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