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괜찮은 재주가 생겼다니까
궁녀 효경은 귀머거리였다.
적어도 황제와 도광효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사도명의 물음에 효경은 곧바로 몸을 돌려 또렷하게 대답했다.
“매우 어리석으며, 통할 리 없는 계획이라고 생각해요.”
사도명의 표정은 태연했다.
하지만 도광효는 크게 놀라 효경을 향해 외쳤다.
“귀머거리가 아니라고? 말도 안 돼! 분명 확인했건만!”
“귀가 들리지 않는 건 맞아요. 하지만 네 살 때, 교주님의 성은을 받고 공기의 진동을 피부로 느끼는 방법을 배웠죠.”
“교주? 배화교주?”
도광효의 물음에 효경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명교예요. 당신들의 나라인 명, 명교입니다.”
“너도? 너도 성화산인인 거냐? 황상의 지근에서, 모든 것을 살피고 있었던 거냐?”
도광효의 물음에 궁녀 효경이 빙그레 웃었다.
“제 임무는 많아요. 우선 한 가지를 말씀드리자면….”
효경은 곳곳의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살폈다.
어떤 잔은 비어 있었고, 어떤 잔은 그대로였다.
“만에 하나 우리의 대업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때 황제 암살을 실행하는 게 포함되죠.”
효경은 도광효의 찻잔이 모두 비어 있음을 보았다.
“차가 매우 쓰지 않았나요, 도광효 학사?”
도광효의 얼굴에서 핏기가 단숨에 사라졌다.
“차, 차에 약을 탔다고? 하지만 너는 분명히 차를 가장 먼저 기미하지 않았느냐?”
“했죠. 황제에게 드리는 한 잔만! 도 학사님은 분명히 다른 잔을 드셨잖아요?”
도광효는 황급히 가슴을 잡고 운기조식해 보았다.
답답한 통증이 느껴졌고, 점점 가중되고 있었다.
그는 황제와 은교교의 찻잔은 변함이 없음을 살핀 후, 찻물을 모두 비운 사도명에게 물었다.
“괜찮소, 조화무제?”
사도명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안위보다 황제를, 나를, 그러니까 결국 세상의 운명을 더 걱정한단 겁니까? 결국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못하겠군요.”
“중독되지 않았는지 물었소.”
사도명은 은교교 앞의 잔까지 집어 단숨에 마신 후 대답했다.
“당문에게 좋은 인연이 있었고, 대리국에서는 모든 걸 응축시킬 수 있는 재주를 배웠습니다.”
사도명이 검지를 내밀었다.
그곳에서 진녹색의 방울이 흘러나오더니, 바닥에 떨어졌다.
치이이-!
대리석 바닥을 태우며, 진녹색 방울은 기화되었다.
사도명이 몸에서 응축시킨 독의 덩어리였다.
궁녀 효연은 고개를 흔들었다.
“조화무제는 정말로 상대하기가 쉽지 않군요.”
그그그-그긍!
갑자기 벽에 붙은 기관이 진동하더니 문이 열렸다.
황제는 미간을 찡그리며,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았다.
주름 가득한 얼굴과 구부정한 등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자는 황제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윤 어의!”
그는 황제의 병을 치료하는 어의 윤시호였다.
윤시호가 들어오자, 궁녀 효연이 그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조화무제는 녹혈산을 스스로 배출했어요. 하지만 도광효 학사는 이미 복용했지요.”
어의 윤시호는 도광효의 앞으로 갔다.
도광효가 무엇인가를 물으려 했지만, 윤시호의 손이 그의 맥을 짚는 것이 훨씬 빨랐다.
“확실히 중독되었다. 도광효 학사! 그대는 이제 한 시진을 넘기지 못하고 녹색의 핏물로 녹아내려서 죽을 것이다.”
도광효는 윤시호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궁녀와 어의의 행동에서, 그들이 누군지를 분명히 알아차렸다.
도광효가 사도명을 보았다.
“이런 사실을 혹시 짐작했던 거요, 무제? 그래서 뒤돌아있던 효경에게 말을 건넨 거요?”
“황실과 무림을 모두 속이고 장악하려 한 배화교라면….”
사도명이 도광효의 앞으로 와서 양쪽 손목을 잡았다.
“황제의 주변을 아무 일 없이 내버려 두었을 거라 생각하는 편이 더 어리석겠지요?”
콰아아아아-!
사도명의 몸에서 강하고 찬란한 서기가 일어났다.
빛은 도광효의 온몸을 덮었다.
도광효의 눈이 커졌다.
사도명의 빛이 그의 몸속을 헤집으며, 무엇인가를 밖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기 시작함을, 도광효는 느꼈다.
“무제! 지금 날… 케헥.”
도광효는 기침과 함께 무엇인가를 입밖으로 밭았다.
피와 뒤섞인 진녹색의 기운이 바닥을 태우기 시작했다.
치이이-이!
피어나는 연기는, 사도명이 방출한 독기운이 바닥을 태우던 때와 똑같았다.
“나, 나를 치유해준 거요?”
“주변에 배화교의 간세가 있을 거라 짐작한 사람은, 그런데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명은 황제를 보았다.
황제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들어 궁녀 효경을 보았다.
효경은 한 모금도 비지 않은 황제의 찻잔을 보며 물었다.
“왜 마시지 않으셨죠?”
“성화산인은 스스로 죽음을 각오한 자들이다.”
황제의 답은 간단했다.
하지만 핵심을 뚫고 있었다.
스스로 몸을 터뜨려 죽을 수 있는 성화산인이라면 자신이 독을 탄 차라고 해서 마시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효경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어의 윤시호를 보았다.
윤시호가 효경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환약 하나를 꺼내어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환약을 삼키며 황제를 보고 물었다.
“제가 잘못 물었군요. 조화무제가 왔음을 알리며, 굳이 차를 마시겠노라고 나를 밀실 안으로 불렀던 이유가 있으셨군요.”
“독을 탔다면 너 또한 중독이 될 것이고. 스스로 중독되면서도 내가 죽지 않는다면, 독을 쓴 자를 불러들여 해독하려 들겠지.”
황제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후에, 윤시호를 보았다.
“어의! 짐이 그대를 서운하게 대해준 기억이 없건만.”
윤시호가 쓰게 웃었다.
“세상은 본래 우리 명우(明友)를 서운하게 대했고, 제대로 대우해준 기억은 없습니다, 황제.”
황제는 어의 윤시호를 보다가, 자신의 앞에 놓인 찻물을 다시 한번 보았다.
“너희의 반역죄는 이미 들켰다. 오체분시의 형을 당해 죽느니, 네가 만들 걸 마시고 단숨에 죽는 것이 편할 것이다.”
윤시호는 망설이지 않았다.
황제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앞으로 나와 찻잔을 잡았다.
그리고 단숨에 잔을 비웠다.
도광효의 안색이 변했다.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윤시호는 성화산인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 않는다.
독의 위력을 아는 자가 스스로 독을 마신 이유는 분명했다.
“몸속의 굉천환을 터뜨리려 합니다. 피해야 합니다, 황상!”
도광효는 고함을 지르며, 윤시호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는 회천객 중 한 명이었다.
모든 회천객들의 대형이라 불리는, 초창기 회천객이었다.
윤시호의 복부에 있는 굉천환을 간파하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몸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사도명이 더 빨랐다.
도광효가 윤시호의 앞에 도착하기 전, 공간을 접으며 움직인 사도명이 윤시호의 배에 있던 굉천환을 파괴하고 있었다.
퍼-엉!
윤시호는 자신의 뱃속에서 일어난 작은 폭발을 느끼고 안색이 크게 변했다.
고통보다 더 깊은 안타까움이 그의 주름진 얼굴에 가득했다.
윤시호가 고개를 돌려 궁녀 효경을 보았다.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도광효가 미간을 찡그렸다.
“어쩌면 좋습니까? 윤 어의보다 효경, 네가 더 위의 신분을 가졌다는 의미냐?”
궁녀 효경은 빙그레 웃었다.
“마땅히 궁금하게 여겼어야 했어요, 도 학사! 가짜 황제인 엄부동을 제거했는데도, 왜 우리들이 움직이지 않았는지를.”
도광효가 황제를 보았다.
황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군. 이미 움직였던 거구나.”
효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건녕제가 황위를 되찾으려 하지 않았던 건, 꽤나 현명한 선택이었어요. 나으리는 머리가 좋네요.”
황제가 사도명을 보았다.
“효경의 말과 짐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무제, 그대라면 능히 짐작할 수 있겠지?”
사도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배화교가 황실에 가짜 황제를 심고, 나으리가 그를 없앴다는 것은 알아들었소.”
“배화교가 아니라 명교다! 우리를 배화교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우리들 자신뿐이다.”
효경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사도명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나으리가 더 이상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음을 깨달은 배화교는, 마침내 팔대천사의 봉인을 풀었던 것이군.”
팔대천사 중의 혈화 천사, 율천이 가장 먼저 세상에 나왔다.
사도명이 누구보다 먼저 그와 싸운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나의 힘을 파악하기 위해서! 두 번째 재액인 자신들의 힘이,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지 미리 확인해 보기 위해서!”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짐이 저항하면, 팔대천사가 등장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조화무제, 그대가 등장하였기에, 짐은 배화의 무리와 싸울 결심을 굳혔다. 그대를 믿고서!”
황제의 말을 들으면서도, 사도명의 시선은 계속 효경을 향했다.
그녀의 몸을 샅샅이 훑다가,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
“도 학사! 나는 굉천환의 해체술을 제대로 배운 바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까 어의의 굉천환을 해체했잖소? 그렇잖아도 무척 신기하게 여기고 있소.”
“밀소림의 진전을 받은 덕분에 특별한 재주가 좀 생겼죠! 몇 번 보면 따라할 수 있는 재주!”
사도명은 궁녀 효경의 몸 전체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도, 저 여자의 몸 어디에서도 굉천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저 여자는 설마 성화산인이 아닌 걸까요?”
도광효의 낯빛은 딱딱했다.
“아니면 무척 좋겠지만, 그런 거 같아서 오히려 걱정이오.”
사도명이 은교교를 보았다.
은교교가 그의 눈빛을 알아듣고, 목걸이를 꺼내 손에 들었다.
“알아보나요, 효경?”
“성화령.”
효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율천의 연락을 받았어요. 우린 즉시 분석에 들어갔고, 덕분에 매우 좋은 소식을 알아냈죠.”
“좋은 소식?”
“성화령을 건넨 천연합의 총수! 우린 그의 정체를 궁금하게 여겼는데, 마침내 알아냈어요.”
황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고 핏기가 사라졌다.
곁눈으로 그 모습을 본 효경이 환하게 웃었다.
“이제 보니 황상께서도 그 총수가 누군지를 이미 알고 계셨던 거군요?”
황제가 냉소했다.
“흥!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그가 회천연합 총수라면, 회천연합이 우리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는 게 설명이 돼요.”
둘 사이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은교교가 사도명을 보았다.
“난 연합의 총수가 누군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 효경이라는 여자는 제가 짐작하는 그 신분이 맞는 거죠?”
사도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불행히도! 명칭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틀림없는 것 같군.”
효경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매우 밝고 환해서, 태생적인 귀머거리라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
“이름은 효경, 그대로 부르면 돼요. 신분을 알고 싶다면 나는 밀화라고 불려요.”
“밀화! 은밀한 꽃?”
혼자 중얼거리는 사도명의 말에, 효경은 다시 한번 웃었다.
“호호호. 우리 여덟 명은 모두 꽃을 좋아해요. 율천은 핏물 잔뜩 묻은 꽃을 좋아하니 혈화! 난 황궁에 숨어 든 꽃이니 밀화!”
“밀화 천사 효경!”
은교교가 소리쳤다.
“어쨌든 귀하가 명교의 교도인 것은 확실하다는 소리죠?”
은교교의 손에는 성화령이 잡혀, 높이 들려 있었다.
효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그럼 이 성화령의 주인을 지켜야 하는 것도 확실하죠?”
“호호호. 율천을 상대할 때 썼던 방법을 또 해보려는 건가요? 아서요. 말했잖아. 우린 연합 총수의 정체를 이미 알았다니까.”
은교교가 사도명을 보았다.
사도명은 미간을 찌푸렸다.
“배화교 또한 회천연합을 연구했다면, 그 총수가 있는 장소를 당연히 미리 알고 있었겠지!”
“호호. 이제 위치와 그 정체마저 알았어요. 사실은 우린 이미 모두 진군을 시작했답니다.”
은교교의 안색이 변했다.
도광효도 깜짝 놀라 소리쳤다.
“총수님을 공격하려 팔대 천사가 모두 움직였다는 소리냐?”
“도광효 학사! 겁이 나나요? 자신의 사부가 죽게 될까 무서워요?”
“나, 나는….”
“염려 말아요. 도 학사님은 그 전에 먼저 죽여줄게요.”
“그렇게는 안 될 거다.”
효경은 바로 옆에서 들린 사도명의 목소리에 크게 놀랐다.
발작적으로 몸을 돌려 옆을 보자, 삼 장의 거리에 서 있던 사도명이 어느새 바로 옆에 있었다.
마치 공간을 건너뛰어, 다른 장소에 나타난 것 같았다.
“지, 지금 설마 율천의 격공도약(隔空跳躍)을 시전한 건가요?”
“아까 말했잖소. 내게 괜찮은 재주가 생겼다니까.”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몇 번 보고 난 것은 그대로 흉내 내는 재주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