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20화 (120/168)

120화. 도와다오

황제는 피하지 않았다.

효경의 오른손은 강력하기 그지없는 힘을 뿜고 있었다.

그 손이 자신의 심장을 노려 날아옴을 보면서도, 황제는 자리에서 일체의 미동조차 없었다.

“황상!”

놀란 도광효가 달려왔다.

그는 자신의 몸으로 황제의 앞을 막았다.

사도명은 움직이지 않았다.

분명 격공도약으로 효경의 앞을 막아설 수 있었으면서도, 사도명은 움직이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그의 눈빛은 차분했고,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고 지켜만 보는, 관조자의 눈빛이었다.

“필요 없다. 짐이 이미 여러 차례 말했잖느냐?”

황제가 손을 내밀어 도광효를 옆으로 밀었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람을 쳐내고, 황제는 스스로의 목숨을 효경의 손아래 다시 노출시킨 것이다.

“황상!”

도광효의 고함이 밀실 안을 쩌렁하게 울릴 때, 효경의 손은 황제의 가슴 바로 앞에서 멈췄다.

후-웅!

미처 손의 움직임을 따르지 못한 바람이, 한바탕 앞으로 불어 황제의 옷자락을 날렸다.

“왜냐? 왜 멈췄느냐?”

황제는 효경의 손을 보았다.

곱지만 무서운 손이었다.

자신은 전혀 막지 않았건만, 효경의 손이 갑자기 멈춘 것이다.

“죽겠다는 내 말이 믿기지 않는 거냐, 효경?”

효경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믿어요. 꽤나 오래전부터 확실히 믿고 있었어요.”

그녀는 갑자기 몸을 돌려 사도명을 보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내가 믿었다 해도, 너는 믿지 말았어야 할 것 아니냐! 왜 나를 막지 않았느냐, 무제?”

사도명은 오히려 되물었다.

“왜 죽이지 않았소?”

“나, 나는….”

“내 손으로 황제를 죽이지 못할지언정, 남이 죽이는 것까지 막을 생각은 없소.”

효경이 사도명을 물끄러미 보더니 이윽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너는, 내가 황제를 죽이지 못할 것을 미리 짐작했구나.”

“귀하가 진정 황제를 죽이고자 했다면, 내가 나타나기 전에 기회가 매우 많았을 것 아니겠소?”

효경은 입술만 계속 깨물었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흘렀다.

하지만 효경은 개의치 않았다.

“나는 긴 시간, 너무 오랜 시간을 황제와 함께 보냈다.”

오랜 시간을 보내면 상대방을 알게 된다.

진심을 보게 되면, 사람은 변하기 쉽다.

사도명이 한숨을 쉬었다.

“도광효도, 그리고 백산 장군도 모두 마음으로 황제에게 승복하고 있었소. 구패객은 힘을 얻고 나서도, 잃어버린 황위를 되찾으려 하지 않았지.”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사도명은 황제를 보았고, 효경도 황제를 보았다.

도광효가 황제의 몸을 부축하고 있었다.

황제가 다시 한번 말했다.

“짐을 도와주지 않겠느냐, 효경? 제발 도와다오.”

효경은 한숨을 쉬었다.

“그만 해요. 내게 자꾸 강요하면, 결심을 바꿔야 할지도 몰라요.”

“팔대천사가 모두 회천연합으로 가고 있댔지? 그를 또다시 죽게 둘 순 없다. 제발, 효경아.”

“또다시? 과연 황상은 그가 누군지를 제대로 아는군요.”

“그를 해치면 아니 된다. 다른 이들을 몰라도, 명교는 절대로 그래서는 아니 돼. 알잖느냐?”

사도명은 도광효를 보았다.

[느끼고 있소? 황제가 언젠가부터 배화교 대신 명교라고 칭하고 있군.]

도광효도 전음을 보냈다.

[혹시 느끼셨는지, 무제? 언젠가부터 무제는 나으리가 아닌 황제라 부르고 있구려.]

사도명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효경이 차마 황제를 해치지 못했던 이유를, 이미 의도치 않게 느껴버렸다.

“제발! 제발!”

황제의 표정은 절박했다.

그런 황제의 표정에 효경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었는지, 갑자기 절박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그러곤 사도명에게 소리쳤다.

“너는 정말로 몇 번 본 것을 흉내 낼 수 있느냐?”

효경의 손에서 강대하기 그지없는 붕멸의 힘이 또다시 쏟아져 사도명을 노렸다.

사도명은 피하지 않았다.

그저 오른손을 들어 붕멸을 막을 힘을 키웠다.

도광효가 몸을 날려 왔다.

좀 전의 싸움에서 은교교가 했던 역할을 자신이 대신 하려는 의도였다.

“돕겠소, 무제.”

“아니! 이번은 두 번째니까.”

도광효는 사도명의 왼손이 뿜어낸 부드러운 기운이 자신의 몸을 옆으로 밀어냄을 느꼈다.

화아-우우우웅!

동시에, 사도명의 오른손은 효경의 오른손과 충돌했다.

폭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텁고 강한 쇳덩이가 짓눌리는 듯한, 은근한 소음과 더불어 사도명 주변의 공간이 크게 휘었다.

효경의 눈이 커졌다.

“붕멸을 막아내고 있다고? 두 번째만에 이토록 달라진다고? 율천조차도 정면에선 날 막지 못하건만!”

“말했잖소. 흉내 내는 재주!”

사도명이 밀리던 자신의 오른손을 앞으로 다시 움직였다.

“땅에 디딘 발을 통해 대지의 기운을 하늘과 잇는 건가?”

“!”

“알고 보니 붕멸이란 천지를 도는 기운을 몸에 깃들게 만드는 것이었군.”

효경은 자신이 내쏜 것과 똑같은 기운이 두 배로 되돌아옴을 느끼며 소리쳤다.

“거짓말!”

쩌어-엉!

사도명과 효경 사이의 공간이 찢겨나가는 듯한 환영이, 모두의 눈에 일어났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도명이 아닌 효경이 뒤로 튕겨 나갔다.

효경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사도명은 불과 며칠 전 율천에게 압도당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효경의 강함은 율천과 겨뤄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 그녀는 패했다.

뒤로 날려가면서도 효경은 자신의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이렇게나 빨리 발전할 수 있다고? 가능하지 않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래서 짐이 조화무제를 선택한 것이잖느냐?”

황제가 제왕검형 중의 지(止)를 펼쳐 효경이 허공에서 멈추도록 했다.

돌아보는 효경을 보며, 황제가 다시 말했다.

“도와다오, 효경. 내 목표가 뭔지 너는 이미 알잖느냐?”

효경은 오랫동안 황제를 바로 옆에서 살폈다.

그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도명의 손에 죽으려 했던 넉 달 전에도, 그녀는 옆에 있었다.

황제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권력이 아니었다.

천하의 안정!

안정되지 못한 세상에서 가장 고통받는 것은 민초다.

황제는 배화교의 복수를끝맺게 하고 천하를 안정시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바칠 결의를 굳힌 상태였다.

- 이 목표를 위해 조카를 해치고, 친인들을 버렸다. 짐의 목숨만 남겨둔다면 너무 이기적이지 않느냐?

입버릇처럼 말하는 황제의 선언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

효경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방유 대학사를 해친 날, 황상이 혼자서 얼마나 오래 울었는지를 오직 나만은 알고 있어요.”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랫동안 네가 짐의 진심을 알아주기 바랐다.”

“내 정체를 알았던 거군요? 알기에, 일부러 내게 그런 모습을 보여서 날 설득한 건가요?”

“직접 판단하려무나. 짐은 도움을 받을 수 있기만을 원한다.”

황제가 다시 애원했다.

“제발 총수를 지켜다오. 그를 다시 죽게 둘 수는 없다.”

효경은 결국 소리를 질렀다.

“나 외의 일곱 명의 천사가 그곳에 갔어! 세상이 모두 나서도 이길 방법은 없다고!”

“있다. 너도 알잖느냐? 방법이 있도록, 짐이 그리 만들었다.”

황제가 사도명을 보았다.

효경도 사도명을 보았다.

사도명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금성으로 달려오던 신 무림맹의 고수들! 그들이 모두 은교교의 지휘 아래 청해성으로 방향을 바꿀 겁니다.”

효경이 물었다.

“연합의 총수가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아는 건가, 무제?”

“은교교가 다녀왔소. 냉겸 장군의 안내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 배후에….”

사도명이 황제를 보았다.

“다른 이가 있었군.”

효경이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신무림맹의 고수 정도로는 절대 우리와 싸우지 못해.”

“전대의 은거고수들까지 나셔주셨소. 거기에 회천객들이 가세할 거요.”

효경은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는 팔백 명의 기재들 중에서 최종 선택되었다. 그런 후에도 수정관 속에서 명교 교수들이 전하는 내공을 흡수하며 수십 년을 지냈다. 그렇게 강해진 존재가 바로 우리들이다.”

사도명은 효경의 반말이 어색하지 않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녀의 나이는 매우 많았다.

사도명은 빙그레 웃었다.

“나는 며칠 전에 분명 율천보다 약했소. 조금 전엔 당신과 비슷했고, 지금은 강해졌소.”

효경은 부인하지 못했다.

사도명의 말은 사실이었다.

효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다. 황제가 널 선택한 이유를 믿고, 나 역시 널 믿어보기로 하지.”

“아아! 고맙다. 정말 고맙구나, 효경.”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는 황제의 뺨으로 눈물이 떨어졌다.

도광효가 그를 부축했다.

황제는 비틀거리며 용상에 앉았고, 앉은 채로 사도명을 보았다.

“정말로 오래 걸렸군.”

황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사도명은 단숨에 깨달았다.

그는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를 느껴왔다.

자신이 지금의 위치에 오는 동안, 먼 곳에서 길을 열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

그 힘이 누구인지, 사도명인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바로 황제였다.

무림도, 황실도, 심지어 명교 자체도 황제의 계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황제에게 없는 것은 하나였다.

적과 싸울 수 있는 힘.

그런데 그 힘을, 오늘 마침내 사도명을 통해 얻은 것이다.

“나으리는 고금 최악의 황제가 될 것이오.”

사도명의 말에 황제가 쓴 웃음을 지었다.

“다시 나으리인가? 최악의 황제가 된다? 그렇기보다는 짐은 이미 최악이지 아니하냐?”

“그 최악을, 어쩌면 힘없는 자들은 좋아하고, 악한 자들은 가장 싫어할 수도 있겠지.”

효경과 사도명의 싸움은 험했고, 강했으며, 어지러웠다.

두꺼운 돌과 강철이라도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이곳저곳이 무너져 내리자, 바깥에 대기하고 있는 혼돈마인과 아수라혈마인들이 나타났다.

모두 도광효의 명령에 복종하는 자들이었다.

싸움의 도구로 쓰이기 위해, 황제의 묵인 아래 사람으로서의 마음을 박탈당한 자들이기도 했다.

그들 사이에서 키가 크고, 얼굴이 검은 중년인이 걸어 나왔다.

그리고 황제를 향해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명하신 대로 모두 모았습니다. 마병단을 이끌고, 즉시 청해성으로 향하겠습니다.”

황제가 사도명을 보며 얼굴이 검은 중년인을 소개했다.

“이름은 마합지. 환관이지만 강하다. 도연이 가졌던, 마병들에 대한 명령권을 모두 넘겨 받았지. 도움이 될 게다, 무제.”

“나더러 마인들과 한 편으로 싸우란 거요? 나으리가 존엄을 빼앗은 저 사람들과?”

“그리만 해 준다면 짐은 짐만의 방법으로 속죄하마.”

황제가 사도명을 보았다.

“짐의 최후는 저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짐이 받을 고통 역시 저들에 못지않을 것이다. 이러한 속죄로도 안 되겠느냐?”

사도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앉아 있는 황제의 자세가 어딘가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사도명의 눈에서 나온 빛이 황제의 몸을 샅샅이 훑었다.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건가? 제왕검형을 익힌 고수면서도 조광효 학사가 줄곧 보호했던 이유는, 몸에 이미 병이 있기 때문이었소?”

효경이 깜짝 놀라서 사도명을 보았다.

황제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고, 도광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황상의 몸에 반위가 발견된 건 오래전이오. 제왕검형으로 막고는 있지만, 황상께서 겪으시는 고통은 마인으로 제련된 병사들의 고통에 조금도 못지않소.”

“그런 변명으로 죄악을 덮을 생각은 없다.”

황제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나 역시 고통 속에 있다는 건, 이미 저지른 죄악에 대해 조금의 위안은 되지.”

사도명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효경은 낮게 한숨을 쉬면서 눈을 감아 버렸다.

“재밌지 않느냐? 황제가 되어 최고의 권력을 갖고 세상을 바꾸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날 혼내는 건, 내 몸속에 깃든 작디작은 바위구나.”

반위는 암이다.

사도명은 황제가 살아남을 방법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죽을 상태로 굳이 죽여 달라 애를 쓰신 거요? 알겠습니다, 황상! 청해성으로 가서 회천연합 총수를 구하겠소. 명교는, 뜻을 이루지 못할 겁니다.”

황제는 효경을 보았다.

“천하 경영보다 어려운 것이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더구나. 도와다오, 효경. 네게 보여준 모든 것이 나의 진심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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