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반격
율천은 웃었다.
사도명이 몸을 날려 은교교의 앞을 막아서는 걸 보면서, 그는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
율천이 물었다.
“나를 이길 수 있다고?”
그는 은교교의 앞을 지키는 사도명의 의중을 안다.
“정말 그럴 자신이 있다면, 그 여자를 보호할 게 아니라 당장 내게 덤벼들어야 하지 않을까?”
율천은 사방을 살폈다.
연자강이 이미 죽은 법허의 시신 옆을 지키고 있었다.
곽소혜는 그런 연자강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백산은 갈라진 배에서 내장을 쏟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런 백산의 옆에 적보윤과 청희태는 분노하며 서 있었다.
병사들은 모두 복잡한 눈빛을 한 채 율천을 노려보았다.
그들은 모두 율천을 두려워했다.
또한 그 행위에 분노하며, 강함에 대해서는 경악하는 중이었다.
“사람이란 건 참 재밌다.”
주변을 둘러보던 율천의 시선이 사도명에게서 멈췄다.
“왜 자신도 아닌 타인의 상처에 분노할까? 왜 질 걸 뻔히 알면서도, 감히 대들려 할까?”
사도명이 은교교에게 남몰래 전음을 보냈다.
[분하지만 저놈의 판단이 맞아. 당해낼 자신은 없어. 내가 싸우는 사이, 연자강과 곽소혜를 데리고 달아나.]
사도명은 감정에 휩쓸려 이성적인 판단을 잃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강했다.
주변에 모여 있는 그 누구보다 강했고, 압도적이었다.
그럼에도 율천을 이길 자신이 없다 말한다면, 그것이 진실일 터였다.
은교교는 그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그녀는 달아나지 않았다.
사도명의 전음이 끝나자마자, 오히려 할 걸음 걸어 나와 율천의 앞에 섰다.
“교교!”
“걱정 말아요. 이 사람은 나를 해치지 못해요! 아마도 이것 때문일 겁니다.”
은교교는 목걸이를 벗어 율천의 앞에 내밀었다.
“이게 뭐지? 무엇이기에, 내밀었던 손을 황급히 거둔 거지?”
율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성화령은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가 갖고 있을 게 아니다.”
“성화령?”
은교교는 비로소 목걸이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하지만 성화령이란 이름은 이미 많은 사람이 아는 것이었다.
다만 실물을 보는 것은, 모두가 처음이었다.
“배화교의 최고 신물이라고? 배화교의 차기 교주로 예정된 자에게 주어지는 물건?”
사도명은 다시 앞으로 나와 은교교의 앞을 보호했다.
“질문하지 말았어야지.”
그의 판단이 옳았다.
은교교가 질문하지 않았더라면, 율천은 계속 은교교를 차기 교주 후보로 알았을 것이다.
“똑똑하군.”
율천이 칠흑의 검을 들었다.
“그러나 넌 이미 질문했다, 계집. 차기 교주가 아니라면 이제는 죽어야지.”
은교교가 고개를 흔들었다.
“쳇. 보호하려더니 죽이겠다? 이렇게 변덕이 심해서야, 흥!”
“성화령은 어디에서 얻은 게냐? 대답한다면, 고통은 없이 죽여줄 것을 약속하마.”
은교교가 빙그레 웃었다.
“실수하면 어쩌려고? 죽이고 났더니 내가 진짜 후계자?”
“뭐?”
“강제로 얻은 것 아냐. 주운 것도 아니지. 그러니 성화령을 가진 내가 진짜 배화교의 후계자인 게 당연하지 않을까?”
“배화교가 아니라 명교다! 명존을 모시는 명교!”
율천이 칠흑검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허공의 구멍으로 사라진 검이 은교교의 바로 옆, 또 다른 구멍에서 나타났다.
사도명의 무영섬이 칠흑검을 막아갔다.
“그럴 것 없어요.”
은교교가 사도명을 잡았다.
사도명은 놀라 은교교를 봤지만, 결국 그녀의 말이 옳았다.
율천의 칠흑검은 은교교의 바로 옆에서 나타났지만, 나타난 그 순간에 즉시 멈추었다.
율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
은교교는 자신의 목 바로 앞에서 멈춘 칠흑검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것 때문에 차마 날 해칠 수 없지? 확인을 마친 후에야, 날 죽일 용기를 가지겠지, 율천?”
“…계, 계집년!”
“공격하세요, 무제. 이놈이 반격하면 제가 즉시 끼어들게요.”
사도명의 온몸에서 수십 갈래의 천극멸이 피어올랐다.
그는 은교교의 전략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렸다.
“알겠어! 함부로 위험을 무릅쓴 것에는 화나지만, 그건 저 망할 놈을 잡아 놓고 나서 따질게.”
수십 갈래의 천극멸이 동시에 움직였다.
검은 율천의 전후좌우를 모두 동시에 노렸다.
콰아아-!
율천의 몸은 허공에서 사라졌고,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사도명이 양손을 교차했다.
헛되이 허공만 가른 천극멸을 일의생멸로 되돌리면서, 사도명은 반대편에 나타난 율천을 다시 한번 노렸다.
“공간의 뒤틀림! 어떻게 하는 건지 몇 번만 더 경험하면 알게 될 것도 같다만, 율천!”
율천이 오른손을 들었다.
“너 정도의 능력으로는!”
칠흑의 검이 그의 손을 떠나 앞으로 날았다.
천극멸을 만날 때마다 구멍을 만들며 몇 번을 건너뛰더니, 사도명의 가슴 바로 앞에 나타났다.
사도명이 가슴을 강기로 보호하자, 율천은 손을 뒤집었다.
칠흑검은 구멍을 다시 한번 건너더니, 사도명의 목에 나타났다.
“내가 하사하는 죽음을 피해내지 못한다, 사도명!”
하지만 율천은 결국 사도명의 목을 찌르지 못했다.
“망할!”
칠흑검은 멈추었다.
은교교가 어느새 사도명의 뒤에 나타나 칠흑검의 바로 앞에 목을 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집! 너 정말!”
율천은 식은땀을 흘리며, 가까스로 멈춘 칠흑검을 회수했다.
그는 왼손을 흔들어 허공에 커다란 구멍 하나를 만들었다.
“다시 만날 때는 철저하게 각오해라. 그때는 모든 확인이 끝난 후일 테니까.”
율천은 허공에 만들어진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구멍도 동시에 사라졌다.
더 이상 율천의 모습이 보이징 않자, 사도명은 은교교를 보았다.
“당신! 정말로!”
“아아!”
은교교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녀는 이미 여러 차례 목숨을 걸었다.
사소한 계산의 실수라도 있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도명은 은교교의 어깨를 붙잡고 고함을 질렀다.
“누가 목숨을 걸랬어? 지금 얼마나 위험했는지는 알아?”
은교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을 뻔했죠. 나뿐만이 아니라 당신 또한!”
“그, 그건!”
사도명은 더 이상 채근하거나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은교교를 지키려 했듯, 은교교 또한 자신을 지켜주려 했던 것을, 진즉 알고 있었다.
사도명은 화를 내는 대신이 은교교를 힘껏 안았다.
안긴 채로, 은교교가 물었다.
“누굴까요? 그 미친놈은 대체….”
- 천사중의 한 명이오.
목소리는 옆에서 돌렸다.
사도명은 고개를 둘려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복부가 꿰뚫려 내장을 흘리면서도, 백산은 마지막 호흡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다.
“천사에 대해 자세한 걸 알고 싶다면 황궁으로 가셔야 하오. 거기 가면, 우리들의 대형(大兄)이 있소.”
적보윤이 소리쳤다.
“상처가 큽니다. 말하느라 몸이 흔들리면 위험합니다, 장군.”
“거기 가서….”
백산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대형을 만나면 모든 설명을 들으실 수 있을 거요, 조화무제. 막아야 하오. 천사들의 등장은…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장군님-!”
적보윤과 청희태가 함께 고함을 질렀다.
백산의 호흡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상태 그대로 멈췄다.
**
<무제 귀환>
조화무제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문은 강호에 빠르게 퍼졌다.
황제의 무림말살령을 피해 각처에 은거했던 무림인들.
조화무제는 그들을 향해 한 가지를 선언했다.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살아남아야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최후의 수단마저 피하지 않겠습니다.”
조화무제의 선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천하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최후의 최후에 대한 각오!
무림을 말살하려는 황제의 의지에 대항해, 무림은 반역조차 피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황제의 무림말살령이 왜 등장했는지에 대한 소문도 퍼졌다.
배화교의 존재!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그들은 황실과 무림 모두에게 복수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각처의 은거 고수들이 더 이상은 피하지 않고, 자금성을 향하기 시작했다.
황제가 무림말살령을 실행시키고자 만든 운우풍뢰!
그들이 활동을 멈추었다는 소문도 배화교의 존재만큼이나 뜨겁고 요란했다.
운우풍뢰가 멈춘 배경에는 조화무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모두 짐작하고 있었다.
황궁을 향하는 수많은 강호의 은거고수들!
그들 중에 조화무제 사도명 또한 포함되어 있으리라고!
**
“어찌 되고 있느냐?”
황제가 물었다.
도광효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대답을 했다.
“예상했던 대로입니다. 그들은 결국 천사를 풀었습니다.”
황제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가까스로 나아가던 상처가 저절로 벌어져 핏물에 배어나왔다.
“누가, 누가 나왔느냐?”
“우선은 혈화부터입니다. 하지만 팔대천사 모두가 곧 나타날 걸로 보아야 할 겁니다.”
“참담하다. 황제이면서, 나라의 일조차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구나. 힘이 없다. 이래서야 조카를 볼 낯이 있을 리 없다.”
황제는 입술을 여러 차례 깨물더니 다시 말했다.
“대신 싸우겠노라고, 내 모든 힘을 다해 싸우겠노라 하고서 모든 것을 빼앗아버린 나의 조카이기에, 정말 너무나 미안하다.”
도광효는 길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누구보다 황상의 희생이 크심을 저는 압니다.”
“도연아!”
“그 이름으로 절 불러주실 때가 좋습니다. 황상을 따르는 것은, 제가 회천객이어서가 아니라 황상께서 가장 많이 희생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황제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스승이었던 방유마저 죽게 했다.
황제가 부르르 한 차례 몸을 떨더니, 눈을 감았다.
“사도명은 어찌 되었느냐?”
“오고 있습니다.”
도광효가 서찰을 펼쳤다.
그곳에 빽빽이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천하 각처에서 자금성을 향하고 있는 은거고수들의 명단입니다. 사도명은 이들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오고 있습니다.”
“좋다. 매우 좋구나.”
황제가 황실의 뒤에 숨은 검은 그림자를 느낀 것은 번왕이던 시절의 일이었다.
그는 그림자의 정체를 조사하다가, 배화교가 세상과 황실에 남긴 성화산인에 대해 알게 됐다.
싸울 방법이 없었다.
대항하기에는, 모든 곳에 깊이 뿌리박힌 배화교의 그림자가 너무 짙고 길었다.
황제는 결국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그들과 싸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다.
“세상에는 삼대재액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진짜 삼대재액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황제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이제 그 뿐이다. 조화무제야말로, 내가 마지막 믿을 사람이다.”
“하지만 사도명은 화가 많이 났을 것입니다.”
“그럴 테지.”
“어쩌면 황상을 돕지 않고 무엄한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그 녀석이 그걸 원한다면, 또한 받아들여야지.”
황제가 빙그레 웃었다.
“이어지지 못할 황실이라면, 차라리 사라지는 편이 낫다. 황실과 무림, 모두가 양립할 수 없다면 무림이라도 살아남아 배화교의 야심을 꺾어주기를 바란다.”
“폐하!”
“죄에는 대가가 따른다. 황실이 배화교에 준 것을 되돌려 받는 일은 억울하지 않다. 하지만 그 와중에 무고한 백성들이 고초를 당하는 일은 정말로 마음이 아파서….”
-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놀란 황제와 도광효가 고개를 돌렸다가, 본래부터 있었다는 양 서 있는 사도명을 발견했다.
“조화무제!”
“백성의 고초가 안타깝다는 그 마음이 정말 진심이라면!”
사도명은 자신의 말을 이었다.
“내가 매우 간단한 해결방책을 제시해도 되겠소, 나으리?”
사도명은 방유처럼 황제를 황제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는 황제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서 계속 말했다.
“배화교 당대의 교주를 만날 생각이오. 그러려면, 성의를 보여줄 선물이 필요한데!”
“어떤 선물이면 되겠는가?”
사도명이 황제의 목을 가리켰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도광효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네 이놈! 감히!”