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총수의 정체
사도명은 빨랐다.
그리고 그와 나란히 달리는 효경 역시 빨랐다.
두 사람은 자금성을 떠나 청해성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목표지점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가히 빛살 같은 움직임.
그럼에도 청해성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걸릴 터였다.
“우리는 신 무림맹 고수들과 마병단이 지나간 길을 따라서 움직이고 있소.”
사도명이 복잡한 표정의 효경을 보며 말했다.
“우리가 그들보다 빠르니 이내 따라잡을 거요.”
“당연한 말을 왜 하느냐?”
“그럼에도 속도를 맞출 거요. 청해성 탁천암에 도착할 때쯤에야 따라잡을 수 있도록!”
사도명은 빠르게 계산했다.
“닷새가 걸릴 거요.”
효경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닷새냐?”
“남은 일곱 명의 천사! 세상이 모두 덤벼도 이길 수 없다 했던 그들을 이겨내려면, 계속 강해져야 하지 않겠소?”
“어떻게 강해지겠단 거냐?”
“그 일을 해주기 위해, 나와 함께 떠나온 것이 아니었소?”
자금성 밀실 안에서 황제는 효경에게 말했었다.
도와달라고.
- 천하 경영보다 어려운 것이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더구나. 도와다오, 효경.
황제는 팔대천사의 존재를 아주 오래전부터 알았다.
그들의 존재에 대응하여 황제가 했던 일은 많았다.
무림의 힘을 결집하기 위한 여러 가지 안배.
황제가 가장 신경 쓴 일은, 효경의 마음을 얻는 것이었다.
황제는 아주 오래전부터 기미하는 일을 그녀에게 맡겼다.
진심도 보여주었다.
효경에겐 황제를 죽일 기회가 아주 많았다.
언제든지 음식에 독을 타기만 해도 황제를 죽일 수 있었다.
“널 도울 생각 따위 없다.”
“하지만 황제를 도울 생각은 하고 있는 거잖소, 밀화천사?”
“죽이고 싶을 때는 명령이 오지 않더니, 막상 명령이 내려오자 해칠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은 정을 만든다.
황제는 사람을 이끌 줄 아는 사람이었고, 자신을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을 끈다.
그런 인간적인 매력이 없었다면, 도광효가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귀하는 황제를 위해, 날 더 강하게 만들어주려고, 함께 청해성으로 가는 거잖소.”
“나는 그를 만나러 나왔다.”
사도명은 효경이 그라고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은교교의 마음속에서 읽어냈던, 해골처럼 깡마른 모습의 사람을 떠올렸다.
회천연합의 총수!
“그는 대체 누구요?”
효경이 대답하지 않자, 사도명은 다시 물었다.
“그가 이미 한 번 죽었기에 두 번 죽게 할 수 없다는 황제의 말은 무슨 의미요?”
효경은 그제야 대꾸했다.
“총수가 정말로 그분이라면, 나는 그분을 구하고 싶다.”
“그분? 높여야 하는 사람이오?”
효경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갑자기 오른손을 내밀었다.
“생각해보니 맞다. 그분을 구하려면, 널 강하게 만들어야겠구나.”
콰-앙!
어깨를 얻어맞은 사도명이 후르르 옆으로 날아갔다.
달려가던 속도를 조금도 늦추지 않은 채 공격했던 효경은 사도명이 날려가자, 오히려 더욱 속도를 높이며 그를 쫓았다.
“설마 또다시 더욱 더 강해진 것이냐, 무제?”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사도명과 효경은 모두 세 차례 싸웠다.
첫 싸움에서 사도명은 두 손을 쓰고도 밀려났다.
두 번째 싸움에서 사도명은 단지 오른손만으로 효경을 뒤로 패퇴시켰다.
그리고 세 번째의 부딪침.
사도명은 일부러 막지 않고 효경의 붕멸을 맞았다.
그런데도 전혀 상처를 입지 않은 것이다.
효경이 따라오자, 사도명은 날아가던 몸을 허공에서 뒤집었다.
등을 바닥으로 향한 채, 자신을 노리는 효경의 손을 살폈다.
“발로 대지를 딛지 않고도, 천지간의 연결이 가능하구려.”
사도명도 허공에 뜬 채로 똑같은 붕멸을 시전해서 효경의 손과 부딪쳐갔다.
쩌어-엉!
효경의 몸은 위로 떠오르고, 사도명의 몸은 아래로 꺼졌다.
하지만 사도명의 몸이 바닥에 부딪히지는 않았다.
아래로 구멍이 만들어졌고, 그곳으로 들어간 사도명의 몸이 동시에 효경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웃!”
효경이 몸을 뒤집어 뒤쪽의 사도명을 공격했다.
“격공도약! 율천의 기술이구나. 하지만 똑같진 않다.”
사도명도 효경과 똑같은 손동작을 하며, 그녀의 공격을 막았다.
조금 전의 싸움과 아래위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형태의 공수가 반복되고 있었다.
퍼퍼-펑!
몇 번의 폭음이 일면서, 이번에는 사도명이 위로 효경이 아래로 떨어졌다.
효경은 몸을 뒤집어, 손바닥으로 땅을 짚고 다시 도약했다.
“이제 알겠군.”
효경은 위로 떠올랐다가, 앞으로 쏘아가고 있는 사도명의 뒤를 따르며 붕멸의 기운을 양손으로 연이어 내쏘았다.
“너는 단순히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다. 본질을 뚫고, 네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발전시키고 있는 거구나.”
효경의 판단은 정확했다.
사도명이 율천과 효경의 수법을 흉내 내는 바탕에는 일의생멸이 존재했다.
그건 생성과 소멸이 자유로운, 깨달음의 총합이었다.
사도명은 효경의 공격에 대한 반격을 멈추었다.
방어도 하지 않고, 여러 갈래의 붕멸을 피하고자 몸을 틀었다.
“연사도 가능한 거요?”
사도명은 세 갈래의 붕멸을 피했다가, 네 번째는 피하지 못하고 오른쪽 어깨에 한 방을 맞았다.
“큭!”
옆으로 삼 장가량을 날아간 사도명의 몸이 가까스로 바로 섰다.
“멍청한! 괜찮으냐?”
효경이 붕멸의 발사를 멈추고, 사도명의 옆으로 왔다.
그리고 사도명의 어깨가 무사함을 확인한 후 미간을 찡그렸다.
“연환붕멸을 당하면 천사장님마저도 곤란을 겪는데, 그걸 세 번이나 피했다고? 어깨를 얻어맞고도 뼈가 부서지지 않았다고?”
효경의 붕멸은 집보다 큰 바위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사도명은 특별히 강력한 호신강기를 끌어올리지도 않았다.
그랬음에도 사도명의 어깨가 무사한 것은 분명히 이상했다.
사도명은 그 자리에서 멈춘 후에 자신의 어깨를 살폈다.
“체내에서 붕멸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한지를 시험했소.”
“뭐?”
“천지를 운행하는 기운을 밖으로 터뜨릴 수 있다면, 몸 내부에서도 터뜨릴 수 있겠지? 뭐, 다른 무공에서도 꽤나 쓰이는 방법이니까 특별하진 않소.”
사도명은 오른손을 들었다.
여러 갈래의 붕멸이 일어나 허공으로 날아갔다.
사도명은 효경을 공격하지 않고, 단지 자신도 연환붕멸을 시전할 수 있는지 시험만 한 것이다.
“이걸 몸속에서 일으키면 어떻게 될까?”
사도명은 혼잣말을 이어갔다.
“수십 명이 서로 다른 공격을 해 와도 동시에 방어할 수 있겠지? 팔대천사가 모두 한꺼번에 공격해온다 해도 막을 수단!”
“나는 칠 년이 걸렸다.”
사도명이 자신을 보자, 효경은 말을 이었다.
“천붕의 방법을 찾아낸 후, 그걸 연환으로 잇달아 발사하는 방법을 칠 년이 걸려서 찾아냈다.”
“그랬소? 그랬구려.”
“담담히 넘어갈 일이냐? 나의 칠 년을 너는 단번에 넘어섰다.”
사도명이 고개를 저었다.
“단번이라니? 아니오.”
“아니라고?”
“내 몸속에, 생각 속에, 고금구천강의 무공 중 몇 개가 있는지 알고 있소?”
효경은 눈을 크게 뜨고 사도명을 보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황제의 판단이 틀렸다 믿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사도명의 몸이 다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서쪽으로 날아갔다.
효경은 그의 뒤를 따라 신법을 전개하며 말했다.
“그래, 닷새의 시간이 있다. 피하는 걸 해 보자. 내부의 붕멸로 공격을 맞는 것도! 내일은 눈을 감고 피하는 것과 눈을 감고 반격하는 것까지 해 보자!”
그녀의 몸은 빠르게 사도명의 움직임을 따라잡았다.
“남은 여섯 천사에 대해서도 알려 주마. 한번 해 보자.”
**
하늘을 받들고 있는 바위.
바위라 불리기엔 거대했고, 산이라 불리기엔 너무 작았다.
그래서 탁천암이라 불리면서도, 때론 탁천산이라고도 불린다.
은교교는 탁천암의 앞에 신 무림맹 무사들을 이끌고 서 있었다.
탁천암의 표면에는 수많은 동굴이 존재한다.
하지만, 회천연합 본단으로 갈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배화교의 무리들이 곧장 여기 탁천암으로 오고 있다는 건, 연합의 내부에도 배신자가 있다는 얘기일 거요.”
냉겸 장군이 은교교의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천하 병권을 이끄는 우도독이면서 동시에 회천연합의 지휘를 받는 회천객이었다.
두 개의 신분.
마찬가지로 회천연합 내부에도 두 개의 신분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지 않으라는 보장은 없었다.
“진심으로 고맙소.”
냉겸은 시선은 앞으로 고정한 채로, 은교교에게 말했다.
“힘을 합하겠다는 결정. 신 무림맹으로선 쉽지 않았겠지. 연합의 뒤에 존재하는 황실이, 그간 무림맹에 벌어졌던 모든 비극의 실질적인 조력자라는 걸 이제는 알게 됐을 테니까.”
“배화교 무리들이 곧 도착할 겁니다. 종심기 령주의 전달에 따르면, 두 시진 후라 합니다.”
은교교도 계속 앞만 보는 채로 말했다.
“앞서 있는 전대의 도착이 그럴 것이고, 후대는 그보다 뒵니다.”
“팔대천사는 어디요?”
“뒤쪽, 후대라는군요.”
은교교가 처음으로 시선을 돌려 냉겸 장군을 보았다.
“그리고 전대의 구성원을 보면, 연합 내부의 배신자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거란 전갈입니다.”
냉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의심하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기는 했다.
그 의심이 맞는지, 혹은 아닌지 두 시진 후면 알게 되는 것이다.
“천사란 놈들의 도착 시간은 전대와 얼마나 차이가 나오?”
은교교의 뒤에서 연자강이 서리서리 기세를 뿜으면서 물었다.
그가 뿜는 힘은 며칠 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한 시진이 더!”
“한 가지 약속해 주시오, 선자. 율천 그 자식은 무조건 내 몫이오. 누구도 그 자식과의 싸움에 끼지 못하게 해 주시오.”
“약속드리죠. 말씀하시지 않아도,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할 참이었어요.”
법허 선사가 죽었다.
율천의 손에 죽은 사부의 복수를 할 수 없다면, 연자강의 분노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다.
연자강의 바로 옆에 곽소혜가 있었다.
“지켜드릴게요. 배화교의 후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곽소혜는 자신의 옆으로 넓게 펼쳐 선, 십구성좌의 주인들을 둘러보았다.
“죽음들! 피! 희생!”
곽소혜의 눈빛은 아련했다.
“저는 도화촌 분들의 처참한 죽음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십구성좌의 무인들도 많은 가족과 동료를 잃었다.
그들의 죽음에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태명이었다.
그리고 태명이 바로 황제라는 사실은 이제 꽤 알려졌다.
“지금의 판단은 어쩌면 지극히 어리석은 것일 수도 있겠죠?”
은교교가 소리쳤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선후가 있습니다. 배화교의 음모를 분쇄하고, 황제에게 잘못을 묻는 건 뒤로 하는 게 옳은 순서입니다.”
냉겸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 말을 하기에 적당한 때인지는 모르겠으나….”
은교교가 냉겸을 보며 말했다.
“정말 모르시겠다면 말하지 마세요. 하지만 꼭 말해야 하는 거라면 당장 말하세요.”
“배화교가 아니라 명교요. 명존을 모시니 명교이지만, 불 자체를 숭상하는 건 아니기에 배화교라 함은 옳지 않소.”
“무제의 말이 옳네요.”
냉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요?”
“그렇게 불러보랬어요.”
냉겸의 미간에 패인 골이 더욱 깊어졌다.
그가 그 말의 의미를 묻지 않았지만, 은교교는 굳이 설명했다.
“무제가 날 자금성에서 떠나보내며 전음으로 말하더군요. 줄곧 배화교라 불러라. 그럼 총수가 누군지 알아낼 수 있게 된다고.”
냉겸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구려. 영원히 숨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쉽게 알릴 수는 없었소.”
은교교가 목걸이를 꺼내 손에 들었다.
“본래 갖고 있던 사람만이 성화령은 내게 줄 수 있어요. 이렇게 간단한 문제를, 나는 너무 오랫동안 풀었네요.”
냉겸은 입을 다물었다.
그 누구도 더 이상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은교교와 냉겸의 문답을 통해 모두가 총수의 정체를 깨달았다.
두 시진은 빠르게 흘렀다.
멀리, 지평선 위로 뿌연 모래 먼지가 치솟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